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51
51화 엄현식을 구하다
“모두 녹음이 되어 있었어요.”
성북동 서재.
엄현주는 엄상현 회장에게 장수연이 찾아온 얘기를 했다.
그의 기색을 살피자, 대화가 녹음되리라고는 예상 못했는지 당혹스러운 듯 보였다.
“공개되면 저희만 곤란해지는 게 아니에요. 청와대도 그럴 거예요. 그러면 우리에게 좋을 리 없어요.”
“…….”
엄상현 회장은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초조해지는 건 엄현주였다.
녹음 내용이 공개되는 일이 벌어지면 현주 자신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대통령 주치의를 목적으로 장백진을 송우병원으로 스카우트한 이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대화 내용이 공개되면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어 검찰 수사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 일을 피하려면 아버지가 장백진에게 요구한 것을 취소하게 해야 한다.
‘아무래도…….’
그 계획을 취소하지 않으면 발생할 수 있는 일을 덧붙이는 게 나으리라.
“아버지, 꼬투리 잡혀 국세청이 특별 세무 조사라도 벌이면 우리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검찰 조사도 받게 될 거예요.”
묵묵히 있던 엄상현 회장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맹랑한 계집애군.”
이 말이 끝이었다. 그는 이 일과 관련해 더는 얘기하지 않았다.
엄현주는 이런 아버지의 반응에 내심 안도했다.
그의 계획이 무산되었다는 결론을 이렇게 표현했기에.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는 다른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 * *
이 일이 마무리된 얼마 후, 엄상현 회장의 자식들 간에 갈등이 드러나는 일이 발생했다.
나라일보에서 보도한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에 관한 단독기사 때문이었다.
[김석만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의 부동산 매직, 매입 몇 개월 후마다 개발 호재]
[김석만 이사장의 땅, 정무수석에게 헐값에 넘긴 한 달 후 이사장에 임명]
“수석님, 오해가 있으신 듯합니다.”
나라일보 단독기사의 불똥이 엄현주에게 튀었다.
구진수 정무수석과 통화하는 그녀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오해라고요?]
정무수석의 목소리는 격앙되어 있었다.
[나라일보와 송우그룹은 사돈지간 아닙니까! 내가 만만해요?]
“그럴 리가요, 수석님. 사돈은 맞지만, 이번 일은 저희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송우중공업 측에서 공단 이사장을 만났어요. 그리고 이 일이 터진 겁니다. 누굴 바보로 알아요?]
엄현주는 흠칫 놀랐다.
큰오빠가 이사장을 만났다고?
정무수석의 말은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기사를 냈다는 것이다.
누구의 의도인지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작은오빠, 엄현태.
그의 아내 배희진을 이용해 어떤 일을 꾸미고 있는 것이리라.
[나를 만만하게 봤다가는 후회하게 될 겁니다.]
“수석님, 수석님!”
뚝. 통화가 끊어졌다.
“아, 진짜, 미친!”
엄현주는 솟구치는 짜증으로 소리를 질렀다.
작은오빠가 저지른 일에 자신이 피해를 보게 생겼다.
‘아, 어쩌지?’
그녀는 사무실을 서성이며 생각했다.
작은오빠에게 따지거나 화를 낼 수는 없다.
이번 일의 타깃은 큰오빠일 것이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간섭하면 정무수석과의 관계가 드러날 수 있다.
어렵게 청와대 인맥을 만들었는데 어이없이 무너뜨릴 수는 없다.
‘큰오빠가 가만히 있지 않겠지?’
이 일을 수습하려 행동할 것이다.
무조건 큰오빠를 도와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 * *
현호도 사장실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다.
전생에 송우중공업은 신진종합기계의 인수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곳의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었다.
그러나 전생에서는 공단 이사장과 정무수석을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전생과 다르게 배희진이 가족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작은형이 왜 이런 일을 했는지는 짐작이 된다.
큰형의 신진종합기계 인수 계획을 방해하려는 것.
‘공단 이사장은…… 사퇴하겠지.’
부동산 투기 의혹이 사실인지 아닌지, 지금 상황에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물어뜯기에는 너무나 좋은 먹잇감이다.
