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높이 올라가고 싶습니까?
성북동.
서재로 들어온 현호는 소파에 앉아 있는 엄상현 회장과 최덕일 변호사를 봤다.
그들의 표정이 굳어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현호는 최덕일 변호사에게 짧게 눈인사를 한 후 엄상현 회장에게 다가갔다.
“아버지, 부르셨어요?”
“물어볼 게 있어서 들어오라고 했다.”
“네, 말씀하세요.”
“작년 송우그룹 비자금 의혹이 있었을 때, 네가 남현민 검사를 만났던 거 기억하지?”
“그럼요.”
“그 검사와 담판 지을 물건이 있다고 했었다. 그 물건 아직 유효하냐?”
왜 묻는지 알면서도 현호는 모른 척 물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검찰 인사가 있었는데, 성국조선 주가 조작 사건을 맡게 될 중수부장이 남현민이다.”
“아……!”
현호는 무슨 일로 자신을 불렀는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국그룹과 가까운 검사야. 자칫 사건을 축소시킬 수 있어. 그 물건으로 우리가 남현민을 컨트롤할 수 있는 거냐?”
“그것은 그 당시 수습으로 끝났습니다.”
엄상현 회장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더 어두워졌다.
왜 아니겠는가.
성국그룹에 큰 타격을 줄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자칫 그 기회가 사라질 수 있으니.
현호는 최덕일 변호사에게 시선을 돌려 물었다.
“최 변호사님, 남현민 검사와 접촉했습니까?”
“성국그룹과는 만나면서 우리는 피하고 있어.”
“……그렇군요.”
최덕일 변호사가 엄상현 회장에게 허락을 받듯 물었다.
“회장님, 차라리 남현민 검사 주변을 털어 볼까요? 뭐든 문제 될 게 나오면 검찰을 떠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엄상현 회장이 대답하기 전 현호가 먼저 끼어들었다.
“그러기엔 지금은 좋지 않은 시기인 것 같습니다.”
“어째서냐?”
미간을 좁힌 엄상현 회장이 물었다.
“남현민은 검사예요. 누가 그 주변을 조사했는지 알아낼 겁니다. 중수부장으로 승진할 정도면 검찰 내 그를 따르는 측근들이 있을 텐데, 그들을 움직여 송우그룹을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아무런 대책 없이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거냐?”
“제가 남 검사를 만나 보겠습니다.”
엄상현 회장은 의아한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
“담판 지을 물건도 없는데 무슨 수로 만나겠다는 거냐?”
“성국그룹이 무사히 빠져나가게 할 수는 없으니, 뭐든 해야죠. 허락해 주세요, 아버지. 그룹에 피해 입히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
엄상현 회장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난 일 년간 현호는 자신을 실망시킨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을 놀라게 했던 게 여러 번이었다.
그러니 남현민을 접촉하기 위해 뭐든 하겠다는 현호의 말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았다.
이에 엄상현 회장은 결정한 듯 입을 열었다.
“알았다. 생각대로 해 봐.”
“예, 아버지.”
현호는 엄상현 회장에게 인사한 후 뒤돌아 서재 밖으로 향했다.
조금 전까지 무거운 분위기에 진지했던 현호였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 *
엄상현 회장의 허락을 받은 현호였지만, 남현민 검사를 곧장 만나지는 않았다.
그를 만나기 전 준비할 것이 있었기에 스케줄을 이틀 후로 미룬 터였다.
그날이 이르자 최명준 실장은 메일로 전송받은 문서파일을 열어 프린트했다.
그것을 서류 봉투에 넣은 최명준이 사장실을 노크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 준비됐습니다.”
최명준이 서류 봉투를 슬쩍 들어 보이며 얘기했다.
그걸 보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현호는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약속 장소로 출발할 시간이군요.”
“예, 사장님.”
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최명준에게 얘기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최 실장이 해 줄 게 있어요.”
“무슨 일입니까?”
