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82
82화 캐스팅보트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게 드러났는데요?”
최명준 실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남현민은 처음부터 그랬죠. 그런데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
“남현민으로 시작된 일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아는 것이죠.”
“송우그룹에 좋지 않은 일이라도, 우리에게는 좋을 수 있다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하지만 남현민이 무엇을 넘겼는지 모르지 않습니까?”
그의 물음에 현호는 피식 웃었다.
“성국그룹도 성국조선 주가조작 폭로의 배후에 아버지가 있다는 걸 알았을 겁니다. 그 일로 안성재 사장을 기소한 남현민이에요. 그렇다면 남현민 검사가 넘겨야 할 게 정해져 있죠.”
“아……!”
“무엇이 되었든 송우그룹 계열사를 흔들 수 있는 걸 주었겠죠. 그래야 안명기 회장의 마음을 움직일 테니.”
최명준은 현호의 속내를 알아차린 듯 얘기했다.
“그래서 기다려야 한다고 말씀하신 거군요?”
“그래요. 계열사가 흔들릴 때 형과 누나는 자기 것을 지키기에만 급급하겠죠. 나는 다른 선택을 할 테고.”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최명준은 내심 현호의 상황 판단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현호는 그저 재벌 3세로 태어났기에 그룹 오너가 되려는 마음을 가진 이들과는 달랐다.
그에게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그걸 다시 느끼게 되니 그와 함께 일하는 게 뿌듯했다.
* * *
성국그룹 회장실.
“남현민이 이걸 줬다고?”
“예, 회장님.”
안명기 회장은 한종혁 팀장에게서 건네받은 자료를 살폈다.
그 자료에는 불법적인 신용카드 신규 모집과 수수료 담합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걸로 금감원과 공정위를 움직일 수 있을 거 같은데…….”
“하지만 그 자료에 있는 불법행위는 대부분의 신용카드사가 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동의하듯 안명기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렇다고 모든 신용카드사를 징계하는 건 정부에서도 부담이야.”
“…….”
“우리가 빠져나갈 길은 만들어 놓고, 하나를 본보기로 세우면 되는 거 아니겠나?”
“아!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한종혁은 그의 말을 알아들었다.
송우카드를 불법행위의 대표로 만들어 금감원과 공정위의 징계를 받게 하려는 것.
“중징계를 받게 만들어야 해.”
징계의 수위에 따라 송우카드에 치명적일 수 있다.
시장은 동요할 것이고, 언론에서 위기설까지 조장된다면 연체율은 몇 배로 상승할 것이다.
그리고 가맹점에서는 송우카드 취급 거절로 이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송우카드는 카드 채 이자도 상환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
그런 상상만 해도 안명기의 기분이 나아졌다.
“그러려면 이 자료만으로는 부족해. 좀 더 모아 봐.”
“알겠습니다.”
* * *
예상했던 대로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제작 드라마 은 높을 시청률로 종영되었다.
드라마의 히트는 송우미디어도 들뜨게 했다.
송우미디어 매니지먼트 소속의 배우가 드라마 주연을 맡았기에 쏟아져 들어오는 광고 섭외에 입이 벌어질 지경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송우미디어 소속 가수가 부른 OST는 순식간에 인기 가요가 되었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의 성공은 영화로 이어졌다.
드라마 종영 후 영화 도 개봉하게 되었는데, 영화계의 예상을 깨고 대박을 터트렸다.
평일에도 매진이 이어졌고 영화관에서는 상영 일수를 늘렸고, 멀티플렉스에서는 상영 스크린 수도 늘어났다.
드라마와 영화, 연타석 홈런을 날린 격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가장 어리둥절한 이는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직원들이었다.
“꿈꾸는 것 같아.”
“나는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아.”
고생해서 만든 작품이 잘되기를 바랐지만, 이렇게 성공할 줄은 그들도 예상하지 못했다.
한편, 그들과는 다른 의미로 놀란 이가 있었다.
바로, 엄상현 회장이었다.
“회장님, 부르셨습니까?”
최덕일 변호사가 서재로 들어오며 얘기했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가 서호창이라고 했지? 영화제작팀장으로 일한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회장님. 이번에 영화가 아주 잘됐는데 보셨습니까?”
“시사회 때 문화재단으로 초청장을 보냈더군. 아내에게 주고 난 안 갔어.”
