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90
90화 완벽한 적으로
“여보.”
마시던 차를 테이블에 내려놓는 채연희.
그녀는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남편과 함께 방에서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무슨 일 있어?”
엄현식은 뭔가 중요한 얘기가 있는 듯한 그녀의 기색을 보며 물었다.
“이번에도 아버님께서 대선자금 마련하겠죠?”
“그건 왜?”
“아버지가 대학재단 이사장 모임에 다녀오셨는데, 다음 정부에서는 반드시 기여입학제를 허용하도록 만들자는 얘기를 하셨대요.”
“그게 되겠어?”
“기여입학제 얘기가 나온 지 10년도 넘었는데, 이번에는 꼭 해야죠.”
“그게 되면 좋지. 대학 재정에도 도움이 되고. 그런데 이사장 몇 분이 결의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그래서 말인데요. 아버님께 말씀드리는 게 어때요?”
“응? 그게 뭔 말이야?”
엄현식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아버님께서 후보를 정해서 대선자금을 줄 테니까, 우리 민원도 함께 넣을 수 있잖아요.”
“당신, 아버지를 겪어보고도 그런 소릴 해? 안 그래도 송우카드 문제로 골머리를 앓으시는데, 대선자금에 며느리 민원을 넣으실 거 같아?”
“그럼, 당신은 어때요?”
“무슨 말이야?”
“당신도 비자금 있잖아요. 그중 일부를 대선자금으로…….”
엄현식이 얼른 그녀의 말을 끊으며 얘기했다.
“내게 그만한 돈 없어. 대권 후보자에게 생색내려면 일이억으로 되는 줄 알아?”
그의 말에 기분이 나빠진 채연희의 표정이 굳었다.
“당신 어렵거나 필요할 때 우리 재단 인맥 동원해서 도와줬는데, 당신은 처가 일에 나 몰라라 하는 거예요?”
뜨끔한 엄현식이 해명하듯 얘기했다.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야. 기여입학제는 대통령만 하겠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그거 밀어붙이면 돈 없는 사람은 대학도 못 가냐고, 사람들이 불만을 터트릴 게 뻔해.”
“…….”
“그러면 여론은 나빠지고 지지율도 떨어질 텐데, 대통령 혼자서 밀어붙이지 못해. 그러니까 그 전에 언론, 정치, 학계 등 여러 곳에 로비해서 우리 편을 만들어 놔야 한다고.”
“…….”
“그럴 자금이 내게 없다는 거야. 이번 자회사 만들고 로디복권 때문에 로비하면서 모아둔 비자금을 거의 다 썼어.”
사실이 아니다.
비자금을 쓰기는 했지만 다 쓴 것은 아니다. 다만, 처가 일에 자신의 돈을 쓰고 싶지 않을 뿐.
이런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엄현식은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그런 마음을 모르는 채연희는 불쑥 다음 말을 이었다.
“당신, 도와줄 거죠?”
“응? 뭘?”
“언론, 정치, 학계 등 여러 곳에 로비해야 한다면서요. 자금은 보탤 수 없어도, 로비할 때 당신이 도와줄 거죠?”
“그, 그래야지, 당연히.”
엄현식은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 미소를 지었다.
그제야 섭섭했던 마음을 지운 채연희는 차 한 모금을 마셨다.
* * *
며칠 후.
현호는 남현민 중수부장의 전화를 받았다.
[남현민입니다.]
“남 부장님, 생각보다 빨리 전화를 주셨네요.”
[누구 부탁인데, 서둘러야죠.]
현호는 남현민에게 김진명 송우생명 사장의 비리를 알아봐 달라고 했었다.
“애써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난번 만났던 곳에서 보시는 건 어떠십니까?”
[좋습니다.]
통화를 끊은 엄현호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 * *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레스토랑.
현호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정원에서 남현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익숙한 승용차가 주차장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그 차에서 내리는 이, 남현민 중수부장이었다.
레스토랑 건물로 걸어오던 남현민이 현호를 봤다.
반가운 얼굴이 된 남현민이 뛰듯 현호에게로 다가왔다.
“엄 사장, 아니 왜 여기에 있습니까?”
“좋은 선물 가지고 오시는 분을 룸에 앉아서 맞을 수는 없어서요.”
“하하. 괜히 무안해지네요.”
“아닙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그럽시다.”
남현민은 모른다.
