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27
27화 사임하게 할 타이밍
“현호야, 갑작스러워 당황스럽구나.”
말은 이렇게 했지만, 최해식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현호는 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권력을 갖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가 선배들처럼 은퇴해서 기업이나 로펌의 고문으로 삶을 마치길 원하지 않는다는 걸.
“외숙부가 더 잘 아시잖아요.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은 갑자기 닥친다는 거.”
“……!”
“제가 지나친 생각을 한 건가요?”
“아니, 그런 것은 아니다만…….”
“어쨌든 그 땅은 제가 외숙부께 드리는 생신 선물이에요. 어떻게 쓰실지는 외숙부가 정하시면 돼요.”
“이거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을 받았구나.”
결국 최해식은 현호가 건넨 봉투를 받아 들었다.
최해식으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현호가 꺼낸 땅문서는 그가 지금껏 머릿속으로만 생각해 왔던 야망을 실현시켜 줄 수 있게 만들어 줄 테니까.
다만, 그 과정 속에서 현호의 계획도 돕게 되겠지만.
“이제 배고프네요. 약속대로 저녁은 외숙부가 사주시는 거죠?”
“당연하지. 언제든 시간 될 때 연락해. 그룹 회장님들도 모르는 맛집을 알고 있어.”
“정말요? 꼭 데려가 주세요.”
“그러마.”
맛집으로 선물에 대해 마무리를 했지만, 현호도 알고 그도 안다.
그가 정말 맛집의 음식을 소개하고 싶은 것도, 현호가 그 집의 음식을 먹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다만 두 사람은 서로를 연결할 매체로 맛집을 선택했을 뿐이었다.
* * *
엄현주는 미간을 좁힌 채 엄현태가 건넨 초대장을 바라보았다.
바로 베이커리 전문점, 라이스타의 오픈식 초대장이었다.
자신이 3년간 준비했던 사업을 빼앗은 당사자가 오픈식의 초대장을 건네니, 엄현주로서는 황당하여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밥상 다 차려서 줬는데 숟가락도 얹어 달라는 거야?”
“누구보다 라이스타의 오픈을 기다리던 게 너잖아. 그래서 초대하는 건데, 너무 예민한 거 아냐?”
“남 생각할 시간에 자기 일부터 하는 게 어때? 라이스타에서 판매하는 베이커리의 레시피는 숙지하고 있어?”
“뭐?”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엄현태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엿보였다.
“뭘 파는지는 알고 팔아야 하는 거 아니야? 거저먹은 거라고 대충 하는 거야?”
엄현주에게 한 방 먹은 엄현태가 차가워진 눈빛으로 대꾸했다.
“네 방법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지 마. 나한테는 무엇을 파느냐보다 어떻게 파느냐가 중요하니까. 맛집이라서 잘 팔리는 게 아니라, 잘 팔려서 맛집인 거라고.”
엄현태는 냉기가 도는 미소를 보인 후 다시 말했다.
“참석 못한다니 아쉽네. 어쨌든 라이스타는 걱정하지 마. 내가 잘 운영할 테니까.”
엄현태는 그녀를 등지고 돌아서 현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 모습을 엄현주가 째려보고 있을 때였다.
“누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자, 현호가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일찍 출근하네? 재단에 할 일이 많아?”
“글로리 엔터 쪽에 일이 있어서. 새로운 피디를 스카우트해야 하거든.”
“스카우트를 네가 직접 해?”
“직접 내 눈으로 하나하나 확인하고 싶어서.”
“제법이네. ……아, 현호야.”
엄현주는 주위를 둘러본 뒤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오늘 정무수석과 다시 만날 거야.”
“별장으로 오기로 한 거야?”
“그래, 오늘 별장에 오시기로 했어.”
엄현주는 구진수 정무수석과의 첫 만남에서 그에게 송우병원 VIP 카드를 건네며, VIP 전용 별장을 소개해 주었다.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사안이었기에 거절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결국 구진수는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순조롭게 진행되네.”
