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162)
콩가루집 막내왕자-162화(162/205)
162화 새로운 햇살
-1203년, 아키텐 공국-
루앙의 ‘앙주인’들에게 여러 가지로 화제가 된 삼총사는 소설로서 먼저 아키텐에 들어왔다.
이미 유럽 전역에서 유명한 소설이기에 사람들은 빠르게 소설 삼총사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가격이 무척이나 저렴했고, 앙주어로 집필되었기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많은 삼총사의 독자들이 확보된 이후, 존의 영지 아키텐에서도 연극 삼총사가 상연되기 시작했고.
앙주라는 새로운 ‘체제’를 상징하는 명대사가 흘러나왔다.
(하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하나를 위해)
그리고 관객들과 소통하는 자유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그대들은 적법한 국왕 리처드 1세를 섬기는 앙주인입니까?”
“그렇소!”
“그렇다면 우리 앙주인들은 모두 합심하여, 국왕께 충성해야 합니다!”
“옳소!”
“잉글랜드 만세!”
달타냥 역할을 맡은 프랑수아의 신들린 연기를 직접 본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대다수 동의하는 사람들의 터전은 서프랑스.
저 삼총사의 주인공처럼 프랑스식 이름을 쓰는 앙주인들이다.
머리 좋은 아키텐의 귀족들은 이 삼총사에 담긴 정치적 의미를 단번에 깨달았다.
이제 서프랑스는 영원한 잉글랜드의 영지라는 선언이자, 서프랑스인 또한 앙주인으로서 잉글랜드에 충성하라는 뜻이었다.
가장 좋은 자리에서 프랑수아의 엄청난 연기력을 본 노인이 생각했다.
‘아무리 사생아라지만, 카페 왕가의 핏줄이… 선전을 위한 배우가 되나니. 필리프 이놈은 왜 사생아를 만들어서 이런 수난을 당하는고….’
잉글랜드에서 가장 많은 사생아를 만든 헨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무튼 브리튼 대공 헨리는 여러 의미로 박제 당하는 필리프 2세가 안타까웠다.
마음속으로 탄식했던 브리튼 대공은 손자를 향해 말했다.
“제임스, 재밌더냐?”
“예. 너무 재밌습니다, 할아버지.”
제임스는 자기에게 권력을 떠넘기고 루앙에 가버린 아버지가 이런 명작을 만들 것이라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물론 양심 없는 세이프 존은 어차피 미래에 알렉상드르 뒤마가 없을 것이니, 양심의 가책 따윈 느끼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잘 보거라, 저게 네 아비 존이 만든 새로운 시대의 희극이란다. 아마 제목은 삼총사보다 앙주가 어울리겠지. 그건 그렇고 어디 좀 같이 가줘야겠다.”
“예, 할아버지.”
그렇게 삼총사의 공연이 끝나고 브리튼 대공은 손자를 어딘가로 데려갔다.
어느 아름다운 호숫가였다.
“네 돌아가신 아버지는 이곳을 시작의 호수라고 하셨지.”
“시작의 호수요?”
“이곳은 이 늙은이에게도 가장 의미 깊은 자리다. 네 아비와 백부도 데리고 오지 않은 장소지만, 제국을 꿈꾸는 제임스 너라서 데려온 것이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파란빛이 감도는 호수에 자기를 데려온 것이, 바로 할아버지가 자신을 인정하기 때문이라니.
제임스는 감동했다.
“내 아버지…그릴 거니까 선대 앙주 백작께서는 이 호수를 보고 말씀하셨다. 우리 앙주 일가는 이 호수를 바라보며 바다를 꿈꾸라고 말이다. 너 역시 바다를 꿈꾸거라.”
“바다요?”
“제임스, 이제 수업은 끝이다.”
“네?”
“사실…이 할애비의 교육은 예전에 끝났어. 다만 손자의 재능을 보기 위해 질질 끌어온 거야.”
“정말 끝이라고요? 저는 아직 배울 것이 많은데.”
그 순간 헨리는 손자 제임스의 영특함이 느껴졌다.
“기특하구나, 배움에는 끝이 없지. 하지만 이 할아비에게서 배울 게 끝이라는 거다.”
“하하하, 드디어 이 순간이 왔군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헨리는 생각했다.
조금 전까지는 아쉬워하더니, 이제는 너스레를 떨고 있는 이 아이가 유일한 적장손이라는 걸.
물론 예루살렘 왕국에 아서가 있긴 하지만, 그 아이는 이미 자격을 잃은 방계가 된 지 오래다.
권력의 냉정함을 알고 있는 브리튼 대공 헨리는. 오히려 예루살렘 왕국과 연락을 끊는 것이 제프리를 도와주는 길이라 생각했고.
손자인 아서와도 편지 한 장 나누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복잡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그런 걱정은 없었다.
브리튼 대공 헨리.
늙은 잉글랜드의 옛 위정자는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다.
‘잉글랜드의 역사가 제임스까지 무사히 이어지겠어.’
