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2
22화 황금알을 낳는 투자
“이사장님, 그리고 나해철 대표님, 잘 다녀오세요.”
공항까지 배웅하러 온 최명준 비서의 인사를 받으며 현호는 나해철과 함께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탔다.
긴 비행시간 끝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한 현호는 차를 렌트해서 숙소인 힐튼 산타클라라 호텔로 향했다.
“이사장님, 운전은 제가 해도 되는데…….”
나해철은 직접 운전하는 현호를 보며 말했다.
나이는 현호가 더 어리지만, 그는 M&H 인베스트먼트의 실소유주였다. 마치 직장 상사에게 운전석을 맡긴 거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그 마음을 알아차린 현호가 피식 웃음을 흘리며 대꾸했다.
“불편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이쪽 지리를 잘 알아서 운전하는 거니까요.”
“아, 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셨죠.”
현호가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해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현호가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유학 생활을 했던 것은 전생의 엄현호이고, 지금의 현호가 이곳의 지리를 잘 아는 건 전생에 엄민우로서 여러 차례 출장을 와 봤기 때문이었다.
“내일 약속 장소는 변경되지 않았죠?”
“예. 산호세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호텔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겠습니다.”
“리차트 해밀턴 씨는 저도 동행하고 있는 걸 알고 있습니까?”
넷프리의 대표, 리차드 해밀턴.
현호가 미국에 온 이유는 그와 투자 미팅을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그쪽에는 이미 상세히 설명을 전달해 둔 상태입니다. 딱히 개의치 않더군요. 다만 의아해하긴 했습니다.”
“왜죠?”
“창업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은 회사를 어떻게 알았냐는 거죠. 그건 저도 궁금합니다, 이사장님.”
실리콘밸리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회사가 생겨났다 사라진다. 그곳에서 누군가의 눈에 띄어 투자를 받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니 나해철로서는 펀드매니저인 자신조차 몰랐던 회사를 현호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현호는 입꼬리를 올리며 이번에도 가장 편리한 변명을 댔다.
“미국의 친구들에게 얘기 들었습니다.”
“아, 하긴 미국에 친구들이 많으시겠군요.”
나해철은 재벌 3세인 현호이니, 그의 친구들 또한 기업가 집안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친구들을 두었다면 넷프리에 대한 정보를 들었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현호는 그의 표정을 백미러를 통해 훑으며 그가 마음대로 상상하게 내버려 두었다.
* * *
다음 날.
현호는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한 후 호텔 주변을 산책했다.
딱히 시차로 인한 피로는 없었다. 도리어 지난밤 잠도 잘 자고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산책을 마친 현호는 곧바로 준비를 하여 로비에서 나해철을 만났다.
“넷프리 사무실 위치는 저도 알고 있으니 오늘은 제가 운전하겠습니다.”
“그러시죠.”
두 사람은 곧바로 차를 타고 넷프리의 사무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후, 목적지에 도착하여 리차드 해밀턴의 방에 들어선 나해철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사무실 한쪽에 위치한 쪽방으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는데, 그곳에는 컴퓨터가 있는 책상과 티테이블 같은 원탁만이 겨우 들어갈 만큼 좁았다.
여분의 의자도 없어서 직원이 자신이 쓰는 의자를 가져다주었다.
‘차라리 레스토랑에서 만나자고 했어야지.’
자신이 일개 직원으로 미팅 자리에 나온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당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딱히 격식을 중요하게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회사의 오너와 함께 온 자리였다. 자신의 탓이 아님에도 현호의 눈치가 보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나해철의 마음을 모르는 듯 리차드가 밝게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그는 30대 후반이지만 실제 나이보다 성숙해 보였다.
“반갑습니다. 리차드 해밀턴입니다.”
“반갑습니다. M&H 인베스트먼트 대표 나해철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아, 오너시군요.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앉으시죠.”
리차드가 원탁 의자에 앉기를 권하자, 나해철이 얼른 대꾸했다.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함께하면서 얘기하는 게 어떠십니까?”
리차드가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 현호가 먼저 대답했다.
“저는 여기가 좋습니다, 나해철 대표님.”
현호가 먼저 의자에 앉으며 리차드에게 얘기했다.
“사무실 참 괜찮군요.”
“그렇죠? 이 사무실을 얻을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원래 다른 사람과 계약하기로 되어 있던 곳인데 급하게 가로챈 곳이죠.”
“저라도 그랬을 것 같습니다.”
“호오…… 어째서죠?”
리차드의 물음에 나해철은 다시 한번 당황했다.
인사치레인 게 뻔한 말에 그 이유를 묻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해철이 안절부절못하다가 무어라 이야기를 꺼내려던 찰나였다.
“제프리 로렌스가 이곳에서 시작했으니까요.”
제프리 로렌스.
부동산 사업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투자의 귀재로, 그는 일평생 벌어들인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하며 많은 이들의 칭송을 받았다.
그런 전설적인 인물이 처음 사업을 시작했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었다.
“저도 제프리 로렌스를 존경합니다. 당신처럼.”
현호가 그를 존경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이유는 전생에 리차드 해밀턴이 쓴 자서전을 읽은 덕분이었다.
