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146)
콩가루집 막내왕자-146화(146/205)
146화 리처드 1세(3)
리처드 1세의 즉위 이후, 잉글랜드의 정계는 폭풍이 불었다.
헨리 2세와 함께 물러날 구시대의 귀족들은 자식에게 작위를 물려주거나, 은퇴하는 헨리 2세를 바라보며 스스로 명예로운 퇴장을 선택했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국왕 리처드 1세의 시대를 위한 세대교체의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구시대의 강자들이 권력을 내려놓았기에, 당연히 권력 공백이 생겼고.
새로운 요직을 차지하기 위해 리처드 형에게 아부하는 귀족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곧 있을 ‘연회’와 ‘사냥’이라는 두 가지 행사를 노렸다.
공개적인 행사에서 기회를 노려 리처드 1세에게 충성심을 보이고, 자리를 차지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리처드 1세의 행보는 다른 신임 국왕과 달랐다. 정통적으로 이루어지는 연회와 사냥을 하지 않고, 수도 이전을 결정하고 곧바로 이런 사열식을 준비한 것이다.
리처드 1세는 새로운 잉글랜드 국왕이 어떤 이인지 잉글랜드의 귀족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고, 그렇게 상비군이라는 전력을 선보였다.
상비군은 무시무시했다.
-두두두두.
잘 훈련된 중갑 기병이 달리고.
-척, 척, 척, 척.
창과 활 그리고 검을 들고 있는 보병들이 행진한다.
“…!”
내 눈에는 보였다. 잉글랜드의 모든 귀족의 눈빛이 달라졌다는걸.
리처드 형의 군대를 본 귀족들의 눈에는 경외심이 가득했다.
상비군은 인력뿐 아니라 유지비용이 엄청나게 들어가는 돈 먹는 하마지만, 언제든 운용할 수 있는 무서운 전력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구태여 화약을 등장시키지 않고, 기존의 군사력만으로 모든 귀족을 두렵게 만든 리처드 형은.
“우리 잉글랜드는 평화를 사랑한다.”
여기서 평화를 언급했다.
이렇게 무시무시한 전력을 보여주고 입으로는 평화를 의논하다니!
틈만 나면 싸워대는 현 시국의 유럽에서 이것을 문자 그대로 믿을 수 있을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에는 평화롭게 지내고 싶으니까. 알아서 기어!’라는 뜻이 분명하니까.
수십만 상비군을 보여주며 온 유럽에 평화를 선언한 자랑스러운 리처드 1세.
이제는 나의 ‘형’이라는 친밀한 느낌보다, 역사를 살아가는 사자왕 리처드 1세를 보는 느낌이 나고 있다.
솔직히 머리가 복잡했지만, 한 가지 생각을 확고히 했다. 내가 알던 리처드 형과 역사 속 리처드 1세와는 본질적으로 같은 사람이라고.
결국 리처드 1세라는 군주는 강력한 군사력과 개인적인 카리스마로 잉글랜드를 손아귀에 넣는 사람이다.
‘그러니 조심해야겠어. 내가 리처드 1세의 발목을 잡는 왕족이거나, 리처드 1세에게 견제받는 왕족이 되어서도 안 돼.’
원래 역사의 존 왕은 능력도 없으면서도 자기 형 리처드 1세의 뒤통수를 여러 번 친 적이 있었다. 다행히 리처드 1세가 막내를 위협으로 안 느껴서 그렇지, 그게 아니라면 진작 죽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이제 나는 노르망디 없는 노르망디의 대공(왕위계승자).
이미 내전을 끝내고 잉글랜드의 국왕 계승권이니, 아키텐이니 하며 받을 건 다 챙겼기에 딱히 중앙 관직에는 욕심내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내가 전면에 나설 때가 아니다. 그러면 가만히 있던 귀족들이 나를 더욱더 견제할 뿐이다.
친밀했던 조카 녀석, 샹파뉴 백작도 알게 모르게 나를 경계하고 있지 않은가?
‘세상 사람들은 위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내리려는 버릇이 있어. 그래서 적당히 나서야지. 잉글랜드가 더욱 부강해지면… 권력 상층부의 이해관계는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최대한 온건하게 나가야 해. 물론 내가 원하는 것이 생기면 언제든 움직여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가지고 있는 이익을 다른 귀족에게 나눠 줄 생각도 없다.
파벌 싸움도 나름 재미있겠지만, 지금은 그런 소모적인 일을 할 때가 아니다.
내가 가진 것을 최대한 이용하며, 적을 만들지 않고. 최대한 새로운 국왕의 심기를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 지금 내가 가져야 할 자세다.
