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67
67화 윤소은의 전화
“보상이라…… 하하.”
잠시 당황하기는 했지만, 엄상현은 예전 일이 생각나 웃었다.
송우그룹의 비자금 의혹이 있었고, 담당 검사가 남현민이었다. 그때도 현호가 남현민을 만나 해결하고 보상을 받았었다.
“무엇을 받고 싶으냐?”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의 지분 3퍼센트를 추가로 받고 싶습니다.”
엄상현은 답을 주지 않고 잠시 생각하다 결정한 듯 입을 열었다.
“용산에 빌딩이 있다. 그걸 주마.”
성과에 대한 보상을 받으려는 현호의 자세는 마음에 들지만, 추가 지분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엄상현은 글로리 엔터테인먼트가 성과를 보이면 5퍼센트의 지분을 더 확보할 생각이다.
그래야 지분에서 과반을 넘기며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지킬 수 있다.
현호가 주인이 되어 버린 송우미디어와는 달리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는 확실한 송우그룹의 지배하에 있어야 한다.
“싫으면, 그만두고.”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의 추가 지분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엄상현의 단호한 말이었다.
이에 현호는 담담히 대답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현호는 보상으로 추가 지분을 얘기한 것은 의도적이었다.
아버지가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자 했던 것.
이제 그의 마음이 무엇인지는 알았고, 빌딩을 주겠다니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 * *
성북동을 나온 현호는 송우미디어로 향했다.
승용차 안에서 나해철 M&H 인베스트먼트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대표님, 서호창 씨 소유의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지분 정리, 언제 하기로 했습니까?”
[한 달 남짓 남았습니다.]
현호는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했을 때, 서호창의 일부 지분을 남겨 두었다.
실질적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였다.
이제 남겨 둔 서호창의 지분을 정리할 때가 되었고, 때마침 엄상현 회장의 마음도 알게 됐다.
원래라면 M&H 인베스트먼트가 서호창의 주식 모두를 가질 계획이었다.
“원래의 계획에서 조금 바꾸었으면 합니다.”
[어떻게 바꿀까요?]
“제가 캐스팅보트를 쥘 수 있도록 조정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아버지는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주식 매입을 위해 서호창에게 접근할 것이다.
그때 알게 되리라.
회사의 중요 결정을 좌우할 수 있는 이는 결국 자신이라는 것을.
* * *
어느덧 바람에 태양의 열기가 실려 오는 계절이 도래했다.
그 열기에 사람들의 짜증이 높아가지만, 오늘 엄현식만은 예외였다.
그가 기다리던 소식이 신문의 보도를 통해 세상에 전해졌다.
[신진종합기계 매각 결정, 입찰공모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그 보도의 내용은, 국민연금관리공단과 선종은행 외 대주주가 매각을 결정했고, 인수를 희망하는 기업들에게서 입찰제안서를 받은 후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하겠다는 것.
그리고 현재 신진종합기계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데는 두 곳, 송우중공업과 서진개발이었다.
이 보도를 보고 가장 좋아한 이는 엄현식이었다.
이 결정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준 윤동철 국민연금관리공단 이사장과 통화 중이었다.
“매각을 결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사장님.”
[공적자금 투입해서 이 정도 회생시켰으니 이제는 회수해야죠.]
“그럼요. 그나저나 제가 이사장님 좋은 곳으로 모시고 싶은데, 언제쯤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저보다 엄 사장님 시간에 맞춰야죠. 바쁘신 분인데.]
“하하, 이렇게 저를 배려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제가 스케줄 조정해서 연락드리겠습니다.”
* * *
엄현식이 윤동철과 흐뭇한 통화를 하는 그 시각.
신경질적으로 신문을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는 이가 있었다.
엄현식의 내연녀였고, 전 송우미술관 관장이었던 윤소은이었다.
윤소은은 미술관에서 쫓겨난 후 미국으로 갔었고, 되도록 한국에 대한 소식을 듣지 않고 지냈다.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았다고 생각해 귀국했다.
그런데 송우중공업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보게 되자, 다시 마음이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전시회는 취소되고 징계위원회도 소집될 거야. 나와서 해명을 하든, 설명을 하든 맘대로 해. 하지만 해임되는 결과는 안 바뀔 거야.
