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08
208화 경계심을 풀게 하라
“부하 직원을 관리하지 못해 회사와 그룹에 피해를 준 점에 책임을 지고 사장 자리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엄상현 회장은 감정이 없는 얼굴로 얘기했다.
아무도 그의 얘기에 질문하거나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식당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다들 애써 주위로 시선을 주지 않은 채 앞만 보며 식사를 했다.
한편, 현호는 형과 누나의 기색을 빠르게 살폈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엄현주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젓가락만 깨작거리고 있었다.
‘나름 참고는 있지만…….’
그룹의 주인이 되겠다는 욕망이 한순간에 무너졌으니, 상당히 충격이 컸을 것이다.
엄현태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천천히 음식을 먹으며 뭔가를 생각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현주 누나가 예상보다 빨리 경쟁의 장에서 탈락했으니, 머릿속이 복잡하겠지.’
경쟁 후보자가 세 사람이 남았다.
엄현주의 탈락으로 견제해야 할 사람이 줄어든 것은 맞지만, ‘3’이라는 숫자는 참 묘하다.
누군가 움직이면 두 편으로 갈려서 경쟁하게 되고, 누가 어디로 움직이냐에 따라 편먹기도 달라진다.
‘어떻게 판을 짜야 유리할지 고민하겠지.’
반면, 기쁜 감정을 숨기느라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려 애쓰는 이가 있었다.
바로, 엄현식이었다.
‘자신이 경쟁자를 떨어뜨렸다고 느끼겠지.’
그는 집단 식중독 폭로의 배후이다.
승승장구하던 엄현주를 송우식품 사장에서 물러나게 만들었으니 뿌듯할 것이다.
‘자신감이 생겼겠지.’
누구를 상대하든지 자신이 이길 것이라 생각하리라.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게 현호에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자만심은 허를 찔릴 빈틈을 만드는 법이니까.
‘아!’
엄현식을 쳐다보는데 그와 눈이 마주쳤다.
이럴 때 응원하는 척 연기해야지.
현호는 기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
‘형, 잘했어. 우리의 협력, 잊지 마.’
‘그럼, 그래야지.’
눈빛에 답을 하는 엄현식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 * *
“여보, 정말 믿어지지 않아요.”
방으로 돌아온 채연희가 들뜬 기색으로 엄현식에게 얘기했다.
“아버님이 아가씨를 송우식품에서 물러나게 하실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어요.”
“그러니까 자기 주제 파악해서 라이스타나 열심히 운영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 아냐?”
“…….”
“자기가 그룹오너가 되겠다고 욕심을 내더니, 결국 회사에서 쫓겨나게 됐잖아.”
“쫓겨났다고요?”
의아한 표정의 채연희가 묻자 엄현식이 당연하다는 투로 대답했다.
“말이 좋아 물러나는 거지, 송우식품에서 쫓겨나는 것과 다를 바 없지.”
“어쨌든, 당신이 이런 결과를 만들었잖아요.”
“그렇지. 뭐, 최덕일 변호사와 현호의 도움을 조금 받기는 했지만.”
현호라는 이름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채연희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리지며 물었다.
“여보, 현호 도련님과 계속 협력할 거예요?”
“왜?”
“현호 도련님이 그랬다면서요. 당신과 협력하면 확실한 2인자가 될 수 있다고.”
“그런 말을 했지.”
“그 말은 2인자가 되고 싶다는 거잖아요.”
불만인 듯한 투로 채연희가 얘기하자 엄현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당신이 그룹을 이어받으면, 후계자는 우리 강인이가 되어야 해요. 2인자 따위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고요. 딴마음을 품을지 알 수 없잖아요.”
“으하하하.”
엄현식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자 채연희가 당황했다.
“왜 웃어요?”
“당신,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예……?”
“내가 협력하기로 했다고 해서, 현호를 2인자로 만들 거 같아?”
“그럴 생각이 없는 거예요?”
금세 환하게 밝아진 채연희가 물었다.
“2인자는 개뿔. 현호는 현태를 상대할 때까지만 협력할 거야.”
“……!”
“현태가 경쟁에서 떨어져 나가면, 협력도 끝나는 거야.”
