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계획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믿지? 송우생명 주식을 주면 영상자료를 폐기하고, 송우중공업을 건드리지 않는다는 걸.”
엄현식이 현호를 냉랭하게 쳐다보며 물었다.
“형이 원하면 계약서를 만들 수도 있어. 어떻게 할까?”
“…….”
잠시 망설이던 엄현식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해.”
그가 거래 제안을 승낙하자 현호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 * *
검찰 조사를 마친 후에도 신문사에서는 엄현식의 뇌물 관련 기사를 계속 실었다.
가장 끈질기게 엄현식을 괴롭히는 신문사는 나라일보였다.
[엄현식 사장의 도덕적 해이, 송우중공업 이대로 괜찮나?]
[부끄럽지 않은 사회가 되려면, 기업인의 뇌물죄에 엄한 책임 물어야 한다.]
[오너 리스크에 연일 하락 중인 송우중공업, 정상으로 되돌아올 방법은?]
“회장님, 송우중공업 주가가 계속 하락하고 있습니다.”
엄상현 회장의 서재로 찾아온 최덕일 변호사가 어두운 표정으로 얘기했다.
“부정적인 기사가 계속 나오다 보니 좀처럼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흠…….”
엄상현 회장이 의자 등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그는 최덕일 변호사가 얘기한 ‘부정적인 기사’를 누가 주도하는지 알고 있다.
나라일보 사장 배원우다.
그걸 알면서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자신의 아들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배원우 사장이 엄현식을 괴롭히는 이유는 사위 엄현태를 송우그룹 후계자로 만들고 싶어서다.
엄현식이 힘을 잃어야 엄현태에게 기회가 있기에.
“최 변.”
생각에 잠겼던 엄상현 회장이 눈을 뜨며 나지막이 최덕일 변호사를 불렀다.
“말씀하세요, 회장님.”
“현식이, 어떻게 될 거 같아?”
“증거가 있기에 무죄가 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다만, 뇌물 액수를 낮춰서 처벌 수위를 낮추는 전략을 쓰고 있습니다.”
엄상현 회장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얘기했다.
“내가 현식이한테 얘기할 테니, 송우중공업 사장에서 물러난다고 언론사에 보도자료 보내.”
뇌물 사건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야 송우중공업의 주가 하락도 멈추게 될 것이고 장남 엄현식의 재판 준비 환경도 나아질 것이다.
그 관심을 끊게 만드는 방법은 엄현식이 사장에서 물러나는 것이다.
그 의미를 아는 최덕일 변호사가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최덕일 변호사가 서재를 나간 후, 엄상현 회장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마음에 안 들어.”
엄상현 회장은 약해져 가는 자신의 권위를 다시 세우기 위해 후계자가 될 부회장을 지명하겠다고 했다.
그 이후 그가 원했던 대로 자신의 권위는 한껏 높아졌다. 하지만 성과 경쟁을 하는 자식들이 보여 준 결과는 한숨이 저절로 나올 만큼 실망스러웠다.
‘이래서야 어떻게 성국그룹을 이길 수 있겠어.’
엄상현은 자신이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재계 1위 성국그룹을 이기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껏 그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휴우.”
엄상현 회장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부회장 지명 경쟁이 시작하기 전 엄상현 회장은 공정하기 위해 자신이 경쟁에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껏 그들이 어떤 성과를 보일지 지켜보고 있었지만, 현주의 실패를 시작으로 장남 엄현식까지 거듭된 실망감만 느꼈다.
하지만 결과가 실망스러워도 그들은 자신의 자식들이다.
자신이 더는 그룹을 경영할 수 없을 때, 그들 중 한 명에게 그룹을 넘겨야 한다.
더 기다려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는 이가 없다면?
‘내가 선택할 수밖에 없겠지.’
고민이 깊은 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 * *
다음 날.
엄현식 사장의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엄현식 송우중공업 사장, 경영에서 손 뗀다]
[엄현식 사장, 경영에서 물러나 반성의 시간 갖겠다]
“고맙습니다, 아버님.”
