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43
43화 남현민 검사의 제안
[한주혁 사장, 증거 없는 제보만으로 탁 단장을 몰아낸 이유는?]
[철도공사 유휴지 개발단장 발표일, 세 사람은 왜 만났나?]
[한주혁 사장의 평가 항목서, 송우중공업에 유리. 청탁 있었나?]
[유휴지 개발단장 선정에 오신주 국회의원 개입 있었나?]
탁호진 단장의 발표에 여론은 순식간에 뒤집혔다. 탁 단장을 향했던 비난과 의혹의 화살이 한주혁, 오신주, 엄현식에게로 향했다.
정경유착이라는 비난 여론이 거세어지자 정부가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정부, 철도공사 유휴지 개발 감사 착수.]
[정부, 철도공사 유휴지 개발 취소하기로 결정.]
“누구 짓이야? 성국그룹이야?”
엄상현의 분노 어린 목소리가 서재에 울렸다.
그 목소리에 얼굴이 창백해진 엄현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누가 그놈을 부추긴 거야?”
“…….”
“단장 잘라 놓고 언론 관리 안 했어?”
“해, 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신문에서 그런 발표를 할 줄은…….”
실제 공금 횡령 건이 터졌을 때 일간지와 경제신문 등에 손을 써 놓았기에 탁호진 단장의 반발이 언론에 나오지 못했다.
“그걸 변명이라고 하는 거냐? 일개 단장이 인터넷신문에서 한 얘기야. 그게 이렇게 커진 이유는 뭐야?”
“…….”
“뒤에 성국그룹이 있었던 거냐고 묻잖아?”
“그럴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회장님.”
조용히 지켜보던 최덕일 변호사가 대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눈을 질끈 감은 엄상현 회장. 그는 치솟는 분노로 부들부들 손을 떨더니 책상을 내리쳤다.
탕!
“너! 대체 일을 어떻게 한 거야? 사람 하나 관리하지 못해 먹은 밥 토해 내게 만들어?”
엄상현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엄현식이 급히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엄현식은 떨리는 걸 감추느라 주먹을 꼭 쥐었다.
그는 아버지의 분노가 비판 여론이나 유휴지 개발사업 취소가 아니라 성국그룹 때문임을 알았다.
그의 일생의 경쟁에서 성국그룹을 이겨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번 경쟁에서 드디어 이겼다고 여겼는데 개발사업 자체가 무산되어 버렸다.
그게 성국그룹의 작전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게, 단장 선정에서 패배한 성국그룹에게 이번 일은 승부를 제자리로 되돌리는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분노를 삭이던 엄상현 회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최 변, 어떻게 대응하고 있어?”
“청탁은 사실 무근이고, 탁호진 단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 준비한다는 입장문을 냈습니다.”
“고소할 생각이야?”
“언론 대응으로 한 것일 뿐 고소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탁 단장이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탁 단장 뒤에 성국그룹이 있다고 의심스러운 상황입니다.”
“검찰 수사가 될 가능성은?”
“한주혁 사장이 만든 평가 항목 문건이 드러나서 검찰에서도 덮을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엄상현 회장이 마뜩잖은 듯 미간을 찌푸렸다.
“중수부장이 그래?”
“네, 회장님.”
“이럴 때 힘 좀 쓰라고 우리가 챙겨 준 돈이 얼만데 그거 하나 마사지 못해?”
“중수부장의 낌새가 이상합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야?”
엄상현 회장이 미간을 좁히며 의아함을 나타냈다.
“저희를 피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자식이 성국그룹에 붙은 거야?”
중수부장까지 올라간 검사는 더 위를 쳐다보게 된다. 그리고 그 목표한 곳에 더 빨리 도착하게 해 줄 엘리베이터를 찾고 싶어 한다.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제 느낌은 그렇습니다.”
그가 바꿔 탄 엘리베이터가 성국그룹이라면 이번 일은 간단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번 일을 크게 만들어 송우그룹을 치려는 속셈이라면?”
“그걸 막을 방법은 이 일에 성국그룹을 끌어들이는 것뿐입니다.”
“어떻게?”
