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6
6화 보상은 제대로
“이사장님.”
이사장실 문이 열리며 민동재가 들어왔다.
“어제 얘기하셨던 자료들입니다.”
민동재가 책상 위로 여러 문서가 든 파일을 내려놓았다. 어제 점심을 마친 후 현호가 그에게 부탁해 두었던 황원기 전 사무장과 관련한 자료들이었다.
“거래처 분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이사장님께서 피해 가는 일 없게 한다고 약속해 주셔서 원만하게 자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저는 지시하신 다른 일을 처리하러 바로 다시 나가 보겠습니다.”
“그럼요. 다시 들어오지 말고 현장에서 퇴근하세요.”
“아, 예. 알겠습니다.”
민동재 사무장이 깍듯이 인사하고 밖으로 나갔다. 현호는 그가 가져온 파일을 열어 자료를 살폈다.
황원기 전 사무장이 재직할 때에 만들어진 문서와 자료들은 보존기한이 넘었기에 많은 것들이 폐기되었다. 그 공백을 메꾸기 위해 거래처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이 정도면 쓸만하겠어.”
현호는 시간을 확인했다.
사촌 누나 엄수경과의 점심 약속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인터폰으로 최명준에게 연락했다.
“최 비서, 차 준비해요.”
[네, 이사장님.]
* * *
현호가 탄 승용차가 녹번동 한 골목 앞에서 멈췄다.
“이사장님, 여기가 맞습니까?”
최명준은 뒷좌석의 현호에게 물었다.
점심 약속 장소로 가는 줄 알았는데, 근처에는 근사한 식당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근처에서 만나기로 하셨습니까?”
“아니에요.”
“예?”
“잠시 들를 데가 있어서 온 겁니다.”
“아, 예.”
“잠시 다녀올 테니 최 비서는 차에서 기다려요.”
“예, 이사장님.”
현호는 차에서 내려 골목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골목 안에 작은 가게들이 죽 늘어서 있는 모습은 어릴 적 기억 그대로였다.
과거, 엄민우는 이곳에 위치한 작은 골목에서 생모와 함께 살았었다.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이전까진 말이다.
골목 앞에 선 지금 그의 마음은 복잡했다.
엄민우는 사라졌다.
그렇다면 과연 어머니는 어떻게 되었을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던 그때, 한 간판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으뜸 백반 식당.
어머니가 생전에 운영하셨던 식당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식당 안으로 발을 들이자, 그리운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려왔다.
“어서 오세요.”
밝고,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목소리.
바로 어머니였다.
현호는 떨리는 눈빛으로 그녀의 모습을 위아래로 훑었다.
다행히 어머니의 안색은 밝았다. 전생과는 다르게 건강하신 걸까?
“자리에 앉으세요. 맛있게 해드릴게요.”
“예.”
점심시간 전이라 식당 안에는 현호 말고는 손님이 없었다.
테이블 앞에 가서 앉자 어머니는 주방 안으로 들어가 요리를 시작했다. 주방에는 음식이 나오는 창이 있어 홀에서 어머니가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머니 요리는 정말 맛있었는데.’
그 음식 맛이 떠올라 저절로 침이 넘어가던 그때, 한 남자가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고, 혼자 이른 점심을 하러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빈 테이블 앞에 앉지 않고 곧장 주방 쪽으로 가는 게 아닌가.
“여보, 나 왔어.”
뭐?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적잖이 놀란 현호는 어머니와 남자의 대화에 집중했다.
“오늘 월찬데 좀 쉬지 왜 나왔어?”
“많이 쉬었어. 점심, 저녁 장사까지 당신 혼자 하기 힘들잖아. 사람 한 명 쓰라니까.”
남자가 앞치마를 두르며 대꾸했다.
“윤석이한테도 학원 가기 전에 여기 와서 밥 먹으라고 했어.”
윤석이? 학원?
뭔가 머리를 스치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향했다.
그 카운터 위의 명함을 집는 척하며 안쪽을 살피자, 가족사진이 보였다. 그 사진 속에서 어머니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10대로 보이는 아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어머니가 행복해서 정말 다행이야.’
