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81
81화 남현민의 선택
성북동.
“아버지, 인경시 아파트 건설 착공했습니다.”
엄현태의 얼굴에는 기쁜 기색이 드러났다.
아버지, 엄상현 회장과의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다.
지난해 인경시 용대산 택지 개발을 앞두고 환경단체의 방해로 공사가 취소될 위기였다.
그 단체의 배후에는 큰형 엄현식이 있었지만, 증거가 없어 밝히지는 못하고 속앓이를 해야 했다.
그런데 현호의 제안으로 다른 방향으로 길을 뚫었다.
용대산의 택지 개발을 공원으로 변경하면서 상업지구의 용도를 변경했다.
또다시 방해받을 것을 염려해 비밀리에 새 계획을 추진했는데, 어제 공사가 시작되었다.
“별다른 잡음 없이 잘 처리했구나.”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칭찬을 받은 엄현태는 기분이 들떴다.
새 계획을 추진할 당시 아버지가 약속한 게 있었다.
-두 가지를 해내려면 힘들 거다. 마무리 잘하면 사장으로 승진시켜 주마.
그것을 위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큰형의 사업 확대를 지켜보기만 했다.
“아버지, 약속하신 걸 받고 싶습니다.”
“약속했으니 주어야지. 임시 이사회 소집해서 진행시키마.”
“감사합니다, 아버지.”
상기된 표정의 엄현태는 고개 숙여 인사했다.
* * *
엄현태의 사장 승진 소식이 가족들에게 전해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지시하셨다고?”
[그렇습니다, 사장님.]
장남 엄현식은 박경국 과장과 통화 중이었다.
[인경시 아파트 건설이 착공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묶여 있는 사이에 그 자식이…….”
자신이 별장 관리인 폭력 사건으로 송우중공업 사장에서 물러나 재판을 받는 사이 엄현태는 성과를 쌓아 올렸다.
로디복권 시스템사업자 건으로 겨우 원래 자리로 복귀했지만, 예전만큼 아버지의 신뢰를 회복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지만, 현태가 승승장구하게 내버려 둘 수 없잖아.”
[그렇습니다, 사장님.]
엄현식은 짜증이 솟구쳐 인상을 썼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로디복권 시스템사업 건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탓이다.
그게 잘못되면 겨우 돌아온 자리에서 다시 밀려날 수 있기에 지금은 마무리에 집중해야 할 때다.
“나도 생각해 볼 테니까, 박 과장도 막을 방법을 생각해 봐.”
[알겠습니다.]
여건상 지금은 지켜보겠지만, 미래를 대비해서라도 엄현태에 대한 견제를 멈출 생각은 없었다.
엄현식은 비록 뒤에서는 엄현태를 견제할 방법을 찾았지만, 아버지 엄상현 회장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해야 했다.
“아 참! 현태야, 얘기 들었어. 사장으로 승진하게 됐다며? 축하한다.”
가족이 함께 있는 거실.
엄현식은 마치 방금 생각난 것처럼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미소 띤 얼굴로 얘기했다.
집안의 장남다운 처신을 아버지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고마워, 형.”
엄현태는 그의 미소가 거짓인 줄 안다.
하지만 자신의 승진 축하 분위기를 망칠 수 없기에 내색하지 않은 채 대답했다.
“오빠, 축하해.”
“축하해, 형.”
다른 형제들의 축하 인사가 뒤따랐다.
그리고 잠깐의 침묵.
TV 뉴스에서 흘러나온 앵커의 목소리가 거실에 조용히 울렸다.
[작년 한 해 7개 카드사의 순이익이 2조를 넘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들 카드사의 이용실적은…….]
뉴스를 들은 엄현주가 엄상현 회장에게 물었다.
“아버지, 송우카드 실적은 어때요?”
엄상현이 대답하기 전 엄현식이 얼른 끼어들어 타박하듯 얘기했다.
“야야, 너는 송우그룹 식구면서 아직 그 소식을 모르는 거냐?”
“무슨 소식?”
“송우카드가 실적에서 성국카드를 앞섰어.”
“어머! 아버지, 축하할 일이네요.”
“조금 앞섰을 뿐이야. 아직 좋아할 단계는 아니다.”
말은 이렇게 했지만, 엄상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그 모습에 현호는 남모르게 고개를 저었다.
