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45)
콩가루집 막내왕자-45화(45/205)
[45화, 유 노 낫 띵 존]-아일랜드 영지-
내 앞에.
베네치아의 상인이 있다.
그냥 상인도 아니고,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온 대상인이다.
내가 엔리코 단돌로를 처음으로 경험한 것은, 21세기의 역사 전략게임 문명 5를 통해서다.
게임 속 엔리코 단돌로는.
중세 시대 상인이 얼마나 영악한지를 제대로 보여주는, 아주 얄미운 캐릭터였다.
‘내가 동로마 제국의 역사는 띄엄띄엄 알고 있었지만, 4차 십자군을 일으키고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불태워버린 철혈상인 단돌로는 아주 잘 알지.’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래의 지식일 뿐이고.
지금은 내 ‘판로’를 개척해 줄 사람이 바로 저 단돌로다.
사실 원래의 내 계획에 단돌로는 없었다.
아일랜드 안에서 자급자족만 할 거면,
‘피터’의 외가를 기반으로 한 세이프 길드만 있어도 되었고.
구태여, 미래에 불놀이를 즐기게 될 영악한 사람과 거래할 생각은 없던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죽었다가 중세에서 살아난 경험을 한 나는, 아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중세는 내가 겪었던 21세기의 종말처럼 안전하지 못한 곳이고,
약소 세력의 주인인 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 자신의 안전을 스스로 지켜야 했다.
그래, 내가 세이프 존이라고 세상이 다 나를 평화롭게 봐주지는 않는다.
필리프 2세를 포함해 나를 싫어하는 작자들이 많았고.
방심하면 언제든 나를 담가 버릴 수 있는 무서운 상인이 많은 곳이 중세 유럽이지!
나는 힘을 좀 더 키워야 했기에.
내 맘에 들건 들지 않건, 여러 사람과 힘을 모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그를 이곳에 부른 것이다.
물론 내 사랑하는 아내 메리가, 정성스러운 요리도 준비했다.
“이건, 노르망디의 전통 요리군요.”
역시 바이킹의 후예 클레어 가문 출신답게,
내 아내가 가장 자신 있는 요리는 소화가 잘되는 고기 요리다.
“그리고 이건 동로마 제국의 요리군요.”
단돌로가 놀란 얼굴로 내 아내의 다음 요리를 바라보았다.
“아, 제 남편이 동로마 제국의 요리를 좋아해서 그 요리법을 배웠답니다.”
역시 내조의 여왕 메리!
감동 그 자체다.
그렇게 두 가지 특별한 요리를 선보인 아내는 곧바로 빠져 주었다.
“저는 이만 밖으로 나갈게요. 두 분, 이야기들 나누세요.”
“고맙소.”
그렇게 아내는 손맛이 담긴 요리를 식탁에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역시 중요한 자리에는 포도주가 빠질 수 없는 법.
“이건 우리 아일랜드에서 직접 소작한 포도입니다.”
신토불이를 위해 아일랜드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잔에 따라주었다.
그렇게 술과 요리를 기분이 좋아질 무렵.
“전하께서 저를 찾으신 이유는 확실한 거래처를 찾기 위해서가 아닙니까? 하지만 제노바가 아닌 저희를 찾는 건 의문이군요.”
제노바는 베네치아의 정통적인 경쟁국인 같은 상인 놈들의 나라다.
나는 제노바 놈들에게서 가성비 좋은 용병과 적잖이 구매한 전적이 있는데.
왜 그놈들을 놔두고 자기와 거래하냐는 것이다.
“엔리코 단돌로, 그대라서 그렇소.”
나는 여유롭게 말했다.
“오호, 왜 그렇습니까?”
“아일랜드, 모르땅을 시작으로 리처드 형님의 노르망디를 지나서. 신성로마제국과 베네치아를 지나 아크레로 끝나는 안전한 무역로를 만드는 것은 이 지중해에서 그대만이 가능하기 때문이오.”
“안전한 무역로라 하셨습니까?”
“그렇소. 내 계획은….”
그 말과 함께 나의 영업은 시작됐고.
오랜 시간이 지나 엔리코 단돌로는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전하, 오늘은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나 역시, 가장 세레브한 베네치아인을 만나서 기뻤습니다.”
며칠 후, 엔리코 단돌로가 떠나가는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지금까지 내가 겪은 전투들은 운이 좋았을 뿐이야. 그러니 나대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능력을 보여야 한다.’
원래 역사에서 리처드 1세와 존 왕의 반목은, 당시 잉글랜드의 대리인이나 존이 제 주제도 모르고 나선 탓도 있지만.
원래 역사에서 리처드는 3차 십자군에 나설 때 완벽한 본국 잉글랜드의 보급을 원했고, 존은 형이 보급을 이유로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한 것이다.
“전하, 예루살렘 왕국에 계신 노르망디 공작께서 보내신 서신입니다.”
“어서 건네주게.”
그리고 편지 안에는.
예루살렘 왕국에서 할 ‘진지한’ 이야기의 서두가 적혀져 있었다.
