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89
89화 당신도 아픔을 겪을 텐데
아침 식사를 위해 식당에 모인 엄상현 회장 가족.
현호를 제외한 세 남매는 엄상현 회장의 기색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장단 회의에 답을 가져오라던 그였는데, 돌연 사장단 회의를 취소했고, 언론에서는 송우카드 정상화 방안이 나왔다고 떠들었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엄상현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식사만 했다.
결국,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엄현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사장단 회의를 왜 취소하셨어요?”
그녀의 물음에 엄상현 회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 얘기했다.
“급한 불을 끌 자금은 마련됐다.”
“어머, 잘됐네요.”
엄현주가 안도하는 기색으로 밝게 대답했다.
그러나 엄상현 회장의 이어지는 말에 모두 충격을 받았다.
“현호가 송우카드 이사가 될 거다.”
“예에?”
세 남매는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렸는지 차남 엄현태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어제는 그런 얘기 없으셨잖아요?”
그의 물음에 엄상현 회장이 식사를 멈추고 엄현태를 쳐다봤다.
“내게 묻기 전에 네 답이 뭔지 보여봐.”
“예? 아…….”
엄현태는 곧바로 고개 숙이고 입을 다물었다.
사장단 회의 때 어느 정도 지원이 가능한지 얘기할 수 있다고 했던 그였지만, 지원금에 대해 답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러자 엄상현 회장이 다른 자식들을 보며 말했다.
“사장단 회의는 취소했지만, 누구든 내게 줄 답을 가지고 있으면, 지금 얘기해 봐.”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자 엄상현이 다음 말을 이었다.
“현호가 송우카드 이사가 된 것은, 내게 자기 답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냉담한 목소리로 말을 끝낸 엄상현 회장은 멈췄던 식사를 시작했다.
난처한 기색으로 변한 세 남매.
그 모습을 곁눈으로 살핀 현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 * *
아침 식사를 마친 네 남매는 큰 별관 응접실에 모였다.
현호를 바라보는 세 남매의 시선은 마치 연합전선을 깬 배신자 보듯 냉랭했다.
“현호 너, 어떻게 된 거야? 어젯밤에 아버지 찾아갔었어?”
장남 엄현식이 따지듯이 묻자, 현호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작은형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뭐어? 야, 왜 나를 끌어들여?”
엄현태가 어이없다는 투로 대꾸하자 현호는 불평하듯 대답했다.
“작은형이 한 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두 송우카드에 지원할 수밖에 없게 됐잖아. 안 그래?”
“…….”
현호의 말에 아무도 반박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일 때문에 오늘 사장단 회의에는 참석을 못 해. 회의에 빠지면 나만 미운 오리 되는 거잖아. 그래서 어젯밤에 아버지 찾아가서 글로리 엔터와 송우미디에서 최대한 지원금을 마련해보겠다고 했어.”
“…….”
“그런데 왜 나만 지원금을 내는 거야? 식당에서 형과 누나는 왜 아무 말 안 했어?”
현호는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따지듯 물었지만, 그들은 대꾸하지 못했다.
조금 전과는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먼저 연합전선을 깬 것은 현호가 아닌 그들이었다.
“형과 누나가 이렇게 나올 줄 정말 몰랐다.”
“야, 그래서 너는 송우카드 이사가 됐잖아.”
장남 엄현식이 나무라듯 얘기하자 현호는 그에 지지 않는 기세로 대답했다.
“형은 송우카드 이사가 되고 싶어?”
“뭐?”
“형이 하겠다면, 내가 지금이라도 아버지께 가서 나 대신 형이 지원금 내기로 했다고 얘기할게.”
“…….”
엄현식은 입을 닫고 현호의 시선을 피했다.
“현태 형이랑 현주 누나는 어때? 송우카드 이사와 지원금, 나와 바꿀 생각 있어?”
“…….”
그들도 침묵하며 시선을 피했다.
현호는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
자신이 송우카드 이사가 되는 것은 못마땅하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송우카드에 지원금을 내기는 더 싫은 것이다.
