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84)
콩가루집 막내왕자-84화(84/205)
84화. 아일랜드표 삼부회(3)
‘이런 느낌도 나쁘지 않네.’
모든 이목이 쏠렸고,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그다지 뜸을 들이지 않았다.
적당히 시간을 끌어서 관심을 끌고 싶지만, 여기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다 [60초 후에 공개합니다~] 혹은 [앗, 잠시만요!] 같은 것이 안 통한다.
그래서 와일드 존은 곧바로 의제를 공개했다.
“역사적인 삼부회의 첫 의제는 모르땅과 아일랜드 영지에서 쓰일 셈법을 통한하는 것이오.”
셈법, 어려워 보이지만 그냥 숫자를 세는 방법을 말한다. 하나, 둘, 이, 얼, 원, 투.
쎄호, 엉, 두!
내가 생각하는 가장 안 급하면서도 급해 보이는 일이다. 물론 이렇게 보여주기용으로도 쓸만하고!
“…!”
무덤덤한 표정으로 삼부회를 보려던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게 뭔데 이놈아.’ 같은 표정이다. 로타이레 주교를 제외하고 남은 측근들에게도 의제를 미리 말해두지 않았기에 고드프리와 피터 역시 깜짝 놀랐다.
숫자 세기. 뜬금없이 왜 숫자 단위를 말하냐면. 게르만족에게서 비롯된 지배층을 둔 주제에 하층민 켈트족의 습관을 버리지 못한 것이 프랑스의 문제라 그렇다.
왜 프랑스의 문제를 세이프 존인 내가 걱정하냐고?
지금의 잉글랜드는 훗날 앙주 제국이라 불린다. 프랑스 서부와 잉글랜드를 모두 차지한 사실상의 제국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지금 프랑스 권역에도 적지 않은 영지를 확보한 잉글랜드는 프랑스 맛 잉글랜드였고, 저번에 리처드 형이 딸 이름을 아델라이드로 지은 것도 괜히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 덕분에 문제가 있다. 프랑스의 안 좋은 버릇이 잉글랜드를 오염시키면 안 된다.
세상에 여러 끔찍한 게 많은데, 그중 하나가 프랑스인들의 셈법이다.
특히 21세기 프랑스의 셈법은 1부터 16까지는 고유 숫자로, 17부터 69까지는 10진법으로, 80부터 99까지는 20진법, 게다가 나중에는 60진법까지 사용하는 정말 폭동이 당연한 그런 나라였다.
만약 프랑스가 이런 셈법을 가지면서 단위 체제까지 미터법이 아니라 마일법으로 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폴란드처럼 3등분 됐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아직 프랑스는 그 주옥같은 셈법이 완성되지 않았지.’
물론 12세기 말인 지금은 프랑스 사람들의 셈법이 바로크 시대 프랑스 수학자들에 의해 타락하기 전이라. 혼돈의 셈법을 쓰진 않지만, 미리 막아야 한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다.
프랑스 왕국은 계속 귀여워해야 하니까. 정확히는 잉글랜드의 대륙 교두보이자, 우리의 핵심 기반 지역인 서프랑스 영토를 잃지 않을 거라는 말씀.
오리지널 존은 적을 너무 만든 무능한 놈이라 잃어버렸지만, 서프랑스는 독도처럼 잉글랜드가 잃어서는 안 될 곳이지.
물론 아직 나에겐 프랑스 권역은 대리인을 두고 있는 모르땅 밖에 없고. 진정한 꿀 땅을 지금 가지고 있을 생각은 없지만.
프랑스 권역이라 그런가 모르땅 지역에 당연하게 있는 20진법 같은 불순물이 들어오면 안 된다고.
“모르땅과 아일랜드 영지의 모두 10진법으로 통합할 생각이오.”
그렇게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1, 2, 3계급 대의원들이 표정이 묘해졌고, 귀빈으로 온 사람들은 ‘뭐?’라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지지해주는 사람도 있다. 숫자에 민감한 친구들.
“옳소!”
“그 말이 맞습니다!”
모르땅과 아일랜드에 번갈아 가며 일하는 상인들과 성직자들이 공감해주었다.
아마 마음에 와닿는 게 있다는 말이겠지? 양 지역을 오가며 교류하는 저들에게는 정말로 필요한 일이겠지.
고작 셈법이라고 하겠지만 그것도 일이다. 지역마다. 심지어 ‘주’마다 달라지는 것이 셈법인데. 그걸로도 얼마나 귀찮은 일들이 많을까?
그때.
“전하, 의견을 말해도 되겠습니까?”
외가가 아키텐의 토착 귀족 가문이었고, 이름만큼 프랑스와 밀접한 고드프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고했다.
“말씀하시오 고드프리 경.”
“전하께서는 단순히 숫자를 세는 셈 말고도 다른 것을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내가 말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의도를 파악했다. 역시 나의 장자방이며 리슐리외 추기경은 고드프리다.
