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19
219화 돈을 주지 말고, 찾으세요
“이사장님, 어쩐 일이십니까?”
엄현식은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엄 사장님, 조금 전 김진식 선종은행장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무슨 얘기를……?”
[신진종합기계 매각을 연기하기로 했습니다.]
“뭐라고요?”
소스라치게 놀란 엄현식은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였다.
“이사장님, 저와 약속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까? 약속을 깨겠다는…….”
이일수 이사장이 그의 말을 자르며 얘기했다.
[엄 사장님, 몇 달 후 대선이 있습니다.]
“……!”
[부정적인 언론 기사가 쏟아지고 여론까지 나빠지니 여기저기서 압박이 들어오고 있어요. 다른 쪽은 이걸 정치 쟁점화하려는 움직임도 있고요.]
“…….”
[자칫하면 우리가 양쪽에서 두들겨 맞게 생겼어요. 우리가 살아야 약속도 지킬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
틀린 말이 아니라 엄현식은 반박하지 못했다.
[일단 연기하고 내년에 기회를 봐서 다시 추진하는 걸로 합시다.]
“…….”
[약속은 지킬 테니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
[그럼, 다시 연락하죠.]
통화가 끊어지자 엄현식의 입에서 저절로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씨발.”
대선이 있어서 전광석화처럼 재빨리 인수를 끝내고 싶었다.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의 임기가 정해져 있다고는 해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 인사 이동이 있을 게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현태가 이런 상황을 더 잘 이용해 매각 진행을 막았다.
‘엄현태 이 자식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자신이 회장이 되면 송우그룹 내에서 그의 자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기다릴 수밖에 없어.’
대선이 끝날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면, 차후에 원활한 매각 진행을 위해서라도 해야 할 일이 있다.
‘선거 자금을 어느 쪽에…….’
엄현식의 고민이 깊어졌다.
* * *
다음 날.
이일수 이사장이 엄현식에게 얘기한 대로 신진종합기계 매각 연기가 발표되었다.
[신진종합기계, 매각 무기한 연기 발표]
[신진종합기계, 직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더 갖겠다]
신진종합기계 이사회는 직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하기 위해 대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내놓고 매각을 무기한 연기하기로 발표했다.
“현태 형, 정말 해냈네?”
현호는 엄현태와 통화 중이었다.
[장인어른 덕을 좀 봤지.]
“하긴, 배원우 사장님의 영향력이 없었으면 매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높아지지 못했을 거야.”
[큰형이 송우그룹의 부회장이었다면 달랐을 거야. 아무리 장인어른이라도 회장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을 테니까.]
“어쨌든 형이 막았잖아.”
[문제는 매각 취소가 아니라 연기된 거야. 언제고 다시 매각이 추진될 수 있어.]
“그때는 또 다른 대응 방법이 생기겠지.”
수화기 너머로 엄현태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여유롭게 생각할 게 아니야. 이번에 큰형이 호되게 당했으니까 다음에는 이번 작전이 먹히지 않을 수 있어.]
“아! 생각해 보니 그렇네.”
현호는 애써 이제야 이해한 것처럼 얘기했다.
“어쨌든 대선도 다가오니 매각을 쉽게 진행하지는 못할 거야. 그동안 나도 어떤 대응 방법이 있을지 생각해 볼게. 다음에 다시 통화해.”
[알았어.]
통화를 끊은 현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걸렸다.
작은형 엄현태에게 대응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고 했지만 사실 현호는 이미 확보해 둔 상태다.
다만, 그것을 엄현태와 공유할 생각이 없을 뿐.
소란스러웠던 신진종합기계 매각 이슈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갈 때쯤 국세청이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를 대상으로 특별 세무조사를 한 결과가 드디어 나왔다.
[국세청, 세무조사 대상 1곳 제외한 대형 엔터테인먼트사에 추징금]
[국세청, 추징금 제외된 곳은 송우미디어]
“추징금이 없다고요?”
황일현 국세청장과 통화 중인 엄현식은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렇습니다, 엄 사장님.]
“아니, 제대로 조사한 거 맞아요?”
[제대로 조사했습니다.]
“그럼, 이게 안 나올 수가 없잖아요?”
[지금 국세청 세무조사관의 실력을 의심하는 겁니까?]
황일현 국세청장이 기분이 상한 투로 묻자 엄현식은 얼굴빛이 냉랭해지며 가라앉은 소리로 대꾸했다.
“황 청장님, 당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게 누구 덕인데, 지금 내게 불평하는 겁니까?”
[……아, 아니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주눅 든 황일현 국세청장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세무조사를 제대로 했으면 탈세 흔적이라도 찾았어야죠?”
[엄 사장님, 진심으로 탈세 흔적이라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꼬투리 잡을 만한 게 1원도 없었어요.]
“…….”
[저도 보고를 받고 무척 당황했습니다. 엄 사장님 말씀대로 송우미디어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엄현호 사장과 송우미디어 이미지만 상승시켜 준 꼴이 되었으니까요.]
“…….”
[제가 송우미디어 좋으라고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를 대상으로 특별 세무조사를 계획하지는 않았다는 거 엄 사장님이 잘 알지 않습니까.]
“하아…….”
엄현식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황일현 국세청장의 말이 맞다.
해외로 넓혀 가는 송우미디어를 곤란하게 하고 이미지를 추락시키고자 세무조사를 계획했다.
그런데 그 반대가 되었다.
허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았어요. 혹시라도 다른 특별한 상황이 생기면 내게 알려줘요.”
통화를 끊은 엄현식은 짜증이 나는지 인상을 찡그렸다.
‘엄현호…… 그래서 목소리가 여유로웠어.’
국세청이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를 대상으로 특별 세무조사를 한다고 알려졌을 때, 현호가 자신에게 전화를 걸어 왔다.
