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52
52화 면접장에서
큰 별관 응접실.
문이 열리며 박경국 과장이 안으로 들어왔다.
“사장님.”
엄현식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경국은 그가 있는 소파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이십니까?”
“대한일보에 아는 기자가 있다고 했지?”
“네, 사장님.”
“그럼, 정무수석 개인 전화번호를 알아봐 줘. 신문사에는 청와대 출입 기자도 있을 테니,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거 아냐?”
“정무수석의 번호는 왜……?”
“신진종합기계 인수하려면 그 사람 도움이 필요할 거야.”
박경국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 정치권뿐만 아니라 시민 단체에서도 사퇴하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사장님, 그분은 지금 무척 곤란한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이 적기야. 살려 주는 조건으로 거래할 수 있을 테니까.”
“살린다고요?”
흠칫 놀란 박경국이었다.
“지금 분위기가 안 좋은데 어떻게 살리겠다는 겁니까?”
“나한테 다 생각이 있어.”
대답하는 엄현식의 입꼬리에 미소가 걸렸다.
* * *
검은색의 승용차가 도로를 달리고 있다.
서울을 한참 벗어나 달리더니 수목이 잘 정비되어 있는 길로 들어섰다.
곧 나타나는 한옥식 건물.
그 건물 마당에 들어선 차가 멈췄다.
운전석의 문이 열리며 내리는 이는 구진수 정무수석이었다.
구진수는 직원의 안내를 받아 레스토랑 룸으로 들어갔다.
“처음 뵙겠습니다, 수석님.”
엄현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처음 뵙지만, 반갑다는 말은 나오지 않네요.”
구진수의 냉랭한 반응에 엄현식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실 테죠. 지금 겪고 계신 고통이 저희 탓이라 생각하실 테니까요.”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구진수가 맞은편에 앉으며 따지듯 물었다.
“마음 상하신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그 기사는 송우그룹의 뜻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절 보자고 한 겁니까?”
“그 대답을 하기 전에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사퇴 압박을 받고 계신데, 그럴 의향이 있으십니까?”
“뭐라고요?”
구진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해명하듯 대꾸했다.
“공단 이사장과는 예전부터 알던 사입니다. 그 땅은 빌려준 돈 대신 받았고요. 이사장이 아는 사이에 차익 남기지 않겠다고 한 게 헐값으로 둔갑한 겁니다.”
“아…… 그런 거군요.”
엄현식은 그의 억울함을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진심을 믿지 않았다.
빌려준 돈을 땅으로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땅을 시세로 계산해야 더 적은 면적을 넘길 수 있다. 그런데 이사장은 공시 지가보다 낮게 계산해, 결과적으로 더 많은 땅을 주었다.
다른 거래가 있지 않고서는 이사장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엄현식의 판단이었다.
“수석님의 억울함이 이해가 됩니다. 사정도 모르는 사람들이 사퇴하라고 압박하고 있으니 분통이 터질 일이죠.”
“저는 자리에 연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압니다. 다만, 명예를 지키고 싶으신 거겠죠.”
그 명예를 지켜야, 정치인 생명이 이어지리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제게 왜 만나자고 했는지, 물으셨죠? 답을 드리겠습니다. 수석님의 명예를 지켜 드리겠습니다.”
“뭐, 내 명예를 지킨다고요?”
당혹스럽다는 듯 말은 했지만, 그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다.
“엄 사장님이 뭘 어떻게 하시겠다는 얘깁니까?”
“제가 생각하는 플랜입니다.”
엄현식이 그의 앞으로 문서를 내밀었다.
그 문서를 읽은 구진수의 눈이 커졌다.
“여기 적힌 내용은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지금은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제안을 수락하시면 수석님이 하신 일이 됩니다.”
“……!”
무슨 말인지 그가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그는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엄현식은 흔들리는 눈을 보며 그가 갈등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갈등을 서둘러 종결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이거 말고 수석님의 명예를 지킬 방법이 있습니까? 다른 방법을 알고 있고 제가 필요 없으시다면, 그만 일어나겠습니다.”
