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71
71화 은행장과의 담판
호텔 지하주차장.
“그럼, 살펴 가세요.”
정성진 선종은행장은 서진개발 사장과 인사 후 자기 승용차를 향해 이동했다.
차 앞에 막 다다랐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정성진 은행장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니, 처음 보는 젊은 남자가 곁에 와 있었다.
“누구신지?”
젊은 남자는 명함을 건네며 얘기했다.
“저는 송우미디어 엄현호 사장님의 비서, 최명준이라고 합니다.”
그 명함에서 이름을 확인한 정성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최명준 씨가 왜 나를……?”
“저희 사장님께서 행장님을 만나길 원하십니다.”
“송우미디어 사장님께서요?”
“그렇습니다.”
“…….”
정성진은 송우미디어가 신진종합기계 매각과는 상관없지만, 송우그룹과 관련 있기에 망설여졌다.
이에 조심스레 마음을 떠보듯 입을 열었다.
“혹시 신진종합기계 매각 건 때문입니까?”
엄현식과 엄현호는 형제지간이다.
쏟아지는 비난에 움직이지 못하는 엄현식을 대신해 자신을 만나려고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이유라면 더더욱 엄현호를 만날 수 없다. 자신의 마음은 이미 송우중공업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명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대출에 관한 것입니다.”
“대출요?”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당황했지만, 곧 정신을 차려 대답했다.
“만나기 편한 시간과 장소를 알려 주시면 담당자를 데리고 찾아뵙겠습니다.”
“이 호텔, 레스토랑 VIP 룸에 계십니다.”
“여기요?”
정성진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
“네, 제가 행장님을 모시겠습니다. 이쪽으로 가시죠.”
“아, 예.”
갑작스러운 요청이기는 하지만 송우그룹 엄상현 회장의 아들이 아닌가.
이 호텔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니, 만남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이에 앞서 가는 최명준의 뒤를 따라갔다.
* * *
VIP 룸 앞에서 최명준이 문을 열어 주자 정성진이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엄현호가 자리하고 있었다.
‘막내라고 하던데.’
송우그룹 엄상현 회장의 막내가 송우미디어 사장으로 취임했다는 기사를 본 적 있었다.
정성진이 다가가자 엄현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정성진 행장님.”
“처음 뵙네요. 미리 연락을 주셨으면 제가 회사로 찾아갔을 텐데요.”
맞은편에 앉으며 정성진이 얘기하자, 현호가 대꾸했다.
“이런 얘기를 회사에서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하긴, 편한 장소에서 얘기하고 싶어 하는 고객분도 계시죠. 그런데 사장님께서도 이 호텔에 선약이 있으셨던 모양입니다.”
“저는 행장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진개발 사장님과는 얘기가 잘되셨습니까?”
“예?”
놀란 그의 눈이 커졌다.
정성진은 잠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무엇인가를 알고 얘기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짐작해서 물어보는 것인지.
하지만 무엇이 되었든, 사실대로 얘기할 수는 없다.
신진종합기계 매각을 위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해야 하는 책임자가 공모 업체 사장과 만났다고 털어놓을 수는 없는 법.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저도 그 일 때문에 행장님을 만나러 온 거니까요.”
“예에? 아니, 저는 대출 건이라고 비서분께 들었습니다만.”
“제 비서의 얘기도 맞습니다.”
현호는 그에게 옆에 두었던 봉투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열어 보시죠.”
봉투 열어 내용을 확인하는 정성진의 눈이 화들짝 커졌다.
“이, 이게 도대체…….”
충격에 그의 입술이 떨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현호가 답을 하듯 얘기했다.
“행장님의 용산 지점장 시절의 불법대출 관련 자룝니다. 담보 가치가 없는 부동산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해 준 회사도 있고, 대출 서류가 미비한 페이퍼 컴퍼니에도 대출해 주셨더군요. 그렇게 해 주고 얼마 받으셨습니까?”
