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8
8화 공짜는 없다
“기억이 나네요.”
황원기가 현호를 쳐다보며 대답했다.
“다행이네요. 그래야 빚을 갚고 새 출발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 땅에 관해 얘기하기 전에, 이사장님이 말씀하신 방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황원기에게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가족이었다.
가족을 살릴 수만 있다면, 거래 대상이 누가 될지는 그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런데 심지어 현호는 그의 목을 틀어쥘 수 있는 자료까지 지니고 있었다. 현 상황에서는 이리저리 생각해 봐도 그와 거래를 하는 게 최선이었다.
“간단합니다. 그 땅을 제가 찾게 도와주신다면 사무장님의 채무를 갚아 드리는 것 정도는 어려운 일도 아니죠. 거기에 원하시는 사업을 시작하실 수 있도록 지원까지 해 드리겠습니다.”
“지원이요?”
“한 번 실패를 경험해 보셨으니, 이번에는 잘하실 수 있으시겠죠. 번듯하게 자리를 잡으신다면 아이들을 낯선 타지로 보내실 필요도 없지 않겠습니까?”
“……좋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을 제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현호는 안쪽 주머니에서 문서 하나를 꺼내 그 앞에 내밀었다.
“그럴 줄 알고 준비해 왔습니다. 내 약속이 담긴 문서입니다. 이제 사인하고 본론으로 넘어갈까요?”
문서에 이미 현호의 사인이 있는 것을 본 황원기가 펜을 들어 사인했다. 그리고 현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말씀하신 대로…… 엄주길 회장님께서 남기신 재산 중 유일하게 재단에 기부하지 않은, 이사장님의 명의로 된 땅이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현호에게 남긴 유일한 재산은 송우문화재단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아버지 엄상현 회장이 남매들에게 할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감췄듯, 자식들에게도 숨겼던 것이다.
여기까지는 전생에 이미 파악했던 정보였다.
중요한 건 그다음이었다.
“어째서 그 땅만 그대로 둔 건가요?”
“그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
“음…… 그렇군요. 혹시 그 땅에 대해 기억하고 있거나, 관련된 자료 같은 건 없습니까?”
“아, 언제든 지시를 받았을 때 처리할 수 있도록 등기부 등본을 복사해 두었습니다.”
현호는 속으로 쾌재를 내질렀다.
존재만 알고 있을 뿐,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존재조차 불투명한 땅이었다.
하지만 황원기가 지닌 등기부 등본이라면 꽤나 많은 정보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내에게 연락해 바로 사진을 찍어 이메일로 전송시키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혹시 어느 지역의 땅인지는 기억합니까?”
“네. 분명 판교였습니다.”
뭐, 판교?
현호는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내심 꽤나 놀랐다. 그리고 왜 아버지가 문화재단 재산으로 처리하지 않았는지도 알 것 같았다.
판교는 몇 년 전부터 신도시로 개발된다는 말이 떠돌던 곳이다. 그리고 될 듯 말 듯 하던 판교 신도시 개발 발표가 마침내 내년에 이루어진다.
예상치 못했던 행운에 희열이 솟았지만, 황원기 앞에서 드러낼 수는 없었다.
현호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에게 얘기했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 아내분에게 연락하시죠.”
* * *
최명준은 테이블 위 빈 접시를 내려다봤다. 이런 최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 건 처음이었다.
‘맛있기는 했는데…….’
그릇에 보기 좋게 담긴 음식은 눈과 입을 동시에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도무지 식사를 즐길 수가 없었다.
혼자 이곳에 덩그러니 남겨진 탓은 아니었다.
‘도대체 뭘 하시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엄현호의 행동 탓이었다.
작은 가게가 줄지어져 늘어서 있는 녹번동 거리를 찾았던 것부터 이번 호텔 레스토랑까지.
분명 자신은 그의 비서로 이 자리에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어떤 일을 하고 다니는 것인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나를 믿지 못하는 걸까?’
