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5
5화 최 비서를 만나다
“현호가 재단에 출근했다고?”
송우미디어 회장, 엄상철은 믿기지 않는 듯 눈초리를 올렸다. 그러자 그의 딸 엄수경이 확실한 듯 힘주어 얘기했다.
“제 비서가 직접 확인했어요, 아버지.”
“꼬투리 잡히고 싶지는 않았나 보군.”
“무슨 꼬투리요?”
“재단 이사장이 출근하지도 않고, 일도 안 하면서 월급만 타 간다는 게 알려지면 곤란할 테니까.”
“그럼 큰아버지는 아버지가 알릴 거라 생각한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출근시켰겠지. 놀기에도 바쁜 애인데.”
엄상철은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제가 현호를 만나 볼까요?”
“그 애는 왜?”
“큰아버지 속셈을 알아낼 수도 있잖아요.”
“퍽이나. 현호 그놈이 뭘 안다고. 제 아버지가 가라고 하니 간 거겠지.”
“망나니짓을 좀 했지만, 생각이 아예 없지는 않아요. 자기 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는데 억지로 재단에 끌려 나갔으니 큰아버지에 대해 불만이 있을 거예요.”
“……!”
엄상철은 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렸다.
“불만을 조금만 건드려도 큰아버지에 대한 불평과 집안의 일들을 이것저것 말할 거예요. 그런 얘기 듣는다고 우리에게 손해는 아니잖아요.”
“흠…… 그럼 한번 만나봐.”
“예, 아버지.”
똑똑.
서재를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비서가 들어왔다.
“회장님, 황원기라는 분이 찾아왔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예.”
잠시 후, 까끌까끌하게 턱수염이 나고 피곤한 기색의 황원기가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오랜만이야, 황 사무장. 앉게.”
그가 소파 한쪽에 앉자 엄상철 회장이 먼저 물었다.
“서로의 처지를 아는 마당에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지. 아버지의 차명재산이 어느 정도였어?”
“주식과 부동산이 있었습니다.”
엄상철 회장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건 지난번에 얘기했던 거잖아.”
“더 정확히 알고 싶으시면 제가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사시면 됩니다.”
“자네는 사업을 했다면서 거래의 기본도 모르나? 어떤 물건인지도 모르고 돈부터 주는 사람은 없어.”
“물건 나름이죠. 물건 보기도 전에 돈부터 걸어 둬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의 대꾸에 엄상철이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사기꾼들이 그런 수법을 쓰지. 안 보여 주고 애태우며 값만 높여 놓는데 실제는 쓸모 있는 게 없어.”
엄상철 회장의 대꾸가 그를 자극했는지, 잠시 생각하던 황원기 전 사무장이 입을 열었다.
“송우미디어 주식 4퍼센트. 이 정도면 쓸모가 있겠습니까?”
그의 대꾸에 엄상철 회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자신과 딸의 지분을 합치면 17퍼센트.
그리고 엄상현과 송우전자가 가진 송우미디어 지분은 6퍼센트. 그리고 엄상현은 7퍼센트에 달하는 우호지분을 끌어오는 게 가능했다.
거기에 재단의 4퍼센트까지 더해진다면…….
송우미디어의 경영권을 위협받기엔 충분한 수치였다.
“아버지가 그 주식을 내게 주라고 한 확실한 증거는 있나?”
“예, 회장님.”
“얼마를 원하나?”
“30억입니다.”
“뭐?”
엄상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봐, 30억이 어디 구멍가게 이름인 줄 알아!”
“송우미디어 주식을 찾아올 수 있는 자료…… 필요 없으십니까?”
그 물음에 엄상철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재단의 재산에 송우미디어 주식 4퍼센트가 포함되어 있는 게 사실이라면, 30억은 문제도 아니었으니까.
“고민할 시간을 드리죠. 다만…… 거절하신다면 저는 엄상현 회장님과 새로운 거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뭐……! 지금 감히 날 협박하는 거야!”
