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79)
콩가루집 막내왕자-79화(79/205)
79화. 기사왕의 죽음
―1188년, 잉글랜드령 브르타뉴―
아무튼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인의 신성한 승리로 끝났다. 물론 그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체감이 덜 되었다.
십자군이라는 ‘한탕’ 사업에 참여한 사람은 한정적이고, 대부분은 유럽 본토에서 먹고사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시 말해 직접 거대한 ‘대전’에 참석하지 못했기에 이 승리가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폴란드 왕국의 재건, 스코틀랜드 반란의 진압, 시빌라와 리처드의 결혼 같은 일들이 지나고. 그 값진 전리품이 분배될 무렵이 되고. ‘십자군’이라는 도박이 끝나자.
유럽의 여러 나라의 인민들은 비로소 십자군의 승리를 체감할 수 있었고. 자기 자랑하기 시작했다.
‘내가 활약했기 때문에 이겼다.’
‘우리의 통치자 때문에 이겼다.’
‘우리의 군대가 강했기 때문에 이겼다.’
과연 유럽이다. 자기들이 서로 잘났다고 하는 꼬라지 좀 봐라!
그건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흥 강대국 그레이트 잉글랜드 역시 마찬가지다.
날이 가면 갈수록 콧대가 높아진 잉글랜드인들이 이번 성전이 곧 잉글랜드의 힘이라고 자부하면서 성경 사무엘의 일화를 언급했다.
‘정의로운 다윗이 이끄는 이스라엘 왕국이 이웃의 사악한 블레셋을 무찔렀다.’
물론 이스라엘의 정복 군주 다윗을 자기들 군주 헨리 2세에 빗댄 것이다. 게다가 존 왕의 ‘헨리 2세 만세!’가 유행해서 잉글랜드의 군주는 ‘정력’이 대단하다. 10,000명의 사생아를 두셨다는 E―국뽕이 퍼지기 시작했고.
막내 왕자 존 왕자가. 공개적으로 노래 하나로 필리프 2세를 엿 먹였다는 소식을 들을 때, 국뽕이 폭발했다!
혐성국의 조상님들답게. 존 왕자의 의도를 이해한 것이다.
‘왕자님의 말씀대로 프랑스 왕국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동프랑스의 일인자 아닌가.’
‘아, 존 왕자님 말씀처럼 프랑스는 위대하다고!’
‘그런데 필리프 2세의 프랑스는 우리의 귀여운 쁘띠 프랑스 왕국이 아닐까?’
이렇게 잉글랜드인들이 국뽕을 느낄 때, 젊은 왕 헨리는 제프리의 영지로 갔다.
형을 접대하기 위해 제프리가 준비한 오늘의 메인 포도주는 자기 영지인 브르타뉴―낭트 지역에서 자란 싱싱한 포도로 만든 달곰쌉쌀한 적포도주다.
“향긋하구나.”
“형님을 위해 열심히 준비한 포도주입니다.”
“고맙구나.”
동생의 성의가 깃든 포도주를 살짝 흔들어 빛깔을 확인한 헨리는 천천히 포도주를 음미했다. 산미가 제대가 향기가 제대로 된 것을 보니, 상등품인 것 같았다.
고작 포도주 한 잔으로 취하진 않지만, 대화의 포문을 열기엔 포도주 한 잔이 제격.
곧바로 젊은 헨리가 꺼낸 첫 대화의 주제는 잘난 부왕이다.
“부왕이 날로 가면서… 더 영악해지신 것 같군”
헨리, 자신과 존호가 같지만, 인성이 덜된 부왕이 헨리 2세다.
“그러게 말입니다.”
젊은 왕 헨리는 부왕 헨리 2세에 대한 칭찬을 한 것이 아니다.
‘게임 주옥같이 하네.’ 같은 찬사를 날린 셈이다.
환생 당한 세이프 존은 그저 헨리 2세가 패륜을 당한 말년이 망해버린 군주쯤으로 기억하지만, 당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악한 늙은이였다.
