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126)
콩가루집 막내왕자-126화(126/205)
126화 스승님과 함께(3)
―1191년, 이탈리아 로마―
“하급 성직자 시절, 나는 이 마차를 타고 싶어 했소.”
스승님은 오로지 교황만이 탈 수 있는 마차를 보여주며 말했다. 사람에 따라 사치스러워 보이긴 했다.
천사와 성녀들이 조각된 화려한 마차는 이 시대 교황의 권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솔직히 과장 보태면 우리 아버지 헨리 2세가 가끔 예쁜 여자를 만나러 갈 때, 타는 마차보다 더 화려한 것 같다.
“존 왕자와 합승할 거라네.”
“예, 성하.”
‘이제 와서 생각하지만, 우리 스승님 성공하셨네.’
브리튼 시절 우리 스승님은 나의 도움으로 죽다 살아난 이후 겸손했다. 그때 스승님의 주군은 엄연히 우리 아빠고, 교회 권력을 위해 결사 항쟁하다가 괜히 강경파 귀족을 건드려 죽을 뻔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스승님은. 이젠 절대 겸손하지 않았다.
아니, 겸손할 필요가 없었다. 한 세력의 지배자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의 갈등을 중재하는 자리긴 하지만, 남들의 눈치 하나 보지 않는 일인자의 삶이라! 역시 사람은 출세하고 보는 것이다.
“이런 귀한 마차에 탑승시켜줘서 감사합니다.”
“어찌 되었든 왕자는 나의 옛 제자가 아니오.”
“그렇죠.”
그렇게 마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귀한 교황님이 타실 마차라 그런지 승차감이 아주 대단했다.
그리고 우리의 마차를 호위하는 자들을 보았다.
―척, 척, 척, 척.
중세 시대 병사들은 대개 검과 창, 활을 주로 쓰지만 그렇다고 위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냉병기 특유의 멋진 맛이 있다.
“군기가 대단합니다.”
“이들은 모두 현지에서 고용한 용병이오. 나는 돈이 없어서 제네바 용병 같은 자들을 고용할 수 없었지.”
아부하는 말이 아니라. 곧바로 전장에서 싸워도 제대로 빵값 할 친구들이고. 교황도 그 사실을 잘 아는 것이다.
마차를 호위하는 교황 근위병들, 물론 교황 근위병 하면 생각되는 스위스 용병은 아니다. 사실 당연할 수밖에 없다. 스위스라는 용어 자체가 나중에 나올 단어고. 저자들은 대개 교황령에서 고용한 용병들이다.
교황의 근위대라고 하지만, 12세기의 교황의 권력과 21세기의 교황의 권력은 천지 차이다.
‘게다가 이자들은 특별한 점이 더 있어.’
하지만 내가 흡족한 건. 교황을 보호하는 근위대들의 프로페셔널한 자세다.
물론 스위스 용병들처럼 그들 역시,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들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다른 것이 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이다.
교황 성하를 전으로 두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하는 그런 눈빛 말이다.
‘이건 우리 스승님의 능력이구나.’
호위하는 용병뿐 아니라 휘하 추기경, 주교급 성직자조차 스승님에게 깍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이다.
게다가 저 너머 우리 스승을 향한 교황령 인민들의 눈빛은 단지 교황이라서가 아니라. 인자한 이웃집 할아버지를 바라보는 눈빛이다.
이것은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잉글랜드 출신이라는 약점을 완전히 극복했다는 것은 덤이고, 아예 민심을 장악했다는 거다.
어느 동네나 순혈주의가 크다. 특히, 이탈리아계가 아니면 아랫급으로 보는 꼰대 성직자들이 즐비한 중세 시대에는 아무리 교황이라도 이방인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지금 시선에는 그런 것을 느낄 수 없었다.
로마의 거리를 거닐고, 또 교황령의 거리를 걸었다. 가을 냄새가 진하게 났다.
그나저나 교황령의 거리는 다시 봐도 느낌 있다.
이미 몰락하고 몰락해 코딱지만 한 바티칸에 있는 21세기 교황과 비교하면, 12세기는 교황이 직접 땅을 늘리며 심시티를 할 수 있다.
비록 추기경들과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로 선출된 교황이라도. 스승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성스러운 영주로 살 수 있는 것이다.
근세 시대와 달리, 로마의 유산(고대 상하수도)을 갖춘 거리는 깨끗했고, 십자군 원정에서 얻은 이익으로 물산이 넘치는 거리마다. 행복한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우리 스승님이 나를 그저 마치나 태우러 나와준 것이 아니라는 걸.
