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41
41화 난장판 속으로 (2)
“형님, 부르셨어요?”
유휴지 개발사업단장 탁호진이 철도공사 사장실로 들어왔다.
탁호진은 사장 한주혁과 동문이면서 골프 모임 멤버로 가까운 사이라 입에서 쉽게 형님 소리가 나왔다.
“누가 들으면 오해해. 자리 봐 가면서 그렇게 불러야지.”
한주혁이 타박하듯 얘기했다. 이에 탁호진이 멋쩍은지 목덜미를 긁으며 대꾸했다.
“죄송합니다. 입에 붙어서 그만. 그런데 사장님, 왜 부르셨습니까?”
“하하. 이 사람 정색하기는. 조심하라는 거지, 우리끼리 있을 땐 형님이라고 해. 나도 그게 편해.”
한주혁은 호칭 때문에 주의를 주었지만, 이내 정답게 얘기했다.
이번 일은 그에게 있어 다시없을 기회였다.
이 일이 잘되면 엄현식과 오신주 국회의원에게서 공천을 받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엄현식이 속한 제니스 컨소시엄을 개발업체로 선정하기 위해서는 탁호진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래서 혹여 그의 마음이 상하지 않게 하려 정답게 얘기한 것이다.
“일단 저쪽으로 앉아 봐.”
“아, 예.”
탁호진이 소파에 앉자 한주혁은 책상 위에 있던 문서를 가지고 그의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평가위원회 구성이 끝났다면서?”
“예. 이제부터 업체 선정 평가 항목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잘됐네.”
한주혁이 그에게 문서를 건넸다.
“한번 봐.”
문서를 읽어 내려가는 탁호진의 눈이 점차 커졌다.
문서에 있는 내용은 업체 선정 평가 항목들과 비율이었다.
“형님, 이걸 왜 주시는 겁니까?”
“네가 단장이 될 수 있게 뒤에서 지원한 분이 누군지 알고 있지?”
“그럼요. 오신주 국회의원이시죠.”
표면적으로는 건축가협회에서 탁호진을 단장 후보자로 철도공사에 추천했다. 그 건축가협회를 움직인 사람이 오신주 국회의원이었다.
하지만 탁호진은 아직 모르는 게 있다.
오신주 국회의원과 한주혁 사장 뒤에는 송우중공업 사장 엄현식이 있다는 것을.
“오 의원님이 주신 거야.”
“아……!”
탁호진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았다.
‘밀어주고 싶은 기업이 있구나.’
오신주는 다선 국회의원이다.
탁호진은 선거 기간 중 가까이에서 지원 유세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선거에는 영수증으로 흔적을 남기는 돈보다 많은 자금이 든다는 것을.
그 자금을 해결하기 위해 몇몇 기업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
“오 의원이 단장인 너와 만나면 다른 사람이 불필요한 오해를 할 수 있다고 내게 대신 전해 주라고 했어.”
“아, 그렇군요.”
탁호진은 오신주 의원이 이번 유휴지 개발사업에 그를 후원한 기업을 도우려한다고 생각했다.
“그 평가 항목들을 잘 좀 살펴봐.”
그에게 준 평가 항목대로 하라는 얘기였다.
그 의미를 모르지 않는 탁호진이 맞장구치듯 대답했다.
“잘 검토해서 처리할 테니 걱정하지 마시라고 전해 주세요.”
“하하. 방금 그 말 그대로 전할게. 호진아, 우리 골프 모임에서처럼 이 사업 같이 잘해 보자.”
“그럽시다, 형님.”
탁호진은 사장 비서가 가져온 차를 마시며 즐겁게 담소를 나눈 후 사장실에서 나왔다.
* * *
현호는 엄현주와 함께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 룸에 먼저 와서 탁호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되어 가자 룸의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이에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단장님. 엄현주라고 합니다.”
“탁호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엄현호입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그는 엄현호가 다른 사람과 함께 올 줄 생각지 못해 조금은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런 당황함을 풀어 보려 엄현주가 입을 열었다.
“단장에 임명된 거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게 알려 주실 게 있다는 게 뭡니까?”
재벌 3세를 만나면 인사치레로 주고받는 엄상현 회장의 안부도 그는 묻지 않았다. 그 정도로 탁호진은 오신주 국회의원에 신경이 쓰였다.
그의 시선을 받은 엄현주가 대꾸했다.
“오신주 의원님과 친분이 있으시죠?”
“그렇습니다만.”
“오 의원님은 믿을 만한 분이 아니라는 걸 전해 드리고 싶네요.”
“뭐요?”
탁호진의 눈이 찌푸려졌다.