자식들과 마누라가 한마음 한뜻으로 자신을 몰아내기 위해 연출한 희대의 거병 ‘대반란’은 헨리 2세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지만, 깨달음을 주었다.
자신의 권력과 왕좌를 확고히 하기 여러 가지로 고심했고. 원래 역사와 달리 막내 존이 사고를 치는 금쪽이가 아닌 덕분에 원래 자기가 이루어야 할 일보다, 더 많은 걸 이루어냈다.
“잘난 부왕이 요즘 우리를 견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불쌍한 아우는 요즘 많이 힘듭니다. 이게 모두… 존 때문입니다.”
“존, 그 아이가 그렇게 영악할 줄은 몰랐어.”
“형님, 진짜 독사는 제가 아니라 존이었습니다. 정말 여러 가지로 그 아이가 경멸스럽습니다. 생각 같아선, 독이라도 먹이고 싶은 정도로.”
막내인 존을 거론하는 형의 목소리에 제프리는 ‘암살’이 마렵다는 의미로 말했다.
‘필리프 2세를 그렇게 엿 먹이는 아이를 보았나.’
[나는 필리프의 프랑스를 사랑해~ 루브르 뒤에 태양이 뜨네~ 위대한 프랑스 국왕 필리프 2세가 군림하시네]여러 사람 앞에서 괴상한 음률로 필리프 2세에게 개망신을 준 것도 아마, 자신들의 반응을 계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지 않으냐.”
“아쉽군요. 칠왕국(5세기 앵글로색슨족이 브리튼 제도에 세운 7개의 왕국이 있던 시대) 때나 하다못해 아버지가 내전을 일으켰던 과거였다면 암살도 가능했을 텐데.”
물론 아무리 존이 위협적이라도 ‘암살’을 하지는 않았다. 중세 시대에 암살이란 정말 선을 넘는 거다.
암살은 정말 극단적인 상황이라서 너 죽고, 나 살자 식 전개가 일어나지 않은 이상 사용할 수 없는 도박이니까!
이런 시기에 그런 짓을 버리면 오히려 당사자는 지지기반인 귀족들의 지지를 잃을 것이다. 이 유럽 정치 무대에서 실질적인 지휘관인 귀족들과의 관계가 일그러지면. 절벽에서 떨어진 것처럼 몰락하기 딱 좋다.
물론 티가 안 나게 존을 요단강으로 관광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미 존, 리처드 vs 헨리, 제프리의 구도가 이루어진 이상 보는 눈이 많아서 시도 자체를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러니 제프리의 말은. ‘그냥 하는 말’이라는 뜻이다.
“정말 위험한 건, 존의 사람들이지.”
“사생아… 그리고 막내. 처음에 만만하게 보던 작자들이지만, 이제 그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헨리와 제프리는 이미 아버지에게 응석이나 부릴 줄 알았던 막내 존의 가장 무서운 점이, 그가 새로 지지기반으로 만든 신흥 세력인 ‘위협’적인 사생아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만 위협적인 게 아니었다.
바로 존에게는 ‘막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명한 귀족 집안의 막내든, 천한 상인 가문의 막내든. 막내의 서러움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막내 클럽의 상부―하부 지부에서 막내들도 능력만 있으면 중용해준다는 존 왕자의 비전에 반해 온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존의 진영에 들어온 막내는.
어느덧 그들은 존의 영지를 풍요롭게 하고 이 영지를 지키는 것에 목숨 걸게 되었다. 그래야 자기들이 얻는 것이 많아서겠지만, 박해받는 자기들을 인정하는 곳이 존의 영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은 젊은 왕 헨리와 제프리가 존 왕자의 영지에 걸어두었던 모든 보이지 않는 공격을 수월하게 막았다. 너무나도 놀라울 정도로.
“예상하지 못했지. 명문가 사생아 출신도 아니고, 귀족 집안의 막내들이 우리의 계략을 소리 없이 막을 줄이야. 그것도 자기들과 관계없던 존을 위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형님, 그들에게는 아일랜드가 가나안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자기 일처럼 존 왕자를 도운 겁니다.”
“흠…그 정도인가?”