“그 다음에는요?”
“혹시라도 현호가 후계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도록 해야지.”
그의 얘기에 채연희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할 계획이 있는 거예요?”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엄현식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었다.
* * *
한편, 방으로 돌아온 엄현태는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내 배희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현태 씨, 이번 집단 식중독 폭로 배후가 아주버님이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커.”
“크로싱마트와 성국마트의 협상이 결렬돼서 송우식품이 다음 협상대상자가 될 수 있었는데, 아가씨는 많이 속상하겠어요.”
“성국그룹 비자금 사건이 터졌을 때 말이야…….”
엄현태가 잠시 말을 멈추자 배희진은 궁금해진 기색으로 얘기했다.
“그 사건이 왜요?”
“큰형이 그 사건 배후에 대해 알고 있는 눈치였다고 했지?”
성국마트 안일환 상품본부장으로부터 출발한 비리 의혹이 성국그룹 비자금으로 확대된 사건이 터졌을 때, 엄현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었다.
그대로 사건이 커지는 걸 지켜본다면 엄현주의 송우식품이 크로싱마트를 인수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들었다.
그때, 엄현태는 큰형과 함께 대응할 생각이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배후가 현주였던 거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때는 형이 너무 여유롭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겠어.”
“…….”
“형은 현주가 뭘 하는지 알았고, 곤란하게 만들 집단 식중독 폭로 계획을 준비했던 거야.”
“아……!”
배희진이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버님은 신나겠네요. 크로싱마트 인수도 물 건너갔고, 아가씨는 송우식품을 떠나게 됐으니까요.”
“…….”
“뭐, 우리에게도 나쁘지는 않네요. 경쟁자 한 명이 사라졌으니.”
“현호가 애매해.”
“무슨 말이에요?”
배희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현호는 지금껏 후계자가 되겠다는 낌새가 없었어. 그래서 우리들과 다툼이나 심한 견제가 없었지.”
“그렇기는 하죠.”
“현호가 앞으로도 관심 없으면 상관없지만, 만약 후계자가 되려고 한다면, 형과 나 사이에서 장난을 칠 수 있어.”
“그렇겠네요.”
배희진은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을까요?”
똑똑.
그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배희진이 문으로 다가가 열어 보니, 현호가 있었다.
그의 얘기를 하던 중이라 배희진이 깜짝 놀랐다.
“어머! 도, 도련님. 어쩐 일이세요?”
현호는 그녀가 왜 자신을 보고 놀랐는지 짐작되지만, 모르는 척하며 얘기했다.
“쉬고 계시는데 죄송해요. 형이랑 할 얘기가 있는데,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들어오세요.”
현호가 방으로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 있던 엄현태가 일어났다.
“네가 웬일이야?”
“형이랑 의논할 게 있어서 왔어.”
“그래? 이리로 와서 앉아.”
현호가 소파 맞은편으로 와서 앉자 엄현태가 물었다.
“의논하고 싶은 게 뭔데?”
“‘송우미디어파크’ 라는 걸 만들어 보려고 해.”
“송우미디어파크?”
“확정된 이름은 아니야. 송우미디어에는 영화, 드라마, 방송, 음악, 엔터테인먼트 등 여러 사업 분야가 있어.”
“…….”
“이렇게 영역이 확대되고 방송 채널도 있으니까 제작 환경을 새롭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떻게 새롭게 하겠다는 거야?”
엄현태가 궁금한 기색으로 물었다.
“영상 촬영과 방송 제작 시설을 갖춘 촬영장과 공연 및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공연장, 그리고 사람들이 송우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놀이장이 있는 테마파크를 만들어 볼 생각이야.”
“그게 다 들어가려면 규모가 꽤 크겠는데?”
“그래서 형을 찾아온 거야.”
“……?”
엄현태가 의아한 듯 눈을 깜빡였다.
“형은 다양한 건설 경험이 많잖아?”
“그렇기는 하지.”
“그러니까 나 좀 도와줘. 파크 부지확보에서부터 예산, 승인, 건설 절차 등 복잡하더라.”
