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118)
콩가루집 막내왕자-118화(118/205)
118화 사코 디 파리(2)
―브르타뉴 영지―
헨리 2세는 성곽에 올라가. 브르타뉴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구공사가 한창이긴 했지만, 그 외에는 별일은 없어 보였다.
“경이로울 정도로 평화롭군.”
얼마 전까지 전장이었던 곳은 너무나도 평온하다. 마치 주일날 미사를 드릴 때의 평온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헨리 2세는 심심했다. 오랜만에 대가리를 깨고 싶은데. 깰 대가리가 없는 것이다.
“반란군 새끼들이 더 없다고.”
“그렇습니다. 폐하, 이제 군사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용기 없는 반란군이 있나.”
헨리 2세는 심심했다.
“폐하, 앞으로 적들은 브르타뉴를 노릴 생각이 없을 겁니다. 차라리 아일랜드를 노리겠지요. 하지만 존 왕자의 봉신 샤를과 그의 휘하 제독이 있는 이상. 아일랜드 상륙도 절대 성공할 수 없을 겁니다.”
사실, 브르타뉴 전역은 사실상 완전히 종료했다.
주변에 백사자의 군대가 있긴 했지만, 그들은 지금 리처드 왕자라는 희대의 지휘관을 상대하느라 브르타뉴에 올 여유가 없다.
‘뭐, 브르타뉴의 대리인도 나쁘지 않군.’
헨리 2세는 졸지에 존 왕자에게 짬처리당했지만, 오히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브르타뉴 영지를 안정시키는 건, 정계에 복귀하기 전 소일거리로 괜찮은 것이다.
헨리 2세는 브르타뉴의 인민을 위로했다.
“그대들은 앙주의 봉신이고, 너희는 앙주의 인민이다.”
이제 더는 이들은 제프리를 섬길 수는 없을 것이다. 제프리는 헨리 2세에게 떨어진 고귀한 포로니까.
그것도 아직 값을 치르지 않았다.
이렇게 헨리 2세가 다시 정력적으로 여자 대신 브르타뉴를 품고 있을 때.
고귀한 포로가 된 제프리는 하루하루가 말라 갈 것 같았다.
차라리 피를 토할 때. 화병에 걸려 죽었으면 이렇게까지 추해지지도 않았을 텐데.
성서에서는 바빌론 유수 때, 바빌로니아 제국에 끌려간 남유다의 백성이 당한 고초가 있었다. 어쩌면 제프리 자신이 그 악명 높은 바빌론 유수보다 지독한 고행 생활을 하는 것이다.
그때.
헨리 2세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아들이 유폐된 응접실로 들어왔다.
“나의 아들 제프리.”
“저를 조롱하려고 오셨습니까?”
제프리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본인 자신도 탁월한 책략가로서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겠다고 작정했다.
이건 그와 절친한 필리프 2세와도 똑같은 면모다.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 약점이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존, 이 진정한 음흉함을 숨긴 사악한 아우.’
하지만 존 왕자, 자기보다 한 수 아래로 보았던 동생에게 패배한 순간. 제프리는 깨달았다. 지금 제프리는 너무나도 감정적인 상태가 되었다고.
헨리 2세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흡족했다. 지극히 나쁜 뜻으로 사람은 편하기 마련이다.
어쩌면 헨리 2세. 이 주름진 이마를 가리기 위해 쓸데없는 왕관을 쓰는 자신마저도 변했는데. 제 잘난 줄 아는 제프리도 이제 힘의 차이를 알 것이다.
“제프리, 졌으면 알아서 숙이거라.”
“아버지, 저를 죽이실 겁니까?”
평소대로 부왕이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 부르는 제프리의 말에 헨리 2세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예전이었으면 처형했을 거다. 예전 바이킹 족장처럼 피의 독수리형에 처했을까?”
피의 독수리형은 산 채로 사람의 등가죽과 근육을 칼로 벗겨내어 갈비뼈가 보이도록 한 뒤,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악독한 처형법. 헨리 2세의 멀고 먼 조상이 결국, 바이킹이니 하는 섬뜩한 말이었다.
물론 제프리는 이것이 살벌한 농담임을 잘 알았다.
“같은 기독교인이니 저를 죽이실 거면, 참수가 좋습니다.”
“되었다. 너는 처형되지 않을 거다. 이미 리처드 녀석이랑 이야기가 되었거든.”
“하….”
이미 본인에 대한 처결이 끝났다는 말에 제프리는 깨달았다. 자신은 편히 살지 못할 거라는 예감 말이다.
바로 그때.
급하게 달려온 연락관이 말했다.
“폐하, 지금 토스카나의 기사 갈가노가 파리를 수비하러 갔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의 집안싸움에 이탈리아 친구들이 끼다니 참으로 눈치가 없군. 하지만 내 아들 세이프 존이야. 존. 갈가노 그 친구는 존을 막지 못해!”