‘좋아할 때가 아닌데.’
지금 신용카드 사업의 실적이 찬란하게 빛나 보이는 이유는 카드 사용자들이 이용한 높은 이자율의 현금서비스와 대출 때문이다.
그 빛 뒤에 가려진 높은 연체율을 걱정할 때가 이르면 수백만의 신용불량자가 생기고 카드사들이 엄청난 빚에 휘청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송우카드의 위기가 현호의 위기인 것은 아니다.
‘나야, 그 틈에서 이익을 챙기게 되겠지.’
* * *
한편, 신용카드 성장 뉴스가 달갑지 않은 이도 있었다.
성국그룹 안명기 회장이다.
“송우카드가 우리보다 앞서다니, 이게 말이 돼?”
화가 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경쟁하다 보면 엎치락뒤치락할 때가 종종 있다.
그걸 이해 못 할 경영인은 없다.
하지만.
‘엄상현…….’
그 상대가 송우그룹 엄상현 회장이기에 속에서 분노가 이는 것이다.
엄상현이 배후로 벌인 성국조선 주가조작 폭로 사건.
그 일로 자신의 장남이 검찰 조사를 받고 법원을 출입하고 있다.
성국에 앞섰다고 좋아할 그를 생각하면 속이 뒤틀리는 것만 같던 그때.
“회장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서재에 한종혁 법무팀장이 들어와 있었다.
“한 팀장, 무슨 일이야?”
“전해 드릴 말이 있습니다.”
“뭔가?”
“박영준 검찰총장이 엄상현 회장을 만났다고 합니다.”
“뭐어?”
안명기가 미간을 찌푸렸다.
“기업인과 만나는 걸 꺼리더니, 엄상현은 왜 만난 거야?”
“따님 결혼식 주례사를 부탁하러 만났다고 합니다.”
“흥. 결혼식 날짜도 안 나왔는데 주례사부터 부탁한다고? 보나 마나 뻔해. 박영준이한테 뭔가를 줬겠지.”
“전해 드릴 말이 하나 더 있습니다.”
“뭔데?”
“남현민 중수부장이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응?”
안명기가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한종혁을 쳐다봤다.
“우리 성재를 기소할 때, 우리와 인연 끊기로 한 거 아냐?”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어떻게 할까요? 만남을 거절할까요?”
“음…….”
안명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남현민을 중수부장에 앉힌 건, 박영준 총장이지?”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타이밍이 참 이상하군.”
“예?”
“총장은 엄상현을 만났는데, 남현민은 왜 우리에게 연락했을까?”
“…….”
“일단, 만나서 남현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 * *
다음 날.
한종혁은 약속 장소인 레스토랑 룸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남현민이 안으로 들어왔다.
“먼저 와 계셨군요, 한 팀장님.”
그는 지난번 자신을 대하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웃음기도 없이 속을 숨기는 듯한 그였는데, 오늘은 마치 자신을 반가운 사람처럼 대하는 게 아닌가.
그의 과장된 미소가 의심스럽지만, 표시를 낼 수는 없었다.
“부장님을 기다리게 할 수는 없죠. 앉으시죠.”
“아, 예.”
그가 자리에 앉자 한종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만나자는 연락을 받고 조금 놀랐습니다.”
“아니, 왜요?”
“부장님은 총장님과 함께 움직일 줄 알았거든요.”
“아아, 난 또 무슨 얘기인가 했네.”
남현민은 그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들었다.
총장이 엄상현 회장을 만났는데, 왜 성국에 연락했느냐고 묻는 것이다.
자신을 총장의 사람으로 판단한 것이다.
“내가 총장님 사람이 아니라는 거, 성국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 않습니까.”
“중수부장으로 승진한 것은 총장님의 뜻 아니었습니까? 아무나 그 자리로 보내지는 않죠.”
“총장님 라인만 챙긴다는 검찰 내 불만이 나로 인해 싹 사라졌죠.”
남현민은 이렇게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총장과의 거래로 중수부장으로 승진했지만, 이런 거래를 가능하게 한 배경에는 엄현호가 있기 때문이다.
성국그룹 사람 앞에서 그 사실을 얘기할 수는 없었다.
다행히 그의 설명에 납득한 건지 한종혁 팀장이 고개를 끄덕인 후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신 겁니까?”
