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최덕일 변호사의 전화
“뭐, 협력?”
뜬금없이 협력을 제안하자 당황한 엄현식이 눈을 깜박였다.
“어차피 우리 네 사람 중의 한 명이 후계자가 될 거야. 나와 협력하면 두 사람하고만 싸우면 돼. 내가 옆에서 정보도 주고 도와줄 테니 싸움이 훨씬 쉽지 않겠어?”
현호의 얘기를 들은 엄현식은 의문의 눈으로 물었다.
“네가 왜 날 도와주겠다는 거지? 너도 후계자가 되고 싶을 텐데?”
“형과 협력하면 확실한 이인자는 될 수 있으니까.”
“뭐……?”
“지금까지 형과 누나가 나를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어. 안 그래?”
“그건 그렇지.”
현호는 그가 이렇게 대답할 줄 알았다.
그는 현호의 능력을 냉정하게 보려고 하지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망나니였던 막내가 미디어그룹의 수장이 되고, 형과 누나를 상대로 경쟁하게 되리라는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테니.
‘헛된 자존심을 굳이 깰 필요는 없어.’
현호는 그의 대답에 맞장구치듯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형이 내가 숨겨 왔던 비밀을 알게 됐어. 가만히 있지 않을 거잖아. 그래서 승용차로 나를 들이박은 거고.”
“야! 그건…….”
엄현식이 변명하려는 걸 자르며 얘기했다.
“솔직히, 그 진실을 알게 됐을 때 깨달았어. 형이 나보다 한 수 위라는 거.”
“……!”
뭔가 말하려던 엄현식이 멈칫했다.
“큰형이 마음먹고 움직이면 내가 감당하지 못한다는 걸 깨달았어.”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현호가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하자 의구심이 가득했던 그의 얼굴에 의기양양한 기색이 흘렀다.
“그룹의 후계자는 형이 될 거야. 형에게 대항하는 사람은 대가를 치르게 되겠지.”
“……!”
“난,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아. 미디어그룹을 지키고 지금보다 더 크게 성장시키고 싶어. 그래서 형과 협력하고 싶은 거야.”
현호가 간절한 듯한 기색으로 요청을 하자 엄현식이 거만한 기색을 드러냈다.
“네 생각은 알겠어. 하지만 말로만 나와 협력하고 싶다고 하면 내가 어떻게 믿겠어?”
“그래서 형에게 줄 선물을 가져왔지.”
“선물?”
“성국그룹과 맞짱 뜨려는 게 누구인지 알고 있어.”
현호의 대답에 엄현식이 피식 웃었다.
“야, 그게 무슨 선물이야?”
“…….”
“자식인 우리는 아버지 가슴속에 있는 오랜 응어리를 알잖아?”
“…….”
“그런 아버지의 응어리를 풀어 드리며 성국그룹을 상대로 성과를 내겠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 아니냐?”
좀 전과는 달리 엄현식은 느긋한 반응을 보였다.
현호가 그와 협력하고 싶어 정보를 가지고 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굴면 속이 탄 현호가 더 많은 정보를 넘겨줄 것으로 생각했다.
“생각만 하는 게 아니라, 계획에 들어갔다면?”
“정말이야?”
엄현식은 놀라기는 했지만 입가에는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의 생각처럼 현호가 반응했기 때문이다.
“가정법으로 얘기하는 걸 보니, 계획에 대해 잘 모르는구나?”
“…….”
그의 물음에 현호가 빤히 쳐다만 볼 뿐 대답이 없자 엄현식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뭐 하는 거냐? 내가 물었잖아?”
“형이 관심 없는 거 같아서.”
“뭐?”
현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이 관심 없는데, 바쁜 시간을 뺏을 수는 없지. 집에서 봐.”
현호가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다급한 엄현식이 언성을 높였다.
“야! 나랑 협력하고 싶다며?”
“형이 내 정보에 관심 없는데 어떻게 협력이 되겠어?”
“관심 없다고는 안 했어.”
“그럼, 관심 있는 거야?”
“우선 앉아.”
“나와 협력할 건지부터 결정해.”
“……!”
엄현식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현호가 직접 찾아와 협력을 제안할 만큼 경쟁을 부담스러워한다.
더구나 그는 자신에게 꽤 도움이 될 정보까지 가져왔다.
