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9
19화 미디어 그룹의 출발점
“대통령 주치의?”
엄현주는 잘못 들은 게 아닌지 다시 물었다.
이에 현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 주치의가 무슨 시험 쳐서 뽑는 줄 알아? 단순히 실력 있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인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야.”
“누나가 그런 인연과 인맥을 만들어 주면 되잖아.”
“뭐, 내가?”
엄현주는 잠시 눈만 깜빡이며 생각하더니 호기심에 찬 기색으로 물었다.
“좋은 아이디어 있어?”
“의약분업 때문에 의료계와 정부 사이에 분위기가 좋지 않아. 다시 재폐업과 파업을 할 것 같아.”
의약분업 때문에 지난 6월 의료계의 폐업과 파업으로 시민들은 의료 진료에 많은 불편과 혼란을 겪어야 했다.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는데, 의약분업 시행이 눈앞에 다가오자 의료계는 다시 투쟁을 예고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지.”
“이럴 때 송우병원이 먼저 선언하는 거야. 의사는 환자 곁에 있어야 하고, 우리 송우병원은 환자를 버릴 수 없어 파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아……!”
“TV 뉴스에 나가면 더 좋지.”
“방송에 나가는 건 문제 없어.”
“송우병원 같은 대형 병원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면, 다른 대형 병원의 파업 동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지. 아, 물론 우리 병원 의사들이 반발할…….”
“사표 쓰라고 하면 돼. 우리 병원에서 받는 업계 최고 대우와 명성을 버릴 수 있다면.”
현호는 그녀의 대답에 피식 웃었다.
조금 전 의구심을 갖던 엄현주의 태도는 어느새 사라졌고, 그녀가 더 적극적으로 나왔다.
“그런데 그걸로 어떻게 대통령과 연결되는 인맥을 만들 수 있다는 거야?”
“당연히 그것만으로는 안 되지.”
“뜸 들이지 말고 얘기해. 뭘 더 해야 하는데?”
“선언을 하기 전에 정무수석을 먼저 만나서 얘기를 나누는 거야. 송우그룹이 청와대를 돕겠다고 말이지.”
청와대에서는 다시 한번 의료계의 폐업과 파업이 이어진다면 야당의 압박을 피하기 힘들 터였다.
그런 와중에 도움의 손길을 뻗어 준다면 결코 마다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그런데 왜 비서실장이 아니고 정무수석을?”
“당연히 비서실장을 만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건 어려울 테니까.”
“흐음…… 정무수석이라고 만나기 쉬울 거 같진 않은데…….”
대통령비서실의 수석비서관 중 한 사람, 정무수석비서관.
비서실장만큼은 아니겠지만, 수석비서관 중에서도 막대한 권력을 자랑하는 정무수석을 만나기 쉬울 리 없었다.
그러한 걱정을 내비치는 엄현주에게 현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외숙부가 계시잖아. 외숙부가 정무수석과 대학 선후배 사이야.”
“뭐? 그게 정말이야?”
이쯤 얘기하자 그녀의 눈빛이 반짝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눈치였다.
“현호 너, 다시 봐야겠다.”
“무슨 소리야?”
“노는 것만 궁리하는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까지 했어?”
“형과 누나 옆에서 보고 들은 게 몇 년인데. 어쨌든 이 일이 잘되어서 누나가 송우식품으로 복귀했으면 좋겠어.”
“복귀만으로 끝나면 안 되지.”
“무슨 말이야?”
“작은오빠한테 한 방 먹여야지.”
그래, 이거다.
현호가 바라던 반응이.
엄현주가 이대로 몰락하는 것도 그로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렇게 단순히 소모시키기엔 아까웠다.
조금 더 발버둥 쳐서 다른 형제들과 싸우고, 함께 공멸하는 것이야말로 현호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었다.
* * *
현호가 엄현주를 만나 얘기하던 그 시각, 박경국 과장은 그의 사무실에서 장남 엄현식과 은밀히 통화를 나누고 있었다.
[계집애가 간이 큰 거야, 멍청한 거야. 아버지 성질 알면서 그딴 짓이나 하고. 그런데 아버지는 왜 하필 현태한테 외식사업체를 맡기신 거야?]
“사장님께 맡기기에는 사이즈가 작다가 판단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차피 지금은 임시로 맡겨진 것에 불과하니 크게 신경 쓰실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그건 그렇고, 현호 미행한 거는 어떻게 됐어?]
“현호 도련님은 예정대로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박경국이 사진 한 장을 손에 들고 보고 있었다.
현호가 ‘엄현호 사장 취임’이라는 플랜카드가 걸린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이 자식이, 취임하면서 내게 연락도 안 하고.]
“취임식 없이 직원들과 인사만 한 것 같습니다. 그 이후로 재단과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를 왔다 갔다 할 뿐 별다른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박경국의 책상 위에는 여러 사진이 놓여 있었는데, 하나같이 현호가 찍혀 있는 사진들이었다.
그는 그 사진을 토대로 엄현식에게 보고를 이어 나갔다. 그 사진들이 전부 현호의 의도 아래 조작된 것인지도 모른 채.
[그래? 그 녀석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비자금 사건은 어떻게 된 거고.]
“비자금 사건을 무혐의로 마무리한 건 최 변호사님이라고 합니다.”
[그럴 줄 알았어. 지가 뭔데 해결을 해.]
엄현식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걸렸다.
[아무튼 현호는 앞으로도 유심히 살펴봐.]
“예, 알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박경국은 책상 위에 놓인 사진 액자를 집어 들었다. 그의 아들, 박원식의 사진이었다.
그는 애틋한 시선으로 아들 사진을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애비는 이렇게 살지만, 너는 떵떵거리며 살게 해 주마.”