“그러셨군요. 저는 봤는데 영화가 좋았습니다.”
“서호창이 글로리 지분을 가지고 있지?”
“16퍼센트입니다.”
최덕일은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의 지분을 묻는 의도를 알 것 같았다.
“그 사람 접촉해서 우리에게 지분 넘기라고 해 봐.”
“글로리에서 제작된 드라마와 영화가 잘되었는데 지분을 내놓으려고 하겠습니까?”
“글로리가 이런 성과를 낸 건 송우그룹이 있었기 때문이야. 거기다가 현호가 운영을 잘했고.”
“그건 누구도 부인 못 할 겁니다.”
“서호창은 영화판에서 산 사람이야. 이번 작품 잘됐다고 다음 작품도 잘될 거라는 보장이 없는 게, 그 세계야.”
최덕일은 대꾸하지 않고 그의 얘기를 듣기만 했다.
“하지만 영상제작을 계속하려면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투자가 중요하지. 그런 의미에서 글로리에게 송우그룹은 중요해.”
“그렇겠네요.”
최덕일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게 계속 제작을 하고 싶다면 지분을 내놓아야 한다고 얘기해. 우리가 손 떼면 글로리는 빛 좋은 개살구야.”
최덕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문화재단이 최대주주입니다. 손 뗀다는 말을 믿으려 할까요?”
“5퍼센트 추가 지분만 더 확보하면 돼.”
엄상현의 문화재단이 최대주주이기는 하지만,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의 지분 구조상 최대주주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었다.
현호에게 3퍼센트의 지분이 있지만, 그것을 합쳐도 과반이 넘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서호창과 M&H 인베스트먼트의 지분을 합치면 과반이 넘어간다.
만약 그들이 함께 움직인다면 문화재단이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를 컨트롤하기 어려워진다.
‘이전의 글로리 실적을 너무 염두에 뒀어.’
망해 가는 회사를 인수하고 운영한 터라 추가 매수에 나서지 않고 지켜봤다.
게다가 두 작품 모두 신인 작가와 신인 감독이었다.
그래서 성공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런데 글로리 엔터테인먼트가 이렇게 빨리 히트작을 두 개씩이나 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자칫 M&H 인베스트먼트가 다른 마음이라도 먹는다면 글로리의 경영권마저 위태롭게 된다.
“서호창은 계속 영화를 제작하고 싶을 거 아냐? 5퍼센트를 우리에게 주면 더 많은 투자를 약속하겠다고 해.”
“알겠습니다, 회장님.”
* * *
봄볕이 따사롭게 느껴지는 오후.
최덕일은 카페 한구석에 앉아 서호창과 허태복 감독의 인터뷰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나 사무실이 아닌 이곳에서 기다리는 이유가 있다.
영화가 흥행하니 서호창도 덩달아 바빠져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그의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기다린 지 1시간을 넘어설 때쯤, 저편에서 서호창의 목소리가 들렸다.
“수고하셨습니다, 기자님. 인터뷰 기사 잘 좀 부탁합니다.”
서호창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자를 출입문까지 배웅했다. 그런 후, 감독을 돌아보며 얘기했다.
“허 감독, 수고했어. 다음 인터뷰는 저녁에 몰려 있으니까 사무실에 가서 좀 쉬어.”
“팀장님은 안 가세요?”
“나는 여기 볼 일이 있어.”
“그럼, 저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래, 나중에 봐.”
허태복 감독까지 배웅한 서호창은 최덕일이 있는 곳으로 와서 앉았다.
“죄송합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아닙니다. 바쁘시네요.”
“영화가 흥행하다 보니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많이 들어오네요. 이것도 영화 홍보니까 안 할 수가 없네요.”
“이해합니다.”
“송우문화재단 이사장님, 대리인이시라고요?”
“네, 최덕일 변호사라고 합니다.”
최덕일은 그에게 명함을 건넸다.
“아, 송우그룹 법무팀장님이시군요.”
“그렇습니다. 엄상현 회장님을 대리해서 왔습니다.”
“회장님이 제게 무슨 볼일이 있으십니까?”
“팀장님이 바쁘시니 바로 본론부터 얘기하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회장님께서는 서호창 팀장님께서 소유하고 계신 지분을 인수하고 싶어 하십니다.”
“아…….”
“팀장님도 아시겠지만, 영상제작을 하려면 지속적인 투자가 중요합니다. 그런 투자가 가능하고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의 안정적인 경영을 위해서는 지금의 지분 구조로는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호창이 그의 말을 끊었다.
