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42
42화 난장판 속으로 (3)
며칠 후.
탁호진은 보고할 문서를 들고 한주혁 사장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서 와. 무슨 일이야?”
한주혁은 반갑게 그를 맞았다.
“사장님, 평가 항목과 비율이 결정됐습니다.”
“빨리 나왔네?”
“네, 사장님.”
“우리끼리 있을 때는 편하게 부르라고 했잖아.”
“공적인 일로 왔는데 그럴 수는 없죠.”
평소의 탁호진과 달리 격식 차린 행동에 한주혁은 내심 당황했다. 하지만 달라진 그의 태도를 걸고넘어질 필요는 없었다.
“아, 뭐, 그렇게 생각한다면야…… 어디 한번 볼까?”
탁호진이 문서를 그에게 건네자 한주혁이 여유로운 자세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잠시 후 놀란 한주혁이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뭐야?”
“말씀드린 평가 항목과 비율입니다.”
“누가 그걸 몰라? 그런데 왜 이 모양이야?”
한주혁이 신경질적으로 따지듯 묻자 탁호진이 정색하며 대답했다.
“사장님, 평가위원들이 열심히 고민하며 만든 것을 지금 헐뜯는 겁니까?”
“아니, 이건 얘기가 다르잖아?”
“무슨 얘기요?”
탁호진이 모르는 척 딴청을 피웠다.
“너 왜 이래? 지난번에 내게서 문서 받아 갔잖아.”
“아! 그 문서요? 참고했습니다.”
“뭐라고?”
한주혁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불만을 뱉어냈다.
“참고했다는 게 이 모양이야? 하청업체 참여하는 이유와 내용? 이게 왜 평가 항목에 들어가야 해?”
“하청에 하청, 또 재하청까지 가는 공사가 많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공사가 부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공기관 유휴지에서 벌어지는 사업인데, 부실한 공사가 있어서는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사기업이 자기 돈 들여 공사하는 거야. 우리가 하청까지 왜 간섭해?”
“이런 간섭을 받고 싶지 않으면 자기 회사 땅에다 지으면 될 일입니다. 그만큼 기업에 이득이 있으니 개발에 참여하겠다는 거 아닙니까? 그러면 우리가 제시하는 안전 기준을 지켜야죠.”
“야! 너 왜 이래?”
지지 않는 탁호진의 말대꾸에 한주혁이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에 탁호진은 맞싸우듯 대응했다.
“사장님이야말로 이상하네요.”
“뭐라고?”
“부실 공사를 막자는 의견에 왜 사장님이 반대하시는 겁니까? 제가 모르는 뒷거래라도 있는 겁니까?”
“머, 뭐?”
한주혁이 부들거렸지만,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했다.
* * *
성북동.
“뭐요?”
가족들이 함께 모인 거실.
디저트를 먹으며 전화를 받던 엄현식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엄상현 회장을 의식했는지 양해를 구했다.
“아버지, 통화를 좀 해야 해서…….”
엄상현이 가 보라고 손짓하자 그가 거실을 나가며 얘기했다.
“그 자식이 뭘 했다고요?”
사라져 가는 그의 모습을 보던 현호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그가 누구의 전화를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탁호진 단장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연락을 받았으리라.
현호는 맞은편에 자리한 엄현주를 봤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그녀 역시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한 것이다.
탁호진의 도발이 시작되었고 싸움은 커지리라.
* * *
[제가 제안했던 것을 모조리 무시하고 평가 항목과 비율을 만들었습니다.]
“아우 씨.”
갑자기 열이 오르고 두통이 생기는지 엄현식이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그래서, 그걸로 평가하면 누가 유리합니까?”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성국건설과의 차이는 좁혀…….]
“뭔 개 같은 소리야?”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화를 내뱉은 엄현식.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차분히 가라앉힌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오신주 의원에게 얘기했어요?”
[네. 그런데 단장이 오 의원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씨발. 그 새끼 성국건설에서 돈 먹은 거 아냐?”
[그, 글쎄요…….]
“이봐요, 한 사장님. 내 말 잘 들으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내가 압도적으로 이겨야 합니다.”
엄현식에게는 절박한 문제였다.
가족 모두 그가 유휴지 개발사업을 맡게 될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아버지 엄상현은 자신이 성국건설을 이겼다고 기뻐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막판 역전을 당하는 꼴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만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이기지 못하면 보궐 공천만 날아가지 않을 겁니다. 한 사장님 그 자리, 지키지 못하게 될 겁니다.”
[엄 사장님!]
“내 말 알아들었으면 움직이세요. 당장!”
