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사임하세요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불어올 때쯤, 엄현주는 마침내 결심하고 해외로 떠났다.
[공항까지 가서 배웅한 거야?]
현호는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엄현식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일 때문에 어제 집에 못 들어갔잖아.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데 얼굴 보고 인사는 해야지.”
[해외로 나가겠다고 하니 다행이다 싶더라. 할 일도 없이 별장에 틀어박혀 있다가 뭔 일을 저지를지 불안했는데.]
“충격이 컸을 거야.”
[그게 다 터무니없는 욕심을 부려서 그런 거야. 라이스타나 잘 운영하고 있었으면 이런 일 없었잖아.]
현호는 그가 왜 엄현주 얘기를 하는지 안다.
너도 욕심내지 말라고 애둘러서 경고하는 것이다.
현호는 그의 말에 장단을 맞췄다.
“그렇기는 하지. 나처럼 현실을 빨리 깨닫고 큰형을 도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말이다.]
“아 참! 현태 형의 택지개발 진행은 모니터링하고 있는 거지?”
[당연하지. 차곡차곡 증거를 쌓아 가고 있어.]
“잘됐네. 어쨌든 뭔가 터트릴 때는 확실하게 해야 해.”
[걱정하지 마. 너도 정보 아는 대로 내게 알려 주고.]
“그럴게.”
현호가 통화를 끊자 곁에 있던 최명준 실장이 얘기했다.
“사장님이 예상하신 대로 엄현태 사장님은 여러 시행대행사를 만들어 총 네 구역에서 직접 토지를 구매하고 있고, 한 구역에서는 지주들에게 사용 동의서도 받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엄현태의 택지개발 정보를 엄현식에게 넘기기는 했지만, 현호도 그 진행 과정을 은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 진행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그에 맞춰 다음 계획을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약속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겠죠?”
“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랜만에 외숙부님을 만나시네요.”
엄현주를 배웅한 현호는 외숙부 최해식을 만나러 가고 있다.
“그러네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겁니까?”
“슬슬 준비해야죠.”
“예? 뭘……?”
“부회장이 된 이후를요.”
“아, 예.”
최명준은 그 말뜻을 알아차렸다는 듯 더는 묻지 않았다.
* * *
“현호야, 오랜만이구나.”
현호가 레스토랑 룸으로 들어서자 외숙부 최해식이 밝은 표정으로 맞았다.
“외숙부,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현호는 그의 맞은편에 와서 앉으며 얘기했다.
“그럼. 나는 잘 지내고 있어.”
“좀 더 자주 연락드렸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죄송해요.”
“아니야. 네가 얼마나 바쁜지는 신문에서 말해 주더라.”
“예?”
“해외 진출 소식하며 방송 채널도 오픈하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니, 너는 얼마나 바빴겠어?”
“그렇게 이해해 주시니 감사해요, 외숙부.”
엄현호는 그를 향해 밝게 미소 지었다.
“신용보증기금에서 일하시는 건 어떠세요?”
“금감원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다르지 않아. 조직의 책임자로서 늘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지.”
금융감독원 원장이었던 최해식은 임기를 마치고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런 외숙부의 마음을 제가 알죠.”
“하하. 알아 주니 고맙구나.”
호탕하게 웃은 최해식이 궁금한 기색으로 물었다.
“오늘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고 그랬지?”
“예, 외숙부.”
현호가 먼저 그에게 연락했었다.
“내게 할 얘기가 뭐니?”
“외숙부께 도전을 권해 드리고 싶어서요.”
“무슨 도전을 말하는 거냐?”
“국가 경제의 책임자가 되는 도전이죠.”
최해식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재경부 장관을 말하는 거냐?”
“예, 외숙부.”
“재경부 장관이 사임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는데……”
“사임은 외숙부께서 하셨으면 해요.”
“뭐……?”
최해식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호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최해식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최해식의 마음에 야망이 있다는 걸 현호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재경부 국장이었던 시절 차관이 될 수 있게 자신을 도왔다.
