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6
26화 더 높은 곳으로
송우미술관 관장실.
“관장님, 문화재단에서 공문이 왔는데…….”
공문서를 가지고 들어온 직원의 표정이 난처해 보였다.
“무슨 공문?”
윤소은 관장은 의아했다.
재단에서 추가로 공문이 내려올 만한 일로 짐작되는 바가 전혀 없었다.
“미술인 프로모션 지원프로그램의 지원자 선정을 중단하라는 공문입니다.”
“뭐?”
윤소은은 화들짝 놀랐다.
“중단하라는 이유가 뭔데?”
“이유는 적혀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재단에 연락해 보았는데, 사무장님께서 이사장님이 다시 승인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뭐, 이사장?”
윤소은은 어이가 없었다.
“또라이 같은 놈.”
엄상현 회장의 막내가 출근을 시작했다더니.
제멋대로인 망나니라 회장님도 골머리를 앓으신다는 얘기를 엄현식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있었다.
“이사장을 만나야겠어.”
미술인 프로모션 지원프로그램은 이미 승인이 나서 진행 중이다. 그런데 그가 승인한 게 아니라고 태클을 걸다니.
이런 프로그램은 저절로 굴러가는 게 아니다.
여러 갤러리와 컬렉터들의 지원과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이미 작업을 다 해놨는데, 이유조차 없이 갑자기 중단시키다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막무가내로 나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직원 또한 엄현호에 대한 소문을 들은 게 있는지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윤소은은 그저 코웃음을 흘렸다.
“말로 안 되면 힘으로 해결해야지.”
물론 자신이 송우그룹의 막내아들을 힘으로 이길 수 있을 리는 없었다.
그러나 송우그룹의 장남이 자신의 편인 이상, 아무런 걱정도 되지 않았다.
“다녀올게.”
윤소은은 겉옷과 핸드백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 * *
“이사장님, 지시하신 거 준비됐습니다.”
최명준 비서가 봉투를 현호에게 건넸다.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후 지시해 두었던 일에 대한 결과물이었다.
현호는 봉투에서 등기부 등본을 꺼내 보며 대답했다.
“수고했어요.”
자신의 판교 땅 일부가 주인이 바뀌었다. 이 땅을 가지게 된 새 주인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른다.
“준비됐으니 만나야겠네요.”
똑똑.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어두운 표정의 민동재 사무장이 들어왔다.
“무슨 일입니까?”
“미술관장님이 이사장님을 뵙고자 찾아오셨습니다.”
민동재는 자신이 사무장이 된 이후로 지금껏 미술관이 기획한 프로그램을 승인하지 않거나 중단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사장으로부터 갑작스레 중단을 통보하라고 지시를 받아 당황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예상한 대로 윤소은 관장이 재단을 찾아온 것이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네.”
민동재가 나가고 윤소은이 들어왔다.
“처음 뵙습니다, 이사장님.”
그녀가 인사말을 정중히 했지만, 현호를 보는 눈빛은 냉담했다.
“무슨 일로 오셨죠?”
“음…… 이사장님께 여쭐 게 있어서요.”
소파에 앉으라는 말도 하지 않고 용건부터 묻자, 윤소은이 불쾌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얘기하세요.”
“비서분이 자리를 비켜 주면 좋겠는데요.”
“제 비서가 자리를 비워야 할 만큼 관장님과 길게 얘기할 게 있을까요?”
“네……?”
윤소은은 어이없다는 기색을 내비쳤지만, 현호는 아무렇지 않은 듯 다음 말을 이었다.
“저를 찾아온 용건을 얘기하시죠.”
“……그러죠. 미술인 프로모션 지원프로그램을 중단하라고 하셨습니까?”
“예. 지금 사정상 중단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정상 중단이라뇨? 미술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아직 연락을 못 받으셨습니까?”
“프로그램을 중단하라는 연락을 받고 제가 직접 왔잖아요.”
“운영위원장님으로부터 아직 연락을 못 받으셨군요.”
“예……?”
촘촘히 따질 기색이었던 윤소은이 당황했다.
“운영위원장님의 연락이라뇨?”
“관장님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릴 겁니다.”
“뭐, 뭐라고요?”
놀란 나머지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가 왜요? 제가 왜 징계 대상이라는 거죠?”
“그건 운영위원장님께 들으세요.”