이제 엄현식이 입찰에서 이기는 문제는 한주혁 사장의 목줄을 걸어야 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정치인으로 새로운 삶을 상상했던 한주혁.
그는 이제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탁호진을 제압해야만 했다.
* * *
“오 의원님, 탁 단장과 얘기해 보셨습니까?”
“그 자식, 안면을 완전히 바꿨어.”
한주혁 사장이 오신주 의원을 레스토랑에서 따로 만났다.
“뭐라던데요?”
“정치인이 왜 공사 사업에 발을 담그려 하냐고 따지더군.”
“하, 미친놈.”
“자네한테는 뭐라고 했어?”
“공정성을 훼손하려 한다고, 계속 간섭하면 언론에 알리겠답니다.”
“그 자식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나오는 거야?”
“성국건설…… 아닐까요? 엄 사장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던데요.”
“이 새끼, 뒷돈 엄청 받았구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탁 단장 저대로 내버려 두면 제가 죽습니다. 그렇게 되면 오 의원님 자리도…….”
“어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오신주 의원이 그의 말을 끊으며 인상을 구겼다.
하지만 상황이 절박한 한주혁은 그의 기분을 살필 겨를이 없었다.
“탁호진을 단장으로 추천한 건 오 의원님입니다. 일이 잘못되면 엄현식 사장이 저만 끌어내리고 말까요? 같이 살아야죠, 오 의원님.”
이 일을 도모한 것은 세 사람이지만, 한주혁과 오신주는 엄현식과 같은 처지가 아니다.
그들은 알고 있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않다는 걸.
혼자 죽지 않는다는 협박도 재벌 앞에서는 허무한 메아리일 뿐이라는 것을.
“오 의원님, 탁 단장 마음을 되돌릴 방법을 생각해 보세요.”
“이미 성국건설로 넘어가 정신 못 차리는 놈을 무슨 수로 돌려? 쫓아낼 수밖에.”
“아……!”
한주혁 사장이 그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단장직을 내려놓을 만한 문제를 찾아낸다면 탁호진을 유휴지 개발사업단에서 나가게 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단장을 다시 임명할 수 있다.
“방법이 있습니까?”
“탁호진이 건축가협회장을 했어. 협회 공금을 횡령했다면 공적 사업을 맡기에는 큰 흠결이 되겠지. 그런 사람을 해임한다고 해도 문제는 안 될 거야.”
“탁 단장이 정말 공금 횡령을 했습니까? 그 증거가 있으면…….”
오신주 의원이 한심하다는 기색으로 그의 말을 끊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
“예?”
“증거가 진짜일 필요는 없잖아. 사람들이 그걸 믿게 만들면 되는 거지.”
“아……!”
탁호진을 어떻게 쫓아낼 것인지에 관해 의논하고 며칠이 지났을 때였다. 언론에서 속보를 내보냈다.
[철도공사, 유휴지 개발사업 탁호진 단장 해임.]
[탁호진 단장, 건축가협회장 시절 공금 횡령 의혹.]
탁호진을 더욱 궁지로 몰기 위해 한주혁 사장은 언론 브리핑도 했다.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탁호진 씨가 건축가협회장 시절에 공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제보가 여럿 건 있었습니다. 본인에게 해명을 요구했지만 밝히기를 거절했습니다. 유휴지 개발을 이끌 단장이 이런 의혹을 안고 있으면 공정성 시비 등 사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해 부득이 해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언론의 화살이 탁호진에게 집중되었다. 언론이 그의 횡령을 기정사실인 양 보도했고, 그 덕분에 그의 해임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았다.
그렇게 며칠 언론에 두드려 맞던 탁호진이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탁호진 단장, ‘진실 밝히겠다’. 내일 기자회견.]
그가 기자회견을 한다는데, 발등에 불 떨어진 쪽은 엄현식이었다.
“뭡니까? 밝힐 진실이 뭐가 있다고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겁니까?”
그는 한주혁 사장과 통화 중이었다.
[공금 횡령 의혹에 대해 얘기하려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그게 아니면 어쩔 겁니까? 그동안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폭로하면 어쩔 거예요?”
[그 자신도 크게 다치게 되는데, 설마…….]
“사업단에서 쫓겨나고 횡령범처럼 되어 버렸습니다. 악에 받쳐서 사고 치지 말라는 법 있습니까? 기자회견 막으려면 탁호진을 만나서 협박을 하든, 돈을 주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게…… 탁호진 씨와 연락이 안 됩니다. 집에도 없고…….]