그녀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바쁜 사람 불러 놓고 뭐 하는 겁니까? 좋은 환경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은 분들이 말을 경솔히 하시네요.”
탁호진이 불쾌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예상보다 강한 반발에 엄현주가 현호를 쳐다보자, 현호는 자신이 얘기하겠다는 신호를 눈빛으로 보냈다.
현호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호형호제하는 사람이 자기 뒤통수를 친다고 누가 생각하랴.
하지만 그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리라.
현호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얘기했다.
“지난 총선 때 오신주 의원님 지역 유세를 도우셨죠?”
“그래요, 도왔어요. 그런데 여기서 총선 얘기가 왜 나옵니까?”
탁호진과 오신주 의원과는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다.
단순히 학교 선배라서 오신주의 선거 운동을 도운 게 아니다. 탁호진 또한 정치인이 되고 싶은 바람이 있다.
3선 의원인 오신주는 중견 정치인으로서 당내 사무총장을 맡아 2인자의 위상을 다지고 있다.
만약 그가 돕는다면 자신이 공천을 받기에 유리해진다. 그런 계산이 탁호진에게 있었다.
“이번 개발사업단 업무를 잘 마무리하고 보궐선거에 나가는 걸 염두에 두고 계신다면, 안타깝게도 뜻을 이루지 못할 거 같네요.”
“뭐, 뭐요?”
속마음을 들켰는지 그가 말을 더듬었다.
“보궐선거에는 한주혁 사장님이 공천될 겁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이걸 보시면 제 말을 이해하실 겁니다.”
사진 여러 장을 그의 앞에 펼쳐 놓았다.
그 사진을 본 탁호진의 눈이 커졌다.
왜 아니겠는가.
사진에는 한주혁 철도공사 사장, 오신주 의원, 엄현식이 즐겁게 골프를 치고 있었다.
“이, 이건 그냥…….”
“그냥 세 분이 스포츠를 즐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에 찍힌 날짜를 보십시오.”
“……!”
“탁호진 단장님이 최종 확정되어 발표된 날입니다.”
그날이 맞다.
탁호진은 들뜬 마음으로 언론 인터뷰를 준비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그리고 애써 준 오신주 의원과 한주혁 사장에게 전화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아 저녁 늦게 감사 인사를 전했었다.
그런데 그날, 발표된 그 시간에 세 사람이 골프 회동을 하고 있었다니.
탁호진은 오늘 한주혁 사장에게서 받은 평가 항목 문서를 떠올렸다.
그 문서는 오신주 의원이 보낸 것이다.
그 문서를 보며 오신주 의원이 밀고 싶어 하는 기업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업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오신주 의원이 송우중공업을…….”
탁호진이 말끝을 맺지 못했지만, 현호가 받아서 말을 이었다.
“제니스 컨소시엄. 송우중공업이 들어가 있습니다.”
“…….”
“단장님께서는 송우중공업 엄현식 사장님을 만나신 적이 있으시죠?”
“그때는…….”
탁호진은 말을 하려다 멈췄다.
오신주 의원이 소개해 줄 사람이 있다고 해서 나간 자리였다. 그 자리에 엄현식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철도 유휴지 개발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전반적인 건설 경기에 관해 이야기했을 뿐이다.
“엄현식 사장님은 단장님이 나오시는지 몰랐습니다. 아마도 오신주 의원이 유휴지 개발 건으로 중간에서 다리를 놓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사실이 아니다.
엄현식은 오신주 의원이 추천한 단장 후보자가 누구인지 알고자 나간 자리였다. 하지만 현호는 그에게 사실대로 알려 줄 필요가 없었다.
한편, 그날의 진실을 모르는 탁호진은 그 후의 기억을 빠르게 더듬었다.
철도공사 유휴지 개발사업단 단장 추천위원회에 자신이 추천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알아보니 오신주 의원이 건축가협회에 압력을 넣어 협회가 추천했던 것.
탁호진은 자신이 정치인으로 나아가기 위한 공적 쌓기를 오신주가 돕는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자신이 그를 위해 헌신했던 것을 이렇게 돌려주는 것이라고.
그런데 자신이 공식적으로 단장이 된 날, 오신주 의원은 한주혁 사장과 엄현식을 만났다.
그리고 오늘 오신주가 원하는 평가 항목을 자신에게 준 사람 또한 한주혁 사장이다.
탁호진은 그가 했던 말을 기억했다.
-오 의원이 단장인 너와 만나면 다른 사람이 불필요한 오해를 할 수 있다고 내게 대신 전해 주라고 했어.
자신을 위해서 오신주 의원이 피한다는 뉘앙스였다.
하지만 만약에…….
‘날 속인 거라면……?’