“탁호진 단장의 폭로를 이끈 게 성국그룹이라는 루머를 퍼트리고, 근거도 만들 생각입니다.”
“자네 생각대로 하게 되면 현식이는?”
“무혐의가 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자네 생각대로 해.”
“예, 회장님.”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엄현식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사실 최덕일 변호사가 무혐의가 되도록 하겠다는 말에 안도했으나, 아버지 앞에서는 죄인이 된 듯 미안한 표정을 보여야 했다.
“일어나.”
엄상현이 명령하듯 얘기하자, 엄현식이 몸을 일으켰다.
“보는 눈이 많아 네 자리를 지키게 되는 걸 다행이라 생각해라.”
“……!”
엄현식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지금처럼 언론의 주목이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송우중공업 사장이 교체된다면, 논란은 가중되어 그들이 물어뜯기 좋게 될 터.
지금 자신은 용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운 좋게 다시 한번 기회를 얻은 것뿐이었다.
“명심해라. 이번 일에 내가 크게 실망했다는 걸.”
그의 말에 엄현식은 오싹함을 느꼈다.
지금껏 승계 1순위였던 그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실망한 아버지가 언제든 승계자를 바꿀 수 있다는 경고로 느꼈기 때문이다.
“나가 봐.”
“예.”
엄현식이 어두운 얼굴로 인사를 하고 서재 밖으로 나간 후, 엄상현은 최덕일에게 나직이 물었다.
“여상길은 요즘 어때?”
“집과 송우리조트만 오가고 있습니다. 퇴근 후에도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고, 그를 만나러 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만나지는 않지만 연락하는 자는 있겠지.”
“언젠가는 드러나게 될 겁니다.”
“계속 잘 감시해.”
“예, 회장님.”
* * *
엄현태는 카페 안으로 들어와 두리번거리다 나라일보 사장의 딸, 배희진을 발견했다.
창가에서 떨어진 곳에 있는 그녀가 자신을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얼마 전 그녀와 맞선을 보았었다.
그날 자신이 지원하던 유휴지 개발사업단장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만남도 갑작스럽게 끝이 났다.
그것으로 그녀와의 인연은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만나자는 연락이 온 것이다.
며칠 후에 유럽으로 떠나야 하는 엄현태는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날의 실례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나왔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엄현태가 마주 앉으며 얘기했다.
“아니에요. 저도 조금 전에 왔어요.”
“그날은 실례가 많았습니다.”
“사과하러 나오신 거군요?”
“직접 만나서 얘기하는 게 예의라 생각했습니다.”
“그날 현태 씨 얘기 인상적이었어요.”
“제 얘기요?”
“힘 있는 집안의 여자가 필요하다고.”
“아……!”
그랬다.
엄현태는 맞선을 나온 그녀에게 관심이 없는 이유를 그렇게 얘기했었다.
“그 말이 실례를 범했다면…….”
“불륜이었어요.”
뜬금없는 그녀의 말에 엄현태는 어리둥절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겁니까?”
“단장 추천위원회에 투서된 내용이 천명기 씨의 불륜에 관한 거였고, 그래서 갑작스레 사퇴하게 됐죠.”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추천위원회는 투서 내용을 밝히지 않았지만, 엄현태는 정보망을 동원해서 알아내었다.
진작 그 사실을 알았다면 그를 단장 후보자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늦게 안 것이 후회스러웠다.
“아시는군요.”
“나라일보 기자 동원해서 알아내신 거 같은데, 저보다 늦군요.”
“나라일보의 취재력을 얕잡아보는 느낌이네요.”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사실 엄현태는 나라일보 취재력이 실망스러웠다.
그런데.
“그럼 투서가 추천위원회에 도착한 그 시각, 현태 씨 형님과 한주혁 사장이 만났다는 건 아세요?”
“예?”
금시초문이다.
엄현태는 당황스러워 어떤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배희진이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날 한주혁 사장이 추천위원회 위원들과 회의를 했다는 것도 아세요? 천명기 씨를 자진해서 사퇴하게 하자는 결론을…….”
“잠깐만요.”
엄현태가 그녀의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지금 하는 말, 그러니까 형님이 투서와 관련되어 있다는 겁니까?”
