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112)
콩가루집 막내왕자-112화(112/205)
112화 봉쥬르, 브르타뉴(4)
―이탈리아, 교황령
책상 위에 쌓인 양피지와 종이들, 그리고 무수한 잉크 냄새들.
“하.”
이 냄새를 맡으며 한숨을 쉬는 건, 세계의 중재자를 자처한 베드로의 후계자 비오 2세다.
이 늙은 권력자는 한때 헨리 2세에게 암살당할 뻔했지만, 고령에도 무병장수하고 있고 오래 살고 있다.
“선종하고 싶구나.”
꼭 오래 산다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공감하고 있다.
교황청은 늘 바빴다.
물론, 이것은 좋은 뜻이었다. 바쁘다는 뜻은 그만큼 교황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일이 너무나도 많아서 교황은 과로사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3차 십자군, 완전한 성전의 승리 이후에도 할 일이 끝나질 않아 피곤했다.
“대체 이런 일이 언제 끝나는지.”
모든 가톨릭 수사(성직자)가 꿈꾸는 베드로의 후계자,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는 빛나는 명성이 있으면 무엇할까? 다 늙어서 몸이 고생인데 하,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교황을 꿈꾸었을까?
‘물론, 젊은 시절 나는… 이 빛나는 자리를 갈구했지.’
토마스 베켓 역시 젊은 시절, 성직자로서 잉글랜드를 살아갈 때 교황을 꿈꾸었다. 그래서 온갖 수단을 활용해 잉글랜드와 신성로마제국 위정자들과 야합했고. 꿈에 그리지 않던 교황 자리에 올라갔다.
하지만 날이 가면 갈수록 피폐해진 늙은 교황은 늦은 후회를 했다. 일하러 교황이 된 것이 아니었는데… 라며.
지극히 위대한 교황 성하로서 처리해야 일이 많았다. 당장 세속적으로 통치하고 있는 교황령의 운영 문제, 신성로마제국의 중재 문제, 콘스탄티노폴리스 세계 총대주교 등등.
크게 생각해도 3가지 부류지만, 세세하게 분류하자면 더 많은 문제가 남은 셈이다.
그런데 이때쯤에 앙주 가문의 내전이 터졌다.
흑사자―백사자가 대립하는 사자의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존 왕자와 제프리 왕자는 각각 리처드 왕자와 헨리 왕자를 자기들의 주군으로 섬겼고. 리처드 1세와 헨리 3세가 될 주군들을 위해 왕좌의 게임을 계획했다.
잉글랜드 내전이라, 이렇게 골치 아픈 일들을 만든 건 누군가, 자기가 키웠던 제자였다.
“존 왕자….”
사람은 이번 일어난 집안싸움이 결국은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교황 비오 2세는 조금 더 다르게 보았다.
세계가 변해 버렸다.
기독교인들에게 좋은 변화도 많다지만, 세상에 어디 좋은 것만 누릴 수 있을까? 반대로 기독교인들이 세계의 이익을 누린 만큼, 나누는 문제도 신경 써야 한다.
잉글랜드의 내전은 가톨릭 국가의 내전이기 때문에, 수많은 성직자가 이 싸움의 향방으로 누릴 이익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교황은 제자였던 사내를 생각했다.
“내가 존 왕자를 과소평가했는가?”
어쩌면 두 번째로 잉글랜드인 출신 교황이 된 자신의 문제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인과를 만들어 낸 것은 모두가 과소평가했던 존 왕자 덕분이었다.
처음에는 토마스 베켓도 존 왕자의 저력을 몰랐다.
어린 시절의 존 왕자는, 다른 왕자들과 달리 총명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그저 무난한 학습 태도를 보였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지.’
십자군 시절의 활약이나 고성소 문제로 포문을 열어 잉글랜드에 앙주 문화를 도입하려고 시도했고.
지금은 리처드를 왕좌에 오르게 해 잉글랜드의 핵심 귀족이자, 사촌 간의 결혼을 통해 본인의 가문을 왕가로 만들 운명을 만들었다.
이따금 브르타뉴 전역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여러 가지로 교황을 놀랬고, 내전의 결과를 기대하고 있었다.
교황의 자리에 있기에 직접적으로 존 왕자를 도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멀리서 응원만은 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는 존 왕자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제프리 왕자는 존 왕자를 이길 수 없어.’
교황 비오 2세는 절대 제자를 과대평가하지 않았다. 존 왕자는 충분히 다른 위대한 왕자 사이에서도 빛나는 불야성이었다.
* * *
―1191년, 2월 브르타뉴 전역―
흰 눈이 내리지는 않았지만, 추운 날씨가 이어지는 겨울이다.
