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75
75화 구진수의 이탈
엄상현 회장은 구진수와의 통화를 위해 서재로 갔다.
그 후, 가족들도 자기 방으로 돌아갔고, 거실에는 엄현주와 현호만이 남아 있었다.
“현호야, 정무수석이 왜 전화했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엄현주가 나지막한 소리로 물었다.
“글쎄…… 누나 생각은 뭐야?”
“나는…… 왠지 큰오빠와 관련 있을 거 같아.”
역시 현호가 짐작하는 대로 그녀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원래 구진수와 인연을 맺은 것은 엄현주가 먼저였다.
하지만 부동산 투기 의혹을 엄현식이 해결해 주면서 구진수는 엄현식가 가까워졌고, 그때부터 엄현주와의 연락을 끊은 상태다.
자신을 배제한 채 인연을 이어 가는 두 사람.
엄현주의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구진수의 전화가 엄현식과 관련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정확한 건 지켜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지켜보면?”
“만약 큰형에게 변화가 생기면, 누나 생각이 맞는 거겠지.”
“아이, 짜증 나.”
엄현주는 신경질이 솟는 듯 미간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인지 알아야, 방법을 생각해 낼 텐데.”
“무슨 말이야?”
“날 배신한 정무수석이야. 큰오빠랑 잘되게 내버려 둘 수 없지.”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현호는 속으로 웃음 지었다.
만약 구진수가 큰형의 복귀를 돕는다면, 한 가지는 명확하다.
구진수가 큰형에게서 뭔가를 받았을 터.
그게 무엇인지 모르는 지금은 그녀의 편인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그녀의 배신감을 이용할 때가 있을 테니.
“누나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잘했는데, 배신한 건 잘못한 거야.”
“큰오빠와 구진수에 관해 뭔가 알아내는 게 있으면 즉시 내게 얘기해 줘. 알았지?”
“그럴게.”
* * *
송우호텔.
구진수는 지하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던 엄상현 회장의 비서를 만났다.
비서의 안내에 따라 VIP 전용 엘리베이터와 통로를 이용해 엄상현 회장이 기다리고 있는 룸에 도착했다.
“회장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구진수가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서둘러서 왔는데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저도 조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앉으시죠.”
“예.”
구진수가 맞은편에 자리하며 먼저 얘기했다.
“갑작스럽게 연락을 받으셔서 당황하지 않으셨습니까?”
“조금 놀랐지만, 반가웠습니다.”
“그렇습니까?”
구진수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깊은 인연은 없었지만, 의정 활동하실 때 몇 번 만난 적이 있지 않습니까.”
“저를 기억해 주시니 영광이네요.”
“공무에 바쁘신 분을 만날 수 있으니, 저야말로 영광이죠. 하하.”
영광이라는 말까지 하며 기분을 맞춰 준 엄상현 회장은 본론으로 넘어가려고 운을 띄웠다.
“바쁘신 중에 저를 만나고자 한 이유가 있습니까?”
“사실 며칠 전 엄현식 사장님을 만났습니다.”
“제 큰애를요?”
순간 엄상현 회장의 얼굴이 굳었다.
자기 모르게 아들이 뭔가 말썽을 일으킨 건 아닌지.
그의 생각을 짐작이라도 한 듯 구진수가 서둘러 얘기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와 엄현식 사장은 알고 지내는 사이입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엄상현은 처음 알게 된 사실에 놀랐지만 크게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
“일선에서 잠시 물러나 있으면서도 좋은 사업계획을 가지고 있더군요.”
“사업계획이요?”
“아 참, 엄 사장이 회장님께 얘기하기 전에 말하지 않기로 했는데…… 제가 실언을 했군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엄상현 회장은 그가 의도적으로 얘기했다는 걸 직감하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이왕 얘기하셨으니, 저도 알고 싶네요. 우리 큰애가 어떤 사업을 구상했길래 수석님이 좋다고 하는지.”
“하하. 잠깐 실수하기는 했지만, 약속을 지키고 싶네요. 아무래도 당사자인 엄현식 사장에게 들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하하. 나이가 드니 조급증이 생기나 봅니다. 수석님 말씀대로 제 큰애에게 듣는 게 좋겠네요.”
