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77)
콩가루집 막내왕자-77화(77/205)
77화. 앙주 가문의 재결합
―1187년 잉글랜드, 웨스트민스터 궁전―
십자군 원정으로 막대한 이득을 보아, 이제 적어도 ‘제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서방 국가 정도는 아니더라도 국력이 제법 상승한 잉글랜드.
그 잉글랜드의 궁전인 고귀한 웨스트민스터 궁전에서 두 사람이 체스를 두고 있었다.
한 수, 한 수. 마치 전장을 나서는 것처럼 치열했다.
체스가 하나의 전쟁과 정쟁(정치적 투쟁)을 모두 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두 부자는 진짜 싸우는 것처럼 한 수 한 수를 허투루 두지 않았다.
그렇게 침묵하는 대국 중, 처음으로 입을 연 건 아버지 쪽이었다.
“만약 이번에 네놈이 존에게 해코지하면 모든 것을 동원해 너를 죽이려 했다.”
나이트(기사)의 장기말을 움직인 부왕의 말에, 비숍을 움직인 리처드가 답했다.
“어차피 형님이 있으니 쉽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리고 결과적으로 존과 내가 연합했으니, 그럴 리는 없었을 겁니다. 체크.”
“힘의 역학과 야망을 생각하면 헨리, 제프리보다 착한 존이 좋았겠지. 체크메이트.”
어느 순간, 리처드의 킹(왕)이 포위되어 있었다.
‘역시 아직도 정정하시군.’
리처드는 잠시 멈칫거리며 부왕을 바라보았다. 늙어버린 부왕 헨리 2세의 눈가는 주름졌지만, 눈빛은 예전과 같이 날카로웠다.
아무리 수를 생각해봐도 궁지에 몰린 킹을 살려낼 방법이 없다. 여러 실전을 겪은 부왕의 체스 실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이것도 배워야겠지.’
리처드는 감탄만 하지 않고, 다시 아버지의 ‘한 수’를 학습했다
“지금은 졌군요. 지금은 말입니다.”
이번 체스 대국의 포진은 ‘대반란’.
리처드는 대반란에서 부왕을 포위했던 ‘그 시절’을 재현했고. 마찬가지로 헨리 2세는 대반란에서 왕자들에게 포위당했던 ‘그 비극’을 재현한 상태로 대국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다시 재현된 대반란에서도 리처드 왕자는 패배했다.
“대반란에서 우리가 실패한 원인이 있었군요. 좀 더 정치적으로 해야 했는데.”
“리처드, 애초에 7귀족이 나의 수중에 있는 이상. 너희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7귀족들도 늙고 그 작위를 다음 세대가 이어받겠지요. 그렇다면 부왕께서는, 예전과 같은 기적을 바라실 수 없습니다.”
“고얀 것.”
아버지의 정치적 기반을 이루는 7귀족들의 일원들이 모두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당연히 헨리 2세는 아들 리처드 놈의 노골적인 말에 성질을 부렸지만, 리처드 왕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제 할 말을 이어갔다.
“게다가 저는 서리 공자 윌리엄, 아니 이제는 기욤 1세가 된 젊은 귀족을 내 사람으로 두었습니다.”
“그래, 자기 아비의 작위를 물려받은 지 얼마 안 된 샹파뉴 백작 같은 많은 인재가 너의 곁으로 가곤 했지. 하지만 그건 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 아니더냐.”
“헨리 형님과 제프리… 그들은 내전에서 쓸 인재를 생각했지만, 저는 내전이 끝난 후도 생각했으니. 그것이 다릅니다.”
“그 내전이 아비와 너의 싸움이냐, 네 형제의 싸움이냐.”
“그건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 운명에 따라 이루어지겠지요.”
“빌어먹을 놈.”
“저희를 원망하시는 마음도 잘 압니다. 하지만 이게 다 우리 형제들이 누구보다 부왕을 닮았기 때문이라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부왕.”
“…….”
