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34
234화 충돌은 피할 수 없다
“후우.”
엄상현 회장은 솟구친 화를 가라앉히려 긴 숨을 내쉬었다.
“아버님, 잘못했습니다.”
채연희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아래로 떨군 채 기죽은 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는지 엄상현 회장은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의지로 나한테 와서 사실을 털어놓는 게 아니지?”
“…….”
채연희가 대답을 하지 못하자 엄상현 회장은 자신이 짐작하는 걸 얘기했다.
“나를 찾아온 이유는 사실을 털어놓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현호에게 큰 약점이 잡혔기 때문인 것이냐?”
“……아버님, 잘못했습니다.”
짐작이 사실이 되자 엄상현 회장은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떻게!”
탕!
버럭 소리와 함께 엄상현 회장이 책상을 쳤다.
“내 며느리가 어떻게 집안 꼴을 우습게 만들 수 있는 거냐?”
“잘못했습니다, 아버님.”
“현호에게 들키지 않았으면, 지금보다 더한 짓도 했겠지?”
“…….”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말해도, 세상 사람들은 믿지 않아! 송우그룹 부회장이 지저분하게 논다고 조롱할 거란 말이다!”
“…….”
“현호만 놀림거리가 될 것 같아? 우리 집안 자식들도 알지 못하는 일반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거야.”
“…….”
“그룹 회장들 사이에서 나는 자식 하나 단속 못 한 못난 아비라고 놀림거리가 될 거다!”
“……!”
“현식이는 뇌물이 들통나서 망신을 주더니, 어떻게 너까지 우리 집안을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거냐?”
“자, 잘못했습니다, 아버님.”
엄상현 회장의 서슬 퍼런 기색에 채연희는 고개를 숙인 채 벌벌 떨었다.
“강인 애미, 내 말 잘 들어라.”
“예, 아버님.”
“강인이 데리고 성북동에서 나가거라.”
“예에?”
소스라치게 놀란 채연희가 고개를 벌떡 들었다.
“아, 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친정에 가든지, 현식이가 있는 별장에 가든지, 내 눈 앞에서 사라져. 내가 허락할 때까지 성북동으로 돌아올 생각 마라.”
“아버님! 강인이는 아버님 손자예요.”
“강인이는 네 아들이고, 내 손자는 강인이만 있지 않을 거다.”
“……!”
채연희는 엄상현 회장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에게는 아들, 딸이 더 있고, 후손이 생길 테니, 강인이가 그녀의 생각만큼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버님…….”
“당장 나가거라.”
의자를 휙 돌려 등을 보이는 엄상현 회장의 냉정한 태도에 채연희는 더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 * *
화가 풀리지 않은 엄상현 회장의 명령에 채연희는 결국 아들 강인이를 데리고 친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성북동의 가을이 그렇게 우울하게 시작되고 얼마쯤 지났을 때 온 세상을 패닉에 빠지게 할 소식이 전해졌다.
[뉴먼 브라더스 파산 신청]
[미국의 3위 투자사 매각]
[미국 금융시장 지각 변동]
이 소식이 전해지자 세계 경제는 요동치기 시작했다.
[시장의 파장 예측 불가능]
[월스트리트 패닉]
[아시아 증시 큰 폭으로 하락]
[유럽 증시 폭락]
[영국 금융감독청은 뉴먼 브라더스 관련 주식거래 일시 중지]
[미국발 금융위기 한국 시장 강타]
[한국 주식 시장 폭락, 사이드카 발동]
[뉴먼 브라더스 투자 기업 피해 불가피]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는 전 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들 중 한 명은 박원식 송우증권 이사였다.
“박원식 이사! 이거, 어떻게 할 거야?”
뉴먼 브라더스는 송우증권 박원식 이사가 직접 추진해서 투자한 기업 중 하나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송우증권 주가는 대폭락을 기록했다.
“어떻게 할 거냐고!”
“…….”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박원식은 대꾸할 어떤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왜 아니겠는가.
주가 폭락으로 인해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 자금뿐만 아니라 투자금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호가 얘기했을 때 빠져나왔어야 했는데…….’