적어도 리처드와 존, 그리고 제임스까지의 잉글랜드가 평온할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또 증손주를 품고 있는 손녀 아델라이드가 생각났다.
‘증손주 얼굴은 보고 죽어야지.’
손자와 손녀가 결혼하여 증손주를 가졌다.
그 아이의 성별을 보기 전까지는 죽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헨리였다.
그렇게 장손과 헤어진 헨리는.
“대공비를 부르게.”
아내를 불렀다.
* * *
1133년생인 브리튼 대공 헨리는 올해 71살로, 중세 유럽 기준에서는 장수하고 있었다.
원래 역사에서는 존 왕제에게 배신당해 1189년에 시농에서 비참하게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지만, 환생자 세이프 존 덕분에 지금은 증손자의 재롱이나 볼 생각으로 가득했다.
이제 금화는 있지만, 권력이 없다.
어쩌면 막내아들인 존을 믿고 모든 권력을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헨리 본인도 자기가 그런 결정을 할 줄 몰랐지만, 오랜 세월 동안 보아온 막내아들의 모습에 신뢰가 갔기에 모든 것을 놓을 수 있었다.
존 왕자는 적에게는 가차 없지만, 자기편인 사람에게는 신의를 지키는 자였다. 그러니 아키텐에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보내려는 계획한 것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내가 제때 포기한 것이 다행일까?’
헨리는 생각했다.
권력을 모두 놓고 칠십이 넘는 나이까지 살아보니, 이제는 모든 것이 편하게 느껴졌다. 부담감이 없으니 그럴 것이다.
자신은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는 늙은이였다.
사실 잉글랜드의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 많은 일을 해오는 동안 자신을 아프게 한 건 가족들이었다.
아내와 존을 제외한 아들들이 반란을 일으킨 대반란과 아들들끼리 왕세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던 사자들의 싸움까지.
물론 가족들에게 상처를 준 장본인이라고 할 헨리가 이런 생각하는 건 양심이 없는 거였지만, 헨리는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 없었다.
그런 남편의 감개무량한 표정이 마음에 안 드는 엘레오노르가 말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어 헨리.”
“이제는 너무 편하게 말하는군.”
“당신… 이제 국왕도 아니잖아.”
“그래, 이젠 국왕도 아니지.”
너무나 자연스러운 아내의 반말에 헨리는 주름진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자신은 이제 국왕이 아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하긴 엘리, 그대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니, 존중을 해줘야겠지.”
“뭐?”
헨리 2세라는 존호는 본인이 왕관을 벗어 아들 리처드 1세에게 넘긴 순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나이 많은 아내에게 반말을 들어도 상관없었다.
무엇보다 그럴듯한 명분이 있지 않은가?
유럽에서 흔치 않은 아내와 남편의 나이가 조금 심하게 차이가 나는 연상 연하 커플인 헨리와 엘레오노르.
무려 아내인 엘레오노르가 헨리보다 11살이나 나이가 많았다.
“이 노망난 인간이!”
-짜악.
물론 그런 소리를 대놓고 하는 바람에 등짝을 맞고 말았다. 하지만 따끔한 등짝에도 헨리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엘리 나의 사랑, 나의 원수, 나의 영광된 역사여. 이제 나는 늙었어, 아니 늙은 걸 떠나 언제 죽을지 모르지. 하지만 이렇게 당신과 공원을 산책하며 여생을 보내는 것도 행복한 일이요.”
“쳇, 마음에 없는 소리를. 당신은 그저 리처드와 존을 감당할 수 없어서 타협한 거잖아.”
“그렇게 볼 수도 있지….”
말끝을 흐리며 헨리는 아내 엘레오노르를 보았다.
평생 젊음을 간직할 줄 알았던 아내 역시, 세월의 흐름을 막을 수 없었다.
그 예전 그리스 신화 속 헬레나보다 아름다운 세계 제일의 미녀는 이제 흰머리와 주름살을 가진 늙은이가 되었다.
물론 보통의 80대와 비교하면 더 어려 보이긴 하지만. 아내 역시 하느님께서 만드신 섭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흙으로 돌아갈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이제는 미련을 버리고 싶었다.
“엘리, 우리가 살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마지막까지 싸우진 말자고.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애들 마음을 괴롭혔어?”
“하지만 난 아직 헨리, 당신을 용서한 건 아니야.”
“매일 만나주고 있는 걸 보면, 당신은 이미 나를 용서한 거 같은데?”
능청스러운 헨리의 대답에. 엘레오노르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건 우리의 증손주를 보고 결정하지. 뭐.”
“이제 증손주가 태어나면 내 남은 재산을 전부 리처드에게 물려줘야겠어.”
“헨리, 아직도 숨긴 게 있었어?”
“당신도 아직 메리에게 못 준 게 있잖아.”
참 치졸한 사람들이었다.
* * *
-1204년, 잉글랜드, 루앙-
“왕실의 희망이 생겼다. 그러니 짐은 창고를 열어 대연회를 베풀겠노라.”
