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93
193화 악수의 의미
“성과가 될 만한 게 있다고?”
엄현식이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묻자, 박경국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며 얘기했다.
“사장님, 신진종합기계를 잊으신 건 아니시죠?”
“아……!”
엄현식의 눈이 번쩍하니 빛났다.
“그래! 신진종합기계가 있었지. 그 당시 인수하지 못한 게 이렇게 도움이 되는군.”
신진종합기계는 외환위기 당시 재정난으로 인해 워크아웃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예상보다 일찍 워크아웃을 졸업했고 채권단이 출자전환을 해서 주주가 되었다.
꾸준히 성장하며 국내 시장 점유율을 점점 높이고 있을 뿐만아니라 중국 수출도 늘어나고 있다.
‘탐나는 회사였지.’
엄현식은 신진종합기계 인수계획을 추진했었다.
그 추진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1대 주주인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과 2대 주주인 선종은행장의 마음을 얻었다.
‘신진종합기계 매각 계획이 발표되고, 송우중공업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유력했어.’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어 신진종합기계는 송우중공업이 차지하는 듯 싶었다.
‘그 폭행 사건만 없었다면…….’
어느 날, 강릉별장 관리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윤소은이 별장으로 찾아왔다고.
그녀는 한때 송우미술관장이면서 엄현식과 은밀히 사귀는 불륜관계의 여자였다.
하지만 그의 앞길에 방해되자 송우미술관장이었던 그녀를 징계로 쫓아냈다.
‘별장으로 찾아온 그녀를 받아 준 관리인에게 순간 화가 나서…….’
엄현식은 솟구치는 화를 참지 못하고 관리인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그런데 윤소은이 그 장면을 몰래 촬영해서 방송을 통해 공개해 버렸다.
그러자 불에 기름을 끼얹듯 사람들의 분노와 비난이 폭발했다.
그 분노의 화살은 송우중공업이 참여하는 신진종합기계 인수로 향했고, 결국 대주주가 매각 취소를 결정하게 되면서 인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신진종합기계 인수를 다시 추진해야겠어.”
“여보, 잊지 말아야 할 게 있어요.”
대화를 듣고 있던 채연희가 입을 열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게 뭐지?”
“우리가 계획하듯이 당신 동생들도 계획을 할 거예요.”
“아! 그렇겠군.”
“당신 동생들이 더 큰 성과를 내면 우리의 성과는 묻히게 될 거예요. 그러니 동생들의 계획을 알아내고 성공하지 못하도록 방해해야 해요.”
“그렇습니다, 사장님. 저도 그분들의 계획을 알게 되면 즉시 전해 드리겠습니다.”
박경국 과장이 맞장구치듯 끼어들며 얘기했지만 엄현식의 표정은 밝아지지 못했다.
‘그 자식들의 계획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고민이 되는 지점이었다.
그들도 후계자가 되겠다는 욕망이 있다. 그렇다면 성과를 내기 위해 뭔가 계획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은밀히 계획을 추진할 텐데, 어떻게 알 수 있을까?
* * *
“현주 씨, 우리에게도 기회가 생긴 거예요.”
남편 유태규가 들뜬 기색으로 얘기했다.
엄현주는 그의 얘기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믿기지 않는 기색이었다.
“아버지가 이렇게 빨리 후계자를 정하겠다고 할지 예상하지 못했어요.”
“공평한 기회를 준다고도 하셨죠.”
“그 얘기하실 때도 속으로 놀랐어요.”
“현주 씨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신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공평한 기회를 준다는 얘기를 하지 않으셨겠죠.”
“…….”
엄현주는 대꾸하지 않았지만 내심 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나를 그룹 후계자 후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어.’
다음 그룹의 주인이 될 사람은 무조건 아들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으니까.
하지만 아버지 엄상현 회장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현주 씨가 라이스타 창업뿐만 아니라 마음제과 인수까지 해내는 걸 보시고 믿음이 생기신 거 같아요.”
“마음제과를 인수하기로 한 게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인 것 같아요.”
엄현주는 이렇게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여상길을 생각했다.