현호가 그를 따뜻하게 맞이하고, 서로 다정히 얘기하는 모습을 누군가 촬영하고 있다는 것을.
* * *
룸 안으로 들어온 두 사람.
“식사하기 전에 이야기부터 끝낼까요?”
현호가 먼저 제안했다.
“그럽시다.”
남현민은 가지고 온 서류 봉투를 현호에게 건넸다.
그 봉투를 열어 보니, 2년 전, 삼명건설이 세원증권을 상대로 고소한 내용을 담은 신문기사들이었다.
“제가 부탁한 게 이 사건과 관련이 있습니까?”
현호가 남현민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삼명건설이 세원증권에서 판매한 사모펀드에 투자했다가 실패해서 손해를 많이 봤습니다.”
“…….”
현호는 말없이 그의 얘기를 듣고만 있었다.
“삼명건설은 사모펀드가 투자하는 곳이 위험부담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숨겼다는 이유로 고소를 했죠. 그런데 투자라는 게 위험부담을 안고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위험 정도는 다르겠죠.”
“어쨌든, 삼명건설은 그 사모펀드를 소개받아서 투자했던 거 같아요. 그 기사 끄트머리에 나오는데, 소개해준 이가 송우생명 김진명 사장이었어요.”
“아……! 그렇다면, 송우생명도 그 사모펀드에 투자했다는 건가요?”
“예, 했습니다. 하지만 삼명건설보다는 투자금이 많지 않은 거 같더군요.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고소도 하지 않았고요.”
이 일은 현호도 몰랐던 일이었다.
엄상현 회장이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그룹 내에 알려지지 않았으리라.
“그런데 회사가 투자해서 실패하는 경우는 가끔 있습니다. 송우생명도 그런 케이스라면 문제 삼을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회장님께서 문제 삼지 않았다면요.”
그러자 남현민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졌다.
“저는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송우증권도 있는데 왜 하필 세원증권에서 판매하는 펀드에 투자했을까?”
“…….”
“그 펀드를 판매한 곳이 세원증권 목동지점입니다. 그 지점장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
“김진명, 송우생명 사장의 사촌 동생입니다.”
“……!”
“더 재밌는 얘기를 해 드릴까요?”
“…….”
“그 사모펀드를 설계한 곳이 베스트자산운용사라는 곳이에요. 그 운용사 대표도 김진명 사장의 사촌 동생입니다. 세원증권 목동지점장과 쌍둥이 형제죠.”
“아……!”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쓸모 있는 선물이 되겠습니까?”
“그럼요. 역시, 남 부장님께 도움을 청하기 잘한 것 같네요.”
“하하. 서로 돕는 거죠.”
앞으로 자기에게 닥칠 일을 모르는 남현민은 호탕하게 웃었다.
* * *
다음 날, 성국그룹 법무팀.
한종혁 팀장이 사무실로 들어오자 비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팀장님께 온 배달물이 있습니다.”
“누가 보낸 거야?”
“아침 일찍 퀵으로 배달된 물건입니다. 봉투에는 누가 보냈는지 적혀 있지 않았어요. 제가 확인하고 버릴까요?”
“음…… 아니야. 내가 확인하지.”
“예.”
비서는 봉투를 한종혁에게 건넸다.
그것을 가지고 사무실로 들어온 한종혁은 자리에 앉자마자 봉투 입구를 잘라 안의 내용물을 꺼냈다.
안에는 사진과 문서들이 들어 있었다.
“뭐야?”
사진을 본 한종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진에는 남현민 중수부장이 정원으로 보이는 곳에서 송우그룹 막내 엄현호를 만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그 사진 속 남현민과 엄현호는 다정하게 서로를 보며 웃고 있었다.
다른 사진은 주차장으로 보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엄현호와 남현민이 서로 악수하고 등을 토닥이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개자식……!”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온 한종혁은 봉투에서 꺼낸 문서들을 살폈다.
그 문서들은 남현민 중수부장이 밀양지청에서 근무할 때 한 건설사 대표와 유착된 정황이 담긴 자료들이었다.
“흠…….”
잠시 생각하던 한종혁은 사진과 문서를 다시 봉투 속에 넣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 * *
성국그룹 회장실.
“이 새끼, 이거 뭐야?”
남현민의 사진을 본 안명기 회장이 사진을 책상 위로 던졌다.
