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시작된 승계 전쟁
“대표이사로 엄현호 이사를 선임합니다.”
이사회 의장이 발표했다.
임시 주주 총회가 끝나고 바로 이어진 임시 이사회에서도 대표이사 결정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짝짝짝.
이사들이 박수를 보내자 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송우미디어의 발전을 위해 앞으로도 이사님들께서 많이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 * *
이사회장에서 나온 현호는 곧장 송우미디어 사장실로 향했다.
“사장님, 인테리어를 바꾸시겠습니까?”
“그러는 게 좋겠네요.”
최명준 비서의 물음에 현호가 답한 그때.
쿵!
사장실 문이 세차게 열리며 냉랭한 눈빛의 엄수경이 들어왔다.
“남의 것 빼앗아 자기 주머니에 넣는 핏줄이 어디 갈까.”
그녀의 첫말이 악담으로 시작하자 최명준이 나서려 했다.
“엄수경 사장님.”
“최 비서, 잠깐 나가 있어요.”
그가 흠칫 놀라 쳐다봤지만, 현호는 담담히 얘기했다.
“내가 듣는 악담을 최 비서까지 들을 필요 없어요. 괜찮으니 잠시 나가 있어요.”
“아, 예. 그럼…….”
최명준은 이제 현호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홀로 남겠다는 것은 정말 악담을 혼자 듣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는 이미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고, 준비해 둔 게 있는 것이다.
최명준이 사장실을 나가자, 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싸움에서 진 사람이 핏줄 탓하던데, 누나도 다르지 않네.”
“나쁜 놈.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지? 아직 싸움은 끝난 게 아니야.”
“나와 싸움을 하겠다는 거야?”
“반드시 갚아 줄 거야.”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는 말, 참 명언이야. 내가 살려 준 것도 모르고.”
“뭐, 네가 살려 줘?”
엄수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현호는 개의치 않고 다음 말을 이었다.
“누나가 송우미디어의 대표가 되었다면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거라 생각했던 건 아니지? 누나도 다 알고 있었잖아. 어차피 그런다고 해도 아버지가 멈출 리 없다는 거.”
엄수경은 그녀가 소유하고 있는 송우리조트까지 부채를 떠안게 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하여, 그 자신의 아버지를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과연 그걸로 문제가 해결되었을까?
아니, 결코 그럴 리 없었다.
아버지 엄상현은 송우미디어를 집어삼킨 뒤에, 반드시 송우리조트까지 먹어 치우려 했을 것이다.
그리고 똑똑한 엄수경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그만 솔직해져. 누나는 결국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송우미디어를 가지려 했던 것뿐이야.”
“…….”
엄수경은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입술만 깨물었다.
그 모습을 응시하던 현호가 피식 웃음을 흘리곤 입을 열었다.
“날 너무 원망하진 마. 처음 약속했던 대로 송우리조트는 살려 줄 테니까.”
“뭐?”
엄수경은 순간 눈을 크게 떴다가, 이내 의구심이 깃든 시선으로 현호를 바라봤다.
“네가 무슨 수로? 설마, 큰아버지가 네 부탁은 들어주실 거라 생각하는 거야?”
“리조트에 사람 한 명 채용해야겠어.”
“뭐?”
엄수경이 황당하단 눈으로 현호를 쳐다봤다.
왜 아니겠는가.
자금 압박을 받고 있어 일하고 있는 직원도 해고해야 할 판인데 채용하라고 했으니.
하지만 현호는 싱긋 미소 지으며 다음 말을 이었다.
“상무 정도면 좋겠는데.”
“너 지금 무슨…….”
현호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
“이 사람, 채용하면 도움 될 거야.”
현호가 지갑에서 여상길의 사진을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미국에서 그의 가족을 만났을 때 받아 온 사진이었다.
“이 사람이 누군데?”
“이름은 여상길. 며칠 후 안양교도소에서 출소할 테니, 다른 사람이 데려가기 전에 먼저 데려와. 그리고 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 그 사람을 데려가.”
“뭐? 너, 지금 이 상황에 장난해?”
장난으로 치부하는 것도 당연했다.
전과자를 상무로 스카우트하라니,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만한 일이 아니었다.
“이 사람이 큰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다는 거야?”
믿기 힘들었다.
이익을 위해서라면 같은 피를 나눈 형제조차도 가차 없이 짓밟는 엄상현이다. 그것은 설령 친자식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생판 남에, 한낱 전과자가 도대체 어떻게 엄상현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납득되질 않았다.
“난 누나에게 리조트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줬어. 믿든 말든 이제 선택은 누나가 하는 거야.”
“…….”
엄수경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렸다.
이미 한 차례 배신을 당했다. 그런데 과연 다시 믿어도 되는 것일지 고민스러웠다.
그러나 현호는 알았다.
그녀가 반드시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일 거라는 것을.
어차피 그녀에게 살아남기 위한 다른 선택지는 없었으니까.
* * *
“뭐? 현호가 이사가 됐다고?”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소스라치게 놀란 엄상현이 되묻자, 노장석 비서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렇습니다, 회장님.”
“어떻게?”
“송우미디어를 부도에서 살린 게 셋째 도련님이었다고 합니다.”
“뭐, 현호가 송우미디어를 살려…… 아, 잠깐.”
엄상현은 놀란 가슴을 빠르게 진정시키고 M&H 인베스트먼트 나해철 대표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미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팔기로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우리 투자사 소유주가 직접 지시하신 일이라 제 임의대로 파기할 수 없습니다.
‘설마 M&H 인베스트먼트에서 송우미디어의 주식을 팔기로 했다는 사람이…….’