사실, 그가 없었다면 마음제과 인수를 계획하고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주 씨, 우리도 어떤 성과를 낼지 계획해야 해요.”
“그래야죠. 내일이라도 기획전략팀을 소집해서 의논해 볼게요.”
“그래요. 그런데…….”
유태규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두 형님과 처남보다 더 좋은 결과를 내야 하는데, 그분들의 계획을 알 수가 없는 게 걱정이네요.”
“음…….”
유태규의 얘기에 말을 멈추고 잠시 생각하던 엄현주가 입을 열었다.
“현호의 의중을 알아볼까요?”
“어떻게요?”
“나와 협력하자고 제안하는 거예요.”
“처남이 협력 제안에 응할까요?”
“현호가 사업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로 도왔어요. 두 오빠를 상대하려면 그게 최선이라는 걸 현호도 알았으니까요.”
유태규가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현주 씨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라이스타에 복귀할 수 있게 도와준 것도 처남이었다고.”
“맞아요. 우리는 꽤 손발이 잘 맞았어요. 그런데 협력하자는 제안을 거절하면 현호에게 딴마음이 있는 거겠죠.”
“현주 씨, 처남을 믿어요?”
의외의 질문에 엄현주는 당황스러웠다.
“무슨 말이에요?”
“만약 처남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어떻게 할 거예요? 처남이 바보가 아닌 이상 대가를 요구할 거예요.”
“생각한 게 있어요.”
“뭔데요?”
“현호가 얘기한 적 있어요. 미디어그룹을 독립시켜 자기 사업을 마음껏 해 보고 싶다고요. 현호의 지분이 많기는 하지만 아버지가 대주주여서 이래저래 간섭을 받는 것 같아요.”
“…….”
“그래서 미디어그룹과 계열사 다섯 개를 묶어 계열 분리해 주겠다고 할 거예요.”
그녀의 얘기에 놀란 유태규의 눈이 커졌다.
“계열사 다섯 개도 묶어서요? 너무 많은 거 아니에요?”
“그 정도는 준다고 해야 마음이 움직일 것 같아서 생각한 거예요.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정말 줄 생각은 없으니까요.”
“아, 그럼…….”
“두 오빠를 상대할 때 현호를 이용하기 위해서 제안하는 거예요.”
“……!”
“내가 그룹을 승계하면, 두 오빠와 현호에게는 최소한의 재산만 분배할 거예요. 아버지가 작은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요.”
그녀의 대답이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은 유태규가 물었다.
“언제 제안해 볼 거예요?”
“늦출 필요 없죠. 현호에게 갔다 올게요.”
엄현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향했다.
* * *
“누나.”
노크 소리에 문을 연 현호는 반가운 기색으로 엄현주를 맞았다.
“어서 들어와.”
방 안으로 들어온 현주가 궁금한 듯 물었다.
“뭐 하고 있었어?”
“내일 여러 회의가 있어서 자료를 보고 있었어. 내가 병원에 입원하면서 미뤄진 회의거든.”
그의 대답에 엄현주는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었다.
“퇴원하자마자 쉬지도 못하고 일해서 어쩌니?”
“괜찮아. 그런데 누나는 어쩐 일이야? 내게 할 얘기가 있는 거야?”
엄현주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뭔데?”
“오늘 아버지 말씀 어떻게 생각해?”
“아버지 말씀……? 아! 부회장을 정하시겠다고 한 거.”
현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지만 엄현주는 작은 반응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얘기했다.
“아버지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기회를 주시겠다고 했잖아.”
“누나는 그 말을 믿어?”
“뭐……?”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엄현주는 당황했다.
“아버지가 직접 하신 얘기니까, 믿어야지.”
“그럼, 누나에게는 좋은 일이네.”
“너에게도 좋은 일 아냐?”
“훗.”
그녀의 물음에 현호가 피식 웃자 엄현주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웃어?”
“누나는 정말 내가 부회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어? 어, 뭐, 노력하면…….”
“부회장이 되려면 내 위로 두 형과 누나를 이겨야 하는데.”
현호가 손을 뻗어 자신의 책상을 가리켰다.