자칫 송우카드를 살리려다 자신들의 회사 자금 사정이 어렵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지원금과 그룹 승계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과 바꾸겠냐는 물음에 무대응으로 나왔다.
화가 난 듯 쏘아보는 자신의 시선이 불편했는지 엄현주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출근해야겠어. 할 일이 산더미야.”
“어, 그래. 나도 마찬가지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현호, 너도 출근해야지.”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밖으로 향했고, 응접실에는 현호만 남게 되었다.
그러자 현호는 화난 표정을 지우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혼잣말을 했다.
“그룹승계, 형과 누나 생각대로 안 될 거야.”
* * *
송우카드 정상화 방안 발표로 네 남매가 따로 만나던 그 시각, 성국그룹 안명기 회장 또한 그 소식으로 당황스러워했다.
“젠장. 몰래 비자금이라도 털어 온 거야?”
송우카드에 관한 신문기사를 보던 안명기 회장이 신문을 구겨 쓰레기통으로 던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한종혁 법무팀장이 입을 열었다.
“부도를 염려할 만큼 송우카드를 어렵게 만드셨고, 이 일로 성국카드가 업계 1위가 됐습니다. 바닥까지 떨어진 송우카드는 다시는 성국카드를 따라올 수는 없을 겁니다.”
그의 말에 기분이 나아진 안명기 회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앞으로 송우그룹에 대한 정보 수집에 신경 써. 엄상현 그놈은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우리 성국그룹을 물어뜯으려 덤빌 놈이야.”
“알겠습니다.”
* * *
한편, 송우카드 정상화 방안 발표 소식에 누구보다 당황한 이가 있었다.
바로, 남현민 중수부장이었다.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당혹스러운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왜 아니겠는가.
성국조선 주가조작으로 그의 장남을 기소했다.
앙금을 풀고 다시 안명기 회장의 신뢰를 받기 위해서 송우카드의 정보를 건넸다.
이제 송우카드가 망하기만 하면 만사형통이었다.
그런데 송우카드가 살아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아, 씨발. 미치겠네.”
입속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을 때였다.
디리리리.
그의 휴대폰이 울려서 보니, 엄현호였다.
“허…….”
순간적으로 뜨끔했던 남현민이 평정심을 찾으려 헛기침을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전화를 받았다.
“남현민입니다.”
[남 부장님, 엄현호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아, 예. 저야 엄 사장이 염려해주신 덕분에…….”
[제 누님 결혼식에 와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가 늦었습니다.]
평소와 같은 현호의 목소리에 남현민은 일단 안심이 되었다.
“아유, 별말씀을요.”
[만나서 직접 감사 인사를 해야 했는데, 아시겠지만 그룹에 사정이 있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마음 쓰지 마세요.”
[아닙니다. 늦었지만 감사 인사도 할 겸 부장님께 식사 대접을 하고 싶은데, 시간을 내주시죠.]
“아, 뭐,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장소와 시간은 곧 알려 드리겠습니다.]
“예, 나중에 뵙겠습니다.”
통화를 끊은 남현민은 저절로 안도의 짧은 숨을 내쉬었다.
엄현호의 따뜻한 목소리와 배려를 보면 송우카드 사건의 배후에 자신이 개입된 걸 모르는 것 같았다.
‘하긴, 안명기 회장이 외부로 발설할 이유가 없지.’
이런 생각에 이르자 남현민은 또다시 고민이 되었다.
‘이제 나는 어떡해야 하지? 엄현호? 안명기 회장?’
* * *
남현민이 앞으로의 처세술로 고민하는 그 시각.
최명준 실장은 의아함이 담긴 얼굴로 현호에게 물었다.
“사장님, 남현민 부장을 왜 만나려고 하는 겁니까?”
“내가 만나면 안 됩니까?”
현호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되물었다.
“송우카드 사건에 남현민 부장이 개입됐다고 생각하시잖아요.”
“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서 식사 대접까지 하신다고요?”
“내가 송우카드 이사가 되는 것에 공헌도 했잖아요.”