뉴먼 브라더스 매각이 진행될 때 현호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미국 시장이 불안한 것 같으니 뉴먼 브라더스에서 손을 떼는 게 어떻겠냐고.
하지만 박원식은 그때까지도 믿고 있었다.
미국 정부가 글로벌 투자사 뉴먼 브라더스를 지켜줄 거라고. 조금 불안하다고 쉽게 포기하면 돈 벌 기회를 잃는 거라고.
박원식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후회가 되었지만 소용없었다.
지옥 같은 하루를 마친 박원식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친 상태로 집으로 돌아왔다.
음식을 찾아 먹을 기력도 없어 소파에 풀썩 주저앉았을 때였다.
디리리리.
휴대폰이 울려서 보니, 송우증권 사장이었다.
“박원식입니다.”
[박 이사에게 알려 줄 게 있어서 전화했어요.]
“뭡니까?”
[며칠 내에 임시 이사회가 열릴 거예요. 미국발 금융위기를 대처하기 위해 이사회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할 거예요.]
“잘됐네요.”
[여러 안건 중에 임시주총 소집도 있어요.]
“임시주총까지 열어야 합니까?”
[박 이사 해임안이 상정될 겁니다.]
“뭐라고요?”
소스라치게 놀란 박원식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대체 누가 그 안건을…….”
따지듯 얘기하던 박원식의 말이 멈췄다.
누구의 결정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엄상현 회장님 지시를 받은 겁니까?”
자신이 송우증권 이사가 된 걸 누구보다 못마땅했던 사람이 엄상현 회장이었다.
자신을 쫓아낼 기회가 오자 놓치지 않고 실행하려는 것이다.
[박 이사, 지금 내게 그걸 따질 처지라고 생각해요?]
“예……?”
[박 이사 때문에 회사가 입은 손해가 얼만지 알아요?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
책임이라는 말에 박원식은 할 말이 없었다.
[휴가로 처리할 테니 내일부터 회사에 나올 필요 없어요. 임시주총 결과는 알려 주죠.]
전화가 끊어졌다.
박원식은 한동안 멍하니 벽을 바라보다가 이내 현실을 깨달았다.
‘사라졌어.’
자신이 송우증권에 입사할 때부터 품었던 꿈.
송우증권 사장이 되고, 더 나아가 송우그룹의 핵심 경영진이 되겠다는 꿈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 * *
미국발 금융위기는 주가 폭락으로만 그치지 않고 한국 경제에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전 세계 금융시장 혼란 불가피]
[국내 금융기관 자금확보 비상]
[금융기관, 자금확보 위해서 대출 묶는다]
[금융기관이 대출 줄이자 서민 경제 먹구름]
[중소기업, 대출 어려움에 유동성 위기 직면]
“부회장님, 부르셨습니까?”
현호의 호출을 받은 최명준 실장이 부회장실로 들어왔다.
“최 실장, 외숙부와 관련한 언론사 보도 준비를 부탁했었는데, 어떻게 됐습니까?”
미국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현호는 이미 이 사태를 예견했던 외숙부 최해식의 주장을 재조명하는 언론 보도 준비를 지시했었다.
“준비됐습니다, 부회장님.”
그의 대답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이제 실행하세요.”
“알겠습니다.”
다음 날부터 언론사들이 최해식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주장을 다시 보도하며 정부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최해식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주장이 맞았다]
-최해식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주장, “미국의 금융위기로 인해 전 세계가 위기에 휩싸일 것이고, 대한민국은 이에 대비해야.”
[기재부의 오판, 금융전문가 최해식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주장을 무시했다]
[최해식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주장을 무시했던 정부, 대책은 있나?]
[최해식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의 주장을 ‘가치 없다.’ 평가했던 기재부 장관, 이대로 경제 수장 괜찮나?]
[최해식 전 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내 얘기에 귀 기울였다면 충분히 대비할 수 있었다.”]
언론이 비판하니 정치권과 시민단체도 가세했다.