나는 좋은 질문을 하는 고드프리를 바라보며.
“그 셈법을 위한 프랑스어를 만들 것이고.”
물론 10진법 숫자 세는 단어는 현대 영어가 될 것이다.
애초에 현대 프랑스의 숫자 세는 단어는 혼돈 그 자체니까. 대신 나머지는 아일랜드표 집현전을 만들어 현대 프랑스어로 대체한다.
나는 다시 말했다.
“통합된 셈법을 제대로 응용할 방법을 배울 자들의 학교를 만들 생각이오. 내 영지에 있는 귀족 가문의 영애(딸)와 영식(아들)을 위한 학교를 말이오.”
“예?”
“모르땅과 아일랜드 양측에서 사용할 언어는 개량된 프랑스어요.”
정확히는 현대 프랑스어지.
프랑스가 국제 공용어가 되는 건 더 나중의 일, 지금의 귀족들은 사실 라틴어를 더 많이 한다. 그런 시대니까.
잉글랜드인이 통치하는 사람들, 특히 여러 민족의 단결력을 얻기 위해서는 같은 셈법, 같은 언어가 필요하고 나는 그 생각을 계속했다.
어차피 내가 원하는 현대 프랑스어. 정확히 말하면 여러 지방의 방언을 최대한 배제한 정식 프랑스어다.
만일 내가 프랑스 지역의 상실을 당연시했으면 현대 잉글랜드어 위주로 개편했겠지만, 리처드 형의 봉신으로 죽든, 내가 군주가 되든 프랑스 권역은 절대 잃을 생각이 없다.
‘잉글랜드’인이라기보다 ‘앙주’인으로 살 것이 내 목표니까. 새로운 정체성이 있다면 효율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현대 프랑스어의 시초는 카페 왕가의 방계에서 태어난 왕조들인 발루아 왕가와 부르봉 왕가를 거쳐 ‘하나의 프랑스’를 만드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삼부회의 목적은 자기 측근들과 하는 대화의 장이 아니라, 여러 사람과 의견을 나누는 것이다.
“제1계급 성직자부터 의견을 말할 시간을 주겠소.”
당연히 로타이레 주교가 아닌, 다른 성직자가 말했다.
“교회에서 사용하는 언어는 그대로입니까?”
“하느님의 거룩한 종들은 기존대로 라틴어를 사용하셔도 되오. 실생활과 거룩한 미사는 다른 법이니까.”
그렇게 대강 의견을 말해준 나는 다른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다음 제2계급 귀족 출신 대의원들은 의견을 내주시오.”
“저희 귀족들은… 폐하께서 제시하신 문제에 관해…….”
의제를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점은 각 계층에 ‘미리’ 말해주었다. 그래서 계층은 ‘감상’ 위주로 생각을 말했다.
어차피 지금 하는 건 진짜 ‘삼부회’보다 1분 미리 보기식 삼부회니까. 국정의 진짜로 민감한 부분을 공개할 순 없잖아?
“마지막으로 제3계급의 사람들은 의견을 내어 주시오.”
“저희 제3계급에선 전하의 생각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큰 목소리를 낼 만한 기회가 없었던 사생아와 막내 그룹, 상인, 지역 유지들은 아무리 ‘감상’에 제한된 것이지만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 자체가 영광스러운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나와 생각이 조금 달라도, 염려하는 말이라도. 하나하나 정성껏 들어주었다. 제3계급 대의원까지 정중하게 말이다.
애초에 이 자리는 그런 자리니까.
나는 ‘아 세금 걷을 거니까. 잘난 국왕의 멋진 연설 듣지 않을래?’라며 3계층 앞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기 위해 초대 삼부회를 열었던 필리프 4세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삼부회의 맛보기를 보여주었다.
* * *
―아일랜드, 바로크 식당―
“다들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일단 오늘 삼부회는 이것으로 막을 내립니다.”
공개 삼부회는 끝이다. 정확히 말하면 보여주기 공연은 끝이라는 이야기다.
‘목적은 이루었군.’
나는 시원하게 웃었다. 일단 원하던 것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생소한 자리에서 바로 의제가 결론이 나기를 바랐던 사람들은 조금 실망한 모습이었다.
튜토리얼 삼부회는 어물쩍하게 끝났다. 애초에 보여주기 용이지 그 자리에서 정할 문제가 아니었다.
그렇게 치열한 논쟁을 끝내고.
아무튼 삼부회가 끝났으니 연회 시간이다.
오늘 먹고 마실 걸 정말 많이 준비했다.
귀하신 곳에서 귀한 분들이 얼마나 많이 왔는데.
판타지 소설에서는 쉽게 만들지만, 중세 시대에서는 쉽게 만들지 못할. 사치스러운 음식들.
“제가 지정한 열 분에게 특식을 드립니다.”
