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114)
콩가루집 막내왕자-114화(114/205)
114화 고귀한 포로
―1191년, 낭트성―
저 멀리 퇴각하는 군대가 보인다.
영광스럽게도 프랑스 왕국의 금색 백합이 수놓아진 카페 왕가의 깃발이다.
정말 치졸한 놈들이다. 부르고뉴 놈들이라면 당연히 자기 영지의 문장을 그린 깃발을 가지고 튀어야 하거늘.
저렇게 당당하게 카페 왕가의 깃발을 들며 마치 ‘우린 프랑스 왕국의 군대다!’라는 말을 하듯 튀다니. 정말 자존심이 없는 모양이다.
“부르고뉴 군대가 퇴각하고 있습니다.”
“내버려 두시오. 어차피 저자들을 쫓아도 이득이 없소.”
“예, 전하.”
지금 따라가봤자 매복이 있을지도 모르고, 우리의 목적은 어차피 브르타뉴군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저들은 우리의 치트키 리처드 형이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고.
사람들은 착각한다. 리처드 형이 필리프 2세, 윌리엄 마셜, 헨리 왕자의 군대와 비등하게 싸운다고. 하지만 리처드 형과 같은 십자군 원정에서 피땀 흘리며 성전을 치렀던 나는 알고 있다.
리처드 형이 힘을 숨기고 있다고 말이다.
이미 본인부터가 국왕을 원하고. 나와 사돈을 맺으면서까지 앙주 왕가를 유지하려는 리처드 형의 세력은 강력하다. 오히려 단일 세력만 보자면 헨리 형의 군대와 비등할 것이다.
‘거기에 옥스퍼드 백작의 군단까지 추가된 상태고 말이야.’
게다가 한때 잉글랜드의 실세로 여겨지던 우리 대단하신 어머니 엘레오노르가 본격적으로 리처드 형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영악한 리처드 형은 나에게 맡긴 브르타뉴 전역의) 결과를 위해 소극적인 공세도 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들은 리처드가 아키텐 전역에서 이미 제대로 된 승부를 겨루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그의 진짜 힘은 발휘되지 않았다.
리처드 형이 제대로 된 총공세를 펼쳤다면 리처드 형에 맞설 수 있는 잉글랜드의 검 윌리엄 마셜은 몰라도, 필리프 놈은 벌써 백기를 올리고 ‘살려만 주시오.’ 하면서 6주보다 빠르게 항복할 거니까.
아무튼 나는 내가 할 일을 다 했다. 브르타뉴 전역에서 이겼다.
물론 내 실력으로만 이긴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로 운이 좋기도 했고, 유럽 외교 정치판의 이해관계를 볼 때, 골리앗 제프리보다 다윗 존이 이기길 바라는 사람이 많았고.
그들 중 나에게 투자하는 이들도 적잖이 많았다.
아마, 지금도 앙주 영지에서 아들들이 쌈박질하는 걸 포도주 마시며 관음했을 아버지. 헨리 2세도 나에게 알게 모르게 지원을 해줬을 것이다.
“와아아아아!”
나는 내가 이끄는 흑사자군의 승리의 함성을 들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일단 프랑스 2중대, 부르고뉴 군대가 올 줄 몰랐다. 필리프 2세가 수를 쓰긴 할 거지만, 리처드 형을 막을 뿐, 나를 과소평가할 줄 알았으니까.
하지만 이젠 아무 소용 없는 이야기다.
“모두 무기를 내려놓아라.”
“정의로운 잉글랜드군이 승리했다!”
조선 시대에 관군과 반란군으로 이분법을 하는 것처럼.
브르타뉴 전역의 백사자군을 궤멸시킨 우리 흑사자군은 정의로운 잉글랜드군이 맞았다.
이제 패배자의 얼굴을 봐야 하는데.
“그래서 우리 잘난 반역자 형님은 어딨소?”
반역자 형님.
사극 태조 왕건에서 나오던 형님 폐하 같은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칭호였지만, 그래도 어떠한가. 내가 이겼는데.
