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47
47화 현호 라인
“오늘 대학에 출근 안 했니?”
거실에서 차 한잔을 하고 있던 최유경.
큰며느리 채연희가 자신 곁으로 오는 것을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기말고사 기간이라 강의는 없어서 천천히 출근해도 돼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원래 오전에 교수 회의가 있었다. 그걸 어젯밤 급히 오후로 조정했다. 특별한 손님을 만날 볼 요량으로 미룬 것이다.
“그러면 부족한 잠이라도 더 자지 그랬니?”
“아랫동서 될 사람이 오는데 저도 인사하고 결혼 준비 도와야죠.”
엄현태의 결혼 발표가 있은 후, 시어머니 최유경으로부터 배희진의 방문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가 한 얘기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바깥일로 바쁜 사람이 결혼 준비까지 도울 여력이 어디 있겠어.”
“아무리 바빠도 집안의 큰며느리로서 당연히 어머니를 도와야죠. 그런데 상견례를 하기도 전에 어머니 먼저 찾아뵙는다고 하니 의외네요.”
“혼자 어른 만나는 거 쉽지 않을 텐데, 요즘 젊은 애들 같지 않은 면이 있구나.”
채연희는 배희진을 칭찬하기 위해 한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대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는 면이 있죠.”
“젊으니까.”
최유경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자 채연희가 다시 물었다.
“어머니는 불편하지 않으세요?”
“음……?”
최유경이 의아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저는 좀 불편하네요. 아는 게 이름밖에 없는데 이렇게 불쑥 찾아온다니.”
“아…….”
최유경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너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한 식구 될 아이니, 예쁘게 생각해 주어야지.”
“그래야죠.”
마음과는 다른 대답을 했을 때였다.
“사모님.”
박경국 과장이 거실로 들어왔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쪽으로 모시고 오세요.”
“네.”
박경국이 거실 밖으로 사라졌다가 곧 배희진을 데리고 왔다.
긴 머리를 단정히 뒤로 묶은 그녀가 허리를 숙이며 밝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배희진이라고 합니다.”
“어서 와요. 반가워요.”
“어머니, 말씀 낮추세요.”
첫 만남에서부터 싹싹하게 얘기하자 최유경이 후덕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까? 이쪽은 내 큰며느리이니 인사해.”
배희진이 채연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배희진입니다.”
“반가워요. 오느라 고생했어요.”
“말씀 낮추세요.”
“아직 결혼한 거 아니잖아요. 결혼식까지 마치고 정식으로 우리 집 식구 되면 그때 낮출게요.”
“……!”
배희진은 그녀가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건방지게 굴지 말라는 경고라는 걸 알아차렸다.
마음 같아서는 제대로 대꾸하고 싶었다.
하지만 시어머니 되실 분이 함께 있으니 참을 수밖에.
배희진은 생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네요.”
* * *
세 여자가 첫 만남을 갖던 그 시각, 현호는 남현민 검사를 만나고 있었다.
“김형희에 대해 알아낸 게 뭡니까?”
그는 외숙부 최해식을 밀어내고 내년 재경부 차관으로 승진 예정이다.
“해외로 골프 여행을 자주 갔더군요. 고위 공무원이 국내에서 골프를 쳐도 한 소리 듣는데, 해외로 골프 여행까지 가는 건 문제죠.”
현호는 그의 대답이 의아했다.
이 정도 문제로는 그의 승진을 막는 걸 장담할 수 없다. 그걸 남현민 검사가 모르지 않을 텐데…….
“불법도 아니라 사과 한마디 하고 끝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이걸로는 부족합니다.”
“부족하죠. 그런데 도박을 했다면요?”
역시, 다른 게 있었군.
“도박을 했습니까?”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남현민이 봉투를 건넸다.
현호는 그 봉투 속 문서를 꺼내 봤다.
도박장에서 있었던 일에 관하여 대화를 나눈 메신저 내용이었다.
