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37
37화 지는 싸움 만들기
“작은아버지, 취소라니요?”
엄현식이 엄상철 회장의 전화를 받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약속 장소인 호텔 레스토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약속 시간 5분을 남겨 놓고 엄상철이 약속을 취소한 것이다.
“오시기 불편하시다면 제가 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다.]
“아니,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신 거예요?”
[현호가 제법이더구나.]
“예?”
[사람 발목에 족쇄 채울 줄도 알고.]
“아……!”
엄현식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나를 만나고 싶으면, 그 족쇄부터 풀어.]
뚝.
전화가 끊어졌다.
“아우, 이 자식이!”
화가 치솟은 엄현식은 테이블을 탕탕 내리쳤다.
잠시 룸을 서성이며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박경국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박 과장.”
[사장님, 엄상철 회장님을 만나고 계실 시간 아니십니까?]
“못 만났어.”
[네?]
“현호가 선수 쳤어. 작은아버지가 나와 접촉하지 못하게 할 뭔가를 가지고 있는 거 같아.”
[아…… 이렇게 빨리 준비하고 있었을 줄 몰랐습니다.]
“어쩌지?”
[사장님, 우리가 현호 도련님을 잘못 판단한 것 같습니다. 단번에 끝날 싸움이 아니니 좀 더 정보를 모은 후 다시 계획해야겠습니다.]
“알았어.”
* * *
성북동 서재.
“알아봤어? 그놈이 어떻게 수경이와 연락했는지?”
엄수경과 여상길이 돌아간 후, 엄상현 회장은 최덕일 변호사와 얘기 중이었다.
“교도관을 만나 봤습니다만, 여상길은 수감 중에 아내가 편지를 보내는 것 말고는 외부인과 접촉이 없었다고 합니다.”
“면회 기록도 확인해 봤어?”
“교도관 얘기로는 최근 몇 달 사이 여상길과 면회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그 이전의 기록은 교도관도 확인할 수 없고요.”
“그 아내가 다리 놓았을 가능성은?”
“아주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으흠…….”
엄상현은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설마, 수경이에게 과거 일을 얘기한 건 아니겠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만약 얘기했다면 여상길을 데려오지 않고 직접 회장님과 협상하려 했을 겁니다. 그리고 리조트 자금 문제만 해결하지도 않았을 거고요.”
그의 말이 일리 있다는 듯 엄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언제든 얘기할 수 있지.”
“그렇다고 해도 증거가 없습니다.”
“황원기처럼 사본을 만들어 놓았을 수도 있잖아.”
“그랬다면 굳이 리조트에 취업하지 않고 엄수경 사장과 거래를 했겠죠.”
“그래, 자네 말이 맞을 수 있어. 그런데 찝찝한 건 수경이와 여상길이 어떻게 만났냐는 거야.”
가장 궁금한 사안이지만 현재로써는 알 길이 없었다.
“여상길을 살필 사람도 준비해 놨지?”
“예, 회장님.”
엄상현은 여상길을 엄수경에게 연결해 준 자가 마음에 걸렸다.
그자는 자신과 여상길의 과거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하필이면 엄수경에게 여상길을 연결시켜 준 것을 우연으로 치부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무언가 목적이 있음이 분명했다.
그것을 알아내기 전까지는 당분간 여상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 * *
송우리조트로 돌아온 엄수경은 여상길을 사장실로 불렀다.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앉으세요.”
여상길은 응접 소파에 앉은 후 엄수경을 쳐다봤다.
“방금 은행에서 연락받았어요. 신규 대출이 승인됐다고.”
“잘됐네요.”
“상무님 덕분이에요.”
“별말씀을.”
“여 상무님, 엄상현 회장님과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이신 거죠?”
“…….”
“성북동에서 두 분 대화를 듣고 있으니 알겠더라고요.”
“하시고 싶은 얘기가 뭡니까?”
“이번 자금 압박은 풀렸지만 언제 또 엄상현 회장님 마음이 바뀔지 몰라요.”