상황이 이렇다면, 세 사람과 동시에 경쟁하는 것보다 둘을 먼저 상대해서 이기는 게 나으리라.
‘일단, 두 명을 먼저 이긴 후에…….’
현호의 것도 빼앗을 것이다.
‘협력? 경쟁에서 그런 게 어딨어?’
엄현식은 입을 열어 속마음과는 다른 얘기를 했다.
“좋아, 협력하자. 이제 말해 봐, 네가 뭘 알고 있는지.”
“협력은 서로 돕는 거야. 내가 형을 도우면, 형은 내게 뭘 해 줄 거야?”
“확실한 이인자가 되고 싶다고 했잖아? 그렇게 되게 해 줄게. 미디어그룹을 네게 완전히 맡길게. 그리고 여러 계열사도 주고.”
“여러 계열사라고 하면 너무 애매하잖아.”
“금융과 전자 빼고 원하는 계열사를 얘기해.”
그의 말에 현호가 피식 웃었다.
“알짜배기는 형이 갖겠다는 거네?”
“후계자가 그 정도는 가져야지. 네가 갖고 싶은 계열사는 뭐야?”
“제약과 바이오 계열사를 줘.”
“좋아, 그렇게 할게. 우리 약속을 문서로 만들어야 할까?”
엄현호는 빙그레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미 녹음했어. 형제끼리 계약서 작성하는 거, 번거롭잖아.”
현호가 볼펜으로 된 녹음기를 손에 들어 보이며 미소 지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엄현식이 미간을 찌푸렸다.
“야! 형 앞에서 말도 없이 녹음을 해?”
“걱정하지 마. 녹음기 두 개를 준비했으니까, 하나는 형이 가져.”
현호가 볼펜 녹음기 하나를 그에게 건넸다.
“우리의 약속이 담겨 있으니까, 잘 간직해.”
엄현식은 대화 녹음이 불만스러웠지만, 별다른 반발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녹음된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테지만, 지금 반발하면 자신의 약속이 의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약속을 주고받았으니, 이제 얘기해 봐. 네가 알고 있는 정보가 뭐야?”
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크로싱마트가 한국에서 철수를 결정했어. 그래서 여러 유통업체에서 인수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쯤 얘기하자 감을 잡은 엄현식이 얘기했다.
“현주가 그 인수전에 참가한다는 거야?”
“맞아. 그리고 그 인수전의 가장 강력한 후보가 성국마트야.”
“아! 그래서 네가 성국그룹 얘기를 한 거구나?”
“누나가 크로싱마트 인수를 생각한 것도 아마 성국마트가 참여하기 때문일 거야.”
현호의 얘기에 엄현식은 상황 파악이 된 듯 말을 이었다.
“성국마트를 이기면 아버지가 어떻게 나올지는 뻔하군,”
“그렇다고 볼 수 있지.”
엄현식은 이내 의아한 기색으로 얘기했다.
“하지만 현주의 송우식품은 성국마트를 이기기 어렵지 않을까? 자본과 규모 면에서 성국마트가 훨씬 앞설 테니까.”
“형, 누나를 얕보지 마. 라이스타가 마음제과 인수를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몇이나 있었어?”
“음…….”
잠시 생각에 잠긴 엄현식이 의문의 눈으로 현호를 쳐다봤다.
“이 정보, 믿을 만해? 너는 이 정보를 어떻게 알았어?”
“내 말을 못 믿겠다는 거야?”
“생각해 봐. 마음제과 인수할 때도 많은 자금이 들었어. 그 탓에 라이스타는 적자 경영을 해야 할 테고, 모기업인 송우식품은 모른 척할 수 없잖아.”
“…….”
“그쪽으로 자금 지원하기도 바쁠 텐데, 크로싱마트까지 인수한다고? 믿기가 쉽지 않지.”
현호는 그의 말이 일리 있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만약 형이 송우식품 사장이었다면, 결정이 달랐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송우그룹 후계자가 되겠다는 누나의 목표는 확고하니까.”
“……!”
현호의 마지막 말이 귀에 꽂힌 듯 엄현식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모습을 본 현호는 여유롭게 다음 말을 이었다.
“형의 얘기에도 일리가 있어. 아무래도 자금이 해결되지 않으면 크로싱마트 인수가 송우식품의 큰 짐이 될 수도 있으니까.”
