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62
62화 개업 손님
“뭐어! 주식을 팔아? 제정신이냐?”
엄상철의 화난 목소리가 서재에 울렸다.
엄현주에게서 송우미디어 주식 거래를 보고받은 그였다.
“아버지, 리조트를 지킬 방법은 그것뿐이에요.”
그녀의 대답에 엄상철이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설마, 주식 판 돈으로 형님의 압박에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
“틀렸어. 그 돈으로는 안 돼. 주식을 가지고 있어야…….”
엄수경이 그의 말을 자르며 얘기했다.
“리조트도 지키고, 큰아버지도 압박할 수 있다면요?”
“뭐?”
“둘 다 할 방법이 있어요.”
“그, 그게 무슨 말이냐?”
엄상철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송우미디어를 놓으면 방법이 생겨요, 아버지.”
엄현주는 확신이 찬 표정으로 대답했다.
* * *
송우문화재단 현 이사장의 사임과 새 이사장의 선임.
이 절차가 어느덧 마무리되었다.
오늘부터 송우문화재단의 이사장은 엄상현이었다.
“아버지, 재단을 맡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온 가족이 모인 아침식사 자리.
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동안 애썼다. 재단사업에 관심 잃지는 말거라.”
“물론이죠.”
둘의 대화를 들으며 눈치를 보고 있던 엄현식이 얼른 끼어들었다.
“미술관 직원들도 아주 기대하고 있더라고요.”
분위기를 띄운 엄현식, 미술관 운영위원장으로서 부탁도 잊지 않았다.
“미술관에도 많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이사장이 된 아버지와 큰형이 가까워진 것처럼 느껴지자 엄현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끼어들었다.
“아버지, 재단에서 하는 사업에 송우건설도 적극 후원하겠습니다.”
이에 질세라, 엄현주도 거들었다.
“음식도 문화잖아요. 송우식품도 재단사업에 공헌할 창의적인 기획을 계획할게요.”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현호는 보이지 않게 쓴웃음을 지었다.
눈에 보이는 아부를 서슴없이 하는 그들.
하지만 현호는 안다.
그들의 말과 표정은 가볍게 보이지만, 욕망의 깊이는 깊고 어둡다는 것을.
가족 식사가 끝나자 현호는 방으로 돌아왔다.
출근을 위해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 할 때였다.
디링.
여상길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개업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때 얘기한 손님도 초대했습니다.]
현호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 * *
엄상현은 이사장으로 송우문화재단으로 출근했다.
현호가 재단을 맡기 이전에도 가끔 재단으로 가서 보고를 받았지만, 지금은 이사장으로서의 공식적인 출근이었다.
엄상현의 차가 재단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재단 직원들이 모두 늘어서 있었다.
차에서 내린 엄상현을 민동재 사무장이 대표로 허리까지 숙이며 인사했다.
“이사장님, 이렇게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 늘 하던 대로 앞으로도 잘해 주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사무실로 가 볼까?”
“제가 모시겠습니다.”
민동재 사무장의 안내를 받으며 엄상현 회장이 이사장실로 향했다.
“이사장님, 따뜻한 차 한잔 드시겠습니까?”
이사장실에 도착하자, 민동재가 물었다.
“늘 마시던 거로.”
“예, 알겠습니다.”
민동재가 이사장실을 나가고 엄상현이 자리에 앉았을 때였다.
휴대폰이 울려서 보니, 송우바이오 사장 김태명이었다.
‘또 돈 달라는 소리나 하려는 거겠지.’
송우바이오는 신약 개발을 하고 있는데 예상했던 비용을 초과하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 개발을 중단하기도 힘들어 지원해야 하지만, 계열사들이 지원을 꺼리고 있다.
자칫 개발이 실패하면, 지원한 자금을 돌려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야?”
[회장님, 해외 사모펀드에서 투자를 제안해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사모펀드에서 투자를?”
[1억 달러입니다.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높아 투자하고 싶답니다.]
오랜만에 듣는 당당한 목소리였다.
자금지원 때문에 계열사 사장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는 그이지만, 그의 비전을 알아봐 주는 곳이 나타나니 기운이 솟는 것 같았다.
“운용사에 대해 알아봤어?”