소식을 접한 엄현태는 장인인 나라일보 배원우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하하, 가족끼리 뭘 그런 인사를 해.]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사 표현을 더 잘해야죠. 하하”
[어쨌든 기분 나쁘지는 않군. 그런데 엄현식 사장은 재판 준비만 하는 건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형님은 별장으로 내려가 있게 됐습니다.”
[별장에?]
의아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사실 사건이 터진 후부터 기자들이 집 근처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사진이 찍힐지 몰라 큰형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불편해했죠. 그래서 아버님이 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형님한테 별장에서 지내라고 했습니다.”
[자네한테는 잘된 일이군.]
“그렇습니다.”
[이제 엄현식 사장 신경 쓰지 않고 자네 성과만 내면 되는 거야.]
“예! 열심히 하겠습니다.”
대답하는 엄현태의 목소리가 들떴다.
왜 아니겠는가.
마음제과를 인수해 단숨에 송우식품 사장이 된 엄현주는 집단 식중독 은폐 사건으로 사장에서 물러나 지금 해외여행 중이다.
큰형 엄현식은 송우중공업 사장에서 물러났을 뿐만 아니라 재판을 받게 된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자신에게는 성과를 낼 시간을 확보한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엄현태의 기분이 전달되었는지 배원우 사장도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얘기하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힘껏 도울 테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버님.”
엄현태가 들뜬 기색으로 장인인 배원우 사장과 통화하는 그 시각, 성국그룹 안명기 회장은 성국유통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파업이 뉘 집 애 이름이야!”
한종혁 법무팀장으로부터 성국유통 파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들은 안명기 회장이 언성을 높였다.
“정부에서는 노조와 타협을 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 일에 왜 감 놔라, 배 놔라, 간섭이야?”
안명기 회장이 투덜대며 얘기했지만, 한종혁 법무팀장은 대꾸하지 않았다.
정부가 간섭하는 이유를 안명기 회장이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대기업 계열사에서 파업이 발생하게 생겼다.
사기업의 문제라고 방치했다가는 사회적 갈등을 풀 의지가 없다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면서도 노조와의 협상을 다시 시도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성국유통은 노조와 타협해서 임금을 올리고 복지를 늘릴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종혁 법무팀장은 현실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
“회장님, 우리가 정부의 요청을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그걸 누가 몰라서 이러나.”
안명기 회장이 중얼거리듯 말했을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나더니 난감한 기색의 비서가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회장님께 온 우편물이 있습니다.”
“우편물……?”
안명기 회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서를 쳐다봤다.
보통 우편물은 비서가 먼저 확인한 후 보고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만 알려 준다.
그런데 내용은 말하지 않고 자신에게 온 우편물이 있다고만 얘기한다는 건, 말하기 조심스러운 물건이라는 의미다.
“누가 보냈나?”
“송우미디어 최명준 비서실장이 보냈습니다.”
“최명준?”
한종혁 법무팀장이 얼른 끼어들어 얘기했다.
“엄현호 사장의 비서실장입니다. 얼마 전부터 엄현호 사장과 회장님의 만남을 여러 차례 요청했습니다만, 저희 쪽에는 만날 이유가 없기에 거절했습니다.”
그의 설명을 들은 안명기 회장이 비서에게 물었다.
“그자가 내게 뭘 보냈다는 거야?”
“카드입니다.”
“뭐?”
당황한 안명기 회장이 눈을 깜빡이다 비서에게 얘기했다.
“가져와.”
“예.”
비서가 밖으로 나갔다가 곧 봉투에 담긴 카드를 들고 들어와 안명기 회장에게 건넸다.
봉투를 열어 카드를 꺼내 보는 안명기 회장이 놀란 듯 눈이 커졌다.
“이게 뭐야?”
“왜 그러십니까, 회장님.”