“검찰청 내 정보원에게 알아보니, 엄상현 회장 쪽과는 접촉이 없었다고 합니다. 아마, 회장 쪽과 연결이 안 되니 막내아들에게 접근한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양다리라는 거 아냐?”
“그렇게 보입니다.”
“허어!”
안명기 회장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송우카드 정보를 주면서 우리한테 줄을 만들고, 그 문제가 풀릴 것 같으니까 송우그룹 막내에게 접근했다는 거지?”
“그렇게 보입니다.”
“우리를 우습게 봤군. 이 자식, 손볼 방법 없어?”
“회장님, 이것도 보시죠.”
그가 사진과 함께 배달되어 온 문서를 건넸다.
“이게 뭐야?”
“남현민이 밀양지청에서 근무했을 때, 건설사 사장과 유착된 자룝니다.”
흠칫 놀란 안명기가 다시 물었다.
“이걸 어떻게 구했어?”
“사실, 사진과 이 자료가 제게 배달되어 왔습니다.”
“뭐어? 누가 보낸 거야?”
“자료가 꼼꼼한 걸로 봐서는 검찰 내 남현민을 싫어하는 자가 보냈을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
“남현민이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한다는 건 검찰 내에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기회를 잡아서 중수부장에까지 올랐다고 믿는 검사들도 많고요. 그런 태도와 행동을 싫어하는 검사들도 꽤 있다고 들었습니다.”
안명기는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남현민은 싫은데, 제거할 능력은 안 돼서 우리에게 이 자료를 보냈다는 건가?”
“대검찰청 중수부장입니다. 어떤 검사가 함부로 건들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들도 남현민 부장과 저희 성국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건 알았을 겁니다. 남현민의 중수부가 성국증권 안성재 사장을 기소한 걸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들 힘으로는 안 되니, 우리에게 복수할 기회를 줬다는 거네.”
“어떻게 할까요? 이 자료를 묻어 둘까요?”
“묻을 필요 없어.”
안명기 회장이 결심한 듯 다음 말을 이었다.
“우리에게는 성국에 충성할 검사가 필요하지 양다리 걸치는 놈은 필요 없어.”
“…….”
“얼굴 들고 돌아다니지 못 하게 제대로 망신 주고 쫓아내.”
“알겠습니다.”
* * *
송우미디어 사장실.
“사장님, 소식 없이 잠잠하네요.”
최명준 비서가 현호에게 물었다.
현호와 함께 있는 사진과 자료를 한종혁에게 보낸 지 며칠이 지났지만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곧 드러나겠죠.”
“그런데 왜 그 비리 자료까지 성국그룹에 보냈습니까?”
“서로 완벽히 적으로 만들려고요.”
“예?”
“비지니스를 하다 보면 성국그룹과 부딪칠 때가 올 겁니다. 그럴 때마다 맞서 싸우면 기운만 빠지죠.”
“아! 대신 싸워 줄 존재가 필요한 거군요.”
현호의 목적을 깨달은 최명준이 피식 웃었다.
그 모습을 본 현호는 마지막 결재 서류에 사인을 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퇴근이 늦었네요. 이제 갑시다.”
“네.”
두 사람이 함께 밖으로 이동하려 할 때였다.
최명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무슨 일이야? 어, 남현민 검사가 나왔다고? 알았어.”
전화를 끊은 최명준이 얼른 리모컨으로 TV를 켜며 얘기했다.
“사장님, 드디어 남현민 검사 비리가 뉴스에 나왔습니다.”
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TV화면에서는 앵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검찰청 남현민 중수부장이 한 건설사와 유착되어 온 사실이 저희 취재팀에 의해 드러났습니다.]
화면에 밀양지청 건물이 보이며 기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검찰청 남현민 중수부장은 밀양지청에서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한 건설사 사장과 가깝게 지내며 사건 편의를 봐주며 대가를 받은 정황이 확인됐습니다.]
화면에 모자이크 처리된 남자와 변조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보자 : 그쪽에서 먼저 요구했습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잡다한 법적 시비가 붙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요구하면 안 들어 줄 수가 없어요.]
[기자 : 무엇을 요구하던가요?]
[제보자 : 밀양에서 지낼 집이 필요하다고 해서 빌라를 사 줬고요. 그 후 승용차도 사 주고, 같이 골프도 치고 했습니다.]
디리리리.
현호의 휴대폰이 울려서 보니 남현민의 전화였다.
그것에 현호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내게 연락 올 줄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