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엄상현 회장과 유태규
“대체 이게 말이 돼? 대권 도전? 허!”
퇴근 후 집으로 돌아온 현호.
하지만 샤워도 못 하고 30분 동안 엄현주의 화풀이를 듣고 있어야 했다.
엄현주는 현호의 방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구진수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고 엄청 열을 받은 듯했다.
“대통령은 아무나 되니? 안 그래?”
듣고만 있던 현호가 한마디 내뱉었다.
“누구라도 도전은 할 수 있지.”
“야!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야?”
자기편에서 대답할 줄 알았는데, 예상을 벗어난 대답을 하자 엄현주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진정해. 누나가 화낸다고 그 사람 인생이 바뀌지 않아.”
“그럼 어떡해야 바뀌는…… 어?”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갑자기 멈췄다.
“너, 그 미소 뭐야? 좋은 아이디어 있는 거지?”
현호의 의미심장한 미소에 금세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구진수의 정치생명을 누나가 좌지우지할 방법이 있어.”
“정말?”
순식간에 엄현주의 눈이 커지며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더구나 가까이 오라는 말도 안 했는데 그녀가 현호의 곁으로 바짝 다가와 물었다.
“그 방법이 뭔데?”
“작년 의약분업 파업 전, 구진수 정무수석을 만났잖아. 그걸 이용하면 돼.”
“그걸 어떻게 이용해?”
“송우병원은 원래 파업에 참여할 생각이었지. 하지만 구진수 정무수석을 만난 후 송우병원은 파업 반대로 돌아섰어.”
“원래 송우병원은 결정을 못…… 아!”
뒤늦게 현호의 얘기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차린 듯 그녀가 다음 말을 이었다.
“언제 터트릴까?”
“누나, 지금은 아냐. 적당한 때를 기다려야 해.”
“그때가 언젠데?”
“정무수석은 지금 한창 대선에 나서는 상상을 할 거야. 그런데 첫 관문인 예비경선을 통과해야 해. 그 문턱만 넘으면 직행이지. 그 문턱 앞에서 좌절시켜야 하지 않겠어?”
“오케이!”
엄현주가 경쾌한 소리로 외쳤다.
“와아, 이제야 기분이 좀 나아지네.”
좀 전까지 흥분해서 얼굴이 붉어졌던 엄현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현호는 속으로 웃었다.
‘왜 자기에게 하라는지, 모를 테지.’
구진수를 곤경에 빠트리는 것은 엄현주의 도움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현호는 그녀가 주도하도록 했다.
그녀는 복수할 수 있다는 기분에 들떠 있어 간과하고 있는 게 있다.
오랜 정치인의 삶에서 맺어진 인맥.
그녀가 구진수의 정치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면, 그는 한 사람의 기업인을 위태롭게 할 인맥이 있다.
‘내가 그런 위험부담을 안을 필요는 없지.’
* * *
“후우.”
송우호텔 VIP 룸 앞에 서 있는 유태규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엄현주와의 열애설 기사가 나간 후 엄상현 회장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무척 궁금했었다.
어떤 식으로든 이런 날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엄상현 회장을 만나게 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사법시험 최종 면접시험 때보다 더 떨리지만, 내색해서는 안 된다.
‘잘할 수 있어.’
다시없을 기회다.
이 기회를 반드시 잡아야 한다.
오늘 만남을 위해 준비해 온 것도 있지 않은가.
그걸 보여주는 순간이 온다면 자신의 가치를 알게 되리라.
유태규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크게 내뱉은 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처음 뵙습니다, 회장님. 유태규라고 합니다.”
깍듯이 허리 숙여 인사한 유태규.
TV에서만 봤던 엄상현 회장의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유하게 보였던 인상과는 달리 자신의 인사에도 엄상현 회장은 냉랭한 태도로 얘기했다.
“앉게.”
“예.”
유태규가 맞은편에 자리하자 엄상현이 먼저 얘기했다.
“대한민국에 내 사위가 되고 싶어 하는 검사는 많아. 자네보다 더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지.”
“…….”