“멀리 잉글랜드에서 온 왕자에게 교황령을 소개하겠소.”
이미 교황령의 수도 로마를 잘 보았다. 중세의 기품도 알았고, 하지만 가이드와 함께하는 여행은 다른 법.
나는 귀를 열 준비를 하고. 스승님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거리의 역사는….”
“이 저자는….”
“…이 성당은….”
역시 내 예상대로. 스승님은 나에게 교황령의 이모저모를 소개해주고 있었다. 물론 안보에 관련된 민감한 부분을 빼고, 말이다.
“그렇군요.”
스승님은 담담하게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스승님의 모습에 감탄했다.
이것은 그저 단순히 정보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다. 디테일한 정보를 나에게 소개해주며. 이미 자신도 이곳 교황령의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 것과 다름없다.
아무튼 우리는 든든한 용병들의 호위 아래. 우리는 어느 판잣집 앞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오시오. 이야기 나누기 좋은 자리니.”
“일단 듭시다.”
식탁에는 생선 요리와 포도주가 있었다.
저번 만찬과 달리 왕족과 교황의 식사라고 하기엔 너무 양이 부실한 것 같지만. 베드로의 전직이 어부라는 점을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밥상이 아닐 수 없었다.
식사는 예상보다 빨리 끝나고, 다시 독대가 시작되자 스승님의 말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교황의 진정한 힘은 중재가 아니야. 알아내는 것과, 숨기는 것이라네. 자네의 아내 문제도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알았고.”
“그렇습니까?”
나와 띠동갑인 아내 메리의 정체라.
뭐, 이제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것 같아서 별 감흥은 없다.
오히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늦게 정보를 알았다는 아버지와 어머니는 모두 메리의 정보를 알고 있겠지.
“하지만 존, 네가 명심해야 할 것은 네 아내다.”
“메리요”
메리가 왜? 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 이유를 깨달았다. 객관적으로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클레어 가문에 정체를 숨기고 있었을 메리의 인생사가 대충 유추되었기 때문이다.
“메리라는 이름을 쓰는 안나 콤니니가 가진 힘은, 정체를 숨겼기 때문에 더 막강한 법이지. 존, 너도 이번 내전에서 아내가 도와준 힘이 적지 않다는 걸 알고 있잖아.”
정의로운 내전에서 내가 승리한 이유는 당연히 어머니, 아버지의 도움도 있지만.
아내의 지원이 컸다.
신성로마제국에서 나를 도와주는 인물은 매형 사자공…그리고 줄츠바흐 백작인데. 이번에는 줄츠바흐의 도움으로 위장된 도움을 아주 제대로 받아 버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줄츠바흐 백작이 내 아내의 외할아버지고. 나의 외가 어른이기 때문이다. 마누일 1세의 첫 번째 아내 줄츠바흐의 베르타가 줄츠바흐 백작의 딸이니까!
“그대가 구애했던 파리 궁전에서 온실 속 화초로 살았던 프랑스의 공주고, 결국 결혼한 것은 은막에서 이름을 숨겼던 동로마의 황녀라. 내 제자의 운명도 가혹하군.”
“나이는 왜 안 생각하십니까?”
거기다 ‘띠’동갑 아내와 졸지에 사기 결혼 당해버린 세이프 존.
우리 어머니처럼 사기적인 동안에 속아 메리가 1살 동생인 1167년생인 줄 알았다!
“그래도 너는 메리를 사랑하지 않느냐.”
그렇게 싱긋 웃은 스승님은.
“사실… 마누일 1세는 여제를 만들려 그랬지.”
옛날이야기를 해주었다. 교황으로서 들을 수 있는 메리의 비사 같은 건가 보다.
여자는 절대 지도자가 될 수 없거나, 되더라도 제약이 있는 서방과 달리 동로마 제국에는 여제가 존재했다. 그러니 아들이 없다면 유능한 총독을 딸에게 결혼시켜 공동 황제 해버려도 가능성 있는 이야기고.
하지만 그다음 이야기는 씁쓸했다.
‘와… 마리아 콤니니 샹년이었네.’