* * *
곧바로 아키텐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상징적인 행사 때문에 노르망디를 떠날 수 없었다.
노르망디의 주도(주요 도시) 루앙에서 처음으로 궁정 자문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국왕파(리처드파) 샹파뉴 백작, 옥스포드 백작 같은 신, 구 귀족들이 주도로 하는 궁정 자문회는 사실상 리처드 1세를 향한 찬사가 대부분인 회의였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강력한 신임 군주에 대한 봉신들이 보이는 경건한 복종을 드러내는 자리가 이번 자문회였다.
“저 샹파뉴 백작이 폐하께 청합니다. 우리 젊은 귀족들은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이 큽니다.”
물론 샹파뉴 백작처럼 젊은 귀족들이 ‘의견’을 내긴 했지만, 새로운 국왕이 어느 정도 ‘선’을 유지하는지 확인하는 듯 겸손하게 선을 지키며.
“혹시… 폐하께서는….”
따위의 말을 반복하여 조심스러운 행동을 보였다.
그렇게 궁정 자문회가 끝나고 리처드 1세가 친히 나를 불렀다.
이제부터는 행동 방식을 군주가 신하를 대하는 자세로 해야 했다. 눈과 입과 몸짓에는 겸손함이 가득했다.
“폐하, 소신을 부르셨습니까?”
“그래.”
다시 보는 잉글랜드의 국왕 리처드 1세가 내뿜는 기백은 전보다 훨씬 더 중후해진 것 같다. 이전에도 강력한 노르망디 대공으로 군림했지만, 이제는 눈치 볼 것 없이 잉글랜드라는 국가를 경영하는 국왕이 되었으니 당연하다.
“짐은 이제 잉글랜드의 군주다.”
리처드 1세는 나에게 ‘군주’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내가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폐하께서는 유일하신 잉글랜드의 국왕 폐하십니다.”
기습 숭배할 자신이 충분한 나는 신하의 자세로서 공손히 말했고.
“루앙에서 내가 알아서 일을 처리할 것이니, 아무 걱정 없이 영지에 가거라. 내가 너의 방패가 되어 주겠다.”
리처드 형은 보답을 해줬다. 안전하게 보호해주겠다는 것이다.
* * *
-잉글랜드, 아키텐-
궁정 자문회와 국왕과의 독대 이후, 오히려 내가 나서지 않고 조용히 있으니 내 눈치를 보는 봉신들이 더 많았다.
그 후 나는 정식으로 노르망디 대공 존이 되었다.
‘물론 리처드 1세가 나를 언제 부를지 몰라.’
하지만 아직 정권의 수뇌부가 다 정해진 건 아니고. 나 역시 언제 노르망디에 소환될지 모른다.
이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나는 새로운 불청객이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불청객이 아니라 불쌍한 노인네라고 해야 할까?
“아키텐이라, 이 영지에는 내 젊음이 녹아 있지.”
무언가를 회상하듯 애틋한 얼굴의 아버지를 보니 참 웃음이 나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막내에게 의지하는 아버지라니.
“브리튼 대공이시면, 잉글랜드 본토에 가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존, 네가 런던에 있어서 가본 것 이외에 나의 터전은 항상 대륙이었어.”
“더 긴 말 안 하셔도 됩니다. 아버지의 노후는 제가 책임져 드리겠습니다.”
“오호, 역시 내 아들이야. 이 아비의 마음을 잘 어루만져주고.”
모든 권력을 리처드 1세에게 넘긴 아버지의 노후는 내가 제대로 챙겨 줄 것이다. 알게 모르게 나를 위해 챙겨준 것이 많으니까.
게다가 아버지만 있는 게 아니다.
“어머니 역시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이곳은 어머니의 고향 아닙니까?”
“고맙다 존.”
내 예상대로라면 리처드 1세의 곁에서 여러 가지로 호사를 누릴 것이라 생각한 어머니 역시, 아버지를 따라 아키텐에 왔다.
“아버지는 앞으로 뭘 하실 건가요?”
“빨리 증손주들 재롱이나 보고 싶구나.”
그래 우리 아버지 오래 사셔야지.
“어머님은 앞으로 뭘 하실 건가요?”
“이제 대왕비가 아닌 대공비가 되었으니, 소일거리나 하면서 보내야지.”
어머니 엘레오노르의 말에 나는 소일거리의 핵심을 깨달았다.
‘메리를 도와주시겠다는 것이군.’
소문을 들어 알고 있다. 나의 어머니 엘레오노르가 자신의 후계자로 메리를 점찍었다고.
아무튼.