“그런데 왜 현주가 자네를 선택했다고 생각하나?”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려는 엄상현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자신은 선택받아야 하는 처지라는 걸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그의 환심을 사려면 능력이나 성과를 얘기해야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껏 자신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성과를 낸 엄상현 회장에게 자기 자랑을 해 본들 돌아오는 건 비웃음뿐이리라.
‘차라리 잘됐어. 준비해 온 걸 얘기하자.’
회장이 기대하는 모범답안 대신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가져온 게 있다.
“회장님, 외람되지만 질문이 잘못되었습니다.”
“뭐?”
흠칫 놀란 엄상현의 미간이 꿈틀하는 걸 본 유태규는 안주머니에서 잘 접힌 문서를 꺼내 건네며 얘기했다.
“송우그룹을 위해 뭘 할 수 있는지를 물어봐 주시죠.”
“……!”
엄상현은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에 유태규가 건넨 문서를 펼쳐보았다. 사람들의 인적사항이 적힌 리스트였다.
그 리스트의 이름들을 살펴보던 엄상현의 눈이 순간적으로 커졌다. 큰며느리 채연희의 이름이 있는 탓이었다.
그 모습을 본 유태규가 말을 이었다.
“두 달 전 환치기 조직이 붙잡혔습니다. 가족분이 미국으로 돈 보낼 일이 있으셨나 봅니다.”
“……!”
엄상현은 큰며느리가 작년 미국에 다녀온 게 생각났다.
“가족분은 염려하지 마세요, 회장님. 제가 잘 막았으니까요.”
“……!”
“회장님 사위가 되고 싶은 검사가 많다고 하셨죠? 저보다 조건이 좋은 그분들이 저처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든 엄상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다른 사내 같으면 검사로서 얼마나 큰 성과를 이뤘는지를 자랑했겠지만, 그는 검사로서 무엇을 버릴 수 있는지 얘기했다.
검사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이 송우그룹보다 앞설 수 없다.
이에 엄상현은 엄현주가 한 얘기가 떠올랐다.
-태규 씨는 실력 있어요. 충분한 지원을 받으면 우리가 성국그룹을 제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그 얘기가 헛말은 아닌 것 같았다.
엄상현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얘기했다.
“이 호텔 주방장 솜씨가 훌륭해. 함께 식사하고 가게.”
“감사합니다, 회장님.”
비로소 유태규의 입가에 기쁨의 미소가 번졌다.
* * *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추위지만 캐럴이 흘러나오는 거리에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이 추위도 연인이나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기쁨이 되는 계절.
그들 못지않게 이 시간이 행복한 이가 있었다.
바로, 송우중공업 임시 이사회에서 대표이사로 재선임된 엄현식이었다.
“여보, 축하해요.”
엄현식의 아내 채연희가 회사까지 찾아와 축하해줬다.
“원래 내 자리로 돌아온 거야.”
기분은 좋으면서도 아내에게 내색하지는 않았다.
강릉으로 쫓겨 갈 때 정신이 혼미할 정도로 아찔했던 걸 생각하면 티 나게 좋아할 상황은 아니라는 걸 아는 까닭이다.
“복권사업, 진행은 잘되고 있어요?”
“당연하지. 나중에라도 딴소리 못 하게 단속 잘해 놨어.”
“잘됐네요. 당신도 제자리 찾았으니 올해가 가기 전에 아가씨 문제만 해결하면 되겠어요.”
“현주 결혼?”
“그때 열애설이 갑자기 터져서 결혼 추진이 멈췄잖아요.”
“그 자식하고는 아무 사이 아닌 거 확실해?”
“열애설 기사를 보면 직업만 검사지 집안은 평범해요. 아가씨가 그런 집안 사람하고 결혼하겠어요? 산미그룹 얘기했을 때도 날 째려보던데.”
“하긴, 계집애가 욕심이 많아서…… 근데 어떻게 다시 추진할 건데?”
그의 물음에 채연희가 손목시계를 보며 시간을 체크했다.
“지금쯤 박 여사가 어머님 만나고 있겠네요.”
“박 여사?”
“우리 결혼 중매하신 분이잖아요.”