나라일보뿐만 아니라 다른 언론사들도 뒤따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야당에서는 의혹을 더욱 부채질하며 정부를 공격할 것이다.
이사장은 버티지 못하고 사임하리라.
일단 작은형의 계획은 성공한 셈이다.
‘정무수석은…….’
공단 이사장을 뒤지다가 그물에 걸려든 케이스겠지.
그로 인해 공단 이사장의 비리 의혹이 더욱 짙어졌다.
이대로라면 정무수석도 사퇴하게 되리라.
‘그러면 새로운 공단 이사장은……?’
작은형은 임명 과정에 개입해서라도 큰형에게 불리한 사람이 임명되게끔 계획하리라.
큰형도 가만있지는 않을 테고.
두 형이 싸우는 틈새에서 다른 기업이 신진종합기계를 인수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면 안 되는데.’
현호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큰형을 도와줘야겠네. 그런데 현주 누나도 도우려 하겠지?’
큰형과 누나가 한마음이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그리고 작은형이 새로운 공단 이사장에 개입할 수 없게 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가능하게 하려면……?
순간, 현호의 머릿속을 스치는 게 있었다.
‘정무수석을 살려야겠네.’
엷은 미소가 현호의 입가에 퍼졌다.
* * *
어두운 밤.
엄현태는 늦게 성북동으로 귀가하게 되었다.
정원을 지나 본관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야!”
큰형 엄현식의 목소리에 뒤돌아봤다.
날 선 눈빛의 그가 다가왔다.
“뭐 하는 짓이냐?”
“무슨 소리야?”
엄현태는 일부러 못 알아듣겠다는 듯 딴청을 피웠다.
“왜 내 연락 피하는데?”
“오늘 좀 바빴어. 연락 왔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회의가 많아서 바빴거든. 왜, 무슨 일인데?”
“하…….”
엄현식이 어이가 없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공단 이사장에 대한 단독기사, 네 짓이잖아.”
“공단 이사장? 아! 머리기사만 잠깐 봤는데, 그 기사가 왜?”
현태의 뻔뻔한 태도에 엄현식은 분노가 치솟아 비아냥거렸다.
“넌 좋겠다. 제수씨 잘 만난 덕에 처가댁 신문을 네 찌라시처럼 이용할 수 있어서.”
“내가 뭘 잘못했다고 형한테 이런 소리 들어야 해?”
“뭐?”
“나라일보는 늘 하던 일을 했어. 신문에 비리 의혹 기사가 나는 거 새로운 일도 아니잖아. 그런데 비리를 보도했다고 형이 내게 따질 정도면, 그 사람과 함께 뭔가 켕기는 일이라도 했던 거야?”
조롱하는 그의 대꾸에 엄현식은 눈을 부릅떴다.
“너! 잘 들어. 네가 무슨 짓을 하든지, 네 뜻대로 안 될 거야.”
“형 뜻대로 안 되는 걸 내게 화풀이하지 마.”
“뭐어?”
어이없어 인상을 찌푸리는 엄현식.
그런 그에게 비웃음을 흘리는 엄현태, 본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저 자식이…….”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 엄현식이 싸울 기세로 발을 뗐다.
그때.
“형.”
움찔 놀란 엄현식이 뒤돌아보니, 현호가 그에게 다가왔다.
“작은형이랑 왜 다퉈?”
“네가 뭔 상관이야?”
“오늘 나라일보 단독기사 때문에 다투는 거 같아서.”
“단독기사, 그거 현태가 내 골탕 먹이는 거야.”
“정말이야?”
현호는 일부러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를 믿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자, 그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나랑 사업 얘기하고 있는 공단 이사장을 밀어내려는 수작이라고.”
“그분과 사업 얘기하고 있었어? 기사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온종일 시끄러웠어.”
“땅 좀 산 게 뭐가 어때서 지랄이야.”
“이사장 못 버틸 거 같던데, 형 사업은 어떻게 되는 거야?”
“…….”
대답하지 못하는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새로운 이사장이 임명되면 진행될 수 있는 거야?”
