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09
209화 엄현주를 위한 충고
“편법이라고요?”
최명준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전체 부지를 중앙정부 승인이 필요 없게끔 여러 단위로 쪼개는 겁니다. 각각의 조합을 만들어 신청하면 지방정부 승인만 받으면 되니까요.”
“아……!”
최명준은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엄현태 사장님이 해운시장을 만나는 이유가 빠른 택지개발 승인 때문이겠군요.”
현호는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엄현태 사장은 시행대행사를 만들어 여러 개의 조합을 조직할 겁니다.”
“하긴, 현 단계에서 송우건설이 드러나서 좋을 리 없을 테니까요.”
송우건설이 시행사로 나서게 되면 그 소식이 개발업계에 빠르게 퍼질 것이다.
그리되면 큰형 엄현식이 알게 되고 언론 등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니, 엄현태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하지만 시행대행사를 이용하면 송우건설이 드러나지 않은 채 개발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엄현식 사장과 만날 스케줄을 잡아 줘요.”
“……!”
이 지시의 의미를 알아차린 최명준이 싱긋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이 자료도 넘기실 겁니까?”
“그래요.”
“엄현식 사장님이 좋아하시겠네요. 사실, 그쪽에서도 엄현태 사장님의 움직임을 주시했지만, 들통이 났거든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현호가 몰랐던 사실이어서 조금 놀랐다.
“예. 그 덕을 저희가 봤습니다.”
“……?”
“송우건설이 송우중공업 쪽을 신경 쓰느라 우리가 주시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거든요.”
“하하하.”
그의 대답에 현호가 환하게 웃더니, 이내 뭔가 생각난 듯 최명준에게 얘기했다.
아 참! 송우식품도시락 집단 식중독 취재하고 보도한 기자 말이에요.”
“아, 예.”
“믿을 만한 사람을 접근시켜서 친분을 쌓아 두세요.”
“그 기자는 왜……?”
최명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누나를 이용해야 할 때가 있을 수도 있어요.”
“아, 예.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최명준은 자세한 내용을 묻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예상보다 언제나 더 멀리 내다보고 대응책을 세운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 *
“그래서 현태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는 거야?”
엄현식은 짜증이 나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비서에게 얘기했다.
“미행을 들키고 난 이후 엄현태 사장님이 여러 유인책을 쓰는 바람에…….”
비서가 난처한 기색으로 말끝을 흐렸을 때였다.
인터폰이 울리자, 엄현식이 받았다.
“무슨 일이야?”
[사장님, 송우미디어 엄현호 사장님께서 오셨습니다.]
“들여보내.”
[네.]
잠시 후, 사장실 문이 열리며 현호가 들어오자 엄현식의 비서가 인사한 후 밖으로 나갔다.
현호를 본 엄현식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다.
“현호야, 어서 와.”
“형 바쁜데 내가 온 거야?”
“아니야. 괜찮아. 저기 앉아.”
현호가 소파로 가서 앉자 엄현식이 맞은편으로 와서 앉았다.
“날 만나고 싶다고 했다며? 무슨 일 있어?”
“궁금한 게 있어서.”
“뭔데?”
“형은 아버지께 보여 줄 성과를 준비하고 있어?”
“어?”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는지 엄현식이 당황한 듯 보였다.
“어, 뭐, 그렇지. 근데 그게 궁금해서 물으러 온 거야?”
“궁금하지. 현태 형은 뭔가 준비하는 것 같으니까.”
현호의 얘기에 순간적으로 엄현식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너, 혹시 현태에 대해 뭔가 알아낸 게 있어?”
“형은 현태 형의 움직임을 신경 안 쓰는 거야?”
“어? 아니, 신경을 쓰긴 쓰는데…….”
엄현식은 감시하고 미행하다 들킨 걸 얘기하고 싶지 않아 말끝을 흐리다 변명을 둘러댔다.
“현태가 워낙 보안도 철저하고 조심스레 움직이는 터라 알아내는 게 쉽지가 않아.”
“현태 형이 그런 면이 있지.”