이렇게 대답했지만, 엄상현 회장은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 사업을 진행하고 싶으면 엄현식을 복귀시키라는 것을.
* * *
이튿날.
“사장님!”
엄상현 회장의 부름을 받고 엄현식이 성북동으로 왔다.
그가 현관으로 들어서자 박경국 과장이 감격한 듯한 목소리를 내었다.
“사장님, 드디어 복귀하시는군요.”
“자네와 원식이가 애써 준 덕분이야.”
“별말씀을요.”
겸양을 보이는 말을 했지만 사실 박경국은 자기 아들의 능력에 감탄했다.
강릉에 다녀온 아들에게서 대충의 얘기를 들은 터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들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실제로 진행되어 엄현식의 복귀까지 이뤄 내었다.
‘그럼, 누구 아들인데.’
비록 자신이 성북동의 집사이기는 하지만, 엄상현을 도와 회장으로 만들고, 엄현식 또한 자기에게 많이 의지하도록 만들었지 않은가.
그러나 박경국은 확신할 수 있다.
아들이 자신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언젠가는 송우그룹 계열사의 최고 경영자가 되리라.
하지만 아들은 계열사의 최고 경영자로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사장님, 회장님께서 서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어. 나중에 얘기해.”
엄현식은 서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사르락.
침묵에 쌓여 있는 서재에는 이따금 종잇장 쓸리는 소리만 날 뿐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엄상현 회장은 엄현식이 준비해 온 를 읽는 중이었다.
그 책상 앞에 서 있는 엄현식은 조심스레 아버지 엄상현 회장의 기색을 살피는데, 그의 얼굴에서는 감정의 변화를 느낄 수 없었다.
엄현식은 오히려 좋은 징조라고 생각했다.
만약 계획서 내용이 아버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이맛살을 찌푸렸을 것이다.
잠시 후.
사업계획서를 다 읽은 엄상현 회장이 엄현식을 쳐다봤다.
“자회사를 만든다고?”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사업권을 가질 수 있도록 얘기된 거냐?”
“담당자를 소개받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받기로 했습니다.”
“필요한 정보?”
“경쟁업체 정보, 심사기준 등 사업권을 따내는 데 필요한 정보들입니다.”
경쟁업체의 정보나 심사기준을 알고 있으면 사업권을 획득하기에 훨씬 유리하다.
아니, 말로 하지 않았을 뿐 사업권을 거저 주겠다는 거나 다름없었다.
“공짜는 아닐 테니, 너는 뭘 주기로 했어?”
“경선 자금입니다.”
“뭐?”
“정무수석에서 곧 사임할 겁니다. 그리고 내년에 있을 경선에 참여할 생각이십니다.”
“당내 대통령 후보자 경선 말이냐?”
“그렇습니다.”
“그 사람이 후보자가 될 거로 생각하는 거냐?”
“앞일을 예상할 수는 없지만 지금 형성된 구도를 흔들 만한 능력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무엇보다도 사업이 우선입니다.”
엄상현은 필요할 때 송우그룹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정치인을 곁에 두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그가 정치 인맥을 만들었을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럴 때 그를 이용할 줄도 알고 말이다.
어처구니없는 일로 그를 송우중공업 사장 자리에서 내려오게 했지만, 그 공백의 시간에도 이런 것을 계획했다니 대견스럽기는 했다.
“정무수석과는 언제부터 알고 지냈어?”
“오래되지는 않습니다.”
“명심해. 거래에는 공짜가 없다는 거.”
“예, 아버지.”
“강릉에서 짐 챙겨서 올라와.”
“감사합니다, 아버지.”
순간적으로 기쁨이 차오르는 엄현식은 허리를 깊이 숙여 엄상현에게 인사했다.
* * *
엄현식의 복귀 소식이 가족들에게 알려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날 저녁 늦게 엄상현 회장은 가족들을 거실로 모이게 했다.
현호뿐만 아니라 엄현태와 엄현주도 모이는 이유가 큰형 엄현식과 관련 있음을 짐작하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엄상현 회장이 거실로 들어오는데 그 뒤를 엄현식이 따라 들어왔다.