“현태가 또다시 장난치면…….”
현호가 그의 말을 자르며 얘기했다.
“새 이사장은 형이 원하는 분으로 임명되게 하면 되잖아.”
“사장님 소리 듣고 다니니, 세상이 쉬워 보이냐?”
“쉽지 않다는 것쯤 나도 알아. 근데 형이라면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 사람을 살리면 방법이 생길 테니까.”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조금 전까지 못마땅한 기색이던 엄현식의 표정이 바뀌었다. 호기심이 깃든 얼굴로 현호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그 사람을 살리면 방법이 있다니, 누구 말이야?”
빨리 얘기해 달라는 눈빛이었다.
그의 간절한 눈빛에 피식 웃은 현호가 얘기했다.
“정무수석.”
“벌써 사퇴하라고 정치권에서 날린데, 어떻게 살려?”
“오늘 기사로 정무수석은 나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졌어. 사람들도 그렇게 볼 거야. 그런데, 사실은 좋은 사람이었다, 라고 반전이 이뤄진다면, 어떨 거 같아?”
“아……!”
현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엄현식.
어두웠던 그의 혈색에 생기가 도는 것처럼 밝아졌다.
“서둘러야 할 거야, 형.”
“어! 그래, 고맙다, 현호야. 내가 좀 바빠서…… 나중에 보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떠오른 듯한 엄현식, 본관 안으로 부리나케 들어갔다.
* * *
빠른 걸음으로 거실을 지나쳐 가던 엄현식.
앞쪽에서 걸어오던 엄현주가 그를 발견했다.
“오빠, 나 할 얘기 있어.”
“바빠. 급한 거 아니면 나중에 얘기하자.”
무심히 그녀를 지나쳐 가려는데, 현주가 서둘러 얘기를 꺼냈다.
“도와줄게.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
“뭐?”
엄현식이 의아한 얼굴로 돌아보며 대꾸했다.
“네가 뭘 안다고 도와주겠다는 거야?”
“왜 이래? 나도 그런 기사가 누구 때문에 나온 건지 알 만큼 경험 있어. 작은오빠 짓이잖아.”
엄현주는 구진수 정무수석에게서 들은 얘기를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네가 뭘 어떻게 도와주겠다는 거야?”
“도움 되는 거라면 뭐든. 이사장이 살아야, 오빠 사업도 사는 거잖아.”
“이사장 때문에 내가 곤란하게 됐는데, 그 사람을 왜 살려?”
“어?”
엄현식이 짜증이 난 듯 대꾸하자 그녀는 당황스러웠다.
당연히 고맙게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 나오니, 당황할 수밖에.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더 이상 할 얘기가 없다는 듯 엄현식이 다시 빠르게 걸어갔다.
그 모습을 멍한 정신으로 보고 있는데,
“누나, 뭐 해?”
뒤쪽에서 들려온 현호의 목소리에 그녀가 돌아봤다.
현호를 보자 정신이 드는지, 엄현식이 지나간 쪽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 웃겨, 정말.”
“왜 그래?”
“큰오빠 말이야. 도와준다는데, 짜증 내잖아.”
“뭘 도와줘?”
현호는 알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오늘 나라일보 단독기사, 작은오빠 짓이거든. 큰오빠 곤란하게 하려고.”
“정무수석도 곤란하게 됐던데? 혹시, 누나한테 연락 왔어?”
“안 그래도 엄청 화가 났어. 그런데, 큰오빠는 공단 이사장을 살릴 마음이 없나 봐. 그러면, 정무수석도 사퇴하게 되는 거 아냐?”
“아마도. 그런데 누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야.”
“하아…….”
그녀가 기운 빠지는 한숨 소리를 냈다.
그녀를 위로하듯 말은 했지만, 정무수석이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가 사퇴할 일이 없게끔 엄현식이 분위기 조성을 할 테니.
그런 후, 그녀는 알게 될 것이다.
엄현식이 그녀의 인맥인 정무수석을 가로챘다는 것을.
작은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형에게 덜 적대적이었던 엄현주였다.
하지만 이 일로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