여상길은 묵묵히 그녀의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상무님도 이제 송우리조트 식구고, 임원이시잖아요. 회사의 안정적인 성장이 상무님에게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
“함께 리조트를 지키기 위해 상무님이 알고 계신 것을 제게도 알려 주셨으면 해요. 그 대가로 다른 원하는 게 있다면 가능한 들어 드리겠어요.”
“원하는 거요?”
여상길이 건조한 목소리로 짧게 물었다.
“네. 무엇이든지 말씀하세요.”
“사장님, 외람되지만 리조트를 살린 건 접니다.”
“……!”
“원하는 걸 들어주겠다는 제안을 하시려면 힘부터 갖추셔야죠.”
정곡을 찔린 엄수경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른 할 얘기 없으시다면, 저는 제 사무실로 가보겠습니다.”
여상길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엄수경은 초라하고 허탈함을 느꼈지만, 여상길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그의 말처럼 힘을 가져야 했다.
그런 후 빚처럼 쌓인 모멸감과 수치심을 되돌려 주리라.
* * *
“자금 압박이 풀렸다고?”
엄상철은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엄수경에게 재차 물었다.
“네. 오늘 신규 대출 승인됐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왜 갑자기 자금 압박을 풀어 준 건지 알아봤어?”
“그 이유는 큰아버지만이 아시겠죠.”
엄수경은 사실대로 얘기할 수 없었다.
여상길에 대해 말하려면 현호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수경아, 안심해서는 안 된다. 형님은 먹잇감을 포기할 양반이 아니야.”
“네,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은밀히 황원기를 찾아봐라. 출국한 흔적은 없으니 분명 국내 어딘가에 있을 거다.”
“이제 와서 그 사람은 왜…….”
엄수경은 아버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아직 차명 재산과 관련된 자료를 가지고 있을 때라면 모를까, 이미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 상황에서 그를 찾을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었다.
“자료가 없어도 입은 남았으니 어딘가 쓸모는 있겠지. 형님 혼자 반들반들한 얼굴 들고 다니게 할 수 있겠냐. 상처 하나쯤은 내 줘야지.”
“아……!”
엄수경은 이어진 엄상철의 대답에 감탄사를 토했다.
그의 생각에 놀랐거나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황원기는 엄상현이 차명 재산의 세탁을 맡길 만큼 신뢰를 했던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라면 차명 재산이 아니더라도 엄상현에게 약점이 될 만한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바로 찾아볼게요.”
엄수경은 엄상철과는 다른 목적을 지닌 채 눈빛을 빛냈다.
* * *
성북동.
현호가 막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허태복입니다. 도대체 뭐하자는 짓입니까?]
“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와 원만히 계약을 끝마치고 순조롭게 작업을 진행 중일 터인 그가 격앙된 목소리로 소리치자 현호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왜 내 뒷조사를 하냐고요?]
“그게 무슨…….”
그게 무슨 말이냐고 되물으려던 그때, 현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누군가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사람들을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이면 사람 함부로 뒷조사해도 되는 겁니까?]
“감독님, 진정하시고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얘기해 주세요.”
[사장님은 모르시는 일이라는 겁니까?]
“지금 감독님께 처음 들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스스로 진정시키며 할 말을 정리하는 듯했다.
[친구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송우건설 사람이 찾아와서 저에 대해 묻고 갔다고요.]
‘현태 형이…….’
현호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형들이 빠른 시일 내에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조사하리라 예상은 했지만, 설마 허태복 감독의 사생활까지 캐고 다닐 줄은 생각지 못했다.
[설명해 주세요. 왜 송우그룹 사람이 제 뒷조사를 하는지.]
“죄송합니다.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누가 그랬는지 알아보고 찾아가 사과하게 하겠습니다.”
[몰랐다는 사장님 말씀을 믿고 일단 조치를 기다려 보겠습니다. 하지만 오래 기다리지 않을 겁니다.]
전화를 끊은 현호는 잠시 방을 서성이며 생각했다.
큰형은 송우미디어를, 작은형은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를 파고들려는 건 확실해졌다.