편지로는 확실히 결론을 낼 수 없으니, 빨리 얼굴이나 보러 오라는 뜻이다.
**
-베네치아 공화국-
저번에 십자군의 심기 특히, 프리드리히 1세를 화나게 해 아픔을 겪긴 했지만.
이제는 다시 세레브 해진 상인 공화국 베네치아!
많은 이들은 단돌로가 가지고 온 소감이 궁금했다.
요즘 유럽의 디모데(사도 바울이 극찬한 믿음의 아들)가 된 존에 대해, 여러 가지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존.
유럽 최고의 예술가였던 잉글랜드의 막내 왕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예술적인 모습을 보인 그를 베네치아 사람들도 잘 알았다.
특히, 존이 자기 할머니를 추모하며 중세 프랑스어로 만든.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요? 세월인가요? 아니면 계승권이 탐나는 지독한 사람들인가요~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마차는 떠나가네.
아니요, 난 후회하지 않아요.
그리고 그 노래를 통해 아녜스 공주에게 200번 넘게 고백을 한 순정남.
그것이 베네치아 공화국 사람들이 가진 존 왕자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하지만 점점 존 왕자의 입지는 달라졌다.
예술에 심취한 막내 왕자로 보였던 존은.
어느새 모르땅 아일랜드 영지를 통치하며 슬슬 두각을 나타내더니.
이번 십자군 전쟁에서 젊은 영웅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레판토 해전에서 살라딘의 동생을 물 먹이며 콥트교 형제들을 구해냈으며.
아크레 공방전에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대신 화살을 맞은 ‘영웅’적인 행보를 보이며.
또 생사의 고비에서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났다. 쓰러진 지 사흘 만에 말이다.
이 정도면 십자군의 새로운 아이콘이 될 만했다.
고국에 돌아온 엔리코는 아일랜드에서 있는 일을 ‘정확히’ 오리오 도제에게 보고하고.
다른 베네치아 관리들에게 대충 ‘일’을 알려 준 후, 자기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 존 왕자는 어떠셨습니까?”
그렇게 묻는 아들 라니에리의 말에.
엔리코 단돌로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빠르게 답했다.
“그 역시 한 마리의 사자였어.”
“그건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이미 존 왕자가 진짜배기라는 사실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실체는 자세히 모르고, 모두가 짐작만 하고 있어.”
‘나 역시 존 왕자를 짐작으로만 알고 있었지.’
사람은 직접 대면해야 그 실체가 파악되는 법이다.
이제야 말하지만, 단돌로는 솔직히 존 왕자를 경시했다.
존을 완전히 무시한 건 아니고, 여러 가지 행운을 얻은 실력자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협상을 위해 만난 아일랜드의 주인이자, 헨리 2세가 제일 사랑하는 아들 존은.
무언가 달랐다.
중세의 왕자들이 가질 특유의 성향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베네치아 공화국이 지중해 무역의 핵심 국가이며.
단돌로 자신 역시, 오리오 도제가 견제할 만큼 베네치아의 실력자긴 했지만.
자신을 대하는 존 왕자의 태도는 예상과 달랐다.
고상한 왕족이 아닌, 실리적인 외교관 같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단돌로는 현실을 잘 파악했다.
왕위계승자를 진작에 포기할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았고.
존 왕자의 영지인 아일랜드-모르땅에서 시작되어 리처드의 노르망디와 프리드리히 1세의 신성로마제국을 지나, 아크레로 끝나는 안전한 ‘무역로’라.
물론 그 무역로라는 건 존의 장담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거의 없었지만.
존이 한 말에 담긴 뜻을 되새겨 보니.
아일랜드 노르망디 함대와 베네치아 함대의 연합을 의미하는 거 아니겠는가?
존 왕자가 그 함대 연합을 이렇게 불렀다.
‘신성동맹 함대’
**
나는 다시 가족과 헤어져 바닷길에 올랐다.
당연히 심심했다.
“전하, 이게 뭡니까?”
“이건 내가 만든 카드놀이요.”
단순하면서 은근히 재밌는 카드 게임 블랙잭.
카드를 골라 21에 가깝게 만들면 이기는 카드 게임도 재밌었고.
내가 베네치아 화가들에게 의뢰해 만든, 주사위를 굴려 성지와 교구를 사는 유사 보드게임 모두의 성지도 재밌었다.
하지만 우리의 길은 망망대해 바다의 길.
아무리 재밌게 놀아도 시간이 안 갔다.
그래서 나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서를 읽었지만.
여전히 시간이 안 가는 것 같고 지루했다.
아. 귀여운 해적들이… 왜 이리 잠잠하지?
잡아서 노 젓는 노예로 만들어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한데.
왜 보이지 않은 걸까?
아무튼 아크레 항구를 향하며 중간마다 기독교인의 항구에 도착한 우리는 본진의 소식을 들었다.
한편, 십자군은 원래 역사에서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 실수가 무엇이었던가?
슬슬 이 정도면 된 거 같으니, 영지를 두고 하는 내분이다.