“네 덕분이야. 하지만 아직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으니까 끝까지 마음 놓을 수는 없지.”
구진수 정무수석을 통해 대통령과의 연결 고리를 만드는 덴 성공했으나, 아직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었다.
바로 대통령 주치의의 자리가 공석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걱정하지 마, 누나.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잖아.”
“진짜 철들었구나. 이런 말로 위로할 줄도 알고.”
현호는 대답 대신 싱긋 웃었다.
당연하게도 단순히 위로를 하기 위해 건넨 말은 아니었다. ‘어떤 방식’으로든 대통령 주치의가 사임하도록 만들 생각이었으니까.
“너는 오픈식에 갈 거니?”
“가 봐야지. 누나가 오랫동안 준비한 노력의 성과를 보고 싶으니까.”
“뭐, 마지막엔 내 것이 아니게 됐지만.”
“곧 복귀할 거잖아?”
“그래야지. 꼭 복귀할 거야. 너도 힘내고.”
“응.”
그렇게 대화를 끝마친 엄현주는 비장한 모습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현호는 최명준 비서에게 전화했다.
“최 비서, 오늘 정무수석이 움직일 겁니다. 내가 지난번에 얘기한 대로 바로 조치해줘요.”
[네, 지시하신 대로 조치하겠습니다.]
* * *
검은색 승용차가 구불구불한 길을 달리고 있다.
주변에 민가는 보이지 않았다.
잎이 풍성한 나무들이 푸른 하늘과 어울려 상쾌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길을 달리던 검은색 승용차가 별장 출입문을 통과해 정문 앞에 섰다. 그 정문 앞에는 엄현주와 남정수 병원장이 대기하고 있었다.
승용차의 문이 열리자 구진수가 차에서 내렸다.
“어서 오세요, 수석님.”
엄현주와 남정수가 일제히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제가 괜한 폐를 끼치는 게 아닙니까?”
“폐라니요? 수석님을 모실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엄현주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안으로 제가 모시겠습니다.”
엄현주가 앞서 걷고 그 뒤를 구진수와 남정수가 따랐다.
그들이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 승용차는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별장 현관.
그 모습이 서서히 줌아웃이 되면서 별장 건물 앞에 나무와 꽃이 있는 정원과 분수대가 화면에 나타났다.
누군가 별장에서의 움직임을 촬영하고 있었다.
* * *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사장실.
“반갑습니다, 윤준호 피디님.”
사장실로 들어오는 윤준호 피디. 마른 체형에 은테 안경을 끼고 있는 모습이 점잖아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윤준호라고 합니다.”
“엄현호입니다.”
현호가 먼저 손을 내밀자 그가 손을 맞잡았다.
“저쪽으로 앉으시죠.”
현호가 소파를 가리키자 윤준호와 그를 데려온 서호창 제작팀장이 함께 자리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현호가 먼저 이야기를 시작했다.
“계약을 진행하기 전에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계약 내용에 대해 사장님께 직접 확인을 하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세요.”
“서호창 팀장님께서는 작품 제작에 대해 일절 간섭하지 않고, 전권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사장님께서도 인지하고 계신 사항이 맞습니까?”
“네. 전부 제가 지시한 겁니다. 제작팀 내에서 결정된 사안에 대해 저는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
윤준호는 여전히 의심을 지울 수 없는지 의구심이 깃든 얼굴로 질문을 이었다.
“사실 믿기 힘들긴 합니다. 아무래도 투자사와 방송사의 입김을 받지 않을 수 없을 테니까요.”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드라마 제작은 제작사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으니까.
제작비를 투자하는 투자사, 제작된 작품을 방영하는 방송사까지.
모두가 각자의 이득을 추구하는 만큼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러나 현호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히 대답했다.
“다른 투자사는 없습니다. 모든 작품의 제작은 오로지 글로리의 자본만으로 만들어질 겁니다.”
송우그룹의 지원, 그리고 할아버지가 남긴 유산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호는 자신의 성과를 다른 사람과 나눌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게다가 저는 피디님께 제작 전권을 드린다고 했습니다. 방송국과 이슈가 발생한다면…… 그건 저의 간섭 때문은 아닐 테죠.”