이후, 재경부 장관이 되지는 못했지만, 금융감독원 원장에 임명되는 등 금융분야에서 전문가로서의 역할을 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다.
그런데 재경부 장관의 사임에 대한 뜬소문조차 없는데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사임하라니.
최해식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현호는 이런 그의 반응을 예상했기에 다음 말을 이었다.
“외숙부, 더는 내 차례가 언제일까, 기다리지 말고, 누구라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거예요.”
“누구라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
“예, 외숙부.”
“내가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에서 내려오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야?”
“시작점이 될 수 있는 거죠?”
“그게 어떻게 시작점이 될 수 있다는 거냐?”
최해식이 궁금한 기색으로 물었다.
“내년에 대선이 있어요.”
“아아, 그 얘기구나.”
최해식은 이제야 무슨 의미인지 알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현호야,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는데, 지금 여당이 정권을 연장하지 못하면 내가 재경부 장관이 될 일은 없어.”
현호는 그의 말이 이해되었다.
그는 이전 정부에서 재경부 차관을 했다. 이후 새 정부에서 금융감독원 원장을 했고,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을 맡고 있다.
정치색을 드러낸 적은 없지만, 정치인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면 과거는 능력을 인정받는 중요한 이력이 될 거예요.”
“…….”
현호의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 최해식은 잠시 말을 멈췄다.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지.’
재경부 차관 자리를 놓고 동료와 경쟁한 적이 있는데, 최해식의 바람과는 달리 동료가 차관에 내정되었다.
그때, 현호는 자신이 재경부 차관이 될 거라고 장담했다.
‘믿기 어려운 얘기였지.’
특별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이미 내정되어 있는 사람이 바뀔 리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특별한 일이 생겼어.’
동료의 해외원정도박 사실이 알려지면서 자신이 재경부 차관이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동료의 해외 도박 사실을 찾아내고 알렸던 배후에 현호가 있었다.
그가 장담했던 일이 이뤄지도록 만든 것이다.
‘이번에도……?’
그의 눈빛과 태도는 예전 자신에게 재경부 차관이 된다고 장담했던 그때와 다르지 않다.
자신에게 그 경험이 있으니, 그의 얘기를 헛소리로 단정 지을 수가 없다.
“현호야, 네 얘기를 찬찬히 들어 보자. 정치와 무관하게 내가 어떻게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거냐?”
“이사장에서 사임하고 경제연구소를 오픈하세요. 자금은 걱정하지 마시고요.”
최해식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경제연구소에서 연구해서 논문 같은 결과물을 만들라는 거냐?”
“그런 걸 쓰시고 싶으시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연구소를 열고 발표하실 게 있어요.”
“발표할 게 있다고? 그게 뭐지?”
“미국은 금융위기를 맞으며 경제에 큰 충격을 받게 될 거고, 그 위기 때문에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게 될 테니, 우리나라도 그것에 대비해야 한다고 발표하는 거예요.”
현호의 대답에 이해가 안 되는 듯 최해식이 미간을 찌푸렸다.
“현호야, 나더러 들통날 거짓말을 하라는 거냐?”
“예……?”
“세상의 주목을 받으려면 튀어야 하는 면도 있지만, 너무 나가면 허풍쟁이가 될 거야.”
“…….”
“미국의 경제가 예전만큼 좋지 않다는 거는 알고 있어. 하지만 미국이 금융위기에 빠지면 세계 경제가 휘청일 거야.”
“…….”
“그런 위기 조짐을 미국 정부가 두고 보지 않을 텐데, 내가 그렇게 확정적으로 얘기하면 모두 나를 미치광이로 생각하며 비난할 거야.”
“…….”
“너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듣고서 내게 얘기하는 거니?”
최해식이 혼란스러운 게 바로 이 지점이었다.
자신이 아는 현호는 매우 명석하고 예측과 추진력이 뛰어나다.
그런 능력을 발휘해 그는 사업을 시작한 이후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그런 현호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게 이런 얘기를 할 리가 없는데.’
그런 자신의 마음을 읽었는지 현호가 얘기했다.