그리고 자신이 엄현식에게 한 말도 떠올랐다.
-당신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런데 한 가지는 알아 둬. 지금 시궁창에 빠진 이 느낌, 되돌려 줄 날이 있을 거야.
잠시 생각하던 윤소은이 뭔가 떠오른 듯 쓰레기통에 버린 신문을 다시 꺼내어 테이블 위에 펼쳤다.
그녀의 눈에 다시 선명하게 들어오는 글.
,
윤소은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흐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래, 약속은 지켜야지.”
* * *
이튿날.
엄상현의 가족이 함께 모여 식사하는 자리.
국을 먹으면서 식사를 시작하던 엄상현이 불쑥 얘기를 꺼냈다.
“현식이 네가 신진종합기계를 인수한다고?”
아버지가 신진종합기계 인수에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었던 엄현식.
기다리던 물음을 듣자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아버지. 자신 있습니다.”
“뭘 믿고 그렇게 자신 있는 거냐?”
“이번 신진종합기계 매각 결정이 나오도록 제가 뒤에서 불을 지폈습니다.”
엄현식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이미 상대방과 얘기가 되어 있다는 것을 엄상현 회장이 모르지 않았다.
엄상현은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얼굴로 얘기했다.
“입찰제안서 만들어지면 내게 보이거라.”
“당연히 그래야죠.”
엄현식이 자신 있는 태도로 대답하는 동안 현호는 작은형 엄현태와 누나 엄현주의 기색을 살폈다.
못마땅한 듯 굳어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대로라면 큰형의 송우중공업이 우선협상대상자가 될 것이고, 자신의 계획이 펼쳐지게 되리라.
그때까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형과 누나와 달리 마음 편히 식사하는 그때, 박경국 과장이 들어왔다.
“회장님.”
“무슨 일이야?”
“한창수 경산은행장님께서 전화하셨습니다.”
‘뭐, 경산은행장?’
현호는 흠칫 놀라 엄상현을 쳐다봤다.
“아아, 그 양반이랑 통화하기로 했지.”
엄상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식당 밖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는 현호는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 * *
송우건설 부사장실.
엄현태는 회사에서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큰형 엄현식의 신진종합기계 인수계획을 한 차례 무산시켰었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보다 인수계획을 빨리 재진행시켰고, 아버지는 큰 관심을 보였다.
이런 상황도 마음에 들지 않는데, 더욱 속이 쓰린 것은 자신이 움직일 수 없다는 것.
자신의 이런 마음을 아는 이지홍 비서가 조심스레 물었다.
“부사장님, 가만히 계실 겁니까?”
“인경시 연미지구 용도변경을 진행하는 중이야. 그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송우건설에는 어떤 문제도 일어나면 안 돼.”
인경시 연미지구 아파트 건립까지 잘되면 자신은 사장으로 승진할 수 있다.
지금 자신에게는 그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큰형의 신진종합기계 인수 작업이 거슬려도 지금은 참을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이지홍이 대답하고 부사장실을 나가려 할 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엄현태 부사장님과 통화할 수 있을까요?]
부사장의 수행비서로서 웬만한 주변인의 목소리를 알고 있는 그였지만, 지금의 전화는 들어 본 적 없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전 송우미술관 관장, 윤소은이에요.]
“……!”
이지홍은 그녀를 사적으로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징계를 받아 미술관을 나가게 된 것은 알고 있다.
그런 흠 있는 사람을 부사장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
“죄송합니다. 부사장님께서는 자리에 안 계십니다.”
[흠흐흐.]
비웃는 듯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오자 이지홍이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실례지만 이만 전화를 끊어야…….”
그의 말은 윤소은에 의해 잘렸다.
[그럼 이렇게 전해 주세요. 송우중공업이 신진종합기계를 인수 못하게 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오래 기다리지 않겠다고요.]
뚝, 전화가 끊어졌다.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은 이지홍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자, 엄현태가 의아한 듯 물었다.
“무슨 전화야?”