“저길 봐. 내 책상 위에 쌓인 서류들.”
“…….”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어떻게 형들과 누나를 상대하겠어?”
“뭐, 쉽지는 않겠지만…… 저 서류 더미의 일을 잘 해내면 아버지가 인정할 만한 성과를 낼 수도 있잖아?”
“그동안 형과 누나는 가만히 있을 거야?”
“아, 그렇지는 않겠지.”
“훗.”
현호가 다시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누나, 부회장이 되고 싶은 거지?”
현호가 이미 그녀의 마음을 아는 듯 얘기하자 엄현주는 인정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솔직하게 얘기할게. 사실, 널 만나러 온 건 협력을 제안하려고 온 거야.”
“협력?”
“네 말대로 나, 부회장이 되고 싶어.”
“…….”
“그런데 내가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낸다고 해도, 두 오빠가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잖아?”
“…….”
현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두 오빠를 상대해야 하는데, 쉽지가 않아.”
“그래서 나보고 도와 달라는 거야?”
“그래.”
“좀 전에 얘기했잖아. 나는 지금 하는 일도 많고 바빠.”
그의 대답에 엄현주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현호야, 현식 오빠나 현태 오빠가 후계자가 되고, 그리고 회장이 되었다고 생각해 봐. 두 오빠가 네가 일군 미디어그룹을 가만히 둘 거 같아?”
“아……!”
현호는 애써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와 작은아버지 사이가 왜 남남처럼 틀어졌는지 기억하니?”
“…….”
“재산 상속 때문이었어. 몇 년 전에 작은아버지께서 할아버지가 남기신 차명재산 때문에 아버지와 다툰 거 기억하지?”
물론, 기억한다.
그 다툼으로 인해 현호는 송우문화재단 이사장이 될 수 있었고, 지금의 위치까지 올 수 있는 밑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현호는 그 내막을 모르는 사람처럼 얘기했다.
“그건, 작은아버지가 오해하신 거잖아.”
“어머! 너, 지금껏 그렇게 생각한 거야?”
“그게 아니라는 거야?”
현호는 애써 놀란 척하며 물었다.
“작은아버지가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시기는 하지만 아무 근거도 없이 얘기하시는 분은 아니셔.”
“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버지와 작은아버지처럼 두 오빠는 우리와 재산을 나눌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
“두 오빠가 회장이 되면, 네가 미디어그룹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와 상관없이 네게 돌아갈 재산은 크지 않을 거야.”
“아…… 그 생각은 못 했네.”
현호는 애써 그녀의 얘기에 설득된 것처럼 보였다.
그 모습에 엄현주가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러니, 우리가 서로 협력해야 하는 거야.”
“누나가 그룹을 승계하면 내게 재산을 나눠 줄 거야?”
“당연하지. 단, 네가 날 도와준다는 조건으로.”
현호는 의아한 표정으로 지으며 물었다.
“내가 뭘 도와줘야 하는데?”
“여러 아이디어도 함께 고민하고, 또 그에 따른 역할도 맡아 주고. 즉, 물심양면으로 도와 달라는 거야.”
“그렇게 도우면 내가 얻는 게 뭐야?”
“미디어 그룹 외 계열사 다섯 개를 계열 분리해 줄게.”
그녀의 얘기에 현호는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척했다.
“계열사 다섯 개를 주겠다는 거야?”
“그래. 물심양면으로 날 도운 네게 그 정도는 해 줘야지.”
“…….”
“두 오빠가 그룹을 승계하면 우리의 미래는 없어.”
현호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이자 엄현주가 다음 말을 이었다.
“나와 함께할래?”
“생각해 보니 누나 말이 맞는 거 같아. 큰형과 작은형이 그룹을 승계하면 내 미래는 불안해져.”
“…….”
“좋아. 누나를 도울게.”
현호의 결정에 엄현주가 밝은 미소를 보이며 손을 내밀었다.
“잘해 보자, 현호야.”
“그래, 누나.”
현호가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그녀와 의기투합한 듯 대답했다.
하지만 현호는 속으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누나가 내게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거라 걸 알아.’
지금 이 순간의 악수는 의미 없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