“네. 나라일보 취재에 의하면요.”
엄현태는 순간적으로 분노가 끓어올랐다.
천명기의 사퇴로 인해 자신은 송우건설에서 밀려나 송우물산 유럽 지사로 떠날 처지가 되었다.
그런데 그게 형의 계획이었다니.
유휴지 개발사업이 무산되어 버린 지금, 자신에겐 만회할 기회조차 없다.
더욱 화가 나는 건, 형은 자기 자리를 지키는데 자신만 떠나야 한다는 것.
“유럽으로 유배 가신다던데.”
“…….”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말에 엄현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가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아버지가 용서해야만 돌아올 수 있는 유배가 맞기 때문이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
“마음에서 멀어진 자식은 승계에서 완전히 밀려나는 거겠죠.”
엄현태가 걱정하는 게 바로 이것이다.
유럽에 있을 동안 형과 동생들은 아버지 곁에서 성과를 보일 텐데, 자신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남에게서 들으니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이봐요! 지금…….”
엄현태가 목소리를 높이는데, 그녀가 말을 자르며 얘기했다.
“그 출국, 취소하려면 공을 세워야죠.”
엄현태는 멈칫했다.
그녀의 표정이 뭔가 할 얘기가 있는 듯 보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힘 있는 집안의 아내를 원한다고 했죠? 출국을 막고 송우건설로 복귀하게 하면 증명이 되는 건가요?”
“그게 무슨…….”
배희진이 엄현태에게 서류봉투를 건넸다.
그 봉투 속 문서를 꺼내 본 엄현태의 눈이 커졌다.
* * *
레스토랑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룸 앞에 도착한 현호.
직원이 문을 열어주자 안으로 들어갔다. 룸에는 남현민 검사가 있었다.
할아버지가 남기신 차명재산을 아버지가 독차지했다는 걸 알게 된 작은아버지가 송우그룹의 비자금을 언론을 통해 터트렸다.
그 사건을 맡아서 무혐의로 처리한 검사 남현민,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왜 보자고 한 겁니까?”
현호는 맞은편에 앉으며 물었다.
그 사건 이후 그에게 연락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 그가 먼저 만나자는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송우미디어 사장으로 취임했다는 얘기 들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반말까지 했던 그가 뜻밖에 정중한 태도로 얘기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정답게 축하 인사를 나눌 사이던가요?”
“상황이 달라지면 관계도 변하게 되죠.”
엄현호는 순간 알아차렸다.
그의 신상에 변화가 있다는 것을.
“글쎄요…… 제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 거 같은데.”
“엄 사장, 우리 동지 합시다.”
“저는 송우그룹 사람입니다. 성국그룹에 매여 있는 분과 어떻게 동지를 합니까?”
그의 인상이 구겨졌다.
역시, 짐작대로 성국그룹과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좋아, 까짓것 다 얘기하죠.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니까.”
“…….”
“총장이 날 좌천시키려고 합니다.”
“정기 인사 때가 아닌 것으로 아는데요.”
“보복성 인사입니다. 내가 총장의 약점을 잡고 있었는데, 그 약점이 사라졌어요.”
“약점이 사라지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총장 형님이 저지른 비리를 총장이 은폐한 적이 있어요. 그걸 내가 알고 있었는데…… 그 형님분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무슨 사정인지 알겠다.
총장의 약점을 잡은 남현민 검사는 출세 코스를 밟아 나갈 생각이었다.
약점 때문에 코가 꿰인 총장은 지방 한직에 있던 그를 대검 중수부로 끌어올렸고,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으리라.
그런데 그 약점이 사라지자 눈엣가시 같던 그를 지방으로 내쫓으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다.
성국그룹이 남현민 검사를 관리하고 있다. 성국그룹에 부탁하면 지방 좌천쯤은 막아 줄 텐데, 왜 자신에게 부탁하는 것인지.
“약점이 사라졌어도, 남 검사님 뒤에는 성국그룹이 있지 않습니까.”
“원망할 생각은 없지만, 엄 사장 때문에 성국그룹이 날 버렸어요.”
나 때문에 성국그룹이 남현민을 버렸다고?
이거, 흥미로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