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69
69화 윤소은의 반격
“처음 뵙겠습니다, 강명식 사장님. 엄현호라고 합니다.”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 룸으로 강명식이 들어서자 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인사했다.
하이큐브 반도체 사장 강명식. 그는 점잖게 보이는 중년이지만 눈에는 피곤한 기색이 엿보였다.
“강명식입니다.”
그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현호는 그 손을 공손히 맞잡았다.
그렇게 인사가 끝나고 자리에 앉은 강명식이 먼저 얘기했다.
“송우그룹 사람이 왜 나를 보자고 한 겁니까?”
“존경했던 선배님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엄 사장이 나를 알아요?”
의아한 눈길로 강명식이 물었다.
“직접 뵌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만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전생의 어린 시절, 그 다큐멘터리를 TV에서 본 적 있다. 성공을 위한 청년들의 도전을 테마로, 강명식과 동료들의 도전을 보여 주었었다.
“아, 그거, 생각나네요.”
현호의 다큐멘터리 언급에 강명식은 옛 추억에 젖는 듯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청년 시절 때죠. 반도체라는 게 전기가 통할 때도 있고, 안 통할 때도 있는 물질이라는 것만 알고 하이큐브 반도체 연구소에 첫 출근했었죠.”
“…….”
“그 후, 고3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수출까지 하게 됐을 때 그 다큐멘터리를 찍었죠. 물론, 회사 홍보 차원도 있었지만…….”
“그런 분이 지금은 회사 사장님으로 계시네요.”
조금 전까지 엷은 미소가 번지던 강명식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둡게 변했다.
“야구에 패전처리 투수가 있는 거 아시나?”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런 역할 하라고 사장으로 임명되었죠.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하이큐브에게 이런 날이 오리라고 생각지도 못했는데.”
읊조리듯 내뱉는 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스쳤다.
현호는 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청년 시절부터 지금껏 헌신했던 하이큐브는 그 자신과 같으리라.
그런데, 하이큐브가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으니.
그의 답답함이 현호에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나이가 들면 주책도 는다고, 처음 보는 엄 사장에게 별 얘기를 다 하는군요.”
“아닙니다. 하이큐브에 대한 사장님의 애정을 들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그런 얘기 듣자고 나를 보자고 한 건 아니겠죠?”
“자금 사정이 더 안 좋아졌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업계 비밀이 아니죠. 우리는 채권단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어요.
“채권단이 법정관리까지 생각한다면 어떠시겠습니까?”
“채권단이 그럴 리가요.”
강명식이 황당한 얘기라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일만도 했다.
법정관리는 채권단에게 유리할 게 없다. 그들이 더 큰 손해를 감수한다는 건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채무탕감의 방법으로 출자전환을 해서 대주주가 되겠지만, 주식 가격이 크게 오르지 않으면 주주로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현호는 그의 반응에 어떤 대꾸도 하지 않고 진지하게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에 강명식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더니, 뭔가 감을 잡은 듯한 기색으로 바뀌었다.
“어디서 들은 정봅니까? 채권단이 그런 식으로 일을 처리한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네요.”
“채권단이 끝내 정상화 합의를 하지 못하면, 그렇게 되겠죠.”
“그렇게 만들고자 하는 배후가 있는 거죠? 법정관리 후 인수하려고.”
“…….”
“독자생존을 하지 못하면, 파산하거나, 인수 합병되겠죠. 하지만 분한 마음이 드네요. 지원과 시간을 주면 하이큐브는 성장할 잠재력이 큽니다.”
“기회가 있습니다.”
“예?”
강명식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이큐브의 잠재력을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요.
“그게 무슨 말인지……?”
“채권단을 움직이는 배후의 계획대로 되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매트로사와 전략적 제휴를 추진하면 됩니다.”
“……!”
“시작은 전략적 제휴이지만, 하이큐브 매각에 대한 얘기가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법정관리는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강명식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실제로 매트로사는 하이큐브의 메모리 부분에 관심 있을 겁니다.”