가나안, 성서에서 하느님께서 점지해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젊은 왕 헨리는 동생 제프리의 비유가 그리 와닿지 않았다.
“형님, 지금이라도 우리는 변해야 합니다. 인재는 유출되지 않는 법이니.”
“상속을 바랄 수 없는 막내들에 대한 처우 개선을 하라는 말인가?”
지금까지 막내들은 그저 ‘성직자’ 코스로 인생을 소모하는 가여운 것들이라는 생각했던 귀족들의 고정관념이 존을 키웠다.
그러니 제프리는 이제라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막내, 그들을 여러 방법으로 회유해야 합니다.”
그 후로 제프리는 자신이 봉신과 생각한 대책을 형 헨리에게 진중하게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겠어. 유념하도록 하지.”
곧이어 식어버린 포도주를 다시 머금은 젊은 왕 헨리가 동생을 향해 다른 주제를 언급했다.
“그나저나 보두앵이 위독하다고?”
“아마 며칠 후에 장례 미사가 열릴 것 같습니다.”
“마지막엔 리처드를 택한 어리석은 작자지만, 안타깝군. 영웅왕이 이렇게 떠나다니.”
젊은 왕은 그 말과 함께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곧바로 일에 들어갔다.
“이게 우리 봉신들이 조사한 존에 대한 정보다. 잘 활용하도록.”
“이건 제가 준비한 용병과 기사들의 보고서입니다. 잘 활용하시길.”
같은 아버지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형제들은 서로에게 중요한 고객이었다.
* * *
―잉글랜드령 노르망디―
나는 아일랜드 대영주의 신분보다는 곧 ‘조문 단장’이 될 입장으로 아일랜드를 벗어나. 바다를 지나.
곧이어 노르망디 영주의 성에 도착했다.
“어서 오너라.”
친히 성문에서 나를 기다리는 인간 흉기 리처드 형.
‘진짜 저 몸은 사기라고.’
들어보니, 중동에서 살라딘의 전사 중 50퍼센트는 대검으로 쓱싹 썰어 버렸다는데.
진짜 그 말이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오늘은 그 육체에 걸맞은 용맹한 모습보다는 여러 가지로 씁쓸한 표정인 걸 보니, 보두앵에게 가진 리처드 형의 감정을 알 것 같다.
물론 보두앵과 리처드 형이 이제는 인척 관계가 되었지만, 그 전에 이미 인간적인 관계를 가졌을 것이라는 건 알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두 남자의 친분이 더 깊은가 보다.
이곳에 오면서 장례 미사 소식이 없다는 뜻은. 아직 보두앵이 사망하지 않았다는 뜻.
그렇게 내가 생각을 정리할 때, 리처드 형이 말했다.
“저곳을 가보거라.”
임시로 만들었다기엔 시설이 좋은 곳. 저곳이 시빌라 공작부인의 자기의 애틋한 남동생을 위해 준 별관이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자.
“보두앵 공, 존 왕자님이 입실을 청합니다.”
“들어오라고 하게.”
그렇게 안에서 목소리가 나오고.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별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보두앵 공.”
“존 왕자, 나의 부탁을 들어주었군. 어서 오게.”
지금 자리에서 일어난 보두앵은 철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문둥병 환자 특유의 흉한 얼굴이 나왔다.
물론 일반인들이 보기엔 여러 가지로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얼굴이지만, 이미 전생에 ‘세계의 멸망’을 겪은 나에게 이 정도는 끔찍하다고 할 수 없었다.
나의 의연한 표정에 보두앵이 말했다.
“내 모습이 흉측하지 않은가?”
“저는 욥의 친구들처럼 어리석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적당한 말을 해주는 것이 맞다.
내 말을 해석하자면.
성서 욥기에서 사탄의 시험으로 온갖 전염병에 걸려 끔찍한 모습이 된 의인 욥을 바라보며 조롱했던 친구들과 달리, 겉으로 보인 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윽.”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다가, 그것조차 통증을 주는지 다시 무덤덤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소.”
“그것이 무엇입니까?”