“형, 오랜만이야.”
“어, 그래.”
현호가 먼저 인사하자 엄현태와 엄현주도 건조한 말투로 인사말을 건넸다.
“어서 와, 형.”
“잘 왔어, 오빠.”
“그래, 고맙다.”
형식적인 인사가 끝나자 엄상현 회장이 입을 열었다.
“현식이는 오늘부터 성북동에서 지낼 거고, 내일부터 일을 시작할 거다.”
“송우중공업 사장으로 복귀하는 건가요, 아버지?”
엄현주가 물었지만, 거실에 있는 모두 궁금한 기색이었다.
“중공업 일도 보면서 새 사업을 주도적으로 진행할 거다.”
“어떤 사업이에요?”
“사업의 틀이 잡히면 알게 될 거다.”
“…….”
“그리고 너희들에게 특별히 당부할 게 있다.”
가족들의 시선이 모두 엄상현 회장에게로 향했다.
“현식이의 대표이사 복귀는 송우중공업 임시 이사회가 열리기 전까지 함구해라.”
사회적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면서 엄현식이 자리에서 물러나기는 했지만 이사 자격까지 잃은 것은 아니었다.
그가 공식적으로 대표이사에 복귀하려면 이사회에서 재선임되어야 했다.
“만약, 그 이전에 현식이의 소식이 밖으로 전해지면, 너희들의 입에서 나간 것으로 알겠다.”
“……!”
가족들은 일제히 깨달았다.
엄상현은 당부라고 했지만, 실제는 경고라는 것을.
현호는 그의 경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사회적 큰 이슈였던 엄현식의 사건이 있었으니 그의 복귀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터.
그 경고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는 이들이 있었다. 차남 엄현태와 그의 아내 배희진이었다.
아직 엄현태는 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했는데, 큰형의 복귀가 이루어지니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소식이 새어 나가는 것조차 막히니 답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엄현식의 복귀에 신경을 쓸 때, 현호는 다른 것에 더 신경이 쓰였다.
‘무엇을 줬을까?’
그의 복귀에 구진수가 힘을 발휘했다면, 그가 얻는 것도 있을 터.
어차피 엄현식의 새 사업은 송우그룹에 속하니 자신이 지금 건드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구진수는 다르다.
애초에 그가 우리 집안사람들과 인연을 맺게 된 건 자신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계획안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미래에 자신을 곤란하게 할 여지가 있다.
‘신중히 지켜봐야겠어.’
현재로서는 구진수의 움직임을 알 수 없으니, 지켜볼 수밖에 없다.
언젠가는 그가 스스로 욕망을 드러낼 것이다.
* * *
한차례 비바람이 지나간 후, 시원했던 가을이 사라지고 성큼 겨울이 다가왔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는 내년 드라마 방영과 영화 상영으로, 송우미디어는 내년에 있을 신인 가수들의 데뷔 무대를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호도 그 속에 파묻혀 살다가 급한 업무가 마무리 되었을 때, 기다려 왔던 소식을 뉴스로 듣게 되었다.
[구진수 정무수석, 사직서 제출. 대통령 재가]
[구진수 정무수석,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하겠다.’ 대권 도전 시사]
“뭐, 대권?”
그 소식에 현호는 흠칫 놀랐다.
그리고 큰형 엄현식에게서 무엇을 받았는지 알 것 같았다.
‘골치 아프게 생겼네.’
내년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
전생에서 그는 대통령 선거에 나오지 않았다. 물론 당내에서 벌어지는 예비경선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큰형이 부추겼군.’
전생과 상황이 달라졌다.
그가 대권에 도전하려면 당내 예비경선을 통과해야 한다.
그가 예비경선에 참여한다고 해도 바람을 일으킨 후보를 이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이기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문제인 것은 구진수가 현호의 계획에서 이탈되었다는 것이다.
‘흠…… 이러면 곤란하지.’
문제를 일으킬 여지가 있는 것은 제거해야 한다.
‘어떻게……? 아!’
현호의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현주 누나를 이용하면 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