엄상철이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황원기는 망설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황원기는 고개 숙여 인사한 뒤 서재를 나갔다.
그러자 잠자코 지켜만 보고 있던 엄상철의 딸, 엄수경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정말 30억을 주실 거예요? 저 사람, 회사 부도 나서 도망 다니고 있어요. 발등에 불 떨어졌는데 무슨 거짓말을 못하겠어요. 진짜로 증거가 있으면 오늘 보여 주러 가져왔겠죠.”
“가져왔으면 우리가 곱게 돌려보내지 않았을 거라는 것도 알 놈이야. 일단 30억 준비는 해 놔.”
“아버지.”
“걱정하지 마. 자료만 갖게 되면 30억은 다시 가져올 거야.”
엄상철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황원기를 곱게 보낼 생각은 없었다.
뭐가 됐든 결국 그는 엄상현과 함께 짜고 차명재산을 숨긴 공범이니까.
* * *
엄상현의 서재.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박경국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박 과장?”
“회장님, 방금 황원기 전 사무장 움직임에 대해 연락이 왔습니다.”
“뭔데?”
“황 사무장이 조금 전 엄상철 회장님 댁을 찾았다고 합니다. 자료를 주었을까요?”
“그 집에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달라진 게 있었나?”
“아뇨. 가방도 없었고, 빈손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료가 있는 곳을 말했을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돈 필요한 놈이 돈 받지 않고 어찌 얘기할까. 이체나 수표는 안 돼. 현금이어야 하지.”
박경국 과장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황 사무장 가족은?”
“알아보니 아내와 자식들은 한 달 전 미국으로 출국했습니다.”
“버러지 같은 놈. 각오하고 일을 벌였군. 그렇다면 각오한 대로 해 줘야겠지. 박 과장이 이번 일 맡아 줘야겠어.”
“예, 회장님.”
“그 애들에게 시켜서 자료 찾아내고, 황 사무장은 깔끔하게 처리해.”
“알겠습니다. 아! 저, 회장님.”
박경국이 갑자기 생각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현호 도련님이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현호가? 뭔데?”
“송우전자 비서실 직원을 수행 비서로 쓸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왜?”
“처음 하는 재단 일이 심적으로 부담이 있는 듯 보입니다. 그래서 송우그룹 일을 아는 직원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흠…….”
엄상현 회장은 재단 민동재 사무장과 했던 말을 떠올렸다.
-이사장님께서 정말 열심히 일을 배우려고 하십니다. 보고 있던 직원들도 칭찬하던걸요.
예전 같으면 수행 비서 채용에 관심조차 없었을 아들이다. 그런데 직접 부탁까지 했다는 건 나름 잘해 보려고 애쓰는 것이리라.
“자네가 비서실장에게 연락해서 한 명 보내라고 해.”
“예, 회장님.”
* * *
‘아, 씨발. 미친. 젠장.’
어머니가 올해 초에 보신 토정비결에는 귀인을 만날 거라고 했는데…… 망나니라니.
다음 날, 성북동 대문 앞에 서 있는 최명준은 이 현실이 꿈이기를 바랐다. 눈 감았다가 뜨면 사라질 허상.
최명준은 꿈에서 깨어나길 바라며 눈을 꾹 감았다가 떴다.
그러나 눈앞에 철로 된 커다란 대문이 그대로 있었다.
‘제기랄. 왜 하필 나야.’
비서실 직원으로서 회장 가족에 대해 외부에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일반 사원보다는 그 가족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다.
엄현호.
그는 엄상현 회장 가족의 가장 큰 골칫덩이였다.
사고를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인간적으로 안타까워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의 수행 비서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3개월을 버틴 수행 비서가 없을 정도였다는데.
그런 사람의 수행 비서를 왜 자신에게 하라고 했을까. 해고 신종 수법인 걸까.
최명준은 사표를 써야 하는지 밤사이 고민했다.