나와 형님의 ‘손주’가 잉태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기념하는 연회가 열렸다.
귀족들을 위한 궁중 연회와 평민들을 위한 거리 연회.
물론 두 연회를 개최하는 데에는 엄청난 제물이 들어가지만, 왕실에 미래가 될 새 생명이 곧 태어날 거라는데 무엇이 아깝겠는가?
다시 시간이 흐르고.
나는 내 측근들과 나에게 협조적인 귀족 세력을 움직여 루앙 내의 지지 세력을 만들고 있었다.
오늘은 리처드 형과 나만 참석하는 소소한 사냥이 있었다.
총사대의 장전 작업이 끝난 순간.
“새를 풀어!”
“예!”
철로 된 상자에 있던 비둘기가 살기 위해 하늘을 날았고.
-탕.
단 한 방에 추락했다.
방아쇠의 숨결이 가실 때.
리처드 형이 흡족한 표정을 하며 나에게 말했다.
“이렇게 쉽게 사냥할 수 있다니. 참 좋은 무기야. 존, 이런 사냥을 할 수 있는 것도 다 네 덕분이구나.”
“과찬이십니다. 폐하.”
‘비둘기 사냥.’
먼 미래 프랑스 왕실에서 유행하는 유희였다. 물론 그때와 다르게 지금의 사냥용 총기는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말이다.
우리에 갇혀 있던 산비둘기를 몇 마리를 더 잡은 후, 사냥은 끝나고 말았다.
나는 총사대원에게 말했다.
“사냥이 끝났으니, 주변을 모두 정리하게.”
“예, 전하.”
사냥의 순간이 끝나고.
“오늘 저녁은 사냥하신 비둘기 요리와 포도주입니다.”
저녁 시간이 왔다.
아직 밝은 오후에 사냥터에서 막 잡은 고기로 만들어진 요리는 맛있었다.
물론 나는 고기보다 포도주가 더 좋아서 자주 홀짝였다.
그렇게 취기가 올라올 때.
리처드 형이 봉신들을 보며 말했다.
“노르망디 대공과 대화를 나눌 터니, 물러가라.”
“예, 폐하.”
주위를 물린 리처드 형이 나를 관찰하듯 바라보며 말했다.
“존,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예, 형님. 말씀하세요.”
우리의 손주가 생긴 이후, 리처드 형이 사석에서는 무조건 편하게 말하자고 해서 이제는 어렵게 말하지 않아도 됐다.
“요즘 네가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구나.”
무엇을 자제한다고 말하는 걸까? 바로 개혁이다. 근래에는 루앙에 내 사람들을 만들고 있다. 언제까지 기존 지지 세력으로 할 수 없으니까.
내 사람, 내 사람은 아니지만 나에게 협조적인 사람, 적어도 중립을 지켜줄 사람, 분명한 적이지만 선을 지킬 사람을 만들고 있다.
국방 개혁은 아직도 정력적으로 하고 있지만, 정치 개혁은 너무 빠르면 내가 꺾일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루앙에는 무서운 작자들이 많지.’
나와 혈연관계가 있는 샹파뉴 백작이 나를 지지해준다고 해도 젊은 옥스퍼드 공자(옥스퍼드 백작의 아들) 같은 신흥 귀족이 문제였다.
명문가의 귀족들은 자기감정 하나 숨기지 못하고 쓸려나간 애송이들과 질적으로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온화했고, 조용했다.
진짜 무서운 실력자들은 ‘결정’적일 때가 아니면 힘과 생각을 드러내지 않은 사람들이다. 나름대로 신념이 있는 사람들이기도 했고.
“지금은 아우인 네가 하는 걸 돕는 방식이지만, 개혁이란 참 골치 아픈 작업이야. 기존의 규칙을 타파하니, 정적이 많아지는 외로운 길 아니더냐.”
리처드 형은 나를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아마 리처드 형 딴에는 왕위계승자로서 권력을 가지고 있는 내가, 사람들의 견제를 받으며 개혁을 고수하는 것이 미련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형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험한 이집트에서도 살아남은 아우 아니겠습니까?”
“보이는 칼날을 가진 적군보다 보이지 않는 칼을 가진 정치인이 더 무섭다는 건, 나도 알고 있다.”
정치판은 음흉한 것투성이니, 조심하라는 리처드 형의 말에 나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형님, 제 아들은 제국을 꿈꾸고 있습니다. 아들의 원대한 꿈을 위해 아버지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너의 꿈은 아니고?”
에이 설마. 제국이란 이름은 환생자가 감당하기 어려운 꿈이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단지 프랑스를 무력화시키거나, 아예 굴복시켜 놓고 죽을 생각이긴 하지만.
“폐하!”
다급하게 들어온 귀족 하나가.
“푸아티에 백작 부인께서 남자 왕손을 낳으셨습니다.”
나와 리처드 형에게 손자가 생겼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