반란으로 일어나, 반란을 내전으로 바꾼 잉글랜드 최고의 연금술사 헨리 2세를 비꼰 아들놈의 뜨거운 효심에. 헨리 2세는 이 녀석과 존 왕자가 정말 괜찮을지 걱정이 되었다.
멍한 표정으로 말없이 리처드를 바라본 헨리 2세가 다시 물었다.
“그럼 존은 어떤 인재를 모으고 있느냐?”
존.
왕관을 직접적으로 노리지 않고, 대귀족으로서 알아서 처신을 잘하는 헨리 2세가 가장 사랑하는 왕자를 거론하자, 리처드가 말했다.
“그 아이는 좀 더 나중에 이루어질 미래를 생각하며 인재를 모았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 잉글랜드가 서유럽의 패권을 완전히 쥐고, 도전자의 입장에서 완전히 벗어날 때를 대비하고 있더군요.”
“하하하. 역시 내 아들 존이다!”
리처드 왕자는 존의 칭찬에 그제야 감정을 보이는 헨리 2세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리처드, 나바라를 포기하고 사랑을 택한… 네가 조금은 자랑스럽구나.”
“부왕께서는 나바라를 포기하고 시빌라를 택한 척하는 제 덕분에 많은 걸 얻었지 않았습니까?”
참으로 훈훈한 아버지와 아들이다.
* * *
―아일랜드―
여기는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유럽에서 유일하게 세이프한 섬 아일랜드.
나는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야곱은 정체를 모를 천사와 씨름하게 되었단다.”
나무를 깎아 유사 피규어를 만든 다음에, 신나고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고 있다.
‘재미있는 성경 이야기’를 말이다.
“아버지, 그래서요 씨름은 어떻게 되었어요?”
“아부.”
“부부!”
“사람이 천군 천사를 이기는 건 힘들지. 당연히 야곱은 힘으로 천사를 이기지 못했고…….”
나의 이야기는 멈출 수밖에 없었다. 싱긋거리는 메리가 들어와.
“이제 아이들이 자야 해요. 존.”
시간이 다 된 것을 말했기 때문이다.
“그럼, 새 나라 새 어린이는 일찍 일찍 자야지.”
“더요. 더!”
“제임스, 다음 시간을 기대하거라.”
아쉽지만, 어린 시절 제시간에 자야, 키도 무럭무럭 자라는 법이다.
그렇게 아이들을 재우고 우리 부부는 등불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니. 왜 리처드 형님이 아일랜드에서 결혼 미사를 한다는 거요?”
“존, 당신도 잘 아시잖아요. 리처드 왕자님은 아일랜드 영지가 본인의 영지 노르망디 영지처럼 중요한 곳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건 알고 있지만, 굳이 한 번 있을 결혼을 왕가의 막내인 내 영지에서 하는 게 조금 그래서 말이지.”
내가 아무리 노력해서 사람 사는 동네로 만들었다고 한들, 아일랜드 그 자체는 서방에서 시골에 속한 낙후된 영지다.
우리 형이, 다른 곳도 아니고. 아일랜드에서 결혼 미사를 하다니. 새로운 형수님한테 미안해서 그렇지.
“그나저나, 시빌라 그분을 형님으로 모시게 되겠네요. 지혜롭지만, 나름 자비로우신 분이시라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내 형수님이 될 분을 잘 알고 있소?”
그렇게 내가 묻자, 아내는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요 아주 잘 알고 있죠. 제가 눈과 귀가 얼마나 많다고요!”
잘났다. 우리 마누라!
그리고 며칠 후.
결혼 미사 준비에 한창인 우리 영지에 반가운 손님이 왔다. 하인리형 내외다.
“하인리히 매형, 잘 다녀오셨습니까?”
“암, 잘 다녀오고말고. 존, 자네 덕분에 황제 늙은이가 정신을 아주 조금 찾아버렸어!”
매형이 말하는 황제 늙은이는 당연하게도 프리드리히 영감이다.
강물에 빠져 죽는 원래 역사와 달리, 세이프한 존을 만나, 안전하게 원정에서 살아 돌아온 프리드리히 1세는.