“…….”
정성진은 누가 이 자료를 엄현호에게 건넸는지 알 것 같았다.
은행에서 쫓아낼 때, 어떤 서류도 가져가지 못하게 했는데, 미리 자료를 빼돌렸을 줄이야.
두려움에 몸이 떨려 왔지만, 가만히 있으면 그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기에 떨리는 마음을 억누르며 애써 입을 열었다.
“이 자료를 누구에게서 받으셨는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은 제게 불만이 많았고, 근무 태도도 불량했었어요.”
“…….”
“결국 징계를 받자 내게 앙심을 품고 이런 허위 자료를 준비한 것 같은데, 이건 사실이 아닙니다.”
정성진이 봉투를 다시 닫아 현호에게 건넸다.
그의 대답을 들은 현호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또 다른 자료를 준비해 두었다.
“용산 지점장이 된 이후로 재산이 꽤 느셨더군요. 제가 찾아낸 게 고가의 아파트 두 채와 땅이 있네요.”
“……!”
“부모님께 물려받은 재산이 있는 것도 아니시고, 그렇다고 맞벌이도 아니고, 생활비와 애들 교육까지 지점장 월급으로 빠듯하셨을 텐데.”
“…….”
대답하지 못하는 정성진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리는 걸 포착했다.
“그 당시에는 은폐할 수 있었을 겁니다. 여기저기 뇌물을 쓰셨을 테니. 그런데 제가 이것을 문제 삼는다면, 저를 상대해서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정성진은 입술을 꾹 닫은 채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결과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만큼 명확한 탓이다.
엄현호는 엄상현 송우그룹 회장의 아들이다. 그를 상대로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 자료를 가지고 찾아왔다는 것은 자신에게서 얻고자 하는 게 있다는 것.
그게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송우중공업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하면 되겠습니까?”
현호는 그가 방금 거래를 제안했음을 알았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할 생각은 없다.
“송우중공업을 위해서 이 자리에 온 게 아닙니다.”
“예? 그럼, 뭣 때문에……?”
“저를 위해서죠.”
“아……!”
정성진은 엄현호가 신진종합기계 인수에 관심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 겁니까?”
“신진종합기계 매각 계획을 취소하세요.”
“계, 계획을 취소하라고요?”
놀란 정성진이 말을 더듬었다.
“그렇습니다.”
매각 건을 유찰시키더라도 다시 재입찰 공모를 할 수 있다. 다른 회사에게 기회가 생기느니, 신진종합기계를 이 상태로 두는 게 낫다.
자신이 다른 계획을 마련할 때까지.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이 매각 취소에 반대하면…….”
“그렇다면 행장님은 불명예스럽게 퇴임하시게 되겠네요.”
“……!”
정성진은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렸다.
매각 계획을 취소하지 않으면, 불법대출 자료가 세상에 공개될 거라는 걸.
그게 공개되면 모든 걸 잃게 된다.
엄현호의 지시를 따르는 것 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해 두어야 할 것은 있다.
“매각 계획을 취소하면 그 자료가 폐기된다는 보장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한 가지 요구사항이 더 있습니다.”
“……?”
“매각 취소를 마무리하고 은행장 자리에서 내려오세요.”
“예에?”
당황한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건, 그 직원분의 요구사항입니다. 저도 동의했고요.”
정성진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엄현호에게 유리한 조건을 내세워 그의 요구를 취소하게 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엄 사장님, 제가 신진종합기계 인수 건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엄현호는 그의 말에 속으로 웃었다.
이번 매각 계획이 취소되면 그의 은행장 임기 내에 다시 추진될 일은 없다.
쓸모없는 패로 유혹하려는 데 넘어갈 수는 없는 법.
현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행장님의 명예를 위해 그 직원분을 설득하느라 아주 힘들었습니다. 저는 그 직원분과의 약속을 지켜야 하니, 행장님께서는 결정해 주시죠? 명예로운 퇴임인지, 불명예 퇴임인지.”