“아아, 그래. 치울 건 빨리빨리 치워야지.”
두 사람은 여동생을 빨리 치워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가족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거실에 모였을 때까지도 그들의 바람대로 진행되는 줄 알았다.
“여보, 오늘 박지숙 여사가 다녀갔어요.”
최유경이 남편 엄상현에게 과일을 담은 접시를 건네며 얘기했다.
“음…….”
떨떠름한 그의 반응에 현호는 엄현주의 기색을 재빨리 살폈다.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는 그녀.
‘이미 끝났구나.’
열애설을 일으켜 결혼 진행을 막았던 그녀였다.
아버지가 그 상대자를 이미 만났고 마음을 결정하신 것이다.
현호는 큰형수 채연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 또한 미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 뜻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큰형수 어쩌냐.’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아는 현호는 안타까운 시선으로 채연희를 보며 남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한편, 이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최유경이 얘기했다.
“여보, 산미그룹 셋째가 아직 현주를 기다리고 있다던데, 만나보라고 하는 게 좋겠죠?”
“현주 기다리지 말고 좋은 짝 찾으라고 해.”
“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변한 게 최유경만이 아니었다.
현주와 현호를 제외한 가족 모두가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여보, 그게 무슨 말이에요?”
“현주 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당신이 정했어요?”
“음.”
“그 사람이 누구예요?”
“열애설 났던 그 검사야.”
“예?”
“어머! 아버님?”
최유경보다 큰며느리 채연희가 더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아버님, 그런 평범한 집안에 아가씨를 보내신다고요?”
엄상현이 감정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채연희를 보며 얘기했다.
“강인 애미는 그 검사 집안이 평범한 걸 어찌 알았어?”
“예? 아니, 그러니까…… 웬만한 그룹이면 제가 알았을 테니까요.”
재빨리 머리를 굴려 대답한 채연희.
그런 그녀를 가만히 응시하며 엄상현이 얘기했다.
“강인 애미, 작년에 미국에 다녀왔지?”
“예, 아버님.”
“네가 이용한 환치기 조직이 검거되어서 재판에 넘겨졌다더구나.”
“예에?”
채연희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지 화들짝 놀랐다.
그런 모습을 보며 엄상현이 다음 말을 이었다.
“몰랐겠지. 그 사건에 네 이름이 나오지 않게 그 검사가 잘 처리했다. 남모르게 골치 아픈 일 처리해 주는 사위도 있어야지. 안 그러냐?”
“…….”
채연희는 민망함에 입술을 깨문 채 대답하지 못했다.
이에 엄상현은 아내 최유경에게 시선을 돌려 얘기했다.
“노 비서한테 그 검사에게 연락하라고 할 테니 당신도 만나 봐. 당신이 싫으면 딴 놈으로 골라야지.”
‘그럴 리 없다는 걸 아시면서.’
현호는 아버지의 말에 속으로 웃었다.
아버지는 사윗감의 최종 결정을 어머니에게 맡긴 것처럼 얘기했지만, 아버지도 알고 자신도 알고 있다.
어머니가 유태규를 반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어머니는 딸이 원하는 상대를 반대해 헤어지게 할 사람이 아니니까.
* * *
한 해가 가고 새해가 되었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가 준비한 드라마 의 방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고편이 나간 후 반응이 좋았고, 화제도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또 다른 이슈.
[대선 예비후보들을 TV토론에서 만나 보세요.]
여당에서는 국민 참여 대선 후보 경선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시선을 끌었다.
대선이 있는 만큼 방송사도 예비후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TV에서 그 광고를 본 현호.
“누나가 나설 때가 왔군.”
현호는 엄현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누나, 어디야?”
[사무실.]
“거기로 갈게.”
[왜 여기로 오겠다는 거야?]
“구진수 씨에 대한 마음, 변함없지?”
[당연하…… 아! 때가 된 거야?]
“그러니까 만나자고 하는 거잖아.”
[알았어. 기다릴게.]
현호는 그녀의 기분이 어떨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엄청 흥분되겠지.
하지만 그녀는 뒷감당이 쉽지 않으리라는 걸 모른다.
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