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of the returning tycoons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채연희의 위기
한 해의 끝자락에서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졌다.
그 결과는 민주당 노무현 후보자가 당선되었다.
그리고 대선의 열기만큼이나 로디복권의 열기도 뜨거워 새해 초부터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40대 근로자 로디복권 65억 당첨]
[로디복권 당첨금 이월 180억 원]
인생 역전이라는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전국적으로 로디복권 광풍이 불었다.
로디복권을 사기 위해 판매점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서고, 언론에서는 정부가 사행성을 조장한다며 비난 기사를 내보냈다.
이렇게 상황이 예상외로 흘러가자 정부는 부랴부랴 당첨금 이월 횟수를 제한하는 등의 방법을 내놓았지만 로디복권의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즐거운 이가 있었다.
바로 엄현식이었다.
그가 세운 회사 SW시스템로는 로디복권 시스템사업자로 복권 판매가 증가할수록 회사의 매출도 커지게 되어 있다.
사업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초반부터 예상보다 훨씬 높은 매출을 올리는 사업 아이템을 갖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하지만 그 아이템을 엄현식이 가진 것이다.
“요즘 네 사업이 대박이라고 하더구나.”
아니나 다를까.
엄상현 회장이 가족 식사 시간에 로디복권 시스템사업에 관해 얘기했다.
그에 우쭐해진 엄현식이 대답했다.
“예, 아버지. 이 추세대로 가면 올해 매출액이 3천억이 넘을 거 같습니다.”
들뜬 엄현식의 대답이 아니꼬운 엄현주가 끼어들었다.
“축하해, 오빠.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 빨리 뜨거워지는 만큼 빨리 식잖아. 올해 매출을 단정하는 건 성급한 거 아닐까.”
엄현식은 그녀가 정말 성급한 결론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 아님을 안다.
이에 못마땅한 시선으로 대꾸했다.
“이 복권은 말이지, 네가 파는 베이커리와는 달라.”
“뭐어?”
엄현식이 불쑥 라이스타 베이커리를 언급하자 엄현주가 까칠하게 대꾸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라이스타 베이커리는 꼭 먹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라이스타에 와서 먹었다고 다시 찾아오는 것도 아니잖아.”
“우리 손님 재방문율 높아.”
“빵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뭐가 다르다는 거야?”
“이 복권은 인생 역전이 가능하다는 희망인 거야. 사람들이 그런 희망을 쉽게 끊을 수 있을 거 같아? 내 장담하는데 라이스타 베이커리 사 먹는 돈보다 로디복권 사는 데 돈을 더 쓸 거다.”
“…….”
반박할 말이 생각나지 않은 엄현주는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이에 다른 가족들은 엄현식에 축하 인사를 건넸을 뿐 엄현주에게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현호는 엄현주의 기색을 살폈다.
‘그냥 넘어가지는 않겠군.’
곁눈으로 엄현식을 보는 엄현주의 눈에 날이 서 있었다.
‘하긴, 라이스타 베이커리를 얕잡아 봤으니.’
라이스타 베이커리는 엄현주가 몇 년의 공을 들여 만들었다.
곡물로 만든 베이커리.
웰빙이라는 시대 흐름을 이끌었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그런 노력과 성과를 깔봤으니 엄현주가 화날 만했다.
‘누나의 복수를 도울 사람은 매형…… 응?’
현호가 유태규의 기색을 살피는데, 그의 날카로운 시선은 엄현식이 아닌 큰며느리 채연희에게 향해 있었다.
그 모습에 현호는 알 수 있었다.
‘이제 싸움이 주변까지 확대되겠네.’
지금까지는 승계를 위한 형제들 간의 다툼이었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그 다툼은 확대될 것이다.
* * *
“어디 내 라이스타 베이커리와 비교를 해?”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엄현주는 화가 풀리지 않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강릉 별장 유배에서 벗어나려고 한 일이면서.”
그녀의 행동을 가만히 보고 있던 유태규가 입을 열었다.
“형님은 목적을 달성했네요. 아니, 사업 성과까지 냈으니 성공한 건가.”
그의 말에 기분이 상한 엄현주가 그를 쏘아봤다.