매트로사는 하이큐브보다 상위에 있는 기업이다.
만약 하이큐브 메모리 부분을 가지게 되면, 매트로사는 단숨에 세계 1위 기업이 될 수도 있다.
이어서 얘기하는 강명식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하이큐브를 매트로사에 매각하는 절차에 책임자가 되겠군요.”
현호는 그의 속상한 마음이 이해되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전생에서도 매트로사와 매각 협상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9부 능선을 넘었던 매각이 이뤄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이것이었다.
“하이큐브를 매트로사에 팔고 싶지 않으면, 주주들을 사장님 편으로 만드세요.”
“아……!”
매각의 최종 승인은 주주총회의 주주들에게 있다.
전생에서는 주주들이 하이큐브 반도체 매각을 부결시켰다.
“엄 사장, 왜 이런 얘기를 해 주는 겁니까?”
“하이큐브가 기회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니까요.”
실제로 전생에서 하이큐브는 성장을 이뤄 낸다.
하지만 다시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때는 현호가 나설 것이다.
* * *
며칠 후.
엄상현 가족이 함께 거실에서 다과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박경국 과장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그의 경직된 안색을 본 엄상현 회장이 물었다.
“무슨 일인가?”
“회장님, 뉴스를 보셔야겠습니다.”
박경국은 TV를 켜기 위해 리모컨을 눌렀다. 그러면서 ‘곤란한 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인을 엄현식에게 보냈지만, 그는 깨닫지 못했다.
TV 화면에는 뉴스가 시작되었고, 큼지막한 자막도 쓰여 있었다.
[앵커 : 오늘의 첫 소식입니다. 모 그룹의 장남으로 알려진 A 씨가, 별장 관리인을 폭행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자세한 소식 전합니다.]
TV 화면에 공중에서 촬영한 별장의 모습이 보였다.
“어? 저기, 큰오빠 별장이랑 비슷한 거 같은데?”
엄현주가 낯익은 별장 모습에 크지 않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가족 대부분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기자 : 이 별장의 소유주, 모 그룹 장남 A 씨. 별장 관리인이 지인을 하룻밤 묵게 했다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TV 화면에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양복 입은 남자가 잠바를 입은 남자의 뺨을 때리고 무릎을 걷어차는 장면이 나왔다.
그 모습에 경악하는 가족들.
다름 아닌, 양복 입은 남자가 엄현식임을 알아차렸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에 평온함을 유지하는 이는 엄현태뿐이었다.
[기자 : A 씨는 폭행만 한 것이 아닙니다. 폭언도 서슴없었습니다.]
[A 씨 : 야, 이 새끼야. 머리는 폼으로 달고 나왔어? 생각이 있는 놈이야? 저 X이 뭔데 내 별장에서 잠을 재워?]
[기자 : 관리인이 지인을 별장에 묵게 한 이유는 있었습니다.]
음성 변조된 관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관리인 : 미국에서 왔는데 밤늦게 도착했어요. 근처에는 모텔 말고는 숙박시설이 없어요. 별장이 외진 곳에 있고 너무 늦은 시간이라 여자 혼자 모텔에 보낼 수가 없어서 잠을 재웠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쓰시는 본관이 아닌 인부들이 사용하는 방에 묵게 했어요.]
관리인의 얘기가 끝나자 엄상현 회장의 화난 목소리가 서재에 울렸다.
“TV 꺼!”
박경국이 얼른 TV를 껐다.
거실에는 침묵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오직 엄상현 회장만이 언성을 높여 박경국에게 명령했다.
“당장 최 변호사 들어오라고 해.”
“예, 회장님.”
엄상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재빨리 거실에서 나가 버리고 박경국이 총총히 뒤따라갔다.
어머니 최유경은 충격으로 갑작스러운 어지러움을 느꼈는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둘째 며느리 배희진이 눈치 있게 최유경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얼굴이 창백해지셨어요. 방으로 가서 누우셔야겠어요.”