동로마 황실도 우리 집안만큼이나 막장이었다. 예쁘고 총명했던 여동생 안나를 질투한 마리아가 꼬맹이 안나를 사고로 위장해 불에 태워 죽이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그때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한 안나, 그리고 어린 그녀를 안타깝게 생각한 팔레올로고스 가문과 클레어 가문이 짜고 가짜 시신을 준비해 그녀를 클레어 가문의 요절한 막내로 위장한 것이다.
당연히 내 아내는 정체를 숨기며 마리아 콤니니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렸고.
결국, 은밀하게 이복 남동생 알렉시오스 2세를 도와 마리아 콤니니 ‘반란’으로 담가 버려 복수를 제대로 했다는 이야기다.
이제야 막 그녀의 정체를 알아냈던 나는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참 우리 잉글랜드나 동로마나 먹고 살기 힘듭니다.”
“어느 곳이나 싸움은 있는 법이지. 내 세력이 아니라 동방의 위협을 듣지도 않는 추기경들이 많더구나, 그러나 최소한 나를 지지하는 추기경들에게 동방의 위협을 알렸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쓴웃음을 짓던 와중.
“국무원장 추기경. 이제 나오시게.”
“예, 성하.”
노인이 한 명 나왔다.
교황청 국무원장 폴 스콜라리 추기경.
늙은 추기경이 나를 바라보았다.
“존 왕자님. 반갑습니다.”
“저도 반갑습니다. 스콜라리 추기경.”
공손하지만, 명문가 특유의 자신감이 있는 얼굴이다.
물론 이 사람은 자기 혈통만 믿고 나대던 원래 역사의 존 왕과 달리, 명문가에 어울리는 참된 귀족 같은 사람이었다.
하긴 중세 시대에 추기경까지 올라간 실력자 중에 능력 없는 사람은 보기 힘들다. 문제는 그 능력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들이 많아서 그렇지.
하지만 이 유럽에서 추기경의 의미는 중요하다.
“저는 로타이레 주교를 추기경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나는 직설적인 이야기를 했다.
물론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이 대화는 유럽의 외교처럼 결말만 남은 이야기다.
* * *
―지중해―
교황령에서의 일은 끝났다.
완전히 (만족하냐 하면 그렇지 않았지만, 적어도 여기에서 할 일은 끝났다.
굳이 베네치아에 들러 단돌로와는 만나지 않았다.
애초에 그 영감과 나는 담백한 사이라, 편지로도 마음이 통한다.
정확히는 누구 한 사람이라도 배신을 한다면 각 사람에게 치명적인 무기를 준비했다는 것으로 보면 된다.
물론 나의 무기가 더 날카로울 테지만, 이제 아일랜드로 돌아갈 시간이다.
물론, 나에게 노예로 팔리기 싫어서 해적들이 날뛰지 않았다.
‘몽골….’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찔해지는 단어다.
물론 신성몽골제국의 억제기로 이슬람 친구들이 있긴 하지만. 그 친구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너무나 강하게 맞아 정신도 없을 거다.
“그대에게 동방의 역사를 배웠소. 그것이 참 큰 도움이 된 것 같군.”
“아닙니다. 저도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족이 콧대가 높아도 누구보다 오랑캐에 대한 공포가 높다. 오죽하면 만리장성을 명나라까지 유지 보수했던가.
“이제라도 고국에 가고 싶소?”
“….”
착잡한 심정일 것이다. 하지만 악불회의 침묵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전하, 저의 집은 잉글랜드입니다.”
나는 그런 악불회를 보며 말했다.
“이제 더는 지체할 수 없을 것 같소. 몽골족이 동방을 평정하면 다음은 무슬림, 그리고 우리니까.”
나의 말은 들은 악불회가 말했다.
“조만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다.
* * *
―아일랜드―
스승님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고된 여행길을 끝내고.
아일랜드로 돌아왔다.
나는 승리했지만, 리처드 형에게 영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물론, 내전에서 활약한 내가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땅을 받아도 되지만.
“어서 와요, 존.”
“반갑습니다.”
“아버지!”
“아빠!”
“왜 이제 와요.”
메리와 나 아이들, 제임스, 엘리자베스, 찰스.
“우리 새끼들!”
일단 아이들을 따스하게 안아준 후.
나는 아내를 꼭 안으며 말했다.
“메리, 그동안 고생이 많았소.”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당신이 띠동갑이든, 동로마 제국의 황녀였든, 나 몰래 여러 방식으로 나를 도와주고 있었든.
중요한 건, 이 여자가 내가 사랑하는 유일한 여인이라는 거다.
농익은 가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