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89
189화 김태현의 경고
“자네는 몰랐어?”
놀랐던 마음을 빠르게 진정시킨 엄상현 회장은 무겁게 가라앉은 소리로 물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잘 가르치지 못한 제 불찰이 큽니다.”
박경국은 몰랐다는 말과 불찰이라고 둘러대며 풀죽은 소리로 대답했다.
“흠…….”
엄상현 회장은 이미 엄현식이 가지고 있는 자료가 박원식에게서 나왔다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
그 자료의 대가가 송우증권 대주주라는 게 놀랐지만, 엄현식에게 받았던 충격 때문에 그 강도는 덜했다.
사실 엄상현 회장은 송우증권 경영권을 방어할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박원식이 송우증권의 대주주라는 게 무척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
‘소액주주를 끌어모아 주총에서 온갖 요구를 하는 놈들도 있는데…….’
박원식의 지분이 어디로 옮겨 가느냐에 따라 송우증권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다.
‘박 과장이 몰랐다고는 하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그는 결국 아들의 편에 서게 될 것이다.
엄상현 회장은 알고 있다.
전적으로 박경국 과장을 신뢰했던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박원식을 관리하려면?
‘박경국 과장이 내 곁에 있는 게 나아.’
그리고 박원식이 소유한 주식을 되찾아 올 계획을 마련할 때 박경국 과장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에 엄상현 회장은 누그러진 목소리로 얘기했다.
“박 과장, 그만 일어나게.”
“예……?”
“내 자식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몰랐는데, 자네라고 별수 있었겠는가.”
“회장님…….”
박경국 과장은 애써 감동한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서 일어났다.
“자네 덕분에 집안 살림에 대한 걱정이 없었어.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회장님!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애써 감격한 표정을 지은 박경국 과장이 깊이 허리를 숙였다.
* * *
“현호야, 이제 오냐?”
퇴근한 현호가 정원을 지나 본관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큰형 엄현식의 목소리에 뒤돌아보니, 그가 미소 띤 얼굴로 다가왔다.
“형도 지금 퇴근한 거야?”
“아냐. 나는 조금 전에 왔는데 산책 중이었어.”
“그랬구나.”
“요즘 계속 퇴근이 늦는 거 같던데, 일이 많아?”
“준비하는 사업이 있어서 그래.”
“준비하는 사업이 뭔데?”
“예능 방송 채널 오픈을 준비하고 있어.”
“하하. 자식! 이제 정말 사업가가 다 됐구나. 넌, 잘 해낼 거야.”
“칭찬, 고마워.”
대답은 이렇게 했지만 현호는 그의 칭찬이 어색했다.
‘무슨 꿍꿍이지?’
그의 칭찬이 고맙기보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사실 큰형 엄현식은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다. 그런 그의 입에서 자신을 추켜세우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현호야, 그 일은 언제까지 바쁠 거 같냐?”
“내 할 일은 거의 마무리됐고, 실무자들이 바빠질 거야. 그런데 그게 왜 궁금해?”
“아…… 사실 네게 부탁할 게 있거든.”
‘그러면 그렇지.’
현호는 이제야 그가 칭찬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한 후 뭔가 부탁을 하려던 것.
“부탁? 뭔데?”
“너, 수경이랑 연락 안 하지?”
현호는 뜨끔했지만 티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작은아버지와 우리 아버지가 다툰 후부터는 두 집안의 교류가 없으니까.”
“그런데 사업을 하다 보니 수경이한테 연락할 일이 생기더라.”
“사업 때문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해야지.”
“그런데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게 되니까, 그 관계가 계속 이어지더라. 네 말 무슨 뜻인지 알지?”
현호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수경이가 강원도 쪽에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리조트를 오픈했어.”
알고 있다. 하지만 현호는 모르는 척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수경이 누나한테는 잘된 일이네.”
“그런데 수경이가 나한테 초대장을 보냈어.”
“초대장?”
“물놀이 리조트 개장 축하연에 와 달라는 초대장이야.”
알고 있다.
엄수경이 자신에게 전화해서 엄현식에게 초대장을 보냈다는 걸 알려 주었다.