“지금 내 앞에서 오빠 칭찬하는 거예요?”
“혼자 화풀이한다고 현실이 달라지지는 않아요. 상황을 바꾸어야 달라지죠.”
“……!”
순간 엄현주가 멈칫했다.
그러다 호기심 깃든 얼굴로 물었다.
“상황을 바꿀 방법이 있는 거예요?”
“로디복권 시스템사업의 상황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요.”
유태규가 고개를 저으며 얘기했다.
“새 사업자를 선정해야 하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상황을 바꿀 수는 없죠.”
기대했던 대답이 아니자 엄현주는 푸념하듯 대꾸했다.
“오빠가 실력으로 로디복권 시스템사업자가 된 게 아니에요.”
유태규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랬겠죠. 그런데 공공기관 발주 사업에 로비 안 하는 기업은 없어요. 들키지 않을 뿐이죠.”
그의 말에 엄현주가 발끈했다.
“무슨 검사가 그래요? 로비로 뇌물이 오고 갔을 텐데, 잡을 생각을 해야지.”
그녀의 말에 유태규가 피식 웃었다.
“이 시기에 큰형님 사업 건드리면 제가 아버님 얼굴을 어떻게 봅니까?”
“태규 씨 말고 다른 사람이 하면 되잖아요.”
“검찰연구관이지만 중수부에 있어요. 다른 사람이 맡는다고 아버님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실까요?”
“…….”
맞는 말이라 반박하지 못하는 엄현주는 이내 실망한 기색이 되었다.
그때.
“정면으로 안 될 때, 측면을 공격하죠. 아프다고 하는 신음이라도 듣고 싶으면.”
그의 말에 엄현주의 눈이 커졌다.
“무슨 말이에요?”
“우리나라 곳곳에 명운대학 인맥 없는 곳이 없을 정도죠. 큰형님 로비할 때 명운대학 인맥을 썼겠죠?”
“아, 측면! 그러니까, 큰언니 쪽을……?”
“아주머님이 곤란을 겪으면 형님이 어떻게 나오실지 궁금하네요.”
만족스러운 듯 엄현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 *
며칠 후.
엄상현 회장 가족들은 식사 후 거실에 모여 다과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박경국 과장이 다급하게 거실로 들어왔다.
“회장님.”
박경국의 안색이 어두운 것을 본 엄상현 회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뉴스를 보셔야겠습니다.”
박경국이 말하면서 채연희를 슬쩍 쳐다봤지만, 그녀의 시선은 이미 TV로 향해 있었다.
그녀와 관련 있는지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나쁜 소식이라는 사인도 주지 못한 채 박경국은 리모컨을 눌러 TV를 켰다.
TV 뉴스 화면에 앵커가 진지한 얼굴로 얘기하고 있었다.
[해마다 대학에서 입시부정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무용지물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입시부정에 대한 의혹이 나왔습니다.]
‘아! 입시부정이구나.’
유태규가 큰형네 가족을 향해 벌인 일이라는 것을 단번에 눈치챘다.
전생에서는 명운대학의 입시부정 사건이 없었다.
엄현주와 유태규의 역사가 바뀌면서 일어난 일이다.
그는 결혼 전, 채연희가 환치기를 이용했다는 정보를 알았고 그 환치기 조직이 붙잡혔을 때, 증거자료를 없애 아버지의 신임을 얻었다.
그런 정보력과 민첩함으로 이번 일도 처리했으리라.
현호는 즉시 엄현주와 유태규의 표정을 살폈다.
표정을 감추고 있는 유태규와는 달리 엄현주의 입꼬리는 미세하게 올라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TV로 향해 있었다.
TV 화면에 명운대학교 도서관 건물과 대학 상징이 보였다.
[고3 입시생을 둔 학부모 A씨는 학부모 모임에서 만난 B씨에게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습니다.]
화면에 모자이크와 음성변조 처리가 된 여자 이미지가 나타났다.
[학부모 A씨 : 명운대학교에서 기부금을 받고 학생을 입학시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처음에는 그 말을 안 믿었죠.]
[기자 : 그런데 A씨에게 얘기해 준 B씨의 자녀는 명운대학교 법대에 합격했습니다.]