현호는 그 자서전을 통해서 리차드가 제프리 로렌스를 얼마나 존경하는지, 그리고 이 사무실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깊은지 잘 알고 있었다.
“제프리 로렌스를 존경하는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그분이 어디서 사업을 시작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건 당신이 처음이에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하하. 이야기가 잘 끝마쳐지면 제프리가 자주 갔던 식당에서 함께 식사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나해철 대표님, 이야기 시작하시죠.”
“아, 예!”
두 사람의 대화를 넋 놓고 지켜보고 있던 나해철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리차드, 우리는 넷프리에 투자하고자 합니다. 우선 올해 1억 달러, 그리고 내년에 다시 1억 달러. 총 2억 달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와우. 생각보다 훨씬 많군요.”
밝은 기색으로 대답하던 리차드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변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이번에 한국에 대해 조사해 봤는데, 그곳의 인터넷 환경은 매우 놀랍더군요.”
“갑자기 그건 왜…….”
“미국의 인터넷 환경이 어떤지는 당연히 알고 오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그런 환경을 갖춘 한국의 기업이 아닌, 우리 회사에 투자를 하려는 겁니까?”
나해철은 리차드의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사무실에 들어오면서부터 넷프리의 상황이 어렵다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런 회사에 투자해 주겠다고 왔으면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투자받고 싶지 않으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던 그때, 현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넷프리의 상품을 보고 투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이죠?”
“저는 DVD 대여 사업이 오래갈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몇 년 후에 DVD의 보급률은 도리어 낮아지게 될 겁니다.”
현호의 이야기에 리차드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누구보다 이 시장에 대해서 잘 파악하고 있는 게 그였으니까.
그 또한 대여 사업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내다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넷프리에 투자하려는 이유가 궁금했던 것이고 말이다.
“그런데 왜 투자를 하려는 겁니까?”
“리차드 해밀턴, 당신 때문이죠.”
“……?”
“당신은 사람들이 무엇을 불편해하는지를 아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영화 한 편 보기 위해 동네에 있는 대여 매장에 가고, 월마트에서도 빌리죠.”
“…….”
“사람들은 편리하다고 말하는데, 당신은 불편한 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불편한 것들을 고쳐서 고객이 편하게 영화를 보게 만들었습니다.”
“…….”
“당신은 또다시 보게 될 겁니다. 사람들이 영화 한 편을 볼 때 어떤 불편한 점이 있는지. 그리고 또 고쳐 나가겠죠. 그래서 DVD 대여 사업은 사라질 수 있어도 당신은 실패할 수가 없습니다.”
“……!”
“투자의 이유를 더 설명해야 합니까?”
“아닙니다. 예상하지 못한 이유네요.”
잠자코 듣고 있던 나해철도 속으로 놀랐다.
‘역시…… 남다른 데가 있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나해철은 현호에게서 남들과는 다른 구석이 있다고 느꼈다.
자신은 투자를 결정할 때 온갖 자료들이 보여 주는 숫자를 중요시 여겼다. 숫자는 결코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달리 보면 눈앞의 것만 보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엄현호는 숫자가 보여 주지 않는 것을 보았다.
단순히 눈앞의 놓인 가치뿐만 아니라, 남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가치를 찾을 줄 알았다.
이쯤 되자 나해철는 자신의 할 일을 깨달았다.
편안하게 투자 미팅을 지켜보면 된다. 현호가 다 알아서 할 것이기에.
“나해철 대표가 얘기했듯이 올해 1억 달러, 내년에 1억 달러. 총 2억 달러를 투자할 생각입니다. 리차드의 생각은 어때요?”
“정말 예상하지 못한 투자액입니다. 원하는 게 뭔가요?”
“투자금에 해당하는 지분과 그에 따른 배당금입니다.”
“그게…… 다라고요?”
리차드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넷프리는 아직 무언가 뚜렷한 성과조차 내보인 것이 없는 기업이었다. 심지어 현호는 현재 진행하고 있는 사업마저도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지적한 상태였다.
그런데 원하는 것이 배당금뿐이라니.
만일 넷프리가 사업에 실패하기라도 한다면, 2억 달러가 한순간에 사라지게 되는 것이기에 도무지 믿기지 않는 조건이었다.
“네, 그거면 충분합니다.”
“그러면 의결권은……?”
“행사하지 않겠습니다. 원한다면 리차드에게 넘기겠습니다.”
사기가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후한 제안이었다.
“정말입니까?”
리차드가 다시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리차드, 오늘 상황이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습니까? 투자자가 이것저것 다 줄 테니 투자하게 해 달라고 하다니. 이런 투자자 만난 적 있습니까?”
“하하하. 당신 말이 맞아요. 당신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에요.”
현호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넷프리가 성공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넷프리는 전 세계에 영향력을 자랑하는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 지금의 투자금은 몇 백 배가 되어 돌아올 터였다.
‘나중에 알게 되겠지.’
지금 당장은 남들이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볼지도 모르겠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그들은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지금 당장 이상한 사람으로 보이는 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당신이 성공하리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제가 이상한 사람이 아님을 당신이 증명해 주리라 믿습니다.”
이어진 현호의 말에 리차드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맺혔다.
“하하! 당신, 정말 마음에 듭니다.”
리차드가 현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투자해줘서 고맙습니다.”
현호는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내민 손을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