“존, 그대의 존재로 모든 게 바뀌었소. 주교 시절의 성하(비오 2세)가 암살당하지 않은 것도, 십자군이 영광스럽게 승리한 것도. 내가 좀 더 살아갈 이유를 찾은 것도… 그래서 묻겠소. 그대는 하느님이 보낸 사자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한 내가. 신의 보낸 사자일 수 있을까?
물론 저 중세 유럽인이 보기에 결과적으로 이슬람 친구들을 중동에서 추방한 내가 신의 사자일 가능성이 아주 조금은 있긴 하겠지만, 내 대답은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 그렇겠지… 그럼 존,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소.”
“예, 말씀하소서.”
“듣는 귀가 많으면 좋지 않지.”
접촉할 때 잠시 철가면을 쓴 그는.
“존… 이리 가까이 오시오.”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그것뿐이오. 들어줄 수 있겠소?”
“어렵지 않은 말씀입니다.”
그러자 보두앵은 예루살렘의 십자가가 그려진 갑옷을 바라보며 말했다.
“존, 본디 갑옷을 입혀주는 일은 가장 신뢰하는 사람에게 맡기는 법이지.”
“리처드 형이 있지 않습니까?”
“리처드 공이 그대에게 이 영광을 양보했다오. 그러니 그대가 새로운 전장으로 가는 나를 위해 갑옷을 입혀주시오.”
나는, 예전에 부왕 헨리 2세의 갑옷을 입혀준 경험을 이용해 보두앵에게 갑옷을 입혀주었다.
그가 왜 갑옷을 입혀 달라는지 짐작했기 때문이다.
지금 보두앵이 말하는 전장은 ‘현세’의 전장이 아니겠지.
가죽 갑옷, 그리고 겉 갑옷, 사슬 갑옷과 투구. 그리고 전투화까지.
그렇게 나의 도움으로 모든 방어구를 착용한 보두앵이 말했다.
“존, 그대 덕분에… 이제 나는 천년 왕국을 이루실 예수 그리스도의 기사가 되었군.”
그렇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 보두앵은, 반대편 탁자에 올려진 은 십자가를 보며 말했다.
“주님께서 주신 쓴잔을 모두 다 마셨나이다.”
그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주셨는지 모르겠지만, 몇 초 후 보두앵의 시련은 끝났다.
* * *
노르망디의 하늘은 잠시나마 평화로운 유럽을 대변하듯 무척 맑았다.
하지만 우리들의 마음은 그리 좋지 못했다.
방금, 보두앵 4세였던 남자의 장례 미사가 끝났기 때문이다.
전임 예루살렘 왕국의 군주였던 보두앵 4세인 만큼 그 엄숙함과 규모가 남달랐다.
이미 보두앵 4세의 죽음을 예감해서 나보다 먼저 와있던 그의 봉신들과 그의 고결함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요단강을 건너고 있을 망자를 향해 경의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더럽히지 않은 십자군의 기사왕이었고, 예루살렘 왕국과 정의와 고귀함을 사랑했던 보두앵의 곁을 지킨 자들이자, 이제 막 요단강을 천천히 건널 주군 보두앵을 누구보다 존경하고 사랑했던 기사들이다.
그 기사 중 한 명이자 보두앵이 생전 가장 신뢰했던 신하 발리앙은 무릎을 꿇으며 눈물을 겨우 참고 있었다.
“….”
비록 보두앵과 친분을 쌓은 시기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잔혹한 전장 위에서 여러 가지로 서로를 의지했던 리처드 형 역시, 슬픔을 겨우 가누고 있었다.
보두앵의 누나였던 시빌라는 울음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흑흑, 보두앵… 이 누나가 잘못했어. 대체… 왜 나를 두고 떠나는 거야.”
그런 시빌라의 흐느낌 속에서.
[리처드는 겉으로는 강해 보여도 누구보다 약한 사람이오. 그대가 세이프 존으로서 리처드와 내 누님을 안전하게 만들어주게.]보두앵이 마지막으로 한 부탁에 바람에 스쳐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