[예, 한호와 동신에도 투자한 호주에 있는 라이트랜드입니다.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지만 문제가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모펀드의 투자금은 대주주가 될 지분이기는 하지만, 경영권 방어에는 문제없다.
신약 개발에 예상보다 많은 개발비가 들기에 투자가 필요했다.
게다가 사모펀드의 투자를 받으면 그룹 계열사를 통한 지원은 하지 않아도 된다.
엄상현 회장은 김태명 사장에게 얘기했다.
“법무팀에 제안서 검토하라고 말해 두겠네.”
[예, 회장님. 신중히 검토해서 진행하겠습니다.]
통화를 끊자, 사무실 문이 열리며 최덕일 변호사가 들어왔다.
“아니, 자네가 어쩐 일인가?”
약속된 방문이 아니기에 엄상현 회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송우문화재단 이사장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고맙네. 그런데 축하 인사하려고 찾아온 건 아닐 테고…… 뭔 일 있나?”
“여상길 씨에 대해 직접 알려 드려야 할 것 같아 왔습니다.”
그의 말에 엄상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여상길이 리조트에서 사라지기라도 했어?”
“요 며칠 리조트에 출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강남에 있는 빌딩 사무실을 임대했습니다.”
“뭐, 사무실을 임대해?”
꽤 신경이 거슬리는 여상길의 행동이었다.
“여상길이 리조트를 떠난 걸까요?”
잠시 생각하던 엄상현 회장이 지시했다.
“수경이한테 연락해서 나와 만날 약속 잡아 봐. 여상길도 데리고 나오라고 하고.”
“엄수경 사장이 나오려고 할까요?”
“내 힘을 아는데 안 나올 수는 없을 거야. 그리고 여상길이 무슨 일을 하는지 다른 사람한테 맡기지 말고 직접 확인해 봐.”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엄상현 회장은 송우호텔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레스토랑 VIP 룸에 도착했다.
“그동안 안녕하셨어요?”
테이블 앞에 앉아 있던 엄수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예의 바른 태도였지만 그녀의 얼굴에 미소는 없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엄상현이 입을 열었다.
“여상길 상무와 함께 만나자고 했는데, 말을 못 들은 거냐?”
“아시는 줄 알았는데, 여상길 상무는 퇴사했어요.”
“벌써 퇴사라…… 그런 사람을 어떻게 알고 채용했어?”
“오랜만에 만나자고 연락하셔서, 제 아버지 안부라도 물으실 줄 알았어요.”
“……!”
엄수경의 냉소적인 대답.
그 대답의 의미를 알아차린 엄상현이었다.
그녀의 말에는 부친의 송우미디어를 빼앗은 원망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엄상현은 그녀의 원망을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젊어서 기억력이 좋은지 알았는데. 송우그룹을 먼저 공격한 건 네 아버지다.”
“리조트까지 차지하려 하신 건 회장님이시죠.”
그녀의 대꾸에 엄상현 회장이 비웃음을 흘렸다.
“벌써 잊은 모양이군. 신규대출을 승인하지 않은 건 은행이고, 그걸 열어 준 게 나다.”
“저는 여상길 씨 덕분이라고 생각했는데, 회장님과 저의 기억이 다르군요.”
순간 엄상현 회장의 눈에 날이 섰다.
출소 후 찾아온 여상길 때문에 막아 놓은 신규대출을 풀어 준 기억이 그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엄수경은 태연히 다음 말을 이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그 사람을 왜 알고 싶어 하시는 건가요?”
엄상현 회장이 날 선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며, 냉랭한 소리로 말했다.
“옛말이 틀리지 않아.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면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지? 그 물에 다시 빠질 수 있는 걸 왜 모를까.”
“……!”
엄수경은 그의 말을 알아차렸다.
그녀를 힘들게 했던 자금 압박을 다시 할 수 있다는 경고였다.
엄수경은 긴장한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대답했다.
“그 물에 다시 안 빠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네가 가지고 있는 송우미디어 주식, 내게 넘겨라.”
“아……!”
엄수경은 이제야 송우미디어의 주식을 노린 현호의 타이밍에 속으로 감탄했다.
엄상현 회장이 송우문화재단 이사장으로 새롭게 취임한다는 것을 신문 보도로 알았다.