현호가 그의 말에 맞장구치듯 대답하자 엄현식의 얼굴이 유하게 풀어지더니 물었다.
“어쨌든 현태가 뭘 하는지 걱정돼서 온 거야? 그런 건 전화로 물어도 되잖아?”
“그렇지. 그건 전화해서 물을 수 있는데, 이건 전달이 안 되잖아.”
현호는 안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엄현식에게 건넸다.
엄현태가 어떤 중년의 남자와 함께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오는 사진이었다.
그 사진을 본 엄현식의 눈이 커졌다.
“어! 현태잖아. 현호야, 네가 알아낸 거야?”
뜻밖의 선물을 받은 사람처럼 엄현식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어렵게 촬영한 거야.”
“그래, 고생했어. 근데, 이 남자는 누구야?”
“박수철 해운시장이야.”
“해운시장을 만났다고?”
“왜 만나는 거 같아?”
“뭔가 성과를 만들기 위해 만나는 거겠지.”
현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내 생각도 그래.”
“음…….”
잠시 생각에 잠긴 엄현식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지자체장을 직접 만나며 신경 쓴다는 건, 규모가 큰 공사를 맡으려는 것 같은데.”
자신이 말해 놓고 엄현식은 고개를 갸웃했다.
“해운시에 큰 규모의 관급공사가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관급공사가 아니라 민간 개발 쪽이지 않을까?”
“민간 개발…… 아! 택지개발이구나!”
그의 대답에 현호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말야.”
엄현식이 의아한 표정으로 얘기했다.
“부회장 지명을 받기 위해 성과를 내려면 규모가 큰 택지개발이어야 할 거야.”
“그렇겠지.”
“규모가 크면 중앙정부 승인을 받아야 할 텐데.”
“그 점을 형이 노려야 하는 거야.”
“무슨 얘기하는 거야?”
엄현식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기색으로 물었다.
“형 말대로 아버지에게 성과로 인정받기 위해서 규모가 큰 택지개발뿐만 아니라 아파트도 건설해야 할 거야.”
“…….”
“그러려면 중앙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지. 그런 과정에서 몇 년이 흐를 수도 있어.”
“…….”
“몇 년 내에 아버지가 부회장을 결정할 수도 있는데 만약 형이라면 그런 리스크를 안고 계획을 진행할 거야?”
“아니지. 어떡해서든 결과를 내게 만들거나 다른 계획을 세우겠지.”
“맞아. 현태 형도 그럴 거야. 그래서 지자체장의 승인으로 처리할 수 있게 만들겠지.”
“아! 편법을 쓴다는 거네?”
그의 말에 동의하듯 현호는 고개를 주억였다.
“내 생각은 그래.”
“그렇다면, 해운시에서 어떤 개발업체들이 움직이는지 체크해야겠네.”
엄현식의 얼굴에 기쁜 미소가 번졌다.
왜 아니겠는가.
엄현태의 미행과 감시가 들통이 나면서 그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엄현태가 뭘 준비하는지도 알았을 뿐만 아니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알았기 때문이다.
엄현식은 자기에게 얘기하듯 중얼거렸다.
“개발조합들이 생길 거야. 그 조합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주시해야 해. 분명, 편법과 불법을 쓸 테고, 현태의 약점이 될 거야.”
짝짝짝.
현호가 박수를 쳤다.
“와, 역시, 형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바로 아는구나.”
“당연한 거 아니냐? 어쨌든 정보 고맙다.”
“형하고 협력하는데 당연하지.”
“그렇지! 이래서 협력이 중요해. 앞으로도 잘해 보자, 현호야.”
엄현식은 현호를 향해 미소 지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현태 다음에는 너야.’
“그럼! 형의 뒤에서 열심히 도울게. 우리가 송우그룹의 미래잖아.”
현호는 엄현식에게 대답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송우그룹의 주인은 내가 될 거야.’
* * *
단풍이 초절정을 이룰 때, 현호는 엄현주를 만나기 위해 속초로 왔다.
송우식품 사장에서 물러난 엄현주는 그녀의 별장으로 내려와 지내고 있었다.
“네가 어쩐 일이니?”