어떤 수작을 부리더라도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긴 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두 사람이 동시에 덤벼든다면 귀찮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럴 생각도 못하게 만들어 줘야겠지.’
현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똑똑.
엄현주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현호가 들어오자 그녀가 미소 지었다.
“현호야, 어서 와.”
“바빠?”
“아냐. 그냥 생각 좀 하고 있었어.”
“회사에 무슨 문제 있어?”
“회사 일 아니고, 작은오빠. 현호야, 좋은 아이디어 없을까? 나를 지옥 문턱까지 밀어냈는데 정작 작은오빠는 잘나가고 있어. 이번에 송우건설 중동 쪽으로 거래 뚫린 거 알고 있지?”
“성국건설 사장이 누나 대학 선배지?”
“어. 그게 왜…… 아!”
엄현주는 뒤늦게 현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지 깨닫고 말을 이었다.
“설마, 성국건설을 밀어주자는 거야?”
“맞아. 곧 철도공사에서 유휴지 개발을 하려고 해. 거기에 당연히 개발업체 입찰에 성국건설도 참여하고. 그 입찰에 형들도 모두 참여하게 한 다음 실패하게 만드는 거야.”
대한민국 재계 1위 성국그룹의 계열사, 성국건설.
아버지 엄상현은 다른 일은 몰라도, 성국그룹 계열사에게 패하는 것만큼은 결단코 화를 억누르지 못했다.
그런데 만약 일대일도 아닌, 이대일로 패한다면?
아버지가 엄현식과 엄현태, 두 사람을 좋게 볼 리가 없었다.
“하지만 무슨 방법이라도 있는 거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오빠들 모두 그쪽에선 알아주잖아.”
그러나 엄현주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미간을 좁혔다.
송우중공업과 송우건설은 송우그룹 계열사 내에서도 우수한 실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실적을 쌓아 올린 엄현식과 엄현태의 능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호는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했다.
“시도해 볼 만한 방법은 있지.”
“뭔데?”
순간 엄현주의 눈빛이 반짝였다.
“유휴지 개발을 위해 두 형은 각각 다른 컨소시엄을 구성할 거야.”
“당연히 그렇겠지. 독차지할 수 있으면 나눌 이유가 없지.”
“그리고 철도공사 내에 유휴지 개발사업단이 만들어지고, 단장도 임명될 거야.”
“단장은 사장이 원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그래야 사장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테니까.”
“물론, 사장도 사업에 개입하고 싶어 하겠지. 하지만 단장 선정을 위한 추천위원회를 만들 거야.”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그런 개발사업에 사장이 깊숙이 개입하면 공정성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
그래서 내부 조직원이 아닌 사람을 단장으로 하는 별도의 기구를 만든다.
“누가 단장이 되느냐가 중요해. 개발사업 신청 업체마다 단장 추천에 개입하려 할 거야.”
현호가 얘기하자 엄현주가 맞장구치듯 대꾸했다.
“당연하지. 자기 업체가 미는 사람이 단장이 되면 사업권은 딴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래서 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우리가 단장 추천에 개입하는 거야.”
“뭐?”
놀란 엄현주의 눈이 커졌다. 그러다 이내 의아한 듯 물었다.
“혹시 건설 쪽에 추천할 인맥이라도 있는 거야?”
“인맥은 필요 없어. 누군가 단장이 되면, 누군가는 떨어질 테니까.”
“아! 그러니까 네 말은…….”
“형들이 미는 단장 후보자를 떨어뜨리는 거야.”
그들이 지원하는 후보자가 단장에 임명되지 못한다는 것은 사업개발권을 따내지 못한다는 것과 같다.
“좋은 생각인 것 같은데…….”
엄현주가 구미가 당긴다는 기색이지만 여전히 의구심이 깃든 눈으로 물었다.
“그런데 우리 뜻대로 안 되고 오빠들이 미는 후보자 중 한 사람이 단장이 되면 어떻게 해?”
“그때는 플랜B로 가야지.”
“아하!”
이미 플랜B까지 계획되어 있다는 걸 안 엄현주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 모습을 보는 현호 또한 싱긋이 웃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