최명준은 현호의 눈빛을 보자 지시할 일이 남현민 검사와 관련됐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남현민 검사가 지방으로 좌천돼서 간 곳이 밀양지청이에요. 그 지역 토호세력과 유착 관계가 없는지 알아보세요.”
“아!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최명준의 표정은, 지시의 의미를 알아차린 듯 보였다.
사실, 전생에서 남현민의 유착 비리를 지역 신문사가 보도했으나, 성국그룹의 힘으로 커지는 것을 막았고, 그가 부인하고, 검찰이 무혐의로 처리하며 끝난 적이 있다.
지금은 역사가 바뀌었다.
현재의 남현민은 성국그룹 법무팀의 관리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성국그룹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기에, 그쪽으로 공략했으리라.
지금은 그의 필요에 의해 자신 곁에 있지만, 더 큰 기회가 있다고 판단되면 돌아설 수 있는 사내였다.
그에 대비해 무기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했다.
“이제 출발하죠.”
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 * *
남현민은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 룸에서 현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머릿속은 성국그룹 법무팀장을 만났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목 좋은 곳에 짓고 있는 아파트 분양권을 자신에게 주겠다고 얘기했지만, 엄현호와의 약속도 있기에 덥석 받겠다고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법무팀장이 선배 국회의원에 관해 얘기한 것은 내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오혁주 의원님, 아시죠? 검사님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하라고 하시더군요. 같은 동향 출신이 중수부장이 되신 것을 무척 흐뭇해하셨어요.
오혁주는 다선 국회의원이다. 검찰 요직을 거친 후 국회의원이 되었고, 당내에서도 실력자다.
그 사람 얘기를 왜 했겠는가.
이번 사건을 잘 처리해 주면, 정치권 진출도 도와줄 수 있다는 거 아니겠는가.
엄현호의 지시대로 밥만 먹으라고 해서, 성국조선 주가 조작에 관한 얘기는 하지 않았는데, 좋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 건 아닐까, 염려가 되는 터였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였다. 문이 열리며 현호가 들어왔다.
“오래 기다렸습니까?”
현호는 밝은 표정으로 얘기하며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닙니다. 저도 조금 전에 왔습니다.”
“성국 측과 만났습니까?”
“예, 그쪽에서는 뭔가 얘기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엄 사장이 얘기한 대로 밥만 먹고 헤어졌어요.”
엄현호는 그가 말할 때 눈이 흔들리는 걸 포착했다.
자신에게 말하기에 거리낌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호는 모른 척 얘기했다.
“성국조선 건은 어떻게 됩니까?”
“시민단체에서 고발해서 조사는 하겠지만, 오래전 일이라 조작 자료가 있을지…….”
현호가 그의 말을 자르며 얘기했다.
“검찰총장과 중수부장이 동시에 선거에 나오면, 누가 이길까요?”
“……!”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남현민은 왠지 뜨끔했다.
하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검사님은 누가 이길 거 같습니까?”
“아무래도 검찰총장이 인지도에서 앞설 테니, 선거에서 이기지 않을까요?”
“틀렸습니다. 영웅이 이깁니다.”
“에?”
남현민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현호는 개의치 않고 가져온 서류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그러자 남현민이 의아한 듯 물었다.
“이게 뭡니까?”
“열어서 보세요.”
남현민이 봉투를 열어 보니 문서가 있었다.
그걸 꺼내 보는 남현민의 눈이 커졌다.
문서에는 신문사 기사 헤드라인과 인터뷰 질문사항이 적혀 있었다.
그 기사 헤드라인은 이랬다.
“이, 이게 뭡니까?”
휘둥그레진 눈으로 묻는 남현민의 얼굴.
그 모습을 보며 현호는 태연히 대답했다.
“높이 올라가고 싶습니까? 그러면, 영웅부터 되세요. 올라갈 날개를 가질 겁니다.”
“……!”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남현민의 눈빛이 반짝하니 빛났다. 그리고 입이 환하게 벌어지며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내가 이래서 엄 사장을 좋아합니다. 하하.”