날씨가 날씨인 만큼 흑사자군이나 백사자군이나 모두 전투하기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차갑고 외로운 겨울에도 ‘렌’을 밀어버렸다.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쾅!
성벽에 살짝 균열이 난 시점에서, 8연발 공성 병기 뉴 존스 보우 한두 방이면, 성이 그저 무너지는 것이다.
아일랜드에서 온 여행객은 브르타뉴에서 중요한 경제 도시 렌을 함락시켰다.
“항복한 이들은 살려줘라.”
“다만 물자는 기부 받는다.”
아무리 인의예지를 베풀고 싶어도 중세는 중세다. 보급은 현지 약탈 보급과, 본토 보급 두 가지가 이루어져야 원활한 법이다.
새가 두 날개를 펴고, 파듯 날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살려만 주십시오.”
“우리가 정보를 많이 알고 있습니다.”
성곽이 깨지고 백기를 든 사람들이 살려만 달라고 했고, 나는 승리자로서 자비를 베풀었다.
그리고 정복한 도시 렌을 바라보며 새로운 감성을 느꼈다.
“바다의 신은 여행자들을 돕는다.”
내가 브르타뉴의 오랜 전설을 읊조리는. 곁에 있는 고드프리가 답했다.
“그 여행자가 바로 우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 우리가 여행자이며 약탈자이지.
브르타뉴도 사실 불쌍한 지역이다. 같은 켈트인의 땅 아일랜드처럼 바이킹의 공식 맛집이었던 시절이 계속되던 동네였고, 원래 역사에서도 잔인한 대영제국 놈들이 한두 번 건드린 게 아닌 비극이 있지 않았던가?
물론, 나는 브르타뉴인들을 나중에 우리 위대한 잉글랜드의 신민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브르타뉴 사람의 인명을 함부로 해치지는 않는다.
이미 부르고뉴라는 히든카드를 내보였다.
모든 패가 다 까발려지고, 이쪽에서 히든카드를 꺼낸 이상.
게다가 나는 카페 왕조 역사를 통해, 원 역사의 필리프 2세가 어떤 방식으로 제프리 왕자를 지원했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이제는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우리 자랑스러운 리처드 형과 옥스퍼드 백작이 프랑스와 앙주를 둘 다 감당하고 있으니까.
연이어 들려오는 리처드 형의 승전을 들은 나는 자신감이 있었다.
프랑스 왕국의 정예 군대가 이곳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고작 프랑스 2중대인 부르고뉴 군대와 브르타뉴 공작 군대에 대한 걱정은 없다.
* * *
―1191년, 3월―
빙판이 녹는 봄이 되었다.
치열한 브르타뉴 전역의 싸움은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우리 흑사자군이 승리한다.’
‘너희는 검게 타락한 반역자일 뿐이다!’
우리가 전에 화려하게 공세를 취했지만, 저쪽에서도 공세를 취해 경제 도시를 지키고 탈환하는 등, 일종의 고지전이 이루어졌다.
물론 그나마 다행인 건. 브르타뉴의 대다수의 경제 중심 지역은 우리가 차지했다는 것이다.
브르타뉴의 기반을 이용하여 싸우는 브르타뉴 공작 제프리 형은 시간이 지나가면 지날수록 우리에게 더 유리한 판세였다.
‘망할 아버지. 이제 슬슬 복귀할 때가 되었는데.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네.’
사경을 헤매는 것도 아니고. 멀쩡히 앙주 영지에서 잘 살아있는 부왕 헨리 2세는 싸움 구경을 계속하기로 한 모양이다.
아무래도. 결판이 나기 전까지는 활동을 자제할 모양인 것 같다.
이쯤 되면 정의로운 흑사자 편에 서서 ‘크아아앙’ 울부짖어야 하는 백전노장이 참 무심하다고 생각되지만.
리처드 형조차도 견제하는 국왕의 입장에서 이해 못할 것도 아니고, 이런 상황을 잘 써먹는다면 오히려 나의 실력을 온 유럽에 증명할 기회가 될 것이다.
제프리 형의 실수가 있다면. 자신의 대적하는 존 왕자인 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물론, 나야 다른 영웅들에게 비하면 능력이 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본인의 한계를 모두 잘 알고. 유능한 사람들을 적재적소로 사용하고 있다.
고드프리가 계획하면, 로빈이 쏘고, 샤를이 약탈하고, 악불회가 중국식 돌격을 했다.
이런 방식으로 나는 전장을 압도하고 있다.
“보급 기지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백사자의 공세가 강합니다.”
“이 정도로 몰렸는데, 이런 기세라니. 정말 무시무시하구려.”
무시무시하다 중세!