중세 시대의 접대란 판타지 소설에나 나온 대공, 공작, 백작, 남작 중 대공, 공작, 백작만 대접하는 게 아니다.
물론 작위의 순서대로의 권력이 유지되는 시대가 없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작위의 위대함보다 실권의 유무에 따라 대우받는 시대다. 오죽하면 오리지널 존과 그의 후손들에게 딴지를 거는 실세들이 ‘남작’들이겠는가?
“이건 치킨입니다.”
밀가루와 달걀, 우유, 닭고기와 소금 향신료로 만든 요리를 그냥 사치 그 자체다. 이 시대는 모든 게 귀한 시대다.
“이런 별미가 있나.”
“아우야, 예상치 못한 접대구나.”
그 10명에는 동로마 제국의 총독과 우리 리처드 형이 포함되었다.
10명의 귀빈이 맛있게 먹는데, 일본 이세계물이나 한국 판타지 소설처럼 진심으로 기쁜 얼굴은 못 하겠다. 이 시대에 만든 치킨은 21세기 치킨 맛이 절대 나지 않고. 단가도 비싸다.
저 기름이 튼실한 치킨은 그야말로 사치품이니까.
하지만 나머지 사람들도 딱히 불만은 없었다. 유사 프라이드치킨은 10명의 소수의 사람이 먹지만, 그래도 맛있는 고기 요리들이 엄청 많아서.
게다가 누구라도 좋아할 아일랜드산 포도주와 맥주가 넉넉하게 구비되었으니.
‘당연하지… 내가 허리띠를 매고 준비한 행산데.’
이곳은 내가 진짜 굶을 각오를 하고 마련한 것들이다.
“…좋은 행사였다 존. 아주 배운 게 많구나.”
“아닙니다. 형님보다는 부족한 아우입니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아니, 이제는 브리튼섬과 아일랜드까지 영토로 삼은 우리 왕가 입장에서는, 이도 저도 아닌 게 힘드니 우리 영지도 셈법과 ‘언어’에 대해 생각해봐야겠구나.”
갑자기 리처드 형이 훈훈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 바로 형제들의 우애인가? 아무리 치열하고 피곤한 중세 유럽에서도. 보이지 않는 가치가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의미로 존, 우리 영지에 있는 가축을 더 구매할 생각이 없느냐?”
“얼마 생각하고 오셨습니까?”
하지만 역시, 리처드 형도 영지의 이득을 위해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은 대영주인 걸 잊었나 보다.
* * *
식사 행사를 끝으로 리처드 왕자에게도 여러 가지로 충격적인 기분을 주었던 일정이 끝냈다.
“존… 이 녀석.”
아마 얼마 뒤 세상은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설마 설마 했지만, 이런 재미난 걸 준비하다니.
오랜만에 노르망디를 떠나 아일랜드로 온 리처드에게 손님이 찾아왔다.
“대왕비 전하가 입실하십니다.”
“어머니가? 들어오시라고 말씀드려라.”
이윽고.
이미 오랜 나이를 먹었음에도 동안의 외모를 유지한 미녀가 방으로 들어왔다.
본인 딴엔 남편을 두 번이나 잘못 만나서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도 아들은 잘 두었다고 생각한 엘레오노르 대왕비다.
“우리 자랑스러운 아들 리처드, 어쩜 이렇게 잘났을꼬.”
부부는 닮는다더니, 지금 엘레오노르 대왕비는 마치 헨리 2세가 막내 존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말 아들 사랑에 지극해서 광기를 보이는 수준이다.
“하… 어머니 저 이제 어린 아들이 아니라… 한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알고 있지. 그래서 오늘 일은 어땠느냐?”
어머니가 오늘 있는 공개 삼부회에 관해 묻고 싶은 거다.
시종이나 다른 귀족을 통해 듣지 않은 건, 아들인 자기에게 듣고 싶어서였던 게 너무나도 티가 나지만.
“일단 존, 그 아이가 셈법을 언급했습니다…….”
“하긴, 영지마다 다른 셈법이 있긴 하지…… 흥미로운 건 그다음이구나.”
리처드는 잉글랜드인도 아니고 프랑스인도 아닌 앙주라는 정체성 중 프랑스인에 가까운 쪽이지만.
아키텐의 공녀로 태어난 엘레오노르 대왕비는 ‘프랑스’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당연히 자기가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그녀의 입장에서도 자기가 배 아파 낳은 존 왕자의 기행은 여러모로 대단했다.
“셈법은 그렇다 치더라도, 새로운 프랑스어라니.”
기존의 프랑스어 자체도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며 완전해졌는데. 그걸 또 바꾸다니.
영민한 엘레오노르 대왕비는 언어의 힘을 잘 알고 있다. 존이 생각하는 부분은 아마 더 나중을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지금 존은 무얼 하고 있니?”
어머니의 말에 리처드가 말했다.
“동로마 제국에서 온 귀한 손님을 만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