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4
4화 사무장을 내 손안에
톡톡톡톡.
민동재 사무장은 저도 모르게 집게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불안할 때 나오는 무의식적인 습관이었다.
“도대체 왜……? 계산서는 뭣 때문에……?”
그는 책상 위의 서류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사장이 지시한 것들을 이사장실에 가져다준 뒤부터 마음은 좌불안석이었다.
자신만 이런 것은 아니었다. 직원들의 표정 또한 굳어 있다.
왜 아니겠는가.
처음 출근한 이사장이 사업 보고도 뒤로 미룬 채 세금계산서와 영수증을 보고 있다.
어차피 재단 회계 보고를 할 텐데 왜 영수증부터 찾은 것일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단히 이례적인 것만은 분명했다.
“저, 사무장님.”
총무과장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이사장님이 뭘 하려는 걸까요?”
“난들 알아?”
까칠한 대답이 튀어나왔을 때, 이사장실로 차를 가져갔던 총무과 직원 정지영이 돌아왔다.
민동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 곁으로 다가가 물었다.
“지영 씨, 이사장님은 뭘 하시고 계셔?”
“복사하고 계시던데요.”
“복사? 뭘 복사하는지는 봤어?”
“테이블 위에 푸른세상기획 세금계산서 복사본이 있었어요.”
쿵!
민동재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다리가 후들거려 겨우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이 다름 아닌 그가 자신의 아내를 내세워 만든 페이퍼컴퍼니인 탓이었다.
민동재는 지금껏 그 회사를 이용해 허위 거래를 만들어 재단의 자금을 횡령하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들켰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뭘 아는 거야?’
민동재는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설마, 처음부터 알고 온 것일까?
아니다. 만약 그가 알았다면 엄상현 회장이 모를 리 없다.
그리고 회장이 알았다면 자신이 지금껏 자리를 지키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이사장은 얼마 전 미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했다. 그리고 지금껏 재단 운영에 관심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하늘이 내린 신기가 있지 않고서야 이 페이퍼컴퍼니라는 걸 어찌 알겠는가.
그럼 왜 그 회사 세금계산서 복사본을 만드는 걸까?
디리리리!
‘아, 씨발. 놀래라.’
내선으로 연결된 민동재의 전화가 울렸다. 이사장실이었다.
그는 가슴이 벌렁거렸지만 최대한 목소리를 평상시처럼 내었다.
“사무장 민동잽니다.”
[사무장님, 일이 끝났으니 자료들과 복사기 가져가도 됩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민동재는 직원 몇을 데리고 이사장실로 갔다. 직원들이 자료들과 복사기를 옮기는 동안 테이블 위를 주시했다.
총무과 직원이 말한 대로 테이블 위에 세금계산서 복사본들이 널려 있고, 이사장이 그것을 파일에 정리하고 있었다.
순간 민동재의 등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도둑이 제 발 저리다고 왜 복사했냐고 물어봤다가는 페이퍼컴퍼니인 게 알려질 것만 같았다.
벌렁거리는 가슴을 애써 다스리며 이사장실을 나가려 할 때, 이사장이 불렀다.
“사무장님.”
“예……?”
저도 모르게 떨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떨림을 들었을 텐데 이사장의 표정은 담담했다.
“직원들 점심은 어디서 먹습니까?”
“아, 근처 식당에서 먹기도 하고, 차를 타고 나가서 먹고 오기도 합니다.”
“사무장님, 오늘 점심은 저와 함께하시죠.”
“점심…… 을요?”
“선약 있습니까?”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출근 첫날이다.
직원들과 함께 먹겠다는 게 아니라 자신과 함께? 왜? 뭔가 불안하다.
* * *
민동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금 과장해서 상다리가 부러 질만큼 큰상 가득 음식이 놓였다. 겨우 두 남자가 이 음식을 다 먹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이 집 음식 솜씨가 아주 좋습니다.”
“아, 예.”
민동재는 미소를 지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다.