“…….”
그의 입은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그러자 엄현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고급 요리를 들이라 하겠습니다. 먼 길 오셨는데 식사는 하고 가세요. 그럼.”
엄현식이 가볍게 목례하고 걸음을 떼려 할 때, 구진수의 입이 열렸다.
“그 제안…… 뭡니까?”
엄현식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수석님을 국회로 다시 보내 드리고 싶습니다.”
“예에?”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는지 구진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능력 있는 국회의원이셨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이 다시 국회로 돌아가셔야 나랏일도, 경제도 잘되지 않겠습니까.”
“……!”
굳이 국회의원을 언급한 이유를 그는 알아차린 듯 보였다.
국회의원 선거에는 많은 자금이 든다. 그 자금줄이 되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조건을 제시한 이유가 있다.
엄현식은 국민연금관리공단 새 이사장 임명에만 그의 힘을 이용하고 끝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영향력 있는 중견의 정치인들은 아버지 엄상현 회장과 연줄을 만들려 한다.
사업을 하다 보면 중견 정치인의 도움이 필요한데, 늘 아버지에게 부탁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나라일보의 단독기사가 자신과 구진수를 만나게 했다.
국회의원을 했었던 그는 지금 청와대에 있지만,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갈 것이다.
경제입법뿐만 아니라 대출, 청탁 등 영향력 있는 정치인을 이용할 데는 많다.
“엄 사장님 그 말은…….”
“보궐이든, 총선이든, 말씀만 하세요.”
“……!”
그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을 포착했다.
예상대로 그 또한 정치적 야망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제안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걸 모르지 않을 만큼 경륜도 있다.
이에 엄현식이 물었다.
“수석님,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제 명예를 지켜야 하니까요.”
엄현식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플랜을 바로 시행하라고 하겠습니다.”
엄현식의 플랜은 대한일보를 통해 가동되었다.
다음날부터 정무수석의 선행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무명의 거액 장학금 기부자, 알고 보니 구진수 정무수석]
[노인요양시설 건립 자금 기부한 구진수 정무수석, 매년 남모르게 봉사해]
[기부왕 구진수 정무수석,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에게서 산 땅도 아동복지시설에 기부하려 샀다.]
쏟아지는 그의 선행 소식에 정치권의 사퇴 압박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이 사임했고, 신진종합기계 매각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엄현태의 목적은 달성되었다.
한편, 기부왕으로 이미지 전환을 이룬 구진수는 자리를 지켰다.
* * *
“수석님, 한동안 마음고생 많으셨죠?”
엄현주는 구진수에게 전화를 걸어 다정히 얘기했다.
[아, 예, 뭐.]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하잖아요. 이번 일로 남모르게 하신 수석님의 선행을 국민이 알게 되어 기쁘네요.”
[별말씀을요.]
대답하는 그의 목소리가 예전과 같지 않게 건조했다.
엄현주는 그가 아직 송우그룹에 섭섭한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마음을 달래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수석님 마음고생한 것 털어드릴 겸 좋은 곳으로 예약했습니다. 내일 저녁 시간 어떠세요?”
[송우중공업 엄현식 사장과 선약이 있습니다.]
“예?”
엄현주는 순간 자신이 잘 못 들었나 생각했다.
“선약…… 이요?”
[네, 엄현식 사장님과 있습니다. 어려울 때 진정한 친구를 알 수 있다죠? 이번에 도움을 받아 보니 알겠더군요.]
“……!”
엄현주는 단박에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구진수를 기부왕이란 이미지를 만든 게 큰오빠 엄현식이라는 것을.
[저는 일이 바빠서, 그만 끊겠습니다.]
사실, 갑작스러운 구진수의 선행 소식이 신문에 연일 보도될 때 이상하다고 느꼈었다.
곤란한 상황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그의 힘을 이용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배후가 큰오빠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 * *
송우미디어 사장실.