죽음을 이겨내고, 이집트에서 엄청난 이득을 보았다.
하지만.
“독일왕 녀석 때문에 고민이 아주 많아 보이시더군.”
아버지인 자기는 이미 거대한 역사를 만들었는데, 아들놈이 아주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매형이 가장 위험하시지 않습니까?”
내 말은 다시 프리드리히 영감에게 숙청당하지 않게 처신 잘하라는 뜻이다.
“이보게 처남, 나는 선제후였고, 조만간 그 자리를 되찾을 걸세. 어차피 이제 황제 늙은이가 나를 겁박할수록 다른 선제후들이 독일왕 녀석을 어찌 보겠는가?”
합스부르크 왕가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고정 픽 하던 근세 유럽도 아니고. 지금 신성로마제국의 자리는 한 가문으로 정해진 것이 아닌. 꼬우면 ‘투표’로 가늠할 수 있는 시대.
비록 프리드리히 황제가 신성로마제국의 자리를 아들에게 ‘계승’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긴 해도, 그걸 구실로 매형을 건드리면 좋은 꼴을 못 본다는 뜻이다.
“참 그쪽 동네도 어지럽군요.”
뭐, 중세 평균인가. 사실 내가 너무 평화로운 영주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들었다.
그때, 포도주를 머금던 하인리히 매형이 말했다.
“존. 어느 곳이나 얻을 수 있는 건 한정적이고, 그것을 더 뺏기 위해 정치를 하는 법이라네. 그나저나 제법 재밌지 않은가. 마침 독일왕의 존호와 나의 존호가 같은 하인리히이지 않은가?”
내 주변에는 ‘야망’에 불타는 사람만 있는 것 같다. 데인저러스하게 말이다.
* * *
―성 패트릭 성당―
우리 앙주―플랜태저넷 왕가에서 유일하게 아내가 없던 사람이. 드디어 결혼하는 날이 왔다.
신부는 예루살렘 왕국의 공주였던 시빌라.
1159년생으로. 리처드 형보다 2살 어린 미녀였고, 그녀는 우리 어머니 엘레오노르만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여인이다.
첫 번째 남편 굴리엘모 델 몬페라토는 병으로 죽고, 굴리엘모에게서 얻은 아들 역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고, 두 번째 남편 기 드 뤼지냥은 얼마 전 여러 영주들의 동의로 명분을 얻은 새로운 예루살렘 왕국의 국왕 기욤 1세의 명으로 처형되었다.
이미 기 드 뤼지냥과 손절한 시빌라는 두 번째 남편이 죽어도 상관없는 일이지만. 결과적으로 가까운 3남자를 잃게 된 불행한 여인 시빌라.
다시 한번 리처드 왕자와의 결혼으로 사람들에게 이름이 오르내렸다.
누군가는 그녀가 남자들을 잡아먹는 요녀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불행을 겪었지만 꿋꿋하게 살아가는 참된 성모의 현신이라고 한다.
미녀들만 노린다는 앙주―플랜태저넷 가문의 전통처럼. 시빌라 역시 메리보다는 아니지만, 정말 엄청난 미녀였다.
아무튼 이번 결혼 미사는 대단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왔어요.”
“그럴 수밖에 없지 않소. 리처드 형님은 여러 가지로 대단하신 분이니.”
‘별사람들이 다 왔군. 필리프같이.’
물론 어느 결혼식장이 그렇듯, 우리에게 우호적인 사람들만 온 것이 아니다. 껄끄러운 사람들도 결혼 미사를 구실로, 음흉한 목적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아무튼 저번 나의 결혼 미사보다 사람들이 많이 왔다. 그 이유는 내가 메리와 결혼할 때와 사정이 많이 달라져 있어서다.
첫 번째는 잉글랜드가 많이 강해졌다.
예전에는 그래도 다른 나라의 눈치를 보면서, 프랑스 따위에게 겁을 먹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 사실상 브리튼섬과 아일랜드를 병합하고 서프랑스 영지까지 건재한 우리 잉글랜드는, 서방(신성로마제국)과 동방(동로마 제국)의 로마에도.