‘큰형은 수경이 누나가 자기 편이라 생각하고 있지.’
엄현태의 송우생명 주식이 엄현주에게 넘어갔을 때 현호는 엄수경을 이용해 엄현식에게 정보를 흘렸다.
그리고 엄수경은 현주의 차명 관리인이 된 유태규 검사의 친형, 유종일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때 이후로 엄현식과 엄수경은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아버지 때문에 가는 게 꺼려지는 거야?”
현호는 엄현식이 걱정하는 게 이해되었다.
아버지 엄상현 회장과 엄상철 두 형제가 연락을 끊고 지내는 사실도 초대에 응하는 걸 어렵게 한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송우생명 주식 때문에 아버지 엄상현 회장과 한차례 부딪쳤기 때문에 당분간은 아버지가 싫어할 일은 하고 싶지 않으리라.
“그렇기도 하고, 때마침 중요한 비즈니스 미팅이 잡혔거든.”
“…….”
“그런데 생각해 보니 수경이가 초대장을 보낸 속뜻은 두 집안의 교류를 이어 보자는 것 같은데, 거절하자니, 예의가 아닌 것 같거든.”
현호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렇기는 하지.”
“그래서 나 대신 네가 개장 축하연에 참석해 주면 안 되겠냐?”
“작은형이나 누나도 있잖아?”
“야! 현태와 현주가 내 부탁을 들어줄 거 같냐? 아버지께 고자질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
사실이 그러할 것이기에 현호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다행히 새 사업에서 네가 할 일은 마무리됐다며? 그러면 개장 축하연에 다녀올 시간이 있는 거지?”
“스케줄을 조정하면 시간 낼 수는 있을 거야.”
“잘됐네. 그럼, 나 대신 네가 다녀와 줘. 내가 수경이한테 얘기해 놓을게.”
“알았어. 그렇게 할게.”
현호는 원래 며칠 후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엄수경이 송우생명 주식을 차지하게끔 도와준 공이 크기에 그녀의 새로운 리조트 개장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엄현식이 부탁하니, 그 핑계로 갔다 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고맙다, 현호야.”
“좋은 구경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재밌겠네.”
“그래, 재밌을 거야. 아! 너 피곤하겠다. 어서 들어가 쉬어.”
“형도 쉬어.”
“그래.”
현호는 본관을 향해 앞서 걸었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뒤에서 짓고 있는 엄현식의 의미심장한 웃음을.
* * *
며칠 후.
현호는 출근하는 승용차에서 엄수경과 통화하고 있었다.
[축하연에 온다고 현식 오빠한테서 얘기 들었어.]
“사업은 잘될 거 같아?”
[돈 들인 게 얼만데 잘돼야지. 축하연은 저녁에 있으니까 조금 일찍 와서 리조트 보고 평가 좀 해 줘.]
“알았어. 보고 칭찬해 줄게.”
[눈치챘구나?]
“자신 있으니까 그런 말하는 거잖아.”
[하여튼, 늦지 않게 와.]
“알았어.”
현호가 통화를 끝내자 옆에 있는 최명준 실장이 물었다.
“축하연이 끝나면 밤이 늦을 거 같은데, 그쪽에 있는 호텔을 예약할까요?”
“그렇게 하세요. 객실 예약은 나 혼자 묵는 걸로요.”
“예……?”
현호의 얘기에 최명준 실장은 당황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축하연에는 나 혼자 갔다 올게요. 최 실장은 일찍 퇴근해요. 오늘 어머니 생신이잖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내가 안 괜찮아요.”
현호는 책임감이 강한 최명준 실장이 가족 행사 참석을 포기하려는 걸 안다.
“최 실장이 오늘 가족 행사 빠지면, 내가 최 실장 모친을 뵙기 민망해져요.”
“…….”
“매일 나를 위해 애쓰는 걸 아는데, 어머니 생신마저 못 챙기게 하는 악덕 상사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사장님께서 매년 어머니께 선물을 보내 주시는 거 알고 있습니다.”
“모친께 가장 큰 선물은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죠. 그러니 내 말대로 해요.”
설득이 안 될 걸 아는 최명준 실장이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가 대답하자 현호는 운전기사를 향해 얘기했다.