“그게…… 전 송우미술관 관장, 윤소은 씨입니다.”
그녀의 징계에 관해 알고 있는 엄현태가 살짝 인상을 쓰며 물었다.
“그 여자가 왜 나를 찾는 거야?”
“윤소은 씨가 송우중공업이 신진종합기계를 인수 못하게 할 방법을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뭐어?”
화들짝 놀란 엄현태였다.
“정말 그렇게 얘기했다고?”
“네, 분명히 그렇게 들었습니다.”
엄현태는 당혹스러웠지만, 곧 이성을 찾아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그녀는 큰형에게 나쁜 감정을 갖고 있을 것이다.
큰형이 주도해서 징계위원회가 열리고 해임이 되었으니까.
큰형이 잘되는 게 싫을 수 있다.
그런데 그녀가 알고 있던 무언가를 털어놓을 생각이라면, 왜 자신에게 연락했을까?
그녀에게 자신은 큰형과 한 식구인데.
송우미술관 전시회에서 그녀를 봤을 때에도, 큰형에 관해 얘기한 적도 없다.
그런데 마치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신진종합기계 인수를 얘기했다.
‘도대체 뭐지?’
“부사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비서의 목소리에 엄현태는 상념에서 퍼뜩 빠져나왔다.
“그냥 무시할까요?”
엄현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왜 내게 말하려고 하는지 알고 싶어졌어. 그리고 만약 윤소은 씨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내게 나쁜 일은 아니잖아.”
“그럼…….”
“연락해서 만날 약속 잡아.”
“알겠습니다.”
* * *
송우미디어 사장실.
한편, 현호는 윤소은 때문에 자신이 그리는 미래가 바뀔 수 있음을 모른 채 회사에 출근해서도 줄곧 한 생각뿐이었다.
‘왜 아버지는 한창수 경산은행장과 급히 통화했을까? 혹시, 하이큐브 반도체 매각에 개입하려는 걸까?’
하이큐브는 성국반도체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공격적인 투자로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인해 재정에 어려움을 겪더니 설상가상 반도체값 폭락으로 인해 엄청난 빚을 떠안게 되었다.
가까운 미래에 하이큐브 반도체의 경영난이 더욱 심화되어 매각 협상까지 가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오늘 아버지가 통화한 한창수 경산은행장은 하이큐브 반도체의 채권단 대표이다.
‘전생에서는 없었던 일인데…….’
현호가 송우미디어를 차지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은 이게 처음은 아니다.
‘아버지는 하이큐브 반도체를 차지하고 싶으신 거겠지.’
아버지는 할아버지 때문에 반도체 회사 인수 기회를 놓쳐서 성국그룹에 뒤처지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신다.
그 생각에는 현호도 동의할 수 있다. 그리고 현호도 하이큐브 반도체 인수를 마음에 두고 있던 터였다.
하지만 현재는 하이큐브 반도체를 인수할 만한 처지가 못 되어 미래에 준비된 때를 기다려야 했다.
전생대로라면 현호가 특별히 나서지 않아도 매각 협상은 깨지게 되어 결국 채권단이 출자전환 등 여러 방법으로 지원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서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방법을 쓰시려는 거지?’
하이큐브 반도체의 엄청난 채무와 반도체 산업 불황으로 인해 선뜻 인수 의사를 보이는 데가 없다.
‘그런데도 아버지가 채권단 대표를 만난다는 건…… 아!’
현호의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게 있어, 외숙부 최해식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다.
“외숙부, 현호예요.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내지. 요즘 회사 일로 바쁘다며? 누나에게서 들었어.]
반가워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바쁜 건 외숙부도 만만치 않잖아요.”
[허허허. 그래도 오늘은 함께 식사할 시간은 낼 수 있겠구나.]
“반가운 소식이네요. 제가 좋은 곳으로 모실게요.”
[그래, 나중에 보자.]
“네, 외숙부.”
외환위기 이후로 하이큐브 반도체의 경영난은 국가적 문제가 되었다.
아버지는 정부의 의중을 알고 싶었을 테니, 외숙부에게 연락했으리라.
‘하이큐브 반도체를 아버지가 차지하게 할 수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