* * *
엄현주가 외숙부에게 연락해 만나러 가는 것을 본 현호는 문화재단으로 돌아왔다.
그가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엄수경에게서 전화가 왔다.
[현호야, 투자사와 얘기는 끝났어?]
“걱정하지 마. 누나 연락받고 서둘러 준비했어.”
[약속 장소에 투자사 사장이 나오는 거지?]
“당연하지. 누나와 얘기한 대로 할 거야. 작은아버지와 함께 오는 거지?”
[어. 함께 갈 거야.]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던 엄상철 회장은 결국 고민 끝에 자신이 소유한 송우미디어 지분 10퍼센트를 담보로 M&H 인베스트먼트에서 돈을 빌리기로 결정했다.
그는 M&H 인베스트먼트에 대해서 깊게 조사해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자신의 딸이 추진한 일이니만큼 믿고 진행하려 한 것이다.
엄수경 또한 현호의 말만 믿고 진행하는 일인지도 모른 채 말이다.
엄수경은 M&H 인베스트먼트가 높은 이자를 받는 조건으로 현호의 돈을 맡아 빌려주는 형식을 취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
즉, 엄상철과 엄수경 두 사람 모두 M&H 인베스트먼트의 소유자가 현호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누나, 잊지 마. 작은아버지가 지분을 넘긴 순간 바로 임시 주총을 준비해야 해.”
[알아. 그렇게 할 거야. 계약 끝나면 연락할게.]
“그래, 나중에 다시 통화해.”
통화를 끊은 현호는 미소를 지었다.
* * *
“이쪽입니다.”
M&H 인베스트먼트 나해철 대표는 레스토랑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예전에도 접대와 계약 건으로 클라이언트를 직접 만나기는 했지만, 오늘은 제법 긴장되었다.
계약 금액이 큰 것도 있지만, 거래 상대가 무려 송우미디어 엄상철 회장이기 때문이었다.
‘찌라시에서 나온 말이 사실이었어.’
그가 받은 찌라시엔 송우미디어가 부도 위기라고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지만, 자금을 빌려주라는 현호의 연락을 받은 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레스토랑 직원이 룸의 문을 열어 주었다.
나해철 대표가 안으로 들어가니 엄상철 회장과 그의 딸 엄수경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나해철 대표가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자네가 M&H 인베스트먼트 대표인가?”
“그렇습니다. 나해철이라고 합니다.”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우선 내게는 다른 재산이 많아.”
엄상철이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송우미디어의 지분 대신 다른 것을 담보로 하고 싶은 것이다.
사전에 이야기되었던 것과는 다르기에 다소 당황스러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해철은 이곳에 오기 전에 엄상철이 어떤 이야기를 꺼낼지 미리 현호에게 들어 두었기에 침착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러시겠죠. 그런데 오천억에 준하는 다른 담보를 제시하실 수 있으십니까?”
“……송우미디어가 무너지면 주식은 휴짓조각이 될 수도 있어. 그렇다면 차라리 그보단 조금 못하더라도 안전한 담보가 낫지 않겠나?”
“송우미디어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돈을 빌리시는 거 아니었습니까? 그런 걱정은 하실 필요가 없으실 텐데요.”
“혹시 송우미디어 경영에 관심 있나?”
“저는 경영에 관심 없습니다. 사고파는 것에만 관심이 있죠. 그러니 돈을 제때 갚으셔야 할 겁니다.”
엄상철 회장의 표정이 굳어지며 말이 거칠어졌다.
“겨우 오천억에 날 협박하는 거야?”
“갚으시면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저는 깔끔하게 이자만 챙기면 되니까요.”
“…….”
“회장님, 저와 거래를 하시겠습니까? 이 거래가 싫으시다면 저는 이 룸에서 나가겠습니다.”
“겨우 두 달 빌려주면서 버릇없는 무례한 장사꾼 티를 내는군.”
“이 바닥이 원래 그렇습니다. 돈 빌려주는 놈이 갑이거든요. 다른 곳을 찾아보시겠습니까? 하지만 안 좋은 소문이 더 퍼질 텐데요.”
엄상철이 망설이자 옆에 있는 엄수경이 나지막이 얘기했다.
“아버지, 만기일이 다가오고 있어요.”
엄상철도 알고 있다. 그것만 아니라면 이렇게 급히 결정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해철의 말도 틀리지 않는다.
찌라시에 송우미디어 부도설이 나도는 걸 알고 있다. 빨리 그 소문을 차단하지 않으면 주가는 폭락하게 되리라.
더구나 다른 거래처를 찾을 수 있을지도 불분명했다.
“회장님, 결정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시면 오늘은 이만 돌아갈까요?”
엄상철이 나해철을 쳐다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흠…… 좋아, 계약서에 사인하지.”
“알겠습니다.”
나해철은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엄상철 앞에 놓았다.
* * *
“회장님, 살펴 가십시오.”
주차장까지 따라온 나해철은 엄상철이 승용차에 오르자 허리까지 숙여 인사했다.
표정이 굳어 있는 엄상철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고, 잠시 후 그를 태운 승용차가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그 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서 있던 나해철이 뒤돌아섰다. 그는 자신의 차로 향하는 게 아니라 다시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엄상철 회장과 만났던 장소 맞은편에 있는 룸으로 가더니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간 나해철 대표. 그곳에 현호가 있었다.
“이사장님.”
“수고하셨습니다, 대표님.”
“아닙니다. 시키신 대로 했을 뿐입니다.”
“계약서는?”
“여기 있습니다.”
나해철은 가방에서 엄상철이 사인한 계약서를 꺼내 건넸다.
현호는 그 계약서를 펼쳐 내용을 훑었다.
-담보, 엄상철 소유 송우미디어 주식 10퍼센트.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송우미디어가 자신의 손에 들어올 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