“이곳에 온 적이 있습니까?”
“아뇨, 처음입니다.”
“그렇군요. 드세요.”
“아, 예.”
민동재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다른 날이었으면 음식 맛을 음미하며 즐겁게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입에서 씹는 것들이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
그는 음식을 먹으면서 슬쩍슬쩍 현호의 기색을 살피기 바빴다.
분명 자신에게 할 얘기가 있어서 이런 자리로 데려왔을 것이다. 그 본론을 언제 얘기할까?
현호는 모르는 척했지만, 민동재가 자신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쯤 자신이 그의 아내가 대표로 있는 이 페이퍼컴퍼니임을 알게 되었다는 걸 눈치챘을 테니 말이다.
송우문화재단은 서로 견제할 시스템이 없어 부정이 일어나기 쉬운 환경이다.
대기업에서는 전문가를 동원해 횡령과 자금세탁이 이뤄지지만, 민동재 사무장은 이런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흔적을 남겨 놓았을 거로 생각해서 세금계산서부터 살펴봤는데, 예상외로 쉽게 찾아냈다.
재단이 보관하는 의 몇 년 전 세금계산서 일련번호의 시작과 가장 최근의 일련번호 사이에 빠진 번호가 없었다. 번호가 차례대로 되어 있었다.
이것은 즉, 에게는 다른 거래처가 없다는 의미다. 몇 년간 오직 송우문화재단하고만 거래하는 기업이 정상일 리가 없다.
그래서 직원 인사카드에 있는 가족 사항을 살폈더니 의 대표 이름이 민동재 사무장의 아내 이름과 같았다.
이것을 빌미로 그를 내칠 수 있지만…….
‘일단 이 사람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자.’
민동재는 엄상현 회장이 재단을 관리하기 위해 심어 놓은 사람이었다.
엄상현 회장의 눈길을 벗어나려면 당장 쳐내는 것이 옳겠지만, 그를 쳐낸다고 한들 그 역할을 대신할 다른 사람이 금세 들어올 것이 뻔했다.
그에 현호가 택한 방법은 회유였다.
“사무장님.”
현호가 수저를 내려놓으니 민동재도 덩달아 내려놓았다. 그의 표정이 금세 굳어졌다.
“예, 이사장님.”
“송우문화재단에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15년 됐습니다.”
“15년이면…… 딴생각이 들 만큼 재단 일에 익숙하겠네요.”
현호의 말에 민동재는 오싹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자신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가 안다.’
짧은 순간 머릿속으로 엄청나게 고민했다.
사실대로 털어놓으며 용서를 빌까, 아니면 끝까지 잡아뗄까.
결정을 못했는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사무장님.”
순간, 머릿속으로 자신이 교도소로 향하는 모습이 스치며 오싹했다.
“저는요…….”
당장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겠다.
“사무장님밖에 없습니다.”
응?
용서, 라는 말을 내뱉으려던 순간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말이 현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저, 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제게는 사무장님밖에 없습니다.”
“예……?”
“재단 일, 잘해 보고 싶습니다.”
“…….”
“사무장님이 저를 도와주셔야죠.”
“아……! 예! 그럼요!”
사색이 되어 가던 민동재의 안색에 안도하는 기색이 흘렀다. 그런 그의 모습에 현호는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참았다.
“제가 도와 드려야죠. 무조건 도와 드려야죠.”
민동재는 똑똑하진 않지만, 어리석은 인물도 아니었다. 그는 현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단박에 이해하고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목줄을 현호가 쥐고 있음을 명확히 이해한 것이다.
“고맙습니다. 우선 사무장님 하던 식사 마저 하고 일 얘기를 할까요?”
“아닙니다. 다 먹었습니다. 얘기하셔도 됩니다.”
현호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15년간 재단에서 일하셨으면 황원기 전 사무장님을 잘 아시겠네요.”
“그럼요. 함께 일했으니까요.”
“꽤 오랫동안 일했는데 그분은 왜 퇴사를 했습니까?”