이에 배희진이 그녀를 부축해 거실 밖으로 나갔다.
다음으로 엄현태가 일어나며 한마디 했다.
“큰형, 처신을 어떻게 하고 다니는 거야?”
“…….”
입술만 깨물 뿐 엄현식은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엄현태는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짓더니 거실을 나갔다.
엄현주도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거들었다.
“큰오빠, 그룹에 큰 피해 없게 처리 잘해.”
그녀는 거실 밖을 향하며 큰며느리 채연희가 앉은 자리를 스쳐 갔다. 그리고 들으라는 듯 중얼거렸다.
“당분간 라이스타 매출 떨어지겠네.”
“……!”
그 소리를 들은 채연희는 나가는 엄현주를 노려봤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경전이라니.’
현호는 둘의 모습이 실망스러웠지만, 티를 내지 않고 채연희에게 얘기했다.
“형수님, 강인이 잠재울 시간이에요. 같이 나가시죠.”
“아, 예.”
그나마 자기 방에 있는 강인이는 이 사건을 알지 못해서 다행이었다.
두 사람이 나가자 거실에 혼자 있게 된 엄현식.
디리리리.
휴대폰이 울려 쳐다보니 윤소은의 전화였다.
“야…… 너…….”
엄현식은 분노로 부들부들 떨면서도 욕 한마디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무슨 곤란한 짓을 할지 모르기에.
별장 사건은 그녀가 꾸민 계략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사실대로 밝히려면 그녀와의 불륜 과거를 털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휴대폰 너머로 윤소은의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현식 씨, 징계위원회를 열어 해임하겠다고 했던 날. 내가 얘기했잖아. 시궁창에 빠진 느낌 되돌려 주겠다고.”
“야…….”
“난, 약속 지켰어.”
뚝, 전화가 끊어졌다.
“아우, 씨발.”
자기 머리를 마구 흩트리는 엄현식.
그렇게 화를 내어도 그의 분노는 허공에서 힘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 * *
엄상현 회장은 골치가 아픈 듯 눈을 감고 의자 깊숙이 등을 기대어 앉아 있었다.
서재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최덕일 변호사가 들어왔다.
“……회장님.”
최덕일 변호사가 나지막이 부르자, 엄상현 회장이 눈을 떴다.
“왔군.”
“뉴스는 봤습니다.”
사건에 대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였다.
“이런 일로 불러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어떻게 해야겠어?”
“사과문을 작성하라고 이미 지시했습니다.”
“…….”
“사과문은 언론에 배포할 거고, 사장님은 관리인을 찾아가 사과하는 퍼포먼스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법무팀이 관리인과 피해 보상 합의하도록 접촉해 보겠습니다.”
“자네가 수고 좀 해 줘.”
“네, 회장님.”
* * *
방으로 돌아온 현호는 최명준 비서에게 전화했다.
“최 실장.”
전화를 걸어온 이유를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최명준이 대답했다.
[사장님, 뉴스 봤습니다.]
“이번 일이 큰형이 추진했던 신진종합기계 인수 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갑질에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뉴스의 내용으로 볼 때 관리인의 사정은 억울했다.
큰형이 어떤 식으로 해결할지는 모르지만, 적당히 사과하는 것으로 끝내려 한다는 모습이 보인다면, 국민의 분노는 더 거세질 것이다.
그 분노가 송우중공업의 신진종합기계 인수 건으로 옮겨 가게 되면, 결과가 어떻게 될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경쟁업체인 서진개발이 신진종합기계를 인수하게 될 터.
“최 실장, 경쟁업체인 서진개발 움직임을 주시해야 할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선종은행장 약점이 될 만한 것을 조사해 주세요. 서둘러야 합니다.”
[바로 착수하겠습니다.]
만약, 서진개발이 신진종합기계를 인수하게 되면, 자신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긴다.
그렇게 되게 두고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