“외숙부, 유명한 경제학 박사가 그런 얘기를 했다고 하면 믿으시겠어요?”
“아…….”
최해식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현호가 이렇게 물은 의미를 알기 때문이다.
누가 그렇게 얘기해 준다고 한들 자신을 확신시킬 근거가 없다면 믿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그렇게 믿는 이유는 있을 게 아니냐?”
“해외 투자를 맡아서 도와주는 곳이 있어요. 그곳에서 보내온 보고서에요.”
현호는 M&H 인베스트먼트가 예측한 보고서를 그에게 넘겼다.
사실, 이것은 현호의 주문에 맞춰 조사, 분석한 맞춤형 보고서다.
미국의 성장하지 않는 실물경제 상황뿐만 아니라 부동산시장 버블의 시작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은행, 채권보증회사를 거쳐 리스크 분석도 어려울 만큼 뒤섞여 투자은행의 파생상품으로 판매되는 상황에 대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예측들이 실려 있고, 그중 가장 비관적인 게 경제대공황에 버금가는 글로벌 위기다.
“이 보고서를 읽어 보세요.”
최해식은 그 보고서를 펼쳐 읽기 시작했다.
담담하던 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져 가더니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미국의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현호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미국 경제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다는 데에는 이해를 한 듯 보였지만, 아직 의구심이 풀린 모습은 아니었다.
“외숙부, 이 보고서만으로 의구심이 완전히 풀리지 않으시죠?”
“어? 어, 솔직히 그렇구나.”
“외숙부, 직접 조사하고 분석해 보시는 게 어떠세요? 이 보고서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충분히 연구해 볼 만하지 않으세요?”
현호의 말에 동의하듯 최해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 연구지. 그런데 말이야.”
“……?”
“네 말대로 내가 미국 금융시장을 조사하고 분석해서 이 보고서와 비슷한 결론을 얻는다고 해도…….”
최해식은 잠시 말하기를 주저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말한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려면, 이 보고서와 내가 예측한 결과대로 세상이 흘러가야 해.”
“…….”
“그렇지 않으면 난 우스운 사람이 되고 말 거야. 그런데, 세상이 내 예측대로 흘러가리라는 보장이 없어.”
“……!”
“더구나 미국 내에 훌륭한 금융전문가들이 있으니, 위기로 치닫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텐데…….”
현호는 그의 말을 끊으며 얘기했다.
“외숙부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겠어요.”
현호는 그의 마음이 복잡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는 국가 경제 수장이 되어 권력을 얻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렇기에 우스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 또한 있는 것이다.
그에게는 선택이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한쪽을 선택하면 우스운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고, 다른 쪽을 선택하면 권력을 얻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숙부, 우리나라에 훌륭한 경제전문가가 없어서 외환위기가 왔을까요?”
“……!”
“훌륭한 경제전문가가 없어서 전 세계가 대공황으로 어려움을 겪었을까요?”
“……네 말에 일리가 있구나.”
최해식이 현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외숙부, 제가 확신이 없는데 제안할 사람이라 생각하세요?”
“아니. 넌 지금껏 한 말을 지키지 않은 적이 없어.”
“저는 외숙부가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
“외숙부가 직접 조사하고 분석하면 좋겠어요. 그래서 얻은 결론이 보고서와 비슷하다면 세상에 알리셔야죠.”
“…….”
“외숙부의 결론은 결국 국민을 위한 것이니까요.”
“…….”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상 사람들은 외숙부의 얘기를 믿지 않을 거예요.”
현호는 슬픈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 후 다음 말을 이었다.
“많은 비난을 받으실 거예요. 그래도 저는 외숙부가 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금융위기는 반드시 오게 될 테니까요. 문제가 터진 후에 사람들은 외숙부의 예측이 맞았다는 걸 깨닫게 될 거예요.”
“……!”
“그때, 외숙부는 누구라도 함께 하고싶고, 위기에 놓인 국가에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되는 거죠.”
“아……!”
현호의 마지막 말에 최해식이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