아니면 원래 사람을 믿지 못하나?
사람을 못 믿는다면, 이동을 위해 운전사만 채용하면 될 텐데 왜 비서를 채용한 걸까?
혹시…… 말 못할 일이라도 하고 다니는 것은 아닐까?
‘아, 정말 모르겠다.’
복잡해진 머릿속을 털어내려 고개를 저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현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 모습에 최명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녀오셨습니까? 식사 다시 주문할까요?”
“아닙니다. 최 비서는 식사 잘 했습니까?”
“예, 이사장님 덕분에.”
“그럼 재단으로 돌아갈까요?”
“예, 이사장님.”
최명준은 얼른 앞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 * *
송우문화재단으로 가는 길.
최명준은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을 힐끔 쳐다봤다.
현호는 무언가 깊은 고민이라도 있는 것인지 차에 타고 있는 내내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비서인 자신에게 무언가 얘기해 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이번에도 무슨 일로 호텔에 방문한 것인지 결국 아무런 이야기도 들을 수 없었다.
“이사장님, 도착했습니다.”
“아, 그렇군요.”
상념에 잠겨 있던 현호는 재단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최명준의 목소리에 현실로 돌아왔다.
현호는 차에서 내린 뒤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주억거리고는 최명준을 불렀다.
“최 비서.”
“예, 이사장님.”
“여기 적힌 주소로 가서 물건 좀 찾아다 줘요. 황 씨가 맡긴 물건이라고 하면 줄 거예요.”
현호는 최명준에게 주소가 적힌 쪽지를 주었다.
“지금 다녀오세요.”
“예, 이사장님.”
현호가 명령하자 최명준은 곧장 승용차에 타더니 재단 밖으로 향했다.
최명준이 탄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담담했던 현호의 표정에 순간적으로 근심이 스쳤다.
‘전생에서처럼 최명준을 믿을 수 있을까?’
전생에서는 그를 완벽히 신뢰할 수 있었다. 그런 신뢰는 최명준이 만든 것이다.
이번 생에서 그와 다시 만나기는 했지만,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다르다.
전생에서는 가족에게 무시받는 혼외 자식이었다. 차별의 경험뿐만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의 경험 등 그와 공유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회장의 막내아들이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재벌 3세이기에 최명준과는 공유할 게 없어 그가 마음을 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번 생에서도 전생과 다름없이 자신을 따라와 줄 것이라 확신이 없고서야, 그에게 함부로 무언가 이야기하긴 어려웠다.
‘부디…….’
그래서 현호는 그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최명준은 모를 것이다.
단순한 물건 심부름이라 생각했던 일로 인하여 자신이 어떤 난처한 일을 겪게 될지.
현호는 간절히 바랐다.
그 과정 속에서 그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를.
* * *
“안 그래도 연락받았어. 황 씨가 맡긴 물건 찾으러 왔지?”
“네, 사장님.”
허름한 철물점 주인이 상자들이 층층이 쌓인 구석에서 라면 상자 하나를 꺼내 왔다.
“이거야, 황 씨 거.”
“예, 감사합니다.”
최명준은 철물점 사장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라면 상자는 충분히 혼자서 들 수 있을 만한 무게였다. 상자 위아래에 일자로 테이프가 봉해져 있어서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을 승용차 뒷좌석에 놓고 운전석에 탄 최명준이 문화재단을 향해 출발했다.
‘도대체 갈피를 못 잡겠어.’
최명준은 현호의 행동이 오늘따라 더 이상한 것 같았다.
누구를 만나는지, 왜 만나는지 등 이사장의 스케줄을 비서인 자신에게도 알리지 않는 그였다.
그런데 불쑥 물건을 찾아오라고 쪽지를 건네줬다. 그 쪽지의 글씨는 이사장의 글씨체가 아니었다. 누군가에서 받은 쪽지가 분명했다.