프랑스가 끼어든 이상, 이제 내전은 남의 집안싸움만이 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흑사자와 백사자의 대립이었지만, 이제는 프랑스 왕국도 끼어든 덕분에 살벌한 국제전이 되어버린 것이다.
존이 자신을 자칭하던 세이프 존은 이제는 너무나 유명한 ‘별칭’이 되었고, 이제는 헨리 2세마저 제 아들을 세이프 존이라고 부른다.
이걸 바꿔 말하자면, 헨리 2세조차 이제 아들을 단순히 귀여운 자식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왕, 프랑스는 그저 지금과 같은 동프랑스여야만 합니다. 그들을 정복할 건, 저와 리처드 형이 낳을 황제가 될 테니 말입니다. 지금 당장 우리 잉글랜드에 필요한 건 확장이 아닌. 안정화입니다.’
헨리 2세는 떠나기 전 존 왕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새삼 느끼지만, 막내인 존은 너무 사랑스러웠다. 마치 막내아들로 태어난 솔로몬을 본 다윗의 심정이 이랬을까?
그래서 헨리 2세는 다시 말했다.
“제프리, 솔직히 이제야 말하지만… 너와 나 둘 다 존, 그 아이를 몰랐구나.”
“그래서 제가 이렇게 비참하게 살지 않습니까?”
* * *
―프랑스 왕국, 이블린―
일 드 프랑스는 알차고. 빼 먹을 것도 많았다.
하지만 앞에 새로운 방해물이 등장하니, 온전히 약탈만 할 수 없었다.
징글징글한 이탈리아 기사 놈. 에티오피아나 가지.
물론 갈가노가 이끄는 토스카나 지방 용병이 대세 자체를 바꿀 수 없지만, 갈가노의 발악은 짜증이 났다.
―좌익을 틀어라!
―적들의 신병기는 완벽하지 않다. 틈새를 노리면 된다!
갈가노 군대는 의외로 강했고, 용감했다. 군대를 이루는 것 중에 병사들의 사기가 얼마나 중요한 척도인가? 게다가 여러 가지로 불리한 와중에도 자기들의 책임을 다했다. 프랑스인이랑 백사자 떨거지보다 더 말이다.
갈가노 본인이 이탈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영웅인 만큼 용병술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아마 여기서 제대로 전력을 쏟아내지 못한다면. 싸움이 더 질질 끌릴 것 같았다.
하지만 프랑스가 제대로 반격하기 전에 나는 파리에서 약탈할 생각이라, 시간을 질질 끌 수도 없었다.
물론 지금 샤를의 선봉 부대 겸 제1 약탈부대가 적들의 선봉진을 제대로 휘어잡고 있긴 한데. 그걸로 나는 부족함을 느꼈다.
‘아마, 더 무섭게 어루만져줘야겠어.’
생각을 마친 나는 내가 총애하는 원거리 담당 지휘관을 불렀다.
“로빈 경.”
“예, 전하.”
“그대의 부친에게 올라갈 전투 보고서에 장궁 부대의 전공을 추가하고 싶소.”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사들을 직접 쏘는 것보다 낙마를 노리시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알겠습니다.”
훗날에도 장궁이 먹히는 이유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말’을 잘 죽여서 그렇다. 무거운 갑옷을 입은 중갑기병에게 낙마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다.
“준비된 사수 발사!”
―피웅, 피웅, 피웅.
―히이이이잉.
과연 내 예상대로 아무리 훈련된 말이라도. 제 목숨이 위협당하거나, 죽음이 코 앞일 때는 본능적으로 주인을 경원시한다.
“전하, 적의 기병 진열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좋았어.”
중세 시대는 결국, 기병이 주요 전력이다. 1열의 기사들이 무너지는 것을 본 나는 곧바로 동방의 신비를 이용하기로 했다.
“악불회 경.”
“예, 전하.”
“동방식으로 적을 압도해주시오.”
“예, 바로 검차와 수레, 그리고 보병대를 움직이겠나이다.”
괜히 나서다가 짐이 되기 싫은 나는 훗날 헨리 7세가 그랬던 것처럼 안전한 후방에서 앞으로 상황을 보고 고드프리에게 말했다.
“고드프리, 저들이 참 용감하오. 그렇지 않소?”
“하지만 이미 대세가 결정 났습니다. 우리가 방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벽을 앞두고 공성을 하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연이은 회전을 치러야 했다.
물론, 좀 더 불리한 상황인 건, 가련한 프랑스 왕국의 군대다.
그들의 방어선은 점점 밀려 버렸다.