“최근 들어 성국그룹과 송우그룹의 관계가 더 안 좋아지는 것 같네요.”
“무슨 말씀입니까?”
한종혁은 내심 놀랐다.
모르는 척 묻기는 했지만, 그의 말이 사실이었다.
“송우정유 특혜 사건과 성국조선 주가조작. 서로 다른 사건인데, 두 그룹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군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하나는 명확히 알고 있죠. 부장님이 성국그룹을 아주 열심히 수사하셨다는 것을요.”
“열심히 수사할 수밖에 없었죠.”
“……?”
한종혁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밀어주는 스폰서도 없는 놈이 그렇게라도 이름을 높여야 이 세계에서 살아남죠.”
남현민은 자신의 뒤에 현호가 있었음에도 태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성국의 손을 뿌리친 건 부장님이시죠.”
“입은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랬다고, 내 손을 먼저 놓은 건 성국이죠.”
“그래서 부장님의 힘을 저희에게 보여 주려 했던 겁니까? 안성재 사장을 기소하면서?”
“이런, 내게 많이 섭섭하신 모양이네요. 안명기 회장님께 드릴 선물을 가져왔는데, 미운 놈의 선물은 안 받으실까요?”
“……!”
한종혁은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는 대화를 시작할 때 성국그룹과 송우그룹의 불편한 관계를 언급했다.
그 얘기를 한 이유가 있었다.
송우그룹 관련된 것을 알려 줄 테니 관계를 회복하자는 것.
한종혁은 그의 물음에 대한 답을 주었다.
“선물 나름이겠죠.”
그의 말에 응답하듯 남현민이 대꾸했다.
“요즘 송우카드가 잘 나가더군요. 실적에서 성국카드를 앞선 것으로 압니다만.”
“……!”
한종혁은 바로 알아들었다.
그가 알려 줄 게 송우카드와 관련되었다는 것을.
안 그래도 그 일로 안명기 회장의 심기가 불편했다.
남현민의 기회주의적인 성격은 흠이지만,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능력은 뛰어나 버리기는 아까운 존재다.
이에 한종혁은 답변을 주듯 말했다.
“선물을 보고 싶군요.”
그 대답을 알아들은 남현민이 가져온 서류봉투를 건네며 한마디 했다.
“제 인맥을 동원해 어렵게 구한 겁니다.”
한종혁은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살폈다.
그 봉투 속에는 송우카드의 불법적 영업행위에 대한 자료들이 있었다.
그것을 살펴본 한종혁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선물을 회장님께 전한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러시죠.”
태연히 대답하는 남현민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사장실.
“시청률이 예상보다 잘 나오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대박이죠.”
현호는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임원들과 회의 중이었다.
연초에 방영이 시작된 이 꾸준히 화제를 모으며 높은 시청률을 보이고 있었다.
“방영이 끝나면 VOD나 OST에서의 매출이 평균보다 높을 것 같습니다.”
최수민 팀장이 얘기하자 현호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겨우 그 매출을 바라보고 우리가 모든 제작비를 부담하며 판권을 지킨 게 아닙니다.”
미래에는 달라지지만, 현재의 외주 제작사는 드라마 제작 시에 일정 비율의 제작비를 방송사에서 받고 판권을 넘기는 경우가 있었다.
“저는 해외 판매를 염두에 두고 있으니, 그쪽으로도 준비해 주세요.”
“문의해 오는 데가 없는데요?”
“반드시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올 겁니다.”
현호만 알고 있는 미래였으니,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때.
“사장님.”
사무실 밖에서 통화 중이던 최명준 실장이 들어왔다.
그의 표정을 보니 뭔가 일이 생긴 걸 직감했다.
이에 현호는 회의를 마무리했다.
“보고할 다른 사항이 없으면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예.”
임원들이 모두 사무실을 나가자 현호가 최명준에게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사장님의 예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남현민 검사가 성국그룹 법무팀장을 만났다고 합니다.”
“……!”
현호는 무슨 말인지 알아차렸다.
엄현주와 유태규의 결혼 소식이 세상에 알려졌을 때 현호가 신경 쓴 것은 따로 있었다.
바로, 남현민 검사였다.
“사장님, 저희가 먼저 움직일까요?”
걱정스러운 최명준의 물음에 현호는 싱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뇨. 기다려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