‘후후, 우리는 힘 좀 쓰는 나라다!’라고 할 정도까지는 성장한 나라다.
그리고 두 번째는 신랑 리처드, 신부 시빌라의 결합은.
잉글랜드 앙주 가문과 예루살렘 앙주 가문의 통합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각 잉글랜드와 예루살렘의 왕가를 세웠지만, 결국 예루살렘―앙주 왕가와 잉글랜드― 앙주 왕가는 한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결혼으로 앙주 가문의 가깝고도 ‘멀게’느껴 졌던 가문이 다시 재결합했다.
게다가 리처드는 십자군 전쟁에서 보두앵 4세와 힘을 합쳐 그 시리아와 이집트의 주인 살라딘과 그 동생 사파딘의 군사적 연계를 깨버리고, 시리아 지역을 정복한 위대한 기사이자 최근 주가가 오른 대영주 아닌가?
퇴위하고 노르망디에서 요양을 시작한 전임 예루살렘 왕국의 군주 보두앵 드 앙주는 당연히 자기 누나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이미 시리아 전역에 전우가 될 때부터 리처드와 적잖이 친한 모양이고.
그 뒤로 필리프 2세를 포함한 또 다른 ‘매형들’과 ‘누나’들이 왔고, 무서운 형들과 사촌 형들, 사생아 형제들이 도착했다.
나와 메리는 예의 있게 인척들에게 인사를 해주었다. 뭐 막내 왕자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보니 앙주 가문은 든든한 인척을 가진 집안인 것 같다. 물론 콩가루 집안인 만큼 언제 칼끝을 돌릴지 모르지만 밀이다.
이 성 패트릭의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결혼 미사의 집도 사제는, 나의 측근 로타이레 주교다.
이런 신성한 결혼 미사의 집도 사제가 젊은 성직자라 그래도 항의하는 귀족들은 없었다.
로타이레 주교가 아일랜드 교구의 실세라는 점을 떠나, 그는 교황청 세력 내에서 엄청난 영향력이 있는 ‘선배’들을 두고 본인 역시 아일랜드 촌구석에서 교황령까지 무수한 선이 있는 정치적인 성직자였기 때문이다.
아무튼 시간이 지나, 혼인 미사가 시작되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의 영혼과 함께.
“전능하신 하느님! 제 마음과 입술을 깨끗하게 하소서. 선지자 이사야의 입술을 숯불로 깨끗하게 만드신 것과 같이 주님의 너그러우신 자비로 저를 깨끗하게 하시어, 제가 주님의 거룩한 복음을 합당하게 전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로타이레 주교의 입으로 혼인 미사의 국밥 같은 ‘이사야’ 구절이 나왔다.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아멘.
‘지루하네.’
저번 결혼 미사 때는 주인공이 나라서, 길고 긴 순서가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아무리 친형이라도 ‘남’의 결혼 미사라 그런지 지루해졌다.
물론 잉글랜드의 긍지 높은 왕자로서 표정 관리를 해야 했기에, 나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형님의 길고 길 혼인 미사에 집중했다.
그래도. 리처드 형이 시빌라 형수님과 반지를 교환하는 장면에서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
‘우리 형이 장가를 가다니.’
전생과 합치면 꽤 많은 나이라, 어떤 의미로 아들이나 조카를 장가보내는 느낌이다.
그렇게 착한 마음을 가지니, 시간이 빨리 갔다.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주님의 말씀을 전합시다.”
―하느님의 복음을 사마리아 땅끝까지.
그렇게 지루한 결혼 미사가 끝나고, 연회가 벌어졌다.
신약에 예수 그리스도가 물을 포도주로 바꾼 가나의 혼인 잔치처럼. 신성한 결혼 미사의 뒤풀이는 결국 술판이 당연한 거 아닌가?
그리고 나는 취한 척하는 프랑스의 국왕을 볼 수 있었다.
“오호, 나의 사랑하는 형제 존이여.”
저런 다정한 얼굴이라니, 필리프는 정말 대단한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