하지만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무작정 사표를 던질 수는 없었다.
“여기서 뭐 합니까?”
“앗! 깜짝이야.”
트레이닝복 차림의 젊은 남자가 의아한 듯 쳐다보고 있었다.
“여기 볼일 있어 온 겁니다. 신경 쓰지 말고 하시던 조깅 하세요.”
“마치고 온 겁니다. 안으로 들어갈 거죠?”
“그렇기는 한데…….”
말도 끝나지 않았는데 남자가 벨을 제멋대로 눌렀다.
“저, 저기요!”
최명준이 화들짝 놀라 그를 제지하려던 그때였다.
드르르르.
철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경비실에서 누구인지 묻지도 않은 채.
그제야 최명준은 무언가를 알아차리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혹시 엄현호 이사장님……?”
“네, 반갑습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시죠, 최명준 씨.”
최명준은 다시 한번 화들짝 놀라며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이사장님, 몰라봬서 죄송합니다.”
“처음 봤으니 몰라보는 건 당연한 거죠.”
“예? 아, 예.”
“나는 본관으로 갈 겁니다. 최 비서는 작은 별관으로 가서 박경국 과장을 먼저 만나세요. 식사는 안 했죠?”
“예.”
“작은 별관에 직원용 식당이 있습니다. 식사하고 본관으로 오세요.”
엄현호는 본관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최명준은 당혹스러웠다.
‘반말한다고 했는데?’
회사 선배들에게 전해 들은 얘기로는 엄현호는 나이, 경력에 상관없이 수행 비서에게 반말한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행동은 점잖았고 말투도 친절했다.
‘뭐지?’
소문과 달라서 당혹스러운 것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송우문화재단으로 가는 길.
신호가 바뀌기 전 급하게 속도를 올려 좌회전했다. 그 바람에 현호의 몸이 옆으로 휙 기울어졌다.
현호가 신호에 걸리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는 이야기에, 급한 마음에 너무 속도를 높이고 만 것이다.
“죄, 죄송합니다, 이사장님.”
최명준은 황급히 사과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현호의 반응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관성의 법칙 때문인데, 왜 사과합니까?”
“예? 아, 그래도 제가 속도를 높이는 바람에…….”
“재단에 늦는 것도 아닌데 속도는 왜 높였습니까?”
“예? 아, 신호에 안 걸리려고…….”
“그런 거 신경 안 써도 되니 정상 속도로, 신호 지키며 운전하면 됩니다.”
“아, 예.”
이쯤 되자 최명준은 회장의 막내아들에 관해 얘기해 준 선배들에게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젯밤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거 생각하면 선배들에게 전화해서 욕이라도 하고 싶었다.
뒷좌석의 현호는 안도하는 기색의 최명준을 보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때, 현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현호니? 나야.]
작은아버지의 딸, 엄수경이었다.
“수경이 누나, 어쩐 일이야?”
그녀가 왜 전화했는지 짐작이 된다. 하지만 모른 척 반갑게 말했다. 그녀에게는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사촌 동생이어야 하니까. 그래야 계획대로 진행할 수 있다.
[너 재단에서 일 시작했다고 하던데?]
“어제부터 출근했어.”
[해 보니 어때?]
“글쎄, 모르겠어.”
일부러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예상했던 질문이 들어왔다.
[왜, 너랑 안 맞아?]
“그렇지, 뭐.”
[큰아버지는 왜 재단에 널 보낸 거야?]
“밥값은 해야 하니까.”
[내 사촌 동생, 짠하네. 응원할 겸 내가 점심 사 줄게. 오늘 시간 어때?]
“정말이야?”
[내가 언제 헛소리하는 거 봤어? 문자로 시간, 장소 보낼 테니까 나중에 보자.]
“고마워, 누나.”
전화를 끊고 피식 웃었다.
그녀는 지금쯤 어떤 정보를 캐낼지 머리를 굴리고 있으리라.
그녀의 의도가 먹히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끝의 승자는 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