“노르망디 대공께서 돌아오셨다.”
모르땅의 백작이며, 아일랜드의 공작이며, 아키텐의 대공이자 노르망디의 대공인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
-신성로마제국-
잉글랜드는 사자들의 전쟁 이후, 비교적 잡음 없이 정권 교체가 끝났다. 리처드 1세는 완전한 권력을 손에 얻었고.
선왕인 헨리 2세는 브리튼 대공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죽음을 준비하고 있을 때.
여러 나라로부터 투자받은 게르만 제국, 즉 신성로마제국은 오늘도 신나게 싸우는 중이었다.
선제후들은 대부분 새로운 작센-바이에른 두 선제후국의 주인 오토의 편이었으나. 신성로마제국에는 선제후들만 강한게 아니었다.
애초에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국가에 선제후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선제후들이 권력을 장악하며 자기에게 올 ‘이익’이 사라진다는 것을 짐작한 다른 파벌이 준동하기 시작했으니.
‘불행한 사건의 주모자가 독일왕으로 알려졌지만, 정통성을 가진 독일왕께서 어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이 사건은 사자공의 죽음을 이용하기 위한 외부 세력의 음모다’라는 명분으로 독일왕에게 합류한 것이다.
독일왕을 따르는 독일왕파와 신임 선제후 오토를 따르는 선제후파로 나뉘어 제대로 된 내전이 벌어졌다.
게르만 최강자들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으악.
-하느님, 살려주십시오.
수천, 수만의 병사들은 영문도 모르게 끌려와 전장에서 죽었지만, 귀족들에게는 그깟 소모되는 병력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아랫것들의 죽음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 흑사병이 돌아 인민들이 궤멸하지 않은 이상, 게르만 귀족들에게 징집병은 살아있는 재화일 뿐이니까.
[리처드 1세가 수십만 상비군을 드러내, 잉글랜드의 귀족들을 사실상 제압했다.]저 멀리서 수십만의 상비군을 보여줘 위용을 과시한 리처드 1세에 소식을 들어도 그다지 감흥은 없었다.
당장 전장 너머에 있는 적들을 무찌르는 일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참칭자에게 심판을!”
“황제 자리는 사자공의 것이었다!”
어차피 이들도 내전이 주는 악영향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당장, 잉글랜드만 해도 빠르게 끝난 내전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폐해가 있지 않은가?
하지만 용감하고 우직하며 또한 영악하기까지 한 게르만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선대 황제 프리드리히 1세가 죽은 이후, 걸출한 지도자를 잃은 신성로마제국은 어차피 흔들릴 수밖에 없고, 이 갈등을 최대한 활용해 이득을 보아야 한다는 것을.
싸움판이었다. 그냥 영지전도 아니고, 역사가 달라질 수 있는 거대한 도박판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무척이나 잘 이용하고 있는 신흥 귀족이 있었으니, 수십 년 전부터 세이프 존과 긴밀한 관계로 여러 가지로 짭짤한 이익을 보았던 합스부르크 백작이다.
‘이게 존 왕자가 말한 기회인가?’
그는 지방 귀족에 불과했던 자신을 존중하며, 큰 기회가 올 거라 말했던 존이 생각났다
이미 합스부르크 백작은 존 왕자의 조카인 작센 선제후의 파벌에 들어가기로 생각했다. 그것이 자기에게 더 큰 이득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토를 밀고, 노르망디 대공 존과 더 친분을 나눠야겠어.”
하지만 슬슬 내전 개입을 준비하던 합스부르크 백작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각하, 줄츠바흐 백작께서 내성으로 들어오길 청했습니다.”
내전에 참전하지 않은 거물의 방문에 합스부르크 백작은 누구보다 빠르게 방문객을 응접했다.
“귀하신 분께서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오셨습니까?”
“이 세계에 누추한 곳은 아무것도 없다오. 합스부르크 백작, 그대가 그저 그런 시골의 귀족이 아닌 것처럼.”
세월을 이기지 못해 주름진 얼굴이지만 아직도 준수한 외모를 보이는 미노년 줄츠바흐 백작.
그는 지방을 무시하는 아헨의 늙은 귀족과 달리 시골 영지의 백작인 합스부르크 백작을 봤음에도 존중을 보여주었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왔소. 물론 합스부르크 백작, 귀공에게도 중요한 일이 되겠지.”
선대 황제 프리드리히에게는 훗날 있을 게 분명한 사자공과 독일왕의 대립에서 ‘중립’을 택하겠다고 했지만. 죽음을 앞두면 앞둘수록 손녀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그래서 손녀사위인 세이프 존을 도와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