송우미디어는 M&H 인베스트먼트에 빌린 수천억을 갚지 못한다면, 결국 부도는 결정되어 있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그걸 현호가 해결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현호가 M&H 인베스트먼트로부터 송우미디어의 지분을 사들여 부채를 대신 떠맡았다는 것.
‘그런데 어떻게?’
현호가 도대체 무슨 돈으로 수천억에 달하는 지분을 사들였다는 말인가.
송우미디어의 지분이 성국그룹 안명기 회장에게 넘어간 것이 아니라는 건 다행인 일이지만, 이 또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회장님!”
엄상현이 고민에 잠겨있던 그때, 누군가와 통화를 마친 노장석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그를 불렀다.
“셋째 도련님께서…… 조금 전 송우미디어의 대표이사가 되셨답니다.
“……역시.”
이어진 노장석의 이야기는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 주었다.
엄상현은 차분한 소리로 지시했다.
“현호에게 연락해서 들어오라고 해.”
“예, 회장님.”
노장석이 밖으로 나가자 엄상현은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지금의 상황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손쉽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만약 그랬다면 지금까지 자신이 송우미디어를 손에 넣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오래전부터 계획된 일임이 분명했다.
‘도대체 언제부터…….’
두 시간이 흐른 후, 엄상현 회장의 서재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현호가 들어왔다.
서재 의자 깊숙이 앉아있는 엄상현의 표정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아버지, 부르셨어요?”
“왜 불렀는지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계획한 거냐?”
“작은아버지가 언론에 송우그룹 비자금을 흘렸을 때부터입니다.”
현호는 엄상현을 납득시키기 위하여 미리 준비했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비자금 문제는 잘 무마했지만, 이걸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작은아버지가 다시 송우그룹에 피해를 입히기 전에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고, 그게 이거였습니다.”
“자금은 어디서 난 거냐?”
“제 명의의 땅을 이용했습니다.”
“뭐?”
내내 차분했던 엄상현 회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땅이라고?”
“네, 판교에 있는 땅입니다.”
심기가 불편해진 엄상현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땅을 어떻게 알았어?”
“황원기 전 사무장이 제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엄상현은 현호가 황원기에게서 차명 재산 자료를 찾아왔던 것을 기억했다.
하지만 자료가 든 상자에 판교 땅에 관한 것은 없었다.
“너는 그때 상자 안 자료를 보지 않았다고 했다. 거짓말이었어?”
“보지 않았습니다. 판교 땅은 직접 들은 겁니다.”
“알면서 왜 말하지 않았지?”
“아버지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일은 제가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걸 이용하여 송우미디어를 송우그룹으로 다시 가져올 수 있게 됐고요.”
엄상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현호의 성과가 더 가치 있다는 건 누군가에게 물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비록 당장 수천억에 달하는 개인 자산을 송우미디어에 투자한 셈이 되었지만, 그건 송우미디어가 당장 해결해야 할 부채만 해결된다면 언제든지 되찾을 수 있는 돈이었다.
또한 이걸로 송우미디어를 언제든 송우그룹의 계열사로 만들 수 있게 되었으니, 그때 상승할 송우그룹의 가치를 생각하면 그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쯤 되자 엄상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 능력은 인정하마.”
엄상현은 담담히 얘기했지만 사실 많이 놀랐다.
아니, 어리둥절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것이다. 자식들 중 가장 사업과는 멀고, 놀면서 인생을 낭비한다고 생각한 아들이었다.
하지만 그가 병원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보여 준 성과는 다른 자식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천부적인 사업 재능을 이제야 발휘하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된 이상 그를 승계 구도에 넣어 형과 누나와 경쟁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엄상현의 마음을 모르는 듯 현호는 밝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
“송우미디어 대표의 목표를 듣고 싶구나. 뭘 하고 싶지?”
“송우미디어를 시작으로, 미디어 그룹을 만들어 보겠습니다.”
“……그렇게 정한 이유는?”
“성국그룹을 이기고 싶습니다.”
“뭐?”
놀란 엄상현의 미간이 꿈틀했다.
자신이 아무리 노력했어도 이겨 보지 못했던 성국그룹. 그런데 아들이 같은 야망을 품고 있다니.
엄상현의 입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현호는 그 모습을 보며 확신했다.
이제 자신도 송우그룹의 승계 싸움에 참여할 자격을 얻게 되었음을.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엄상현은 가족을 거실에 모이게 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아버지?”
좀처럼 없는 일이라 장남 엄현식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너희들에게 알려야 할 게 있구나.”
“말씀하세요.”
“송우미디어가 그룹 영향력 안에 들어왔다.”
“예? 정말이에요?”
갑작스러운 발표에 모두 놀란 눈치였다.
“오늘 이사회를 통해 송우미디어의 새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내가 믿을 만한 사람으로.”
“아버지, 축하드려요!”
식구들은 제각기 축하를 건네는 한편, 마음속에 궁금증을 키워 나갔다.
과연 송우미디어의 새로운 대표가 누구일지.
다들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살피던 그때, 엄현주가 과감하게 물었다.
“그런데 새 대표이사가 된 분은 누구예요?”
“막내, 현호다.”
“……!”
큰 충격을 받은 듯 모두 입을 열지 못했다.
현호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한편, 새로이 각오를 다잡았다.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없이 앞설 수 있었지만…….’
그는 그동안 미래의 지식을 활용하여 다른 이들을 앞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을 터였다.
송우미디어를 차지하며, 전생과는 너무나도 다르게 역사가 바뀌었으니까.
이제는 언제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 재밌겠네.’
그러나 딱히 걱정되진 않았다.
이미 한 차례 승리해 보았던 그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