현호는 징계 사유를 얘기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녀가 직접 큰형을 찾아가서 듣게 해야 했다.
“저는 약속이 있어서 나가 봐야 하니, 다른 용건이 없으시면 제 사무실에서 나가 주시죠.”
눈을 부릅뜬 그녀가 신경질적으로 현호를 쏘아보다가 휭하니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
* * *
주차장으로 향하던 윤소은은 엄현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기가 꺼져 있어 통화할 수가 없었다.
윤소은은 송우중공업 사장 비서실로 다시 전화했다.
[비서실입니다.]
“미술관장 윤소은이에요. 사장님에게 통화 연결해 줘요.”
[죄송합니다. 사장님께서는 지금 회의 중이시라 연결해 드릴 수 없습니다. 용건을 말씀해 주시면 전달…….]
[사장님께서 부르셔서 왔습니다.]
비서의 얘기 중에 다른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의도적으로 자신을 피한다는 걸 직감한 윤소은은 화가 치솟았다.
[윤소은 관장님…….]
뚝.
윤소은은 통화를 끊어 버렸다.
며칠 전에도 자신에게 사랑을 속삭였던 그였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을 피하다니.
이사장이 자신에 대한 징계위원회가 열린다고 했다. 그것 때문일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왜 징계 대상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구나 징계위원장이 될 엄현식은 어떤 문제가 있는지 자신에게 말 한마디 해 주지 않았다.
혹시 엄상현 회장이 엄현식과 자신의 관계를 알게 된 건가? 그래서 엄현식이 자신을 버리려고 수작을 부리는 걸까?
어쨌든 그를 만나 확인해야 한다.
전화를 안 받는 식으로 자신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승용차에 오른 그녀는 곧장 송우중공업으로 향했다.
* * *
“어머! 관장님, 이러시면 안 돼요.”
송우중공업 사장실 비서의 외침이 들려온 직후.
덜컥.
사장실의 문이 열렸다.
윤소은은 비서의 만류를 뿌리치고 들어왔다.
“사장님, 죄송합니다. 관장님께서 막무가내로…….”
“언제든 오라고 내게 출입증을 준 사람이 누구였더라.”
엄현식이 그녀를 쏘아봤다.
억지로 그녀를 몰아내면 자신과의 사적인 관계를 흘리겠다는 의도가 분명했다.
이에 엄현식은 비서에게 얘기했다.
“나가 봐.”
비서가 사장실을 나가자, 엄현식은 무겁게 가라앉은 소리로 얘기를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당신 동생이 얘기하길 당신이 날 징계하겠다고 했다던데?”
한숨을 길게 내쉰 엄현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돈이 필요했어?”
“뭐요?”
“이경진 화가, 누구야?”
쿵!
윤소은 순간적으로 마치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녀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는 변명을 이어 나갔다.
“혀, 현석 씨. 내가 다 설명할게.”
“이게 지금 나한테 설명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이미 기자도 알고 있어. 만약 이게 알려진다면…… 내가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아버지가 절대 가만히 안 계실 거라고!”
“그, 그건…… 그래, 기자는 매수하면 되잖아?”
“야, 윤소은. 정신 차려. 사람 입이 한 번 막는다고 해결될 일 같아? 돈이 필요했으면 차라리 나한테 이야기했어야지!”
“뭐…… 돈?”
불륜 관계이긴 했으나, 윤소은은 엄현식에게 진심을 주었다. 그는 유일하게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주던 남자였으니까.
자신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좋아해 주고, 화가를 포기한 채 큐레이터로 살아가고 있는 삶을 안타까워해 주던 유일한 사람.
그랬던 사람의 이야기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당신, 내가 그림 포기했던 거 안타까워했잖아.”
“그래, 그건 안타까워. 그런데 널 미술관장으로 추천했던 건 이런 식으로 내 뒤통수를 치라는 건 아니었어.”
“화가가 전시회에 그림을 전시하려고 했던 게 그렇게 못할 짓을 한 거야?”
“아무 화가나 송우미술관에서 전시할 수 있는 건 아니지.”
“……뭐?”
윤소은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치솟아 오르는 화를 억누르기 위해 아랫입술을 깨물어야만 했다.
자신을 믿고 지지해 주었던 말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세상 모든 게 무너져 내리는 듯한 심정이었다.