한종혁 법무팀장의 물음에 안명기 회장은 간단한 문장이 적힌 카드를 보여 주었다.
[성국유통이 임금협상을 결렬시킨 진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그 글을 본 한종혁 법무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엄현호가 그 이유를 안다고 말하는 거지?”
안명기 회장이 확인하듯 한종혁 법무팀장에게 묻자, 그가 조심스레 얘기했다.
“섣불리 판단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아니야. 뭔가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
잠시 생각하던 안명기 회장이 입을 열었다.
“약속 잡아 봐.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봐야겠어.”
“알겠습니다.”
* * *
“사장님.”
사장실로 들어온 최명준 실장의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성국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
“안명기 회장님과 만날 약속이 잡혔습니다.”
“최 실장, 해냈군요!”
현호가 들뜬 기색으로 말하자 최명준 실장이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제가 약속했으니까.”
“어떻게 한 거죠?”
“여러 차례 요청해도 소용이 없길래 카드에 짧은 글을 써서 보냈습니다.”
“카드요?”
“임금협상을 결렬시킨 이유를 알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하하하.”
그의 말에 현호가 환하게 웃었다.
“잘했어요. 이제 아버지께 얘기하면 되겠네요.”
“벌써 얘기하신다고요?”
“왜 그렇게 놀라요?”
“아직 안명기 회장님과 성국유통 인수에 관해 얘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엄상현 회장님께 얘기했다가 실패하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현호는 그의 걱정이 이해되었다.
엄현주, 엄현태, 그리고 엄현식 사장의 실패를 지켜본 그로서는 인수가 확실해질 때까지 엄상현 회장에게 알리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에 현호는 따뜻한 미소로 그에게 얘기했다.
“실패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아요.”
* * *
다음 날, 엄상현 회장 가족이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에 모였다.
엄현주와 엄현식 두 사람이 없을 뿐인데, 예전보다 공간이 많이 비어 보였다.
현호는 식사하며 아버지 엄상현 회장과 작은형 엄현태의 기색을 살폈다.
아버지 엄상현 회장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평소처럼 식사하고 있던 것과는 달리 엄현태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가장 어려웠던 적수가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런데 어쩌나.
그 여유도 곧 사라질 테니.
“아버지, 여쭤볼 게 있어요.”
현호가 나지막이 부르자 식사를 멈춘 엄상현 회장이 쳐다보며 물었다.
“이곳에서?”
가족 식사 자리에서 굳이 물어야겠냐는 의미였지만, 현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 아버지. 가족들도 알아야 하니까요.”
“묻고 싶은 게 뭐냐?”
“부회장이 되기 위한 공정한 기회를 우리 모두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셨어요. 그 약속 변함없으시죠?”
현호의 물음에 놀란 엄현태가 신경질적으로 끼어들었다.
“그걸 왜 묻는 거야?”
“나를 제외하고 모두 한 번씩 기회를 가졌어. 그렇지?”
“그렇기는 하지만 너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잖아.”
“그런데 관심이 생겼어.”
“뭐어?”
엄현태의 미간이 찌푸려졌지만, 현호는 개의치 않고 시선을 아버지 엄상현 회장에게로 돌리며 얘기했다.
“아버지, 부회장이 되기 위해 아버지께 성과를 보여 드리고 싶습니다.”
현호의 얘기에 엄상현 회장은 표정의 변화 없이 얘기했다.
“내가 한 약속이니, 너에게도 기회가 있어. 하지만 어떤 성과를 내겠다는 계획도 없이 기회만 달라고 얘기하는 거냐?”
“계획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얘기할 필요 없다. 성공하면 그때 얘기해.”
이미 여러 차례 실망을 거듭했던 엄상현 회장이 통보하듯 얘기했지만, 현호는 그의 말에 반박하듯 대답했다.
“제 계획은, 성국유통을 인수하는 겁니다.”
“뭐어?”
예상하지 못한 얘기에 놀란 엄상현 회장의 눈이 동그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