“……!”
“더 생각할 시간을 드릴까요?”
“음…… 아닙니다. 계약하겠습니다.”
“함께 잘해봅시다.”
현호가 손을 내밀자, 다시 한번 윤준호가 그 손을 맞잡았다.
그렇게 이야기가 끝나고, 윤준호가 계약서 작성을 위해 서호창을 뒤따라 나간 직후였다.
디링.
최명준 비서에게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정무수석의 별장 출입 영상을 확보했습니다.]
현호는 싱긋 미소지었다.
이 영상은 차후에 쓸 일이 있을 것이다.
이제 현호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대통령 주치의가 사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줄 차례였다.
* * *
부우웅.
검은색 헬멧과 번개퀵이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탄 오토바이가 도로를 달린다.
자동차들이 거북이걸음으로 움직이는 정체 구간도 요리조리 틈새를 비집고 빠져나가 도착한 곳.
MCB 방송국.
남자는 방송국 로비로 들어가 안내데스크 위에 봉투를 올려놓으며 직원에게 얘기했다.
“황신철 기자요.”
잠시 후, 각진 얼굴과 두툼한 입술이 고집스러워 보이는 30대 중반 남성이 퀵배달로 도착한 봉투를 손에 쥔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MCB 보도국 기자, 황신철이었다.
“뭐지?”
봉투에는 누가 보냈는지 쓰여 있지 않았다.
주로 이런 봉투 내용물은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제보와 관련한 자료가 있든지, 기자에 대한 악담이나 경고가 있든지.
황신철은 봉투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CD 케이스였다. 케이스에도 역시 어떠한 글도 쓰여 있지 않았다.
황신철 기자는 CD를 꺼내 자신의 컴퓨터에 넣었다.
그리고 CD에 담긴 비디오 파일을 확인한 순간, 그의 두 눈이 커졌다.
“대통령 주치의 아들 병역 비리?”
황신철의 눈빛에 이채가 감돌았다.
그는 서둘러 비디오 파일을 클릭했다.
이내 오피스텔로 보이는 방이 화면에 떠올랐다. 카메라 앵글로 보건대 맞은편 건물에서 촬영한 듯 보였다.
“…….”
황신철은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집중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짧은 한 청년이 소파에 누워 한가로이 TV를 시청하다가 현관으로 향했다. 그가 문을 열자, 그 또래의 젊은 남녀들이 우르르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섰다.
뒤이어 술과 음식 또한 잔뜩 들어왔다.
오피스텔 중앙에 술과 음식이 세팅되자, 젊은 남녀들은 손에 술 한 병씩을 든 채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황신철의 시선은 수많은 남녀 중에서도 처음 등장했던 머리가 짧은 청년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 * *
성북동.
집안의 분위기는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여전히 송우미디어와 관련된 문제가 이어지고 있는 탓이었다.
그에 모두가 한마디 말도 없이 거실에서 디저트를 먹으며 조용히 뉴스를 시청하던 그때.
[다음은 저희 MCB가 취재한 대통령 주치의의 아들, 채 모 군의 병역 비리를 단독 보도해 드리겠습니다.]
“뭐?”
소스라치게 놀란 엄현주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TV 화면 속에서는 한 오피스텔 앞에서 리포트를 하는 황신철 기자의 모습이 비추어졌다.
[산업기능요원으로 군 복무 중인 채 모 군, 그는 근무 시간에 이 오피스텔에서 젊은 남녀와 파티 중이었습니다.]
뒤이어 현호가 촬영했고, 황신철에게 넘긴 영상이 자료 화면으로 떠올랐다.
채민수의 모습을 알아본 엄현주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언성을 높였다.
“분명 대통령 주치의의 아들이야! 이게 도대체……!”
현호는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작은형 엄현태에게 눈길을 돌렸다.
엄현주와는 대조적으로 엄현태는 얼굴이 굳어 있었다.
그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현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