낙마니, 독살이니 같은 자조적인 농담을 하긴 했지만, 내가 실제로 친족을 티 나게 죽이면 감수할 일들이 너무 많다.
당장 오리지널 존 왕 역시, 조카 아서(제프리 왕자의 아들)를 센스 없게 대놓고 죽이다가, 기사들의 외면을 받은 결과를 얻지 않았던가?
물론 그것과 더불어, 아직 아버지와 어머니가 살아계시는데. 난전도 아니고 깔끔하게 승전한 지금.
높은 성의 사나이, 존이 되어 제프리 형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알려줘야지.
“그것이…….”
하지만 정작 제프리 형의 봉신들은 내가 피에 미친 데인저러스 존으로 알고 있나 보다. 정말 이거 서운한데?
하지만 나는 고결한 모습으로 말했다.
“부왕과 모후가 살아계시오. 전장에서라면 모를까? 이미 승부가 끝났는데… 친족에게 어떤 해를 끼치겠소?”
나의 말을 들은 고귀한 포로 한 명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안내해 드리죠.”
아무튼 성주의 방으로 가보니, 우리의 고귀한 포로 제프리 형은 병석에 누워 있는 것 같다. 나에게 패배한 게 그렇게 큰 화병이었나?
“…왔구나. 하지만 굳이 포로가 된 내 봉신들을 데리고 와야 했어?”
“아시지 않습니까? 세상의 이목을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게. 저, 세이프 존입니다.”
오리지널 존이 평판 관리를 잘못해서, 개같이 망했다는 역사를 알고 있는 나다. 오리지널 존은 자기 관리를 못 했지만, 세이프 존은 언제나 안전한 길을 택하니까.
나는 제프리 형을 보면서 이상한 점을 느껴, 곧바로 입으로 말했다.
“형님, 오랜만에 가족 상봉을 해야 하는데 형수님과 아서가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설마 약점을 놓고 싸우겠느냐.”
‘네가 가족들 조질 것 같으니, 내가 선수를 쳤다. 내가 만일 안 좋은 일이 생겨도 가족은 무사해야 하니.’ 같은 절절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나는 그런 제프리 형을 보며 항변했다.
“설마… 제가 형수님과 귀여운 조카를 해치기라도 하겠습니까?”
당연한 걸 왜 묻냐는 듯 나를 노려보는 제프리 형. 이거 서운하네. 머저리 오리지널 존과 세이프 존은 다르다고!
“어차피 내전은 우리가 이겼습니다. 아, 고귀한 포로들께서는 지켜보시오. 나의 결백을. 나는 모함을 싫어하는 세이프 존이니.”
“예… 전하.”
중세 시대 유럽을 나쁘게 보면 암흑시대고, 좋게 보면 기사와 신앙의 시대다. 물론 내가 느끼기엔 중세 시대에는 조금만 잘못하면 코가 베이는 시대가 맞다.
오죽이면 중세 ‘뽕’에 찼던 바로크 시대의 프랑스 역사가들이. 그들의 음흉한 중세 프랑스의 조상들이 잉글랜드에 했던 짓을 떠올리고. ‘아, 이건 좀 심하셨습니다.’라고 했을까?
물론 그 중세 프랑스인들은 당연하게도. 오리지널 존 왕에게서 온갖 영지를 강탈한 필리프와 친구들이다.
그런 애들이 이상한 소문을 퍼트릴 구실을 주면 안 된다.
아무튼 우리의 패배자 제프리 형과 대화를 나눠봐야겠지?
* * *
제프리 형이 있는 침상에 다가간 나는 어떤 부자연스러운 표정도 짓지 않았다.
물론, 표정 연기를 안 한다고 구태여 웃지는 않았다. 패배자 앞에서, 그것도 시름시름 앓고 있는 병자 앞에서 웃는 것도 국경을 따져야 하는 일이다.
같은 잉글랜드고, 같은 앙주의 혈통을 타고났는데. 아무리 그래도 제프리 형을 비웃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을까?