“최덕일 변호사님, 말을 중간에 끊어서 죄송합니다.”
“……?”
“저는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의 어떤 지분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사실 사정이 있어서 영화가 개봉하기 전 제가 갖고 있던 지분을 모두 처분했습니다.”
“예에?”
화들짝 놀란 최덕일의 눈이 커졌다.
“누구에게 넘기셨습니까? 혹시, M&H 인베스트먼트입니까?”
“예.”
“아…….”
예상하지 못한 일의 충격 때문에 최덕일의 입에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서호창이 이어서 얘기했다.
“그중 5퍼센트는 엄현호 사장님께 넘겼습니다.”
“예? 엄현호 사장에게요?”
“예. 제가 더는 얘기할 게 없을 거 같으니 이만 가보겠습니다.”
서호창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왔다.
주차장에 있는 승용차 운전석에 탄 그가 현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서호창입니다.”
* * *
송우미디어 사장실.
현호는 서호창과 통화 중이었다.
[최덕일 변호사를 만났습니다.]
“얘기는 잘하셨습니까?”
[네, 알려 주신 대로 얘기했습니다.]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5퍼센트의 지분이 사장님께 간 것은 맞으니까요.]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현호는 손목시계로 시간을 체크했다.
지금쯤이면 아버지 엄상현 회장도 알게 되었을 터.
성북동에서 연락이 올 때가 되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장님.”
사장실 문이 열리며 최명준 비서가 들어왔다.
“성북동에서 연락 왔습니까?”
“네, 들어오시랍니다. 준비할까요?”
“조금 더 있다가 가죠. 바쁜 기색은 내비쳐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현호는 연락을 받고도 한 시간 후에 성북동으로 출발했다.
그가 서재로 들어갔을 때 눈을 감은 채 의자에 기대어 있던 엄상현 회장이 눈을 떴다.
“아버지, 연락받고 이제야 왔습니다.”
“바쁘냐?”
“드라마와 영화 흥행으로 송우미디어도 덩달아 바빠졌습니다.”
글로리 엔터테인먼트와 송우미디어.
두 회사는 출연 배우와 음악 등 여러 부분에서 서로 도와 시너지를 발휘했다.
그 덕에 두 회사 모두 드라마와 영화의 흥행 이익을 얻고 있었다.
“거기다가 방송국 예능 촬영 준비와 공연 준비를 점검하느라 출발이 늦어졌습니다.”
“그리 바쁜데 글로리 엔터테인먼트 5퍼센트 추가 지분을 챙길 여력은 있었던 모양이구나.”
“아! 그 얘기…….”
현호는 방금 생각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갑자기 일이 많아지면서 아버지께 얘기할 기회를 놓쳤네요. 드라마가 종영하고 영화 개봉 전에 M&H 인베스트먼트와 일이 좀 있었습니다.”
“무슨 일?”
“사실, 제가 글로리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기 전 M&H 인베스트먼트가 먼저 투자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건 알고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당시 제가 과반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
“M&H 인베스트먼트가 서호창 씨에게서 추가 지분을 약속받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
엄상현이 염려했던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성공하자 M&H 인베스트먼트가 서호창 씨에게 그 약속을 이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5퍼센트를 어떻게 받았지?”
“다행히 서호창 씨는 추가 지분만을 약속했지, 모두 넘기겠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서호창 씨가 그 사실을 제게 알려 줬고, 제가 미리 5퍼센트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추가 확보한 지분으로 인해 송우문화재단과 현호의 몫을 합치면 51퍼센트가 된다.
“그 자금은 어찌 마련했어?”
“제게 주신 용산 빌딩을 담보로 대출을 받았습니다.”
“서호창은 글로리의 창업자이면서 지분을 왜 하나도 갖지 않은 거냐?”
“서호창 씨는 경영에는 관심이 없고, 몇 년 후 은퇴해서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 준비를 위한 자금이 필요했고요.”
엄상현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과반 이상의 지분이 확보되었기에 늦게 얘기한 것을 두고 현호를 타박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참으로 상황이 묘하게 됐다.
‘현호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어.’
엄상현은 얘기를 마무리 지었다.
“수고했다.”
가볍게 미소 짓는 엄상현의 표정에 씁쓸함이 담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엄현호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