다행히 균형을 잡는 패권국 동로마 제국, 대 잉글랜드, 신성로마제국이 있어 내분은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튼 아크레 항구에 하선한 우리는, 성지 예루살렘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둥병으로 인해 흉해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딱딱한 철 가면을 쓰고 있는 보두앵 4세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서 오게 존.”
그리고.
“녀석, 오랜만이구나.”
둘째 형. 리처드가 나를 맞이하러 나왔고.
“형님 보고 싶었습니다.”
저 멀리.
신성로마제국을 상징하는 쌍두 독수리의 깃발이 보였다. 나를 환영하기 위해.
늙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오는 듯했다.
“나의 요한(존) 경. 엄청난 보급을 가져왔다고? 좋아, 그럼 오늘 신나게 술을 마셔야겠지?”
이 노인네. 입이 근질근질한 모습을 보니, 또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
-아키텐 영지 어딘가-
특히 대왕비 엘레오노르로 상징되는 여성 정치인들의 활약이 많은 12세기 말인 지금.
후대의 살롱(안방) 정치를 하는 근세 유럽의 귀부인들처럼.
권력이 비상식적으로 강한 중세의 귀부인들은 때론 물밑 정치를 했다.
아일랜드에서는 메리가 그러했고.
이곳 아키텐 영지에서는.
마르그리트 왕비가 그렇다.
시어머니 엘레오노르 대왕비에 비하면 존재감이 옅지만.
그는 루이 7세의 세 번째 딸이자, 현 프랑스 국왕의 누이.
게다가 자기 여동생 아녜스보다 약간은 부족하지만, 아리따운 미녀 공주를 평가받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미모가 뭐가 소용일까~’
물론 마르그리트 본인은, 외모 따위가 중요하지 않았다.
그 잘난 시어머니 엘레오노르 대왕비 역시 유럽 최고의 미녀였다.
하지만 유럽 최고의 미녀가, 남편한테 어떤 꼴을 당했는지 세상 사람들은 다 안다.
더구나 헨리 2세는 그런 미모를 가진 아내를 두고, 온 유럽에 씨앗을 퍼트린 것이다.
오죽하면 사생아들로 군단을 만들어도 될 거 같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가?
그런 가문임을 이미 알고 있던 그녀이기에.
남편인 젊은 왕 헨리가 신혼이 지나기도 전에 ‘정부’를 두었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애초에 정략적인 만남이고, 정략적인 결혼이다.
마르그리트는 처음부터 남편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인 젊은 왕 헨리가 부왕과 같이 이곳저곳에서 사생아를 만들어도 실망하지 않았다.
애초에 믿지 않았으니까.
“알잖아요, 앙주 가문의 남자들은 3번째 다리가 유별나다는걸.”
“그 말씀이 맞습니다.”
프랑스 공주 시절부터 자신을 따르던 시녀장의 말에.
마르그리트 공주는 창가를 보며 말했다.
“아무튼 존이 잘해주고 있어요. 내 ‘계획’ 대로…”
그녀가 괜히 결혼식 전에 막내 도련님에게 특별한 ‘선물’을 준 게 아니다.
마르그리트 공주는 이미 ‘존’의 특별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밑에서 막내 왕자 존에게 힘을 더 실어주라는 필리프 2세의 편지.
막냇동생은 더 안전해야 한다는 제프리의 편지.
남편 젊은 왕 헨리에게서는 절대 모르땅과 아일랜드를 건드리지 말라는 편지.
모두 다 존에게 호의적인 편지처럼 보이지만.
개소리다.
저놈들은 모두 존을 증오하는 자들이니까.
그녀가 제일 관심을 둔 건 존의 아내인 메리의 편지와.
다른 두 장의 편지였다.
아무튼 수북하게 쌓인 편지를 읽어 본 마르그리트 왕비는
다시금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양쪽 다 진짜 콩가루 집안이구나.”
친정이나 시댁이나 진짜 어메이징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마그르리트 왕비의 성에. 아름다운 두 명의 귀부인이 왔고.
“어서 오세요.”
-그래.
-반갑구나.
그녀들은 대강 마르그리트의 인사를 받아주고.
뒷담화하기 시작했다.
“헨리, 이 건방진 자식.”
“존은 우리가 지켜야 해. 헨리가 날로 왕관을 쓰는 건 진심으로 막아야 한다고.”
“아, 그런데… 필리프랑 존이랑 싸우면 누구의 손을 들어주지?”
“나는 존.”
“나는 필리프.”
“….”
여인들은 마르그리트 왕비를 바라보며 물었다.
“마르그리트 너는?”
“존이 더 좋지?”
“글쎄요?”
“너는 당연히 필리프를 도와줘야지!”
“아! 불쌍한 존은 어쩌고!”
지금 이 여인들은 도박하고 있었다.
필리프와 존 둘 중에 누가 먼저 상대방을 엿 먹일지 말이다.
You Know Nothing John.
존은 아무것도 몰랐다.
예루살렘의 이방인(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