‘고결한 기사… 참 좋지. 하지만 아무리 중세 시대라도, 총력전으로 밀어붙이면 머릿수가 많은 우리가 많다. 저들이 시간을 질질 끄는 걸 기다릴 생각도 없고.’
달리 생각하자면, 갈가노가 이끄는 군대. 그리고 몽모랑시 남작이 이끄는 군대가 바로 희생양이었다.
갈가노의 군대가 최대한 발악하며 시간을 끌지만, 그래봤자 이미 대세는 정해졌다. 하지만 나는 방심하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적들을 섬멸한다. 우리의 목적은 빠른 약탈이다!”
―히이잉.
크롬웰이 울부짖었다. 간악한 프랑스 왕정을 부수는 중이라 힘이 나는 모양이다.
그때.
“전하, 우리 흑사자군의 깃발입니다.”
“리처드 형님인가?”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애초에 유리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지원군이 왔다.
“어서 그들을 맞이하시오.”
나는 곧바로 기쁜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는 지원군을 보낼 정도로 리처드 형이 잘 싸우고 있다는 것 아닌가?
흑사자군의 깃발과 함께. 그 뒤에는 잉글랜드의 깃발과 앙주 영지의 깃발, 그리고 잉글랜드의 유일한 국왕의 문장이 휘날리는 군대가 있었다.
부대를 이끄는 지휘관은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나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인물이다.
“전하, 소관 서리 백작이 위대하신 잉글랜드의 대왕 헨리 2세의 명령을 받아. 전하를 지원하러 왔습니다.”
“잘 오셨습니다. 서리 백작.”
백부님이다.
다시 말하면 힘을 숨긴 아버지가 나를 지원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도움, 정말 고맙지.
* * *
―프랑스 왕국, 파리―
남들은 절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처드 형이 아닌 내가 파리에 입성하게 될 것이라는 걸.
갈가노와 몽모랑시 남작의 군대를 파리까지 밀어버렸다. 그것도 비교적 단시간에 말이다.
그 순간, 나는 프랑스 왕국의 수도를 노리던 여러 역사 속의 제왕들이 생각났다.
저항하는 프랑스인이 아무리 발악해도, 파리 하나만을 얻으려 질주하던 위대한 지휘관들.
하지만 나는 그들보다 더 전문적으로 약탈할 자신이 있었다.
“폐하, 파리입니다.”
“파리라.”
노을이 보였고. 중세 프랑스 왕국의 자존심이 보였다. 하지만 이젠 도미노처럼 무너질 자존심이다.
부르봉 왕가의 창시자이자 신교도 출신 앙리 드 부르봉이 가톨릭으로 개종해서 미사를 치르더라도 얻고 싶은 갈망의 도시 파리는 내가 제대로 털 생각이다.
싸움이란 용기 하나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저 용기가 있다고 승리하는 역사가 있다면 세상의 전쟁은 소년 만화 같은 시시한 세상이었겠지.
갈가노 같은 이름 있는 기사도, 마치 잔 다르크처럼 오랫동안 가졌던 그의 영예로움이 본인을 지키지 못했다.
같은 진영의 지휘관들에게 배신당한 것이다. 용병 놈들이 뭐 그렇지 뭐.
“전하, 저는 패장입니다. 영예롭게 처형해 주십시오.”
“그대는 백사자군이 아니오. 그저 대가를 받고 싸웠을 뿐이지. 정적은 아니지 않소?”
진짜배기 귀족을 필리프 2세가 다 데려갔다고 해도, 남아 있는 프랑스 귀족들은 눈치만 보거나 퇴각했을 뿐이다. 웃긴 이야기지만, 프랑스의 귀족들보다 이탈리아 출신 지휘관들이 더 잘 싸웠다.
물론 갈가노만 잡힌 게 아니다.
“몽모랑시 남작, 그대는 모든 것을 다했지만 일이 어렵게 되었군.”
“전하께서는 제 몸값을 받으려 하시는군요.”
그 순간 나는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솔직히 지금 기분이 너무 좋거든.
당연하지.
아마 프랑스인 한정으로 내가 잡은 다른 고귀한 포로들보다 가격이 훨씬 나갈 것이다. 가문도 좋고, 능력도 좋고. 필리프 놈의 수하라는 점도 그렇고.
“…부정하지는 못하겠소.”
세찬 바람이 불었다.
공포에 떠는 파리의 시민들이 보였다.
“프랑스 사람들과 반란군(백사자)은 참 가련한 족속들이구려. 나를 그렇게 만만하게 생각하다니.”
“모두가 예상 못 한 겁니다. 아일랜드에서 저희가 키웠던 전력을 말입니다.”
“모두가 경들이 도와준 덕분이오.”
그렇게 동양식 겸양을 떤 나는 타오르는 목마름으로 말했다.
“사코 디 파리.”
―사코 디 파리!
파리 시민들에게 기부 좀 받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