[야당 대표, 안일했던 기재부 질타 ‘최해식 전 이사장의 주장에 왜 귀 기울이지 않았나.’]
[시민단체, 최해식 전 이사장보다 못한 기재부 장관의 능력을 믿을 수 없다]
[야당, 기재부 장관은 대국민 사과 후 자진 사퇴해야 한다]
연일 계속되는 비판과 떨어지는 국정 지지율로 인해 결국 기재부 장관은 사퇴를 결정했다.
[기재부 장관 사퇴, 대통령 사표 수리]
“외숙부, 먼저 오셨네요?”
이렇게 일단락이 지어지고 난 며칠 후, 현호는 외숙부 최해식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약속된 레스토랑 룸으로 들어오니 외숙부 최해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회장이라서 더 바쁠 텐데, 시간 내줘서 고맙구나.”
“외숙부가 만나자면 언제든 시간을 내야죠.”
현호는 최해식의 들뜬 기색을 보며 무슨 이유로 자신을 불렀는지 알 것 같았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위기로 세계가 난리인데, 송우그룹은 어떠냐?”
“다른 대기업들이 겪는 만큼의 어려움이 있지만,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거예요.”
“다행이구나.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투성이야. 내가 미국의 금융위기를 예상했지만, 정말 이렇게 터질 줄이야…….”
사실 미국의 금융위기를 최해식에게 제일 먼저 얘기한 게 현호였다. 하지만 현호는 마치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최해식의 능력을 추켜세웠다.
“사람들이 모두 외숙부의 능력에 감탄하고 있어요. 한 번쯤 외숙부의 주장에 귀 기울였다면 피해를 많이 줄였을 거예요.”
“불행한 일이지. 그런데 현호야…….”
최해식이 말을 멈추고 뜸을 들이자 현호가 얘기했다.
“외숙부, 제게 하실 얘기가 있는 거죠? 말씀하세요.”
“네가 그런 말을 했잖아. 내가 누구라도 함께 하고 싶고, 가장 필요한 존재가 될 거라고.”
현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 말 했던 걸 기억해요.”
“네가 말한 대로 될 것 같아.”
“무슨 말씀이세요?”
“기재부 장관을 제안받았어.”
“와, 외숙부, 축하해요. 제안을 수락하셨죠?”
그의 물음에 최해식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락했어. 청문회가 남아있으니 확실히 결정된 건 아니지만.”
“청문회 통과할 거예요.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 외숙부의 능력을 알게 됐으니까요.”
“하하하.”
기분이 좋은지 최해식이 호탕하게 웃었다.
“이게 다 현호 네 덕분이야.”
“…….”
“네가 적당한 때에 중요한 정보를 주고, 연구할 수 있게끔 해 준 덕분이야.”
“외숙부의 능력을 아니까 조금 도와 드린 것뿐이에요.”
“현호야.”
최해식이 다정하게 불렀다.
“네, 외숙부.”
“앞으로도 네가 나를 많이 도와줘야 해.”
현호는 그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안다.
그의 재경부 국장 시절부터 중요한 고비마다 자신이 도왔다.
중요한 정보를 주기도 했으며, 직접 계획을 세워 곤란한 상황의 최해식을 구해 주기도 했다.
그리고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이던 그를 사임하게 한 후 정보와 자금을 제공해 미국 금융경제의 위험성을 연구하게 도와주었다.
그 결과, 그는 기재부 장관이 될 것이다.
‘이번 기회로 외숙부는 내 능력을 더욱 실감했지.’
외숙부에게 자신은 의지하고 싶고, 잃고 싶지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현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요. 외숙부의 성공을 위해 힘껏 도울게요.”
오늘의 만남은 현호에게도 의미 있다.
‘내가 준비해 왔던 때가 왔어.’
자신이 송우전자의 부회장이 되었지만, 아버지 엄상현 회장이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 없다.
아버지는 긴 시간 동안 그 자신의 질서 안에서 복종하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난 그렇게 할 수 없어.’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질서가 흐트러지면…….
‘후계자를 바꾸려 하실 거야.’
그래서 아버지와의 충돌은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부딪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