반면, 화가 나기는 엄현식도 마찬가지였다. 그로서는 도끼로 제 발등을 찍은 셈이었다.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윤소은을 송우미술관 관장으로 추천한 건 다름 아닌 그였다.
그런데 지금, 그 일로 인해서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당장 윤소은을 쳐내지 않으면, 만약 이 일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게 됐을 때 상황을 모면할 수 없을 터였다.
“전시회는 취소되고 징계위원회도 소집될 거야. 나와서 해명을 하든, 설명을 하든 맘대로 해. 하지만 해임되는 결과는 안 바뀔 거야.”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런데 한 가지는 알아 둬. 지금 시궁창에 빠진 이 느낌, 되돌려 줄 날 있을 거야.”
* * *
엄현식과 윤소은이 서로를 향해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두르던 그 시각, 현호는 레스토랑 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호야.”
잠시 후, 한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재정경제부에 소속되어 있는 현호의 외숙부, 최해식이었다.
“외숙부,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병원에 있을 때보다 훨씬 좋아졌구나.”
그가 현호 맞은편에 앉으며 대꾸했다.
“퇴원했다는 얘기는 누나에게서 들었어. 한번 만나야지 했는데, 바쁘다 보니 이제야 보게 됐네.”
“걱정 끼쳐서 죄송했어요.”
“아니야. 참! 미국에 출장 갔었다며?”
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물었다.
“네. 미국에 일이 좀 있었어요.”
“민성이한테서 얘기 들었다. 뭐하러 공부하는 애한테 새 차를 사 줘?”
최해식에게는 미국에서 대학을 재학 중인 아들이 있는데, 현호는 출장을 갔을 때 그 아들을 만나 차를 선물해 주고 왔다.
최해식은 핀잔을 주듯 말했지만, 그의 표정에선 좋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니에요. 더 좋은 걸로 사 주려 했는데, 민성이가 한사코 거절하더라고요.”
현호가 최해식이 아닌, 그의 아들에게 선물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전생의 현호는 외숙부 가족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외숙부와의 관계도 소홀했다.
이제 와서 호의를 표한다고 한들, 최해식의 마음은 쉽사리 열리지 않을 터였다.
그래서 그의 아들을 먼저 공략했다. 자기 아들에게 잘해 주는 사람을 싫어할 아버지는 없으니까.
그 덕에 오늘 약속도 쉽게 잡을 수 있었다. 전생의 관계였다면 현호보다는 일이 먼저였을 그였다.
“그래도 큰 선물을 받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되니 너도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봐.”
“저녁 사 주세요.”
“그거야 당연하지. 다른 거 뭐 없어?”
“제 선물을 받아 주세요.”
“응?”
최해식의 의아한 표정을 보면서 현호는 그에게 서류봉투를 건넸다.
“이게 뭐냐?”
“외숙부 곧 생신이시잖아요. 제 선물이에요.”
“아니, 무슨 선물이길래?”
“땅이에요.”
“뭐?”
화들짝 놀라는 최해식이었다. 하지만 곧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현호야, 마음은 고마운데 이건 받을 수가…….”
현호가 그의 말을 끊고 끼어들었다.
“알아요, 외숙부. 재산 공개 때문에 그러시는 거.”
재정경제부 정책조정국장인 최해식이다.
그의 재산에 갑자기 땅이 생기면 어디선가 받은 뇌물로 여겨질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고위 공직자들에게 뇌물을 주며 이익을 챙기는 일들이 종종 발생해 사회 문제가 되는 게 사실이니까.
“그래서 민성이 명의로 했어요. 민성이 재산은 공개할 필요 없잖아요.”
그의 표정이 의아하게 변했지만, 곧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런 선물을 주는 이유가 뭐냐?”
“작년에 국회에서 재경부 국정 감사를 하는 걸 TV로 봤어요. 잘 알지도 못하는 국회의원들이 감 놔라, 배 놔라 하더라고요.”
“……그랬지.”
“그때 생각했어요. 외숙부가 그런 국회의원들에게 고개를 숙일 사람은 아니라고, 외숙부를 돕고 싶다고요.”
“……”
“외숙부, 제가 드린 땅을 이용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세요.”
놀란 최해식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놀람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었다.
욕망.
그의 눈빛에서 더 높은 출세의 욕망이 꿈틀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