역사가 달라지며 엄민우라는 존재는 사라지게 되었지만, 어머니가 좋은 남편을 만나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어머니는 요리에 집중하고 있었고, 그녀의 남편은 그릇을 씻으며 정리하고 있는 탓에 현호를 신경 쓰지 못했다.
현호는 테이블 위에 백반값을 올려놓고 조용히 가게를 빠져나왔다.
이곳에 오길 잘한 것 같았다.
전생에서 그녀는 아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했지만,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힘든 삶을 보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 * *
엄수경은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레스토랑 룸에 도착했다.
“중요한 VIP니까 착오 없게 다시 점검하고.”
그녀는 송우리조트를 방문하기로 예정된 손님과 관련하여 직원들에게 통화로 지시를 내렸다.
송우리조트는 본래 그녀의 부친인 엄상철 회장이 송우그룹에서 미디어와 함께 넘겨받은 회사 중 하나였다.
그러나 현재는 엄수경이 지분을 넘겨받아 최대 주주로서 송우리조트의 사장 자리에 올라 있는 상태였다.
“음, 알았어.”
통화 중이던 그녀가 전화를 끊자 문이 열리며 현호가 들어왔다. 그녀를 본 현호가 당황한 반응을 보였다.
“누나, 언제 왔어? 내가 늦은 거 아니지?”
이에 엄수경은 싱긋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아니야. 나도 방금 전에 왔어. 그런데 큰아버지가 나 만난다고 하면 싫어하시는 거 아니야?”
“뭐, 이런 것까지 아버지에게 말씀드릴 필요는 없으니까.”
“그래. 두 분 사이는 불편해졌지만, 우리끼리는 계속 잘 지냈으면 해.”
“난 가진 것도 없어 재산 분쟁을 할 일도 없을 테니 다행이지.”
속없이 솔직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다.
다른 재벌가 자식이라면 자기 재산이 없다고 저리 순진하게 얘기하기도 힘들 텐데.
그가 쉽게 원하는 주제로 들어와 주었으니 빙 둘러 얘기할 필요가 없어졌다.
“왜 재산이 없어? 재단 이사장이잖아.”
“에이, 그거 내 거 아니야. 몰랐어?”
안다. 그렇다고 안다고 얘기할 수 없는 그녀였다. 그래서 일부러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재단 사람 전부 아버지 사람이야. 난 그냥 바지사장인 거지.”
“실제 운영권은 큰아버지가 쥐고 있는 거야?”
“그렇지, 뭐.”
엄수경은 안타까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그래도 할아버지 유언이신데 네게 넘겨주시겠지.”
“그럴 생각이셨으면 재단 말고 회사에서 일하라고 하셨겠지. 솔직히 재단에서 내 일이라는 게 사무장이 올리는 결재에 사인하는 게 전부야.”
엄수경은 현호가 큰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뱉어내자 안심이 되었다.
“최고책임자의 결재는 중요한 일이야. 결재 전에 이것저것 묻고 하다 보면 차차 재단 일을 배울 수 있을 거야.”
“그렇기는 하겠네. 그런데 복잡한 일은 없는 거 같아.”
“사업 보고는 들은 거야?”
“그럼. 회계 보고도 들었어. 누나, 재단에 송우미디어 주식 있는지 궁금한 거지?”
너무 티 내진 않으려고 했지만, 역시나 눈치채지 못할 수 없었던 듯했다.
엄수경은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맞아. 내 입장에선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네. 혹시 알려 줄 수 있을까?”
“있어. 다만 지금 사무장도 그 주식이 할아버지가 남긴 재산인지는 모르는 모양이더라고.”
“너도 그날 일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네?”
“당연하지. 만약 할아버지 차명재산이라면 작은아버지께 돌려 드리는 게 맞다고 생각해.”
순간 엄수경의 눈에 이채가 서리는 게 보였다.
그 모습을 보며 엄현호는 속으로 웃었다. 그녀는 자신을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순진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걸 역이용당하고 있는 줄 모른다.