“하긴, 그러네요. 그런데 저는 왠지 걱정되네요. 그 부장이 또 어떤 식으로 뒤통수칠지.”
“내 뒤통수칠까 봐 걱정하는 거라면, 안심하세요. 남현민 부장은 바라던 것을 얻지 못할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최명준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남현민 부장이 송우카드 사건에 개입한 것은 성국그룹 안명기 회장으로부터 받고 싶은 게 있었던 거죠. 그런데, 안명기 회장으로부터 버림받게 될 겁니다.”
“어떻게 그걸 아십니까?”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요.”
“……?”
“내가 남현민 부장과 만날 때 친하게 보일 겁니다. 그 모습을 은밀히 촬영하세요.”
“아……!”
최명준은 현호가 한 말의 의미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 * *
검은색 승용차가 서울을 벗어나 한적한 샛길로 방향을 틀었다.
잠시 후, 멈춰 선 승용차 안에서 남현민 검사가 내렸다.
아름다운 정원까지 갖춘 레스토랑.
문 앞에서 그를 맞이한 직원이 예약된 룸까지 안내했다.
남현민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현호가 기다리고 있었다.
“아, 엄 사장님, 먼저 와 계셨군요.”
“저도 방금 도착했습니다.”
현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로 그를 맞았다.
“앉으세요.”
“아, 예.”
맞은편에 자리한 남현민이 현호의 기색을 슬쩍 살핀 후 입을 열었다.
“송우카드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 일로 회장님께서 매우 힘들어하셨어요.”
“아, 당연히 그러셨을 겁니다. 저도 지켜봤는데, 언론들이 죄다 달려들어 물어뜯더라고요. 제가 뭐라도 도움을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하네요.”
“안 그래도 부탁드릴 게 있었는데, 먼저 얘기를 꺼내셨네요.”
“예? 내게 부탁할 게 있다고요?”
순간 남현민은 긴장했다.
“저는 송우카드 건이 우연히 터진 것으로 생각지 않습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외부인에게 정보를 흘렸다고 생각합니다.”
속으로 뜨끔한 남현민이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조심스레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사실, 송우카드 문제는 카드 발급에서 시작됐습니다. 부모 동의 없이 미성년자에게 발급한 것과 신분확인이 없어서 명의가 도용된 사례들이죠.”
“…….”
가만히 듣고만 있는 남현민은 가슴이 벌렁거렸다.
엄현호가 얘기한 것은 자신이 성국그룹에 넘긴 자료 중에 있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을 가장 잘 아는 건 내부인입니다. 저는 내부인의 정보 유출이 이 일의 시작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아…….”
내부인이라는 말에 남현민은 저절로 안도의 숨소리를 내었다. 현호의 추측이 자신을 비켜 갔기 때문이다.
그래도 확실히 알아봐야 하기에 남현민이 물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혹시, 의심하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예, 있습니다. 그래서 부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제가 뭘 도와드려야 합니까?”
“송우생명 김진명 사장에 대해 알아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남현민은 그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김진명 사장에게 비리가 있는지 은밀히 알아봐 달라는 것.
“그분은 왜…?”
“송우카드 사장과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송우생명이 송우카드 최대주주죠.”
“…….”
“송우카드 사건이 터진 후 알게 된 게 있습니다. 한때 김진명 사장이 송우카드 사장의 해임 시도를 하려 했는데, 송우카드 실적이 좋아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나름의 목적으로 현호가 꾸며 낸 말이다.
김진명 송우생명 사장은 송우카드의 이사다. 대부분의 이사가 그의 편이다.
앞으로 송우카드 이사가 될 현호가 김진명 사장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무기가 필요했다.
“아, 그러니까, 이 사건의 시작은 송우카드 사장을 내쫓으려는 송우생명 사장이 외부로 정보를 유출했다고 의심하는 거네요?”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알겠습니다. 송우생명 사장에 대해 알아보죠.”
대답하는 남현민의 혈색이 밝아졌다.
그 자신은 전혀 의심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는 현호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어쩌나. 당신도 아픔을 겪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