현호는 흠칫 놀랐다. 이런 개인적인 것을 어떻게 손에 넣게 된 것인지.
“이걸 어떻게……?”
“골프 여행을 혼자 갈 리 없죠. 함께 간 김형희 씨 지인을 구워삶았더니 나온 겁니다.”
상황이 이해가 된 현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수고했습니다.”
“이제는 제 차례인데, 검찰총장 잡을 물건을 주기로 했잖아요.”
“약속은 지켜야죠.”
현호는 그에게 봉투를 건넸다.
그 봉투 속 문서를 꺼내어 본 남현민이 의아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건, 총장님 아들 진료 자료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건강에 문제없다는 자료죠.”
“이걸로 어떻게 총장님을 잡습니까?”
남현민의 표정에는 황당한 기색이 흘렀다.
그 표정을 보며 현호는 여유있는 미소로 대답했다.
“그 아들이 군 면제 된 건 모르나 봅니다.”
“아……!”
건네받은 자료가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된 남현민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 * *
대검찰청 차장검사실.
남현민 검사는 한 손에 봉투를 쥐고 차장검사실 안으로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무슨 일로 온 거지?”
차장검사 박영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차장님께 전해 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남현민이 그의 책상 위로 봉투를 내려놓았다.
의구심을 담은 눈으로 박영준 차장이 물었다.
“이게 뭐야?”
“열어 보십시오.”
여전히 의구심을 풀지 않은 기색으로 그가 봉투 속 자료를 꺼내 봤다.
“이 진료 자료는 뭐야?”
“차장님을 검찰총장이 되게 해 줄 무기입니다.”
“뭐?”
“총장님 아드님이 군 면제라는 건 아십니까?”
“그랬어? 그런데 그게…… 아!”
박영준 차장이 그가 받은 자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린 듯했지만 남현민은 확실하게 얘기했다.
“총장님 아들 병역 비리를 증명해 줄 자료입니다.”
대답을 들은 박영준은 이내 의구심이 들어찬 눈으로 남현민을 쳐다봤다.
“내일 밀양지청으로 인사 발령이 난다는 거 알고 있어?”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왜 내게 가져왔어?”
“조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검찰총장이 되실…….”
박영준이 그의 말을 끊었다.
“성국그룹이 널 버렸다는 소문이 맞나 보군. 좌천을 막아 줄 데가 없어서 날 찾아온 걸 보니.”
“……!”
“네가 총장님 멱살 잡아 중수부로 온 거 알고 있어. 잡고 있던 게 사라져 좌천되니 이걸 내게 주고 매달려 보고 싶은 거야?”
남현민이 예상했던 대로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다. 이 고비를 넘어야 엄현호의 후원으로 얻게 될 찬란한 미래를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차장으로 끝나도 괜찮으신가요?”
“……!”
남현민은 박영준의 미간이 꿈틀하는 걸 봤다.
자신의 물음이 그를 불편하게 한 것이다.
그는 한때 성국그룹의 관리 대상이었다. 하지만 내부 권력 다툼에서 검찰총장에게 진 뒤로 성국그룹과의 관계가 소홀해졌다.
아픈 곳을 건드리는 게 효과적일 수 있다.
“총장님 라인이 영전하는 동안 차장님 라인은 물먹었죠. 그렇게 후배들을 내버려 두고 검찰을 떠날 생각이시면 이 자료, 다른 분께 넘기겠습니다.”
가만히 남현민을 응시하던 박영준이 입을 열었다.
“네 뒤를 봐주는 사람이 누구야?”
“예?”
“이 자료, 송우병원에서 유출된 거 같은데 송우그룹 비자금 덮어 준 대가로 받은 거야?”
성국그룹 대신 송우그룹으로 갈아탔는지를 묻는 거다.
남현민은 엄현호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만약 얘기한다면 그가 이용하려 할 것이다.
“차장님은 엄상현 회장님을 잘 모르시죠?”
현호가 자신에게 한 말을 이용해 대답했다.