“그런데 바지사장인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
“네가 재단 이사장이야.”
“조금 전에 얘기했잖아. 재단 사람이 모두 아버지 사람이라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그럼 그 주식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알려 줄 수는 있지?”
“그건 할 수 있지. 식사 후 재단에 들어가서 확인 후 알려 줄게.”
“고마워.”
“인사받을 일 아니야.”
“그리고 현호야. 나는 네가 혼자의 힘으로도 재단을 잘 운영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현호는 왜 그녀가 불쑥 이런 말을 꺼냈는지 쉽사리 짐작했다.
철없던 망나니인 과거의 현호라면 모를까,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집안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아 승계 전쟁에서 승리했던 그에게 이러한 수작은 헛웃음이 흘러나올 만큼 얄팍하게만 느껴졌다.
‘아버지와 나를 갈라놓으려는 거겠지.’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엄상철 회장이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접근해 준다면, 그 또한 엄상철 회장을 이용하기 편했으니까.
“그럴까? 아직은 잘 모르겠어.”
“넌 이제 더 이상 부모님의 손길이 필요한 학생이 아니야. 큰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 네 생각대로 재단을 이끌어 봐. 분명 잘할 수 있을 거야.”
“…….”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엄수경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왔다.
“물론, 지금 당장 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어려울 거야. 우선 재단을 네 사람으로 채우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한번 고민해 볼게. 고마워, 누나.”
“그래.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하고.”
“그럴게.”
엄수경이 싱긋 미소 지었다.
자신의 염려와 제안이 먹혔다고 생각하리라. 지금은 그렇게 판단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 * *
어두운 밤.
번화가에서 한참 떨어져 있고 산등성이가 있는 쪽으로 허름한 집들이 있는 길가.
가로등은 없지만, 다행히 달빛이 비춰 주고 있어 사물의 형체를 가늠할 수는 있었다.
“아이 씨, 원기 선배가 정말 여기로 오긴 오는 거야?”
승용차 안의 민동재 사무장.
오후부터 이곳에 죽치고 있으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확인했다. 현호가 지시한 일 때문이었다.
이곳에서 기다리면 황원기 전 사무장을 만나게 될 거라고 했다. 만나게 되면 연락하라고 했는데, 지금껏 황원기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더구나 해가 지고 어두워지니 나타나더라도 알아볼 수나 있을지 걱정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야? 내가 잠복하는 형사도 아니고 말이야. 골목이 으슥해서 기분도 안 좋은데.”
민동재가 투덜거리다 결심을 한 듯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0분만 더 기다려보다가 나도 집에 가야…… 어?”
저편에서 저벅저벅 걸어오는 남자가 보였다. 움츠러진 어깨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누구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
앞 유리창으로 몸을 기울여 남자를 확인하려던 찰나였다.
“어? 어, 저거, 뭐야?”
골목에 숨어 있었는지 조폭 같은 사내들이 우르르 나오더니 남자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 광경에 놀라 남자가 고개를 든 순간.
“헉, 황 선배잖아!”
민동재는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놀란 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었다. 어떤 일인지는 모르나 황원기가 조폭들에게 끌려가거나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아, 어떡하지? 112에 전화해?”
민동재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경찰이 오기 전에 끔찍한 사고가 먼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몸이 떨려 왔다.
그리고 버튼을 막 누르려던 찰나, 이사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황원기 전 사무장이 나타나면 즉시 차에 태우세요. 그리고 나와 은밀히 만날 수 있도록 조치하세요.
“아, 씨발. 미친 이사장 새끼.”
말은 이렇게 하면서도 민동재는 환하게 헤드라이트를 켰다.
빵!빵!빵!
뒤이어 경적을 요란하게 울리며 사내들을 향해 돌진했다.
* * *
현호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였다.
디링.
휴대폰 메시지가 와 있었다. 확인해 보니 민동재에게서 온 것이었다.
[이사장님, 황원기 전 사무장님을 만나서 지시한 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힘들었습니다.]
그의 수고를 위로할 겸 답장을 했다.
[보상은 제대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