“축하연에는 제가 운전해서 갈 테니, 박 기사님도 오늘은 일찍 퇴근하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어느덧 엄현호가 탄 승용차가 송우미디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한 남자가 구석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끼이이익.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동시에 현호와 최명준의 몸이 앞으로 휙 기울었다.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빠르게 정신을 수습한 최명준이 옆에 있는 현호에게 물었다.
“아, 예. 나는 괜찮아요.”
최명준에게 대답한 현호는 운전기사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현호의 물음에 운전기사는 여전히 놀란 게 진정되지 않아 떨린 목소리로 얘기했다.
“죄송합니다, 사장님. 갑자기 사람이 튀어나왔습니다.”
사람이라는 말에 엄현호가 화들짝 놀랐다.
“사람이요? 부딪쳤습니까?”
“아니요. 다행히 부딪치지는 않았습니다.”
그 말에 안도한 현호가 앞 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돌리면, 사고 날 뻔한 건 개의치 않은 듯 덤덤한 모습의 남자가 보였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었다.
“저 사람은…… 김태현 씨 아닙니까?”
현호의 물음에 최명준이 앞 유리창 너머의 남자를 쳐다보다 놀란 기색으로 대답했다.
“아! 맞네요, 대한일보 기자였던 김태현!”
현호는 순간 알아차렸다.
그가 자신을 찾아왔고 일부러 급정거하게 했다는 것을.
현호는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그에게 다가갔다.
“김태현 씨가 여긴 웬일입니까?”
“엄현호 사장님께서 저를 아직 기억하고 계시니 영광입니다.”
김태현이 비아냥거리자 현호가 응수했다.
“뇌물 기자를 눈앞에서 직접 보니 신기하네요.”
“뭐어?”
화가 솟구친 그가 눈을 부릅떴다.
그가 팩트 확인도 없이 장수연의 입사 특혜 보도를 한 후, 현호와 장수연은 그가 취재비 명목으로 뇌물을 받는 영상을 대한일보 사장에게 보내 해고되게 했다.
“영상보다 실물이 훨씬 안 좋네. 이러기도 힘들 텐데.”
“이 새끼가…….”
그가 욕을 내뱉으려고 하자 현호가 승용차 쪽으로 손을 뻗으며 얘기했다.
“조심해. 당신 말 녹음되고 있어.”
흠칫 놀란 김태현이 승용차 쪽으로 쳐다보니, 최명준이 녹음기를 흔들어 보였다.
“으…….”
솟구치는 분노로 얼굴이 붉어진 김태현은 마음껏 욕을 내뱉을 수가 없지만, 이대로 물러나고 싶지도 않았다.
“엄현호, 너는 네가 잘난 것 같지? 네 뜻대로 모든 게 이뤄지는 것 같지?”
“…….”
“착각하지 마. 후회하게 될 테니까.”
김태현이 날카롭게 현호를 쏘아본 후 지나쳐 갔다.
그러자 현호는 승용차에 오르며 최명준에게 얘기했다.
“들어가죠.”
“예.”
승용차가 송우미디어 건물로 들어가 사라졌다.
‘김태현이 왜 온 거야?’
한편 출근하던 장수연은 저만치 차 안에서 현호와 김태현이 신경전을 벌이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눈빛이 아주 사납던데…… 쉽게 바뀌기는 어려워.’
장수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기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든 분풀이를 하고 싶어 회사 앞에서 기다렸으리라.
‘갑자기 튀어나와 사고 날 뻔하면서…….’
하지만 현호는 그런 위협으로 두려움을 느낄 사람이 아니다.
“김태현 씨가 무슨 짓을 해도 사장님하고 다퉈서 이길 실력은 아니지.”
이렇게 정리한 장수연은 차를 몰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아침 김태현의 갑작스러운 출현은 그의 패배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라즈베리 아이스티 두 잔 그리고 자몽 주스 한 잔 시원하게 주세요.”
점심 식사 후 동료들과 함께 회사 근처 카페에 온 장수연.
‘어?’
창문 너머로 김태현을 보고 흠칫 놀랐다.
‘지금껏 회사 근처에 있었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