“…….”
“그리고 형이 내 말을 신뢰하기까지 시간도 필요하니까, 잠시 지켜보자.”
“어?”
뜨끔한 엄현식이 어색한 표정으로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아니, 내가 너를 못 믿는다는 게 아니라…….”
“이해해.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송우식품이 크로싱마트를 인수하는 건 무리이니까.”
“…….”
“그래서 기다려 보자는 거야. 만약, 송우식품이 크로싱마트 인수제안서를 제출한다면, 형이 내 정보를 신뢰할 수 있고, 앞으로 우리 둘의 협력이 더 잘될 테니까.”
현호의 제안에 동의하듯 엄현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기다려 보자. 그런데, 너는 어떻게 이런 정보를 알게 된 거야?”
“형, 서로의 영업 비밀은 터치하지 말자.”
현호의 대답이 끝났을 때였다.
디리리리.
엄현식의 휴대폰이 울리는데, 번호를 확인한 그의 표정이 의아하게 바뀌었다.
“최덕일 변호사가 웬일이지?”
“……!”
엄현식은 무심히 중얼거렸지만, 현호는 흠칫 놀랐다.
‘최덕일 변호사가 왜……?’
시기가 참 묘했다.
아버지 엄상현 회장이 후계자가 될 부회장을 지명하겠다고 발표한 후 아버지의 수족처럼 움직이는 최덕일 변호사가 전화한 것이다.
‘형의 반응으로 봐서는 최덕일 변호사와 약속이 된 것은 아닌데…….’
현호가 최덕일의 전화를 심상치 않게 생각할 때 통화를 하는 엄현식의 목소리가 들렸다.
“최 변호사님, 어쩐 일이십니까?”
[엄 사장님, 회장님께 말씀 들었습니다. 부회장 지명을 가족에게 얘기하셨다고.]
“……!”
엄현식은 그가 처음부터 부회장 지명을 언급하자 내심 놀랐다.
“아, 예. 그렇군요.”
[그 일과 관련해 엄 사장님께 할 얘기가 있는데 시간을 좀 내주시죠?]
엄현식은 슬쩍 현호의 눈치를 본 후 짧게 대답했다.
“아, 제가 부탁한 걸 깜빡 잊었군요.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아! 누가 옆에 계신가 보군요. 엄 사장님께서 다시 연락 주세요.]
“그러죠. 어쨌든 연락해 줘서 고마워요.”
엄현식이 태연히 전화를 끊자 현호가 물었다.
“최덕일 변호사가 왜 전화한 거야?”
“얼마 전에 회사 일로 법률적 검토를 부탁한 게 있었는데, 요즘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어. 그 일로 전화한 거야.”
“아, 그렇구나.”
현호는 그가 최 변호사와 통화할 때 자신의 눈치를 살피던 걸 알고 있다.
‘내가 알면 불편한 이야기를 했겠지.’
그래서 그가 회사 일로 통화했다는 게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얘기했다.
“나는 이만 가 볼게.”
“어, 그래.”
“현주 누나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나도 살피겠지만, 형도 신경을 써.”
“그 걱정은 하지 마. 우리, 잘해 보자.”
“그럼, 그래야지.”
현호는 그를 향해 싱긋이 미소를 보였다.
* * *
송우미디어로 돌아가는 차 안.
“사장님, 최 변호사님이 왜 전화를 하신 걸까요?”
“…….”
최명준 실장의 물음에 현호는 쉽게 답을 하지 못하고 생각에 잠겼다.
사실, 현호도 최덕일 변호사의 전화가 신경 쓰였다.
‘형은 내 눈치를 볼 사람이 아니야.’
그럼에도 그가 통화 중 자신을 살핀 것은 그 내용을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최덕일 변호사는 절대 독단적으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야.’
그렇다면 엄현식과의 통화도 그의 의지가 아니라 아버지 엄상현 회장의 의지일 수 있다.
‘만약 아버지의 의지라면…… 아!’
현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최 실장.”
“예, 사장님.”
“엄현식 사장과 최덕일 변호사의 움직임을 주시하세요.”
“알겠습니다. 오늘 그 통화 때문인 거죠?”
그의 물음에 현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아버지가 개입하려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