“……!”
정성진의 얼굴이 구겨졌다.
자료는 엄현호가 가지고 있고, 마음을 돌릴 생각이 없는 한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과거가 밝혀져 모든 것을 잃는 것보다는…….
“요구사항대로 하겠습니다. 그럼, 그 자료는……?”
“직접 자료를 소각하시게 될 겁니다.”
대답하는 현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 * *
이튿날.
송우그룹에서는 엄현식 사장과 관련한 사과문 발표가 있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일어나서는 안 될 폭력 사건으로 피해자분과 국민 여러분께 아픔을 드린 것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엄현식, 송우중공업 사장은 부적절한 처신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으며, 피해자의 고통과 국민께 심려를 끼친 것에 책임지려 사장의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또한, 진행 중이었던 신진종합기계 관련 입찰도 취소하였습니다.
이에 송우그룹은 엄현식 전 사장의 사건에 어떠한 개입도 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 국민께 더욱 신뢰받는 기업이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발표문에는 송우그룹이 개입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미 로펌을 정해서 위임해 둔 상태였다.
엄현식이 송우중공업 사장에서 물러나는 것은 어느 정도 국민의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효과는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의 결과를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따로 있었는데, 바로 엄현태와 엄현주였다.
엄현식이 송우중공업 사장에서 물러날 뿐 아니라, 강릉 별장으로 쫓겨나게 되었다.
이것은 철옹성 같던 엄현식의 승계 1순위가 깨져 버렸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엄현식조차 그 자신의 불행이 그들에게 기쁨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엄현식이 떠나는 날 아침의 성북동은 갈등과 적개심이 눈에 보일 정도로 팽팽했다.
성북동 거실.
엄상현 부부를 제외한 가족들이 배웅을 핑계로 거실에서 티타임을 하는데, 엄현식이 냉랭한 어조로 먼저 입을 열었다.
“나라일보는 오늘도 내 사건 다뤘더라? 불씨를 계속 살리고 싶은 거냐?”
가시 돋친 엄현식의 말에 엄현태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무덤덤하게 대꾸했다.
“너무 예민해진 거 아냐? 매일매일 기업과 관련해 기사가 나오는데,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면서 어떻게 기업을 운영하겠어.”
불만스러운 듯 큰며느리 채연희가 끼어들었다.
“나라일보와 우리가 남인가요? 가족끼리 너무하는 거 같네요.”
이에 둘째 며느리 배희진이 변명하듯 대답했다.
“형님, 저의 아버지가 나라일보 대표이시지만, 데스크의 일을 간섭하지는 못하세요.”
“아아, 생각나네. 작년에 사주는 편집에 간섭 말라며 나라일보 기자가 시위했잖아. 그 기자는 옳은 일을 했는데, 왜 잘렸을까?”
채연희와 배희진, 적개심이 담긴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지켜보고 있던 엄현주가 비아냥거리듯 입을 열었다.
“큰언니는 언제 강릉으로 내려가요?”
그녀의 물음에 채연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안 내려가요. 아버님께도 허락받았고요.”
“강인이 아직 어려요. 아버지와 떨어져 있는 거 교육에 안 좋아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가족은 함께 있어야죠.”
“강인이 걱정은 제가 해요.”
채연희가 엄현주를 노려보며 대답한 후 엄현식이 끼어들어 거들었다.
“네가 강인이 교육에 대해 걱정하는지 이제야 알았네. 그것도 교육 차원이었냐? 아이 생일날 네 친구들과 파티한 거.”
‘그래, 이래야 아버지의 자식들이지.’
현호는 전생에서의 가족 모습이 떠올라 입가가 비틀렸다.
이 감정의 골은 점점 더 깊어질 것이다. 그리고 전쟁 같은 시간이 오겠지.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