“만만한 일은 아니지. 그런데 그걸 송우건설에 맡기게?”
“송우건설이 안 하면 누가 해?”
너무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는 듯 쳐다보는 현호의 표정에 오히려 엄현태가 당황했다.
“아, 그래. 송우건설이 해야지.”
“송우건설에는 전문가들이 많잖아. 형이 팀을 구성해서 송우미디어로 보내 줘. 그 팀에게 우리가 뭘 원하는지 설명할게.”
“어, 그래. 아, 근데…… 현호야.”
엄현태는 뜸을 들이다 현호를 불렀다.
“내게 할 얘기 있어?”
“송우미디어파크 건설은 내 성과가 될 수 있어.”
현호는 엄현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부회장 지명, 얘기하는 거지?”
“그래. 파크 건설이 내 성과가 되어도 상관없어?”
“상관없어.”
“정말이야?”
“그게 마음에 걸렸다면 왜 내가 형을 찾아왔겠어?”
“……!”
현호의 대답을 들은 엄현태의 표정이 좀 전보다 밝아졌다.
그가 자신을 경쟁자라고 생각했다면 일을 맡기러 올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즉, 현호는 그룹 부회장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다는 뜻이다.
“난, 송우미디어그룹만 생각할 거야. 그 생각만으로도 머릿속이 복잡해.”
현호의 얘기에 엄현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 무슨 뜻인지 알겠어.”
“송우미디어에 정말 중요한 장기 프로젝트야. 잘 부탁해, 형.”
“그래, 나도 최고의 전문가들 모아 팀을 구성할게.”
“고마워. 이제, 가 볼게.”
“그래, 가서 쉬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하는 현호의 얼굴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번졌다.
사실 현호는 엄현주의 부회장 경쟁 탈락을 계획할 때부터 자신에 대한 엄현태의 불안함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의 경계심을 흐트러뜨릴 방안을 생각했었다.
물론, 송우미디어파크는 원래 현호가 송우미디어그룹을 위해 계획한 것이지만, 엄현태에게 맡기는 데에 부담은 없었다.
‘어차피 부회장은 내가 될 테니까.’
이런 현호의 생각을 모르는 엄현태는 그가 방에서 나가자 아내 배희진에게 얘기했다.
“현호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아.”
그의 생각에 동의하듯 배희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는 다행이죠. 해운시 택지개발과 아파트 건설 그리고 송우미디어파크까지, 성과가 늘어나면 현태 씨에게 좋은 일이니까요.”
그녀의 얘기에 엄현태의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졌다.
* * *
다음 날.
엄상현 회장의 얘기대로 엄현주는 송우식품 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외적으로는 집단 식중독 은폐라는 큰 잘못을 저지른 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송우식품 사장 자리를 스스로 물러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며칠 후.
크로싱마트는 새로운 매각 협상대상자로 굿쇼핑을 선정했다.
“사장님.”
최명준 비서실장이 서류 봉투를 가지고 사장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엄현태 사장님에 대한 최근 동향 자료가 왔습니다.”
최명준 실장이 가지고 온 서류 봉투를 건넸다.
현호는 봉투 속 문서와 사진을 꺼내 살피는데, 사진 속 남자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 누구죠?”
“박수철 해운시장입니다. 엄현태 사장님이 최근 해운시장을 만나고 있습니다. 왜 만날까요?”
“부회장 지명을 위한 성과 때문이겠죠.”
“해운시에서 발주하는 공사를 따내려는 걸까요?”
현호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겨우 그걸 따내려고 형이 직접 움직이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럼, 뭣 때문에 자주 만날까요?”
“택지개발이겠죠. 택지를 개발하고 아파트까지 건설하면 엄청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테니까요.”
최명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공공택지를 개발해서 아파트 건설까지 하려면 오랜 세월이 걸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더구나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는 데에도 몇 년이 걸릴 수 있고요.”
“민간택지개발은 다를 수 있어요.”
“택지개발이라면 적어도 30만평은 넘어야 할 텐데, 그건 중앙정부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현호는 단호하게 그의 의견에 반박하는 최명준에게 싱긋 미소를 지었다.
“편법을 쓰면 그럴 필요가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