하지만 내가 겁을 먹을 때, 고드프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전하. 지금 약한 척하시는 겁니까? 벌써 낭트입니다.”
아 낭트구나.
낭트면 킹갓 프랑스 국왕 앙리 4세의 낭트 칙령이 생각나네.
그때쯤, 에스파냐에서 사절단이 왔다.
“작은 엘레오노르 왕비께서 보냈다고?”
작은 엘레오노르 누나가 보낸 특사가 우리 진영에 왔다. 너무나 행복해서 눈물이 날 거 같다. 대체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거지.
“작은 엘레오노르 누님이라….”
애초에 친남매들이 서로를 경원시하고. 나 역시 작은 엘레오노르를 남 대하듯 했다. 여러 가지로 내가 에스파냐의 건국에도 도와준 꼴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나를 도와준다?
세상에는 이유 없는 호의는 없다. 아마 작은 엘로오노르 누나가 나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니 호의를 베풀겠지.
이번에는 작은 엘레오노르가 딱히 편지를 보내지 않아, 생각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스파냐에 오신 귀빈을 환영하오.”
‘우리누나, 에스파냐의 비선 실세가 다 되었네. 아니지, 이 정도면 내조의 여왕이라 불러야 하나.’
생각해보면 우리 페르난도 매형이 아내에게 약해도, 누나의 말에 질질 끌려갈 위인이 아니다. 서로 상부상조하지만 대잉글랜드 문제는 누나가 주도하는 거겠지.
원래 이럴 때는 대외적인 체면을 위해, 에스파냐의 국왕을 언급해야 한다.
“페르난도 국왕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이오?”
“존 왕자님의 승리입니다.”
“그거 말고, 다른 말씀은?.”
“전하, 우리 에스파냐는 옛 고토를 얻고 싶습니다. 우리고 용병대인 만큼 정당한 급료를 받고 싶습니다.”
옛 고토라, 나는 무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북아프리카에서 재미 좀 볼 테니 그동안 얌전히 있으라는 말이다.
“그렇게 하겠소.”
어차피 우리 입장에서는 북아프리카 문제는 알 필요가 없다. 저번 십자군에 해당 지역의 이슬람 세력도 약골이 되었으니, 누님 용돈 하라고 내버려 둬야지.
지금 중요한 건 승리다.
내가 브르타뉴를 확실히 장악해야 망할 아버지 헨리 2세가 병상에서 일어나 참전할 기회가 많다. 그러니 열심히 싸워야지.
게다가 부르고뉴와 브르타뉴 간의 지휘권 문제로 다투고, 내가 심어준 간첩 기사들이 브르타뉴에서 활약 중이다
얼마 후.
다시 말 위에 오른 나는 파릇파릇한 봄 향기를 맡으며 명령했다.
“돌격하라!”
* * *
―브르타뉴, 백사자의 진영―
“하.”
제프리가 뒤를 돌아보자.
커다란 지도가 있다. 브르타뉴 전역의 지형이 그려진 지도다.
그 지도에서 흑사자군이 날뛰고 있고, 백사자는 움츠리고 있다.
얼마 전. 브르타뉴 전선의 사령관을 맡으며. 친형 헨리 왕자에게.
‘걱정하지 마십시오. 존 그 아이는 제가 예루살렘 수도원에 제대로 유폐하거나, 낙마시킬 겁니다’라고 까지 말했던 제프리 왕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만한 전력을 들고, 존 왕자에게 이렇게 휘둘릴 수 있으니.
자신은 정말 억울했다.
“경들은… 대체 왜 그러오?”
“… 그, 그게.”
“하….”
제프리 왕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저번 부르고뉴 군이 왔을 때. 이미 브르타뉴 전역의 끝을 본 제프리였다.
하지만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법. 존 왕자를 처리할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전황이 불리하기 시작했다.
지금 백사자군은 안으로는 민란이 일어나고, 바깥으로는 흑사자군의 게릴라 공세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게다가 할버드를 둔 보병과 장창병으로 이루어진 육지의 울타리라는 전술, 그리고 검차와 수레로 만들어진 바리케이드는. 명예로운 프랑스 2중대 부르고뉴 군대의 분위기를 망가뜨리기 시작했고.
경제 도시들은 하나둘, 존 왕자의 보급을 해결해주는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되었다.
물론 제프리 왕자는 눈뜬장님이 아니기에. 최대한 탈환 작전을 만들고. 적들의 새로운 전술에 대해 대비도 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황이 참 이상하게 되고 있다.
전장의 주도권을 흑사자가 쥐고 있다.
“전하, 큰일입니다. 흑사자군의 이곳을 향해 공세를 취하고 있답니다.”
“하.”
제프리 왕자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어쩌면 낙마할 왕자가 자신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