추측해 보자면 호텔에서 만난 사람에게서 그 쪽지를 받았고, 그 사람이 황 씨이리라.
그런데 비밀리에 만난 사람의 물건을 자신에게 가져오라고 하다니, 이상했다.
앞의 신호등에 빨간색이 들어왔다.
최명준은 운전을 멈추고 뒷좌석에 있는 라면 상자를 쳐다봤다.
‘…….’
상자의 입구가 테이프로 봉해져 있기는 하지만 여러 차례 열었는지 테이프의 접착력이 헐거워져 있었다. 자신이 한 번 더 열어 본다고 표시가 날 것 같지는 않았다.
최명준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앞 창문으로 신호를 봤다. 빨간색이 파란색으로 곧 바뀔 것이다. 그러면 좌회전을 해서 길가에 차를 세워 상자 안에 든 것이 무엇인지 볼 수 있다.
‘어쩌지……? 아!’
신호가 바뀌었다.
* * *
똑똑.
이사장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
“들어와요.”
문이 열리며 최명준이 상자를 들고 들어왔다.
“이사장님, 다녀왔습니다.”
“수고했어요. 이리로 올려놔요.”
“예.”
최명준이 책상 가까이 다가와 상자를 내려놓았다.
현호는 티나지 않게 최명준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은 평소와는 다르게 굳어 있었다.
“어려운 일은 없었어요?”
“네, 없었습니다.”
전생에서 그는 제법 포커페이스를 잘했다. 그래서 라이벌인 상대가 최명준의 표정을 통해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10년 일찍 만난 지금의 그는 포커페이스를 할 만큼 충분한 경험을 쌓지 못했다.
무언가 불편한 얼굴로 그는 설명하기 시작했다.
“쪽지에 적힌 주소로 갔더니 철물점이었습니다. 그 주인이 연락받았다고 상자를 내주셨습니다.”
“그래요.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나가도 됩니다.”
“예, 이사장님.”
최명준은 인사한 후 사무실을 나갔다.
현호는 그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다. 일단 그가 곧 겪게 될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지켜볼 심산이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상자 입구의 테이프를 떼어 내고 안의 자료를 살피기 시작했다.
송우미디어 주식에 관한 자료뿐만 아니라, 다른 계열사 주식과 건물, 미술품, 그리고 판교 땅과 관련된 자료들도 섞여 있었다.
‘이게 작은아버지에게 넘어갔으면…….’
송우미디어를 갖겠다는 엄상현 회장의 욕망만 좌절되는 게 아니다. 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어 그룹 회장 자리가 흔들릴 수도 있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엄상현이 지금 무너진다면, 그의 아들인 자신의 입지 또한 흔들릴 여지가 있었다.
‘이번엔 어쩔 수 없지.’
그렇기에 현호는 이 자료를 엄상현에게 넘겨줄 생각이었다.
그에게 좋은 일을 해 준다는 것이 썩 내키진 않지만, 이번 일을 통하여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면 향후 반드시 도움이 될 터였다.
물론, 판교 땅 관련 자료는 넘길 생각이 없었다.
그것이 앞으로의 계획을 위한 자금줄이 되어 줄 테니까.
* * *
“이게 뭐냐?”
서재 책상 위에 놓인 라면 상자를 보며 엄상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황원기 전 사무장에게서 받은 자료입니다.”
“뭐?”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엄상현 회장.
저런 눈빛일 줄 알았다.
막내아들의 능력을 의심하는 아버지.
꼬투리만 잡히면 이사장에서 밀어내고 미국으로 보낼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자 안의 자료가 진짜라는 걸 확인하면 아들의 능력을 인정하게 되리라.
아버지의 인정을 받는 것.
그것이 계획의 시작이었다.
다만 그렇다고 그냥 넘길 생각은 없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주는 게 있으면 당연히 받는 것도 있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