별장 정원에서 차를 마시던 엄현주가 시큰둥한 투로 물었다.
현호는 그녀 맞은편에 앉으며 불만스러운 투로 얘기했다.
“반응이 왜 이래? 내가 온 게 반갑지 않아?”
“저 단풍 든 산을 봐도 기분이 가라앉는데, 누가 찾아온들 반갑겠니?”
그녀는 실패했다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누나가 이렇게 기운이 없으니까, 매형이 많이 걱정해.”
“네 매형이 내려오면, 어머니가 걱정한다고 그러더라. 내가 지금 누굴 걱정할 상황이 아니니까, 가족 얘기는 그만해.”
현호는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알았어. 가족 얘기는 하지 않을게. 그런데, 누나는 언제까지 이 별장에 있을 거야?”
“몰라. 마음이 정리되면…….”
현호가 그녀의 얘기를 끊으며 끼어들었다.
“이런 곳에 처박혀 있으면서 마음이 정리될 거 같아?”
“뭐어?”
엄현주가 신경질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네가 뭘 안다고 훈계야? 네가 내 심정을 알기나 해? 난, 모든 걸 잃었어. 지금껏 노력하며 쌓았던 모든 걸 잃었다고.”
“…….”
“잠도 제대로 못 자. 밤마다 현식, 현태 오빠가 날 비웃는 꿈을 꿔.”
“…….”
“두 오빠 중에 누가 후계자가 되더라도, 송우그룹에 내 자리는 없을 거야. 이게 지금 내 상황이고 미래야.”
“…….”
“이런데도 내 앞에서 기운 내라, 힘을 내라, 이딴 영혼 없는 말이나 하려고 왔으면 당장 돌아가.”
“아버지에게 도와 달라고 한 건, 누나야.”
“……!”
“누나의 미래가 흔들리리라는 거, 부탁하기 전에 알았잖아.”
“…….”
대꾸하지 못하는 엄현주의 눈이 흔들렸다.
그 눈을 보면서 현호는 다음 말을 이었다.
“그런데 왜 아버지께 도와 달라고 한 거야?”
“……그 방법밖에 없었으니까. 안 그러면 정말 아무런 기회가 없을 테니까.”
“그걸 알면 준비해야지.”
“뭐?”
엄현주는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현호를 쳐다봤다.
“현식 형이나 현태 형이 후계자가 됐을 때, 송우그룹에는 누나의 자리가 없다고 했잖아. 그런데 그걸 알면서도 누나는 아버지께 도움을 받았어. 혹시 모를 일말의 기회를 위해서.”
“…….”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그 기회가 왔을 때 잡을 수도 없어.”
“세상 사람들 모른 척할 뿐이지 다 알아. 내가 송우식품에서 스스로 물러난 게 아니라 쫓겨났다는 거.”
“…….”
현호는 그녀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송우그룹이 발표한 엄현주의 사퇴 소식을 순수하게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찌라시에서는 그녀가 강제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누구 한 사람 날 도와줄 거 같니?”
“…….”
“너도 아버지 눈치 보느라 날 못 도와줄 거야. 그런데 내가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밖으로 나가.”
“뭐……?”
엄현주가 아리송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해외로 나가. 아버지 눈치 보지 않는 곳에서 뭐든 해 봐.”
“…….”
그녀는 아무런 대답하지 않았지만, 현호는 갈등으로 그녀의 눈이 흔들리는 걸 포착했다.
* * *
서울로 향하는 길.
함께 가는 최명준 실장이 물었다.
“왜 누님께 해외로 나가라고 얘기했습니까?”
“첫 번째 이유는 누나에게 기회를 주려는 거예요.”
“무슨 기회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하지 못하고 자랐어요. 그걸 발견할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라고 했으니 다른 이유도 있는 거죠?”
그의 물음에 현호가 피식 웃었다.
“내가 후계자가 되는 길에 방해가 되지 않게 하려고요.”
“방해요?”
“누나가 후계자는 될 수 없어도, 형들과 힘을 합쳐서 날 방해할 수는 있으니까요.”
“아……!”
그의 대답에 최명준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