“검사님이 만족해하니 저도 기쁘네요.”
그의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현호는 맞장구치듯 미소 지어 주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날개를 달고 높이 날아오르는 상상이 펼쳐지리라.
하지만 그는 날개의 위험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스캔들 하나로 꺾여 추락할 수 있음을.
* * *
“회장님, 주가 조작 폭로 배후를 알아냈습니다.”
성국그룹 회장실로 급히 들어온 한종혁 법무팀장이 얘기하자, 안명기 회장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그게 누구야?”
“송우그룹입니다.”
“확실해?”
“김지웅이 송우그룹 법무팀장을 만났다는 걸 그 지인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엄상현, 그 자식이…….”
안명기 회장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번 주가 조작 폭로는 송우정유 특혜 사건에 대한 보복이 틀림없어 보였다.
“남현민은 어때?”
“저희 쪽을 피하고 있습니다.”
“그 자식이 송우그룹에 붙은 거야?”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뭐?”
예상 밖의 대답에 안명기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검찰 쪽 정보원에 의하면 남현민 검사는 송우그룹 법무팀 접촉도 피하고 있다고 합니다.”
“도대체, 그 자식 원하는 게 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게 없자, 안명기 회장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회장님, 어떻게 할까요? 남현민 검사를 계속 접촉해 볼까요?”
무거운 얼굴로 잠시 생각하던 안명기 회장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일단…… 수사는 대비해.”
“알겠습니다.”
* * *
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상기된 얼굴의 박경국이 엄상현 회장이 있는 서재로 급히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엄상현 회장의 물음에도 박경국은 행동을 멈추지 않고 리모컨을 찾아 TV를 켰다.
“회장님이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TV 화면 하단에 속보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하하하.”
엄상현 회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호탕하게 웃은 뒤에도 엄상현은 편하게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대며 재밌는 이야기를 읽듯 뉴스 자막을 보고 있었다.
엄상현은 현호가 남현민 검사를 만났다는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검찰에서 어떻게 처리될지는 기다려 봐야 한다고 했다.
엄상현은 부정적인 답변이라 생각해 성국그룹을 생각하면 속이 쓰렸던 터였다.
그런데 수사가 시작되었다.
이것은 결국, 현호가 남현민을 설득했다는 것.
‘도대체 어떻게 설득했을까?’
참을 수 없을 만큼 궁금한 엄상현이 휴대폰으로 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어쩐 일이세요?]
“성국조선 주가 조작 수사가 시작됐다. 지금 TV로 압수수색 속보를 보고 있어. 어떻게 남 검사를 설득한 거냐?”
[며칠만 더 기다려 주세요.]
“뭐어?”
[곧 아시게 될 거예요.]
현호가 이렇게 나오니 궁금하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음…… 알겠다.”
이후, 성국조선 주가 조작에 대한 관련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그 보도 소스가 검찰에서 나온 것과 성국그룹에서 나온 것이 뒤섞였다.
성북동 서재.
엄상현은 신문을 보는데 한 기사 헤드라인에 시선이 꽂혀 있다.
“보고 계시네요.”
언제 왔는지 현호가 서재에 들어와 있었다.
“어쩐 일이냐?
“성국증권 안성재 사장이 기소됐습니다.”
엄상현 회장의 입가가 위로 올라갔다.
성국그룹이 대외적으로 곤란한 것보다 이 사실이 그를 더 기쁘게 했다.
“나도 기사 봤다. 하지만 재판에서 대폭 형량을 낮추겠지.”
“어쨌든 아버지는 빚을 갚으신 거죠.”
“하하하.”
호탕하게 웃은 엄상현은 보고 있던 신문 헤드라인을 현호에게 보이며 물었다.
“이거 네가 한 거냐?”
“네.”
이에 엄상현 회장이 흐뭇하게 웃으며 얘기했다.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이제 성과에 대한 보상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뭐어?”
예상하지 못했는지 놀라 눈이 커지는 엄상현 회장.
그 모습에 현호는 싱긋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