“글쎄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자기 사업을 하기 위해 퇴사하신 듯합니다.”
“자기 사업이라면……?”
“건설업을 시작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건설업을 시작하기 위한 자금을 대 주었을 것이 분명했다. 차명재산에 대해 입을 닫는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닥치며 사업이 휘청이게 되자, 아버지와의 약속을 뒤로한 채 작은아버지와도 거래를 한 것일 터였다.
현호는 그 당시 일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상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지만, 결과만큼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
결국 형제의 난은 아버지의 승리로 막을 내렸으며, 황원기 전 사무장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는 것을 말이다.
‘아버지가 황원기 전 사무장이 가지고 있던 증거를 회수한 거겠지.’
이번엔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은 없었다.
“사무장님, 지금부터 제가 하는 얘기는 사무장님과 저만 알아야 합니다. 그럴 자신 있습니까?”
서늘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 눈빛의 의미를 알아차린 사무장이 비장하게 대답했다.
“예!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 * *
“이사장님, 오셨습니까?”
집으로 돌아오자, 집사로 일하고 있는 박경국 과장이 가장 먼저 현호를 맞이했다.
현호는 그와 얼굴을 맞이할 때마다 전생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라 소름이 돋곤 했다.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운전대를 잡고 달려들던 박경국의 모습.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이 당시엔 그와 아무런 원한 관계가 없었음에도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곤 했다.
“이사장님……? 혹시 제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당황스러운 듯한 박경국의 목소리에 현실로 퍼뜩 돌아왔다.
“아뇨, 아무것도…… 아! 있네요.”
“……?”
“제 수행 비서 채용 중단해 주세요.”
“예? 아니, 왜……?”
“번거롭게 새로 뽑을 필요 없이 송우전자 비서실 막내로 붙여 주세요.”
송우전자 비서실의 막내, 최명준.
전생에 엄민우가 송우전자의 부회장 자리까지 오를 수 있도록 곁에서 도왔던 비서실장이 바로 그였다.
전생에서는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만나게 되었지만, 그의 능력을 익히 알고 있는 이상 구태여 만남을 미룰 필요가 없었다.
“이사장님, 하지만 그건…….”
내 명령에 박경국이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엄씨 일가의 모든 수행 비서는 그의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니, 나의 예상치 못한 행동이 그를 당황시킨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그렇게 해 줄 수 있는지 아버지께 여쭤보세요. 내 곁에는 회사 일이 뭔지 아는 사람이 필요해요. 내 상황, 박 과장도 잘 알잖아요.”
경영에 관심 없고, 놀기 좋아하는 재벌 3세.
이게 박경국이 아는 엄현호다.
그런데 재단에서 일해야 하니 회사에서 눈칫밥 좀 먹은 경력과 상황 파악이 빠른 비서실 직원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거기까지 이야기하니 더 이상 박경국도 어쩔 수 없었는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 예. 회장님께 여쭤보고 진행하겠습니다.”
“그래요.”
현호는 방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걸어가는 뒷모습을 박경국이 지켜보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말 많이 변했어.”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만 하더라도 자신에게 반말도 함부로 하고, 복잡한 상황을 이해시키려 해도 소용없던 망나니였다.
그런데 지금의 그에게선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차가운 시선은 여전하지만, 말투는 훨씬 점잖아졌다. 더구나 한곳에서 진득이 일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자기 상황을 이해하고 있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 있을까?
정말, 사고 때문에 마음의 변화가 온 걸까?
현호의 변화에 놀란 사람은 박경국만이 아니었다. 서재에서 문화재단 민동재 사무장과 통화하던 엄상현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이사장님께서 정말 열심히 일을 배우려고 하십니다. 보고 있던 직원들도 칭찬하던걸요.]
“현호가 그랬다고?”
[그럼요, 회장님.]
엄상현 회장은 현호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아버지께 도움되는 아들로 살고 싶습니다
‘현호가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