[진정한 친구! 정무수석이 큰오빠를 이렇게 얘기하더라. 기가 막혀서.]
현호는 흥분한 상태의 엄현주와 통화 중이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네. 큰형, 제법이네.”
현호는 알면서 모른 척 대답했다.
[뭐, 제법? 내 뒤통수쳤는데 그런 말이 나와?]
“뒤통수는 아니지. 큰형은 누나와 정무수석의 관계를 몰랐잖아.”
[너 지금, 큰오빠 편드는 거니?]
“그런 거 아니야. 누나, 흥분하지 말고 차분히 생각해.”
[내 인맥이 큰오빠한테 넘어갔는데, 흥분 안 하게 생겼니?]
“멱살잡이라도 하라고 할까? 이런 식은 해결이 아니잖아.”
[해결 방법이 있기는 있어?]
“기다려야지.”
[뭐?]
“친구가 적이 되는 순간. 그럴 때 누나에게 다시 기회가 오겠지.”
[음…… 그런 순간이 자연스럽게 찾아올 리는 없고, 만들어야겠지?]
“떠난 인맥을 빨리 찾고 싶은 거야?”
[아니. 날 우습게 본 대가를 보여 줘야지.]
“서둘지 마, 누나.”
[맘 편한 소리는. 그만 끊자.]
통화가 끝나자 현호는 피식 웃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그녀도 이익이 먼저인 사람이다.
그 이익 앞에서 큰형 엄현식과 구진수 사이에서 어떻게 나올지 기대됐다.
“재밌겠네.”
그때, 사장실 문이 열리며 최명준 실장이 들어왔다.
“사장님, 면접장에 가실 시간입니다.”
“아, 벌써 그렇게 됐군요.”
신입 사원 채용을 위한 면접이 있는 날이다.
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최명준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 * *
“후우.”
“괜찮아. 차분하게. 잘할 수 있어.”
“제가 송우미디어에 지원한 이유는…….”
응시자 대기실은 긴장감에 휩싸여 있었다.
자기 이름이 호명되기를 기다리는 응시자의 모습도 다양했다.
심호흡을 하며 긴장을 풀기도 하고, 스스로를 세뇌하듯 자신감을 불어넣기도 하고, 또는 조용히 면접 질문을 예상하며 연습하기도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아는 응시자와 면접 정보를 얘기했다.
“면접관으로 사장님도 참석하는 거 알지?”
“당연하지. 그런데 사장님이 송우그룹 회장님 아들이라던데?”
“맞아. 막내아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소리를 들은 장수연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며칠 전, 라이스타 엄현주 사장을 만났다.
그곳에 다른 남자가 있는 것도 모르고 엄현주 사장에게 아버지와 엄상현 회장의 대화 녹음 내용을 들려주며 경고했었다.
할 말을 마치고 나올 때 한 남자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스치듯 본 얼굴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면접을 앞두고 불길한 느낌에 송우미디어 홈페이지에서 엄현호 사장의 얼굴을 확인했다.
결론은 잘 모르겠다. 였다.
그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 사람이 맞는다면?
‘내 이름을 기억하겠지.’
엄상현 회장에게 경고하는 여자 이름을 기억 못 할 리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면접 보나 마나 떨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던 그때,
“장수연 씨.”
송우미디어 직원이 자신을 호명했다.
“네, 제가 장수연입니다.”
“따라오세요.”
“네.”
직원을 따라 대기실에서 나와 복도를 걸었다.
잠시 후, 도착한 면접장 앞.
몇 분을 기다리고 있으니 문이 열리며 면접을 마친 응시자가 나왔다. 그러자 직원이 얘기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네.”
면접장 안으로 들어선 장수연.
중앙에 놓여 있는 의자 앞에 섰다.
앞쪽에 앉아 있는 면접관들.
순간 중앙에 있는 한 남자가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엄현호 사장이었다.
그런데 그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 미소를 보며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날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