“회장님이 성국그룹과 손잡았던 저를 믿고 지원하실 분은 아니죠.”
“그러면 이 자료는 어떻게 구했어?”
“어떻게 구했든 무슨 상관입니까. 차장님을 검찰총장으로 만들어 주고, 저는 좌천되지 않게 해 줄 동아줄인데.”
“그래서 네가 진짜 원하는 게 좌천되지 않는 거 하나뿐이야?”
“승진도 시켜 주십시오. 검찰총장이 되시면 여러 그룹에서 차장님을 귀하게 대할 테니, 노후 걱정하실 필요도 없지 않습니까.”
“뭐?”
당황해하는 박영준 차장의 반응을 보면서도 남현민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협박도, 제안도 제가 총장님께 직접 하겠습니다. 이 문제를 조용히 덮을 테니 스스로 사퇴하고 다음 총장으로 차장님을 추천하라고 말이죠.”
순간 박영준의 눈에 이채가 서리며 엷은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
그걸 본 남현민은 알았다.
자신이 밀양지청으로 내려갈 일은 없다는 걸.
* * *
MCB 보도국.
취재원을 만난 후 사무실로 복귀한 황신철 기자는 자신의 책상에 놓인 서류 봉투를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봉투에 보낸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거 누가 가져다 놓은 거야?”
“퀵으로 배달 온 거야.”
“……!”
동료의 대답에 순간 황신철의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전 대통령 주치의 아들의 병력 비리 제보.
당시 그 제보도 퀵으로 배달 온 것이었다.
황신철은 서류 봉투 입구를 찢어 안의 문서를 살폈다.
재경부 간부에 관한 자료였다.
문서를 읽던 그가 흠칫 놀라 혼잣말을 내뱉었다.
“도박을 했어?”
* * *
며칠 후.
신문에서 일제히 검찰총장 소식을 전했다.
[검찰총장, 대통령께 사의 표명.]
[검찰총장,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현호는 이미 남현민 검사에게 연락을 받아 사정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준 자료로 차장검사와 딜을 한 남현민 검사. 그의 좌천은 취소되었고, 박영준 차장이 다음 총장 후보자로 추천되었다는 것을.
이제 차관 승진이 유력한 재경부 간부의 건만 해결되면 된다.
그에 관한 자료를 제보한 지가 며칠 되었으니, 그 소식이 보도될 때가 되었을 터.
퇴근하고 돌아온 현호는 저녁 뉴스 시간에 맞춰 TV를 켰다.
TV 속 앵커가 감정 없는 얼굴로 보도를 시작했다.
[경기 침체로 인해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하고 돌봐야 할 재경부 공무원이 해외로 골프 여행을 가고, 도박장까지 드나든 것이 드러났습니다.]
드디어 나오는구나!
TV 화면에 공항의 모습이 보이며 황신철 기자의 보도가 이어졌다.
[두 달 전, 김 모 재경부 간부가 지인들과 함께 동남아로 출국했습니다. 2박 3일간의 여행 목적은 골프 여행인 듯 보였습니다.]
TV 화면의 장면이 해외 도박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들은 첫날 저녁, 도박장으로 향했고, 그것으로 3일간 계속되었습니다.]
뒤이어 한 메신저 대화가 자료 화면으로 떠올랐다.
[재경부 간부 김 모씨가 지인들과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통해, 정황은 모두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디리리리.
갑자기 현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외숙부 최해식의 전화였다.
[현호야, 방금 뉴스 봤어?]
“네, 봤어요.”
[뉴스에서는 김 모 재경부 간부라고 하는데…….]
“짐작하시는 대로 김형희 씨 맞아요.”
[뭐?]
화들짝 놀란 목소리가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 거냐?]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아요. 김형희 씨 밀어내겠다고.”
[…….]
무척 놀랐는지 그는 어떠한 얘기도 하지 못했다.
이런 그의 반응에 현호의 입가에는 여유로운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