아무튼 제프리 형은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거… 사극식 명장면 아니야?’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구도라고 생각했는데. 사극에서 꼭 나오는 총애하는 신하가 죽고, 곁에서 그 신하의 주군이 슬퍼하는 그런 장면이 생각나는 구도다.
“휴, 꼴을 보니. 네가 나를 죽일 생각은 아닌가 보다.”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는 제프리 형.
“설마 제가 그러겠습니까? 저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남이 피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퍽이나 그러겠구나.”
물론 나는 악성적인 소문이 돌까 봐. 안에 있는 제프리 형 측의 봉신들, 노골적으로 말하면 고급 포로가 된 귀족을 향해 눈짓했다. 나는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는 눈빛을 준 것이다.
물론 나는 패배한 형에게 단감과 게장도, 포도주 한 잔도 줄 생각이 없다.
그저 나만의 방식으로 느긋한 대화를 할 뿐이다.
“전하, 존 왕자님께서는 무고한 인명을 해치지 않으셨습니다. 포로도 잘 대접했고요.”
나를 반역자로 불렀던 사람 중 하나이자, 제프리 형의 오른팔인 코트니 경은.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물론 이 말을 해석하자면, 그래도 내가 착한 지휘관이니 형의 신분으로 승리한 세이프 존을 자극하지 말라는 주군을 향한 충언이다.
그러자 제프리 형이 탄식했다.
“너에게 당했구나.”
“저에게 당하셨습니다.”
제프리 형이 누구에 당했는가? 당연히 나에게 당한 거지.
“어떻게 내 움직임을 알았지?”
“대반란을 토대로 예측했습니다.”
정확히는 대반란뿐 아니라. 원 역사에서 제프리 형이 필리프 2세와 함께 헨리 2세와 리처드 왕자를 담가버리셨던 계획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존, 좀 더 가까이 오거라.”
갑자기 친근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제프리 형. 누가 보면 예전부터 절친했지만, 엇갈린 운명이 우리를 싸우게 했다는 사극인 줄 알겠다.
하지만 나는 세이프 존. 안전을 확인하기 전에는 섣부른 행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내가 방심하다가 제프리 형한테 당한다면, 우리 가족의 인생이 힘들어진다. 내 아내가 아무리 ‘한나’라도 한계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무척이나 신중한 얼굴로 형에게 말했다.
“안전해지기 위해 검문하겠습니다.”
“뭐?”
“혹시 모르니 날카로운 것을 찾아보게.”
“예, 전하.”
불시검문이었다.
나의 충실한 기사 샤를은 병사들을 이끌고 이곳저곳 확실하게 혹시 모를 위험을 살폈다.
“안전하십니다.”
“그럼… 조금만 더 가까이 가지요.”
물론 안전거리를 유지했다. 변수가 있을지 모르니.
다만, 내 옆에는 충성스러운 기사들이 있고. 제프리 형의 기사들은 이미 무장 해제당한 이후니 큰 걱정은 없다.
그래서 나는 아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제프리 형에게 말했다.
정말 안타깝게 말이다.
“형님, 이렇게 보니 가슴이 아픕니다. 왕관을 쓰는 자 그 무게를 버텨야 하겠지만. 그 빌어먹을 왕관을 위해 얼마나 많은 피가 흘러야 했습니까?”
“바리새파인과 사두개인처럼 독사 같은 놈.”
바리새파인과 사두개인은 예수님의 생전에 이스라엘을 좀먹던 유대교의 꼰대 적폐 세력으로 예수님이 ‘이 독사 같은 놈.’이라고 해서 유명했다. 다시 말하면 제프리 형은, 내가 그런 놈들과 같은 나쁜 새끼라고 특급 칭찬을 한 것이다.
하긴 내가 내전을 좀 제대로 하긴 했지.
잘 도망가고.
잘 기습하고.
잘 질질 끌고.
완전 아일랜드 공작 만세, 잉글랜드 만세 수준인데?
“칭찬 감사합니다.”
내가 겸양을 떨지 않자, 이번에 제프리 형은 싸늘하게 말했다.
“게다가 순진한 척하면서. 내 정치적 기반을 공격했더구나.”