엄현식은 한심한 한주혁 사장의 대응에 순간적으로 화가 솟구쳐 험한 말이 튀어나왔다.
“씨발, 찾아! 기자회견 열려서 내 이름이나 회사가 언급되면 당신들 가만두지 않아! 알았어?”
언성을 높이며 전화를 끊었을 때, 비서가 들어왔다.
“사장님.”
“기자회견 어디서 열리는지 알아봤어?”
“탁호진 씨가 기자회견 시간만 언론사에 알려 왔다고 합니다.”
“뭐? 그럼, 장소는 모른다는 거야?”
“네. 장소는 기자회견 1시간 전에 알려 주겠다고 했답니다.”
“씨발, 미치겠네. 용역 애들 풀어서 집이랑 탁호진이 다닐 만한 곳들 몽땅 뒤져 봐. 서둘러.”
“예, 알겠습니다.”
비서가 급한 걸음으로 다시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탁호진을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찾으려 나섰다.
아이러니가 이런 것일까?
탁호진이라는 혹을 떼려다 더 큰 혹이 붙어 버린 것이다.
* * *
다음 날.
“못 찾았다고?”
“네, 죄송합니다.”
엄현식의 비서가 고개를 숙였다.
수십 명의 사람을 풀어서 탁호진을 찾으려 했지만 허사였다.
도대체 그는 어디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기자회견까지 겨우 65분이 남은 상황이었다.
“1시간 전에 기자회견 장소를 알려 준다고 했어. 장소가 나오면 바로 갈 수 있게 그자들 대기시켜.”
용역을 시켜 기자회견 장소를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대기 중입니다.”
“박 기자한테 얘기했지? 장소 나오면 나한테 바로 알려 달라고.”
“예, 사장님.”
비서가 대답을 마쳤을 때였다.
엄현식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 박 기자. 기자회견 장소가 나왔어?”
[사장님, 기자회견 시간이 앞당겨졌습니다.]
“얼마나?”
[저희도 방금 연락받았습니다. 곧 시작합니다.]
“뭐? 장소 나오면 바로 알려 달라고 했잖아. 당신 거기 어디야?”
[장소는 인터넷입니다.]
“뭐?”
[‘뉴스저널’이라는 인터넷신문 홈페이지를 보세요. 탁호진 씨 동영상이 올라와 있을 겁니다.]
기자와의 통화가 끊어지는 것과 동시에 엄현식이 비서에게 명령했다.
“뉴스저널이라는 인터넷신문 홈페이지 켜 봐.”
비서가 엄현식의 책상 위 컴퓨터로 다가가 인터넷을 접속했다.
그리고 뉴스저널 인터넷신문 홈페이지로 이동하자, 라는 동영상이 메인에 있었다.
그 동영상을 재생하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부쩍 수척해진 탁호진이 작은 테이블 뒤에 앉아있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길게 숨을 쉰 그가 정면을 보며 얘기를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철도공사 유휴지 개발사업 단장 탁호진입니다. 먼저 최근 논란이 된 저의 공금 횡령은 사실이 아닙니다. 철도공사 사장이 제게 해명을 요구했다고 했지만, 하지도 않은 일을 어떻게 해명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해명할 게 없다고 한 것을, 한주혁 사장은 해명을 거절했다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잠시 말을 중단한 그가 탁자 앞의 물컵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한주혁 사장은 저를 사업단에서 내쫓기 위해 그런 거짓 명분을 만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제가 한주혁 사장의 특혜 제공을 막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한 사장은 단장인 저에게 제니스 컨소시엄에게 유리한 평가 항목과 비율을 만들라고 압박했습니다. 압박뿐만 아니라 아예 평가 항목과 비율까지 만들어 제게 주었습니다. 그 증거가 이것입니다.]
그가 테이블 위에 있던 문서를 들어 보였다.
탁호진이 현호를 만나기 전 한주혁 사장에게서 받았던 문서였다.
“씨발, 제니스 컨소시엄이 왜 나와? 내가 준 문서도 아닌데!”
짜증이 난 엄현식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화는 나지만 이 정도의 발표는 충분히 해명할 수 있고, 한주혁 사장과 엮이지 않게 끊어 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한주혁 사장이 제니스 컨소시엄에게 특혜를 주려는 이유는 그 뒤에 송우중공업과 오신주 국회의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제가 사업단장으로 발표된 날 함께 골프를 쳤을 만큼 가까운 사이입니다. 그날 청명골프장 이용객을 조사해 보면 세 사람이 있을 겁니다.]
“머, 뭐야, 저거?”
엄현식의 얼굴이 창백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