[학부모 A씨 : 우리 애보다 성적도 안 좋았거든요. 아무래도 의심스럽죠. 그 성적으로 합격할 수 없는데.]
다시 화면에는 명운대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기자의 모습이 보였다.
[기자 : 대학교 측에 문의한 결과 B씨의 자녀는 재외국민 특별전형으로 합격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재외국민 특별전형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2년 이상 해외 거주하며 외국에서 학교를 다녔거나, 초중고 과정을 외국에서 마친 경우입니다. 하지만 B씨와 그의 자녀를 잘 아는 지인 C씨의 얘기는 다릅니다.]
화면에 조금 전과는 다른 여자 이미지가 다시 보였다.
[지인 C씨 : 그분 잘 알죠. 남편분은 사업하시는데 가끔 해외 출장을 가시기는 하죠. 하지만 가족들은 여기 살아요.]
[기자 : 외국에서 사신 적이 없나요?]
[지인 C씨 : 여름이나 겨울방학 때 어학연수 한다고 나갔다 온 적은 있죠. 그 외에는 계속 여기서…….]
엄상현 회장이 TV를 껐다.
거실 분위기는 이미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고, 큰며느리 채연희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잠시 후, 엄상현 회장이 유태규를 보며 얘기했다.
“유 서방, 이 건은 어디서 처리할 거 같은가?”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맡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때까지는 서울지방검찰청이었고 후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바뀌게 된다.
“강인 애미는 방으로 가서 어떻게 된 사정인지 알아봐라.”
“네, 아버님.”
큰며느리 채연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둘러 거실을 나갔다. 그러자 장남 엄현식도 재빨리 그녀를 뒤따랐다.
두 사람이 사라지자 유태규가 엄상현 회장에게 얘기했다.
“아버님, 제가 도울 수 있는 건 돕겠습니다.”
“그래 주면 큰애가 고마워할 거야.”
이 말을 마치고 엄상현 회장과 최유경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밖으로 나갔다. 이에 박경국이 둘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세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차남 엄현태가 아내 배희진을 보며 물었다.
“형수님이 대학에서 보직을 맡은 게 뭔지 알아?”
“교무처장으로 알고 있어요.”
“그거 입학업무와 관련 있어?”
“형님이 교무처장이라고 그 업무만 하시겠어요? 재단을 물려받으실 분인데 학교 운영 전반에 관여하시겠죠.”
“큰형이 폭행으로 세상 소란하게 만들더니, 형수님은 입시부정이라…… 참.”
한심하다는 표정의 엄현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배희진도 따라 일어났고, 두 사람은 거실을 나갔다.
“우리도 방으로 가죠.”
“그러죠.”
엄현주와 유태규가 함께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거실에 혼자 있게 된 현호는 생각에 잠겼다.
‘명운대가 은밀히 기부금 입학을 하려 했다면…….’
학부모로부터 직접 돈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부금 입학 담당자와 학부모를 연결할 브로커도 있을 것이다.
‘기부금 입학.’
그것의 결정을 교직원이 독단적으로 할 수는 없다.
‘큰형수의 아버지인 재단 이사장이 결정했을까?’
그럴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큰형수도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재단 이사장과 학교 직원은 발뺌할 것이고 모든 잘못을 브로커에게 넘기겠지.
‘그 브로커만 한국에서 사라지면…….’
사건은 묻힐 것이다.
그렇기에 재단 쪽에서는 브로커를 해외로 피신시키고 증거자료를 없애려 하겠지.
‘브로커는 사라져도 자료를 내가 가질 수 있다면…….’
훗날 송우그룹 승계를 위해 유용하게 쓸 수 있다.
‘어떻게 해야 내가 가질 수 있을…… 아!’
현호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즉시 최명준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최명준입니다.]
“명운재단 입시부정 의혹 뉴스 봤습니까?”
[네, 봤습니다.]
“최 실장이 해 줄 일이 있습니다.”
큰형수 채연희는 브로커가 가진 자료를 없애려 할 것이고, 브로커는 채연희를 속이고 그 자료를 은밀히 보관하려 할 것이다.
‘나는 그 자료를 중간에서 가로채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