“저는 그런 적 없었는데?”
“이 영악한 것.”
제프리 형의 기반은 브르타뉴지만, 제프리의 정치적 기반은 친프랑스 세력이다.
정확히는 약해 보이는 프랑스지만, 이용하기에 따라 헨리 2세와 리처드 세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프랑스에 ‘친 세이프 존’ 세력을 비밀리에 만들었다.
그들은 주군인 필리프 2세 때문에 대놓고 나의 편을 들어주지는 않지만, 알게 모르게 제프리 형의 파벌을 견제하는 역할을 해주었다.
물론 그걸 제프리 형은 늦게 알아차렸을 것이다. 제프리 형처럼 협잡질하는 것은 잘하지 못하지만, 적어도 내가 망하면 자기들도 곤란하다는 사실을 내가 프랑스 귀족들에게 ‘부르봉’식으로 알려주었으니.
아, 미래의 부르봉 왕가는 루이 13세 루이 14세만 하더라도 귀족을 잘 구슬린 진짜 무서운 국왕들이 아니던가?
* * *
일단 열심히 싸우고 있는 리처드 형에게 편지를 보냈다.
리처드 형이 쓸데없는 말을 싫어해서 같잖은 표현 대신 ‘브르타뉴 전역의 평정을 끝냈습니다. 지원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까? 혹시 제가 가도 됩니까?’라는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답장을 보니, 리처드 형은 구태여 내가 아키텐 전역까지 올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보급 부대만 지원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 대목에는.
‘어차피 네가 제프리와 부르고뉴의 군대를 이긴 순간 이미 전쟁은 끝났다!’ 같은 의미심장한 문구를 남겼다.
그 의미를 파악한 나는, 브르타뉴 안정화를 서두르기로 했다.
브르타뉴 영지에 있는 신민들은 혈통상이나 문화상이나 잉글랜드는 물론 프랑스와도 차이가 있는 이질적인 민족이지만, 그들을 통제하는 방법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을 앙주인으로서 대하면 된다.
이미 브르타뉴인들도 소문으로 들었을 것이다. 본토 잉글랜드의 왕자 출신인 세이프 존이 아일랜드, 모르땅, 스코틀랜드 출신 사람들은 물론, 콥트교인이나 개종한 중동인을 함부로 대하지 않은 미담을.
아무리 패배자는 승자들에게 처우를 맡기는 거지만, 나는 그들에게 바로 접근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얼마 전까지 죽고 못 살던 적의 사령관인 내가, 승자라고 함부로 그들에게 접근한다면 여러 가지로 영지민들이 부담을 느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고귀한 포로가 된 제프리 형의 봉신들을 이용해 간접적으로 민심을 수습했다.
“아버지.”
로빈이 반응하는 귀족.
당연히 내가 아주 잘 알고 있는 귀족이다.
“녀석, 지금은 너보다 전하가 먼저다.”
그 귀족은 아들보다 왕자인 내가 더 중요했다.
“전하, 고생하셨습니다.”
“내가 한 것은 없습니다. 오로지 봉신들이 잘했을 뿐이지요.”
내 앞에 날카로운 눈빛을 가진 중년의 귀족이 웃으며 답했다.
“인재 활용, 그것도 왕자님의 능력이십니다.”
“그건… 그렇고 옆에 계신 분께 드릴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노퍽 공작이 중요하지 않았다. 그 옆에 있는 사람이 중요했지.
“제프리 형을 이겼습니다. 이 정도면 시험에 통과한 겁니까?”
나는 얼굴이 안 보이게 투구를 쓰고 노퍽 공작 오른쪽에 있던 사람을 향해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
내가 갑자기 존댓말을 하자, 이 왕자님이 더위 먹었냐는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는 봉신들.
하, 이렇게 신뢰가 없다니. 이렇게 파릇파릇한 세이프 존이 설마 노망났겠나.
“그래, 통과했단다.”
역시 내 생각대로.
투구를 벗은 남자는 미노년의 국왕이자, 추하게 복상사로 죽을 뻔한 헨리 2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