그런데 이사장이 되자마자 막내아들이 경영 중인 송우미디어를 손에 넣으려 하다니.
그녀의 입가에 비웃음의 미소가 걸렸다.
“좀 더 일찍 얘기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이미 현호에게 넘겼는데.”
“뭐어?”
화들짝 놀라 눈이 커지는 엄상현 회장.
엄수경은 그 모습을 만족스럽게 바라봤다.
그때.
디리리리.
갑자기 엄상현 회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린 엄상현 회장이 최덕일에게서 온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야?”
[회장님, 여상길 씨가 성국그룹 사람을 만났습니다.]
“뭐어?”
[컨설팅 회사를 차렸습니다. 조금 전 사무실에서 성국그룹 임원이 나오는 걸 봤습니다.]
“무슨 수작인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표정이 굳어진 채 통화를 끊은 엄상현 회장은 냉랭하게 가라앉은 소리로 엄수경에게 얘기했다.
“너와는 이제 할 얘기가 없구나.”
* * *
길 컨설팅.
최덕일이 사무실로 들어가자 밝은 목소리의 직원이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상길 씨를 만나고 싶습니다.”
“사장님과 상담을 원하세요?”
그때, 여상길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내 손님이에요. 사장실에서 얘기할 테니, 차 두 잔 부탁해요.”
“예, 알겠습니다.”
직원이 탕비실로 향하자 여상길이 나무라듯 최덕일에게 얘기했다.
“개업한 사무실에 화분이라도 가져오면 좀 좋습니까?”
“저의 개업 축하를 받고 싶어 할지는 몰랐네요.”
“축하해 줄 마음이 없는 거 아는데, 이왕지사 왔으니 차 한잔하고 가세요.”
최덕일은 의아했다.
문전박대할 거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얘기할 시간을 갖자는 듯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여상길이 사장실로 먼저 향하자 그 뒤를 최덕일이 따랐다.
* * *
“촌놈이라 그런지, 저는 이런 차가 좋더군요.”
최덕일과 마주 앉은 여상길은 테이블 앞에 놓인 모과차를 한 모금 마셨다.
“드셔 보세요. 꽤 향긋합니다.”
“무슨 의돕니까?”
“예?”
“내가 반가울 리도 없는데 사장실로 데려온 이유 말입니다.”
“자기 사업을 안 해 보셨으니, 그런 질문을 하는 거겠죠.”
“뭐요?”
“한때 한솥밥 먹던 처지 아닙니까. 반갑지는 않아도 앞으로 고객이 될 수 있는데 문전박대할 수는 없죠. 자영업자들이 그렇습니다.”
최덕일은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흘리더니 얘기를 시작했다.
“리조트에서의 일을 꽤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이렇게 빨리 자기 사업을 하다니.”
“처음에는 그곳에서 은퇴하려고 했죠. 그런데, 내가 리조트에 전문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무실에 틀어박혀 일하는 게 안 맞더군요.”
“적성에 맞지도 않는 리조트 일을 어떻게 찾았습니까?”
“그냥, 직접 물으세요. 누가 리조트를 연결해 줬는지.”
마치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줄 것 같은 그의 태도에 최덕일은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그러죠. 누가 리조트를 연결해 줬습니까?”
“제가 아내에게 송우리조트 엄수경 사장에게 연락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엄상철 회장에게 연락하려고 했는데, 송우미디어가 송우그룹 쪽으로 넘어가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죠.”
“…….”
“출소일은 다가오는데 일자리는 구하기 어려울 거 같고, 가족은 먹여 살려야 하고. 그런데 일이 되려니까, 회장님이 리조트를 상대로 자금 압박 중이었고, 엄수경 사장은 도움이 필요했죠.”
최덕일은 그의 모든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거짓이라고 할 만한 증거 또한 없었다.
“그런데…….”
여상길이 손에 든 찻잔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았다.
“최 변호사님이 나를 만나러 온 다른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예?”
속마음을 들킨 최덕일이 당황했지만, 여상길은 이어서 물었다.
“성국그룹 임원 때문에 오셨죠? 나를 왜 만나고 갔는지 알고 싶어서.”
“그것도 대답해 줄 수 있습니까?”
여상길이 그 물음을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