큰소리로 화를 내며 따질 줄 알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국세청이 송우미디어에 추징금을 부과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
“씨발, 현호 좋은 일만 시켰네.”
엄현식은 마음으로 다짐했다.
‘이번에는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반드시…….’
* * *
엄현식에게는 안타까운 한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비록 엄현주와 엄현태를 부회장 지명에서 멀어지게 만들었지만 신진종합기계 매각은 연기되었고 현호를 곤란하게 만들려던 특별 세무조사도 실패로 끝이 났다.
뭔가를 더 해 보려고 해도 대선이라는 블랙홀 때문에 이슈가 되기도 힘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7대 대통령으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다음 날.
[엄 사장, 그간 어떻게 지냈어요?]
현호는 남현민 검사장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있었다.
“연말이라서 바쁘게 보내고 있습니다. 검사장님은 어떠십니까?”
[나야 뭐…… 엄 사장, 아무리 바빠도 나와 식사할 시간을 내줄 수 있죠?]
현호는 그가 왜 자신을 만나려고 하는지 알지만 내색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하하하. 역시, 엄 사장은 의리가 있어요.]
“그럼 제가 약속 장소를…….”
남현민 검사장이 현호의 말을 끊으며 얘기했다.
[약속 장소는 내가 정할게요. 이번에는 내가 엄 사장에게 대접하고 싶어서 그래요.]
“제가 검사장님을 대접해야죠.”
[내가 매번 엄 사장에게 신세를 졌잖아요. 이번만큼은 내가 대접하고 싶으니, 허락해줘요.]
“아, 검사장님의 마음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장소는 메시지로 보낼 테니 저녁에 봅시다.]
“그러죠.”
통화를 끊은 엄현호가 피식 웃음을 흘리자 곁에 있던 최명준 실장이 물었다.
“재밌는 거라도 있습니까?”
“남 검사장의 속마음이 보였거든요.”
“어떤 속마음이……?”
“검찰총장이 되고 싶어 하는 욕심이죠.”
“아……!”
최명준 실장도 이해한 듯 미소를 지었다.
디링.
그때, 남현민 검사장이 보내온 메시지가 도착했다.
현호는 장소를 확인한 후 시간을 체크하며 얘기했다.
“송우콘서트 준비를 둘러본 후 가면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도착할 것 같네요.”
“그럼, 지금 출발하시겠습니까?”
“그래요. 지금 가죠.”
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하고 최명준 실장이 뒤를 따랐다.
* * *
“엄 사장, 어서 와요.”
현호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자 남현민 검사장은 평소보다 더 밝은 모습으로 현호를 맞았다.
“연말이라 서울까지 오는 데 불편하지 않으셨습니까?”
“사실 오늘 일이 좀 있어서 어젯밤에 서울에 왔어요.”
“아, 그러셨군요.”
현호는 그가 왜 서울에 왔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서울에서의 볼일은 잘 끝내셨습니까?”
“아, 그 얘기를 나중에 하려고 했는데 엄 사장이 물으니 안 할 수가 없네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 사실…….”
남현민 검사장이 잠시 뜸을 들이다 결심한 듯 얘기를 시작했다.
“엄 사장 기억하죠? 예전에 내게 새 정부의 비선 실세가 될 사람이라고 알려 준 거.”
“그럼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 이후 내가 그분을 만났어요.”
현호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티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셨군요.”
“그 사람이 실세라는 사실을 안 것도 궁금한데, 어떻게 결과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요? 역시 엄 사장은 대단해요.”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현호가 미래를 정확하게 맞추고 그가 몰랐던 비선 실세까지 안다는 게 신기하게 느껴지는 얼굴이었다.
“여러 정보를 접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 대단한 정보네요. 그럼, 엄상현 회장님도 아시는 정보예요?”
현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닙니다. 회장님께서는 정보망을 자식들과 공유하지 않습니다.”
현호의 대답에 놀란 남현민의 눈이 커졌다.
“그럼, 엄 사장이 구축한 정보망이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아니, 그걸 왜 이제야 말합니까? 내가 엄 사장이 전해 준 정보를 믿지 않았으면 큰일 날뻔했어요.”
“그 당시 제가 사실대로 얘기했다고 해도 믿기 어려웠을 겁니다. 경험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검사장님께 그 정도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하하. 엄 사장 말이 맞아요.”
남현민이 동의하듯 크게 웃으며 얘기했다.
“엄 사장 덕분에 내가 좋은 인연을 맺게 됐어요.”
“잘됐네요. 결국 저를 믿었다는 얘기니까요.”
“그럼요! 내가 엄 사장을 믿지, 누굴 믿겠어요? 하하.”
한때 남현민은 현호를 애송이로 취급하며 무시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 현호를 대하는 남현민의 태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의 출세를 위해 반드시 따라야 할 사람이 된 것이다.
“엄 사장, 근데 말이에요…….”
남현민이 목소리를 낮추고 현호 가까이로 몸을 기울이며 얘기했다.
“내가 그 비선 실세와 좋은 인연을 맺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현호는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검찰총장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그 자신만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그래서 그분께 어필하려면 명품 같은 것으로는 티도 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좀 묵직한 자금이 필요한데, 엄 사장이…….”
현호가 그의 말을 끊으며 얘기했다.
“검사장님, 검찰총장이 되고 싶으면 돈을 주지 말고, 찾으세요.”
“예? 그게 무슨……?”
“검사장님도 알다시피, 선거 때 그 사람 주위로 돈이 몰려들었을 겁니다. 그 돈을 찾으세요.”
“아……!”
남현민은 현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듯했다.
“그게 훨씬 효과적일 겁니다.”
남현민의 안색이 좀 전보다 훨씬 밝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