처음부터 자신을 이용해서 유휴지 개발사업을 그들에게 이익이 되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자신은 빛 좋은 개살구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평가 항목과 비율이 정해지면 유휴지 개발의 성공은 한주혁의 몫이 되리라.
탁호진의 표정이 아주 언짢아 보였다.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것 같군.’
현호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한주혁 사장에 맞서는 그의 투지력을 상승시켜야 했다.
“혹시 오신주 의원이 보궐선거 공천을 약속했습니까?”
“뭐, 뭐요?”
“단장님 주변에서 선거 얘기가 있더군요.”
“…….”
뜨끔한 탁호진은 답을 하지 못했다.
오신주 의원이 보궐선거 관련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을 공천하겠다는 말은 없었지만, 그러겠다는 사인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현호의 이어지는 말에 그가 화들짝 놀랐다.
“한주혁 사장님 주변에서도 선거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알고 있습니까?”
“뭐라고요?”
“확답을 받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탁호진은 알고 있다. 선거를 치르려면 후보자뿐만 아니라 물주도 필요하다는 것을.
자신이 단장이 된 날, 누구를 축하하기 위해 세 사람이 골프 모임을 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탁호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지만, 그의 눈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그러다 잠시 후.
“그런데 왜 내게 알려 주는 겁니까? 오신주 의원이 지원하는 송우중공업 엄현식 사장과는 형제지간이지 않습니까?”
송우중공업이 속한 제니스 컨소시엄이 사업권을 획득하려면 그가 이런 사실을 모르는 게 좋았을 것이다. 그로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리라.
“형님을 위해서입니다.”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 자신들이 왜 이렇게 나서게 되었는지 납득시킬 필요가 있었다.
자칫 그에게 동생이 형의 사업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단장님도 잘 아실 겁니다. 이런 대규모 공사가 있으면 업체에서는 여러 관계자를 만난다는 것을요. 저희 형님도 그런 차원에서 오신주 의원님과 한주혁 사장님을 만났습니다만 선거 자금에 관해서 얘기한 적이 없습니다.”
“……!”
“그런데 두 분 주위에서 선거 얘기가 나오니 저희 형님이 꽤 난처한 상황입니다. 오신주 의원님과는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터라 정색하며 얘기할 수도 없는 처지이고요.”
“…….”
“제니스 컨소시엄이 준비한 기획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누구와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을 만큼 잘 준비했습니다. 자칫하면 열심히 준비한 형님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말은……?”
“단장님이 가진 힘으로 공정한 심사를 해 주세요.”
“내가 가진 힘이요?”
이제, 그에게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알려 줄 차례다.
“그렇습니다. 단장님이 가진 힘은 공정하게 업체를 평가할 평가 항목과 비율을 만드시는 겁니다.”
“……!”
“저의 형님이 떳떳하고 공정하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면, 오신주 의원님이 부당한 정치 자금을 요구할 수 없을 거고, 단장님이 이번 결과의 과실을 얻게 되실 겁니다.”
“결과의 과실이라는 게……?”
“정치권이 새로운 피로 수혈이 되어야 환경도 나아지지 않겠습니까?”
“아……!”
그가 무슨 의미인지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현호는 선거와 정치 자금에 관해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그 두 단어가 떠다닐 것이다.
탁호진은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그는 우리보다 먼저 자리를 떠났다.
“탁호진 단장이 어떻게 나올까?”
엄현주가 물었다.
“일단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겠지.”
“그러면 한주혁 사장이 단장을 힘으로 누르지 않을까?”
“그 힘이 지나치면 같이 죽겠지.”
“뭐?”
이해하지 못한 듯 엄현주가 눈을 깜빡였다.
“한주혁 사장이 양보하면 갈등은 봉합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양보하기 쉽지 않을걸.”
“어째서?”
“국회의원 공천이 눈앞에 있는데, 그걸 포기할까?”
“아!”
어떤 사내가 권력을 쥘 수 있는데 그걸 포기하겠는가.
한주혁 사장 또한 국회의원 공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사장이 포기하지 않으면 뭘 할 수 있는데?”
“단장을 사업단에서 내쫓으려 하겠지.”
“그러니까 단장을 힘으로 제압한다는 거네? 그러다가는 같이 죽는다고 했잖아?”
“이미 단장은 자기가 배신당했다고 느끼고 있어. 그런데 사업단에서 내쫓기면 어떻게 행동할까?”
“아……!”
현호의 말뜻을 이해한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한주혁 사장이 탁호진 단장을 쳐 내려 하겠지만, 순순히 내침을 당할 사람은 없다.
그로 인해 사장과 단장 사이에 난장판이 일어날 것이다.
그 난장판 속에 큰형 엄현식이 끌려 들어가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