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88)
콩가루집 막내왕자-88화(88/205)
콩가루집 막내왕자 088화
88화. 아버지의 사랑
―1189년, 아일랜드―
쓱쓱.
‘언어란 결국 여러 역사의 흔적이라고 볼 수 있지. 현대 프랑스어를 완전히 정착하는 건 내 시대에 힘들지 몰라… 하지만.’
비싼 종이에 여러 가지 글씨를 쓰고. 밑줄을 긋고. 고민하고 있다.
잉글랜드의 프랑스화가 아닌, 프랑스를 완전히 앙주의 영토로 만들 생각을 하는 나에겐 셈법을 핑계로 ‘언어 통합’이 필요하다.
이런 나에게 더 확신을 주는 건, 내가 충성하는 리처드 형이 나의 의견을 따르고 자기 영지에도 도입할 거라는 뜻을 보여서였다.
프랑스인으로서의 정체성도 강하지만 결국, 우리 같은 앙주 왕가의 본질이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영지를 모두 지배하는 ‘패권’ 가문이라는 걸 인정한 점도 있지만.
잉글랜드계와 프랑스계 주민들에게 공통적인 언어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것이 크다. 예전에 했던 염려와 다르게, 적어도 나의 영지에서는 반발이 덜 나왔으니까.
아무튼 새롭게 도입될 ‘언어’에 대해 고민하는 나에게. 피터가 찾아와 말했다.
“전하 공작부인께서 귀부인들을 움직이고 계십니다.”
“메리가?”
“예 전하, 엘레오노르 대왕비와 함께 아일랜드의 귀부인을 움직이는 건 물론, 모르땅의 귀부인들도 모두 부르셨다고 합니다.”
갑자기 메리가 아일랜드의 모든 귀부인을 집합시켰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어머니 엘레오노르도 곁에서 거들어 줬다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더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
“혹시나 메리가 필요한 게 있으면 지원해줘.”
그저 부인을 응원해 줄 뿐이었다.
잘하고 있다.
내 총명한 아내는. 분명히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할 것이다. 물론, 자세히 알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 알아서 할 테니.
나는 메리의 소식을 들려준 피터에게 다시 물었다.
“피터, 에스파냐는 프랑스에 어떤 외교적 태도를 보이지?”
“평소보다 더 큰 친밀함을 보이고 있습니다.”
“친밀함?”
“예, 전하. 거래량이 증가했고 사절단의 방문 횟수가 늘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벌써 에스파냐가 은혜를 모르고 있다.
솔직히 말해, 에스파냐의 전신인 카스티야 왕국이 이베리아에서 날뛰게 만들어준 건 우리 아버지 헨리 2세였다고.
“우리 매형 너무 무심하네. 그래도… 우리가 에스파냐를 무조건 배척할 수도 없는 상황이지 않소?”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아무튼 짜증이 나도 에스파냐와는 친하게 지내야 한다. 당장 우리 잉글랜드령 서프랑스 영지의 옆 동네가 바로 에스파냐다.
이놈들이 배신자 유다처럼 30두캇에 신의를 버리고 프랑스에 붙으면 잉글랜드는 끝장이다.
아니, 셋째 제프리 형과 첫째 헨리 형한테 붙으면 더더욱 끝장이다. 괜히 내가 화를 낼 필요도 없지.
물론 그렇다고 에스파냐… 헉… 하며 놀랄 필요는 없다.
내가 에스파냐 왕국이라는 변수에 깜짝 놀란 건, 우리 잉글랜드가 지금은 잘나가는 상황인 만큼 더 조심해야 하는 강대국이라 그렇지. 에스파냐 자체가 어마어마한 강대국이라 쫀 게 아니다.
‘그래 일단 에스파냐 문제는 그렇게 생각하고.’
아무튼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고 당황하면 안 된다. 조급함을 멈추고 여유를 가지며 미래를 도모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으로 영주 경영을 맡으며. ‘셈법’ 사업 계획서를.
모르땅과 아일랜드 두 영지에서 신민들은 복잡한 셈법 대신 편리한 셈법을.
그리고 프랑스계, 잉글랜드계, 아일랜드계 구분 없이 쉽게 익힐 새로운 언어(현대프랑스어)의 확립.
이 모든 걸 위한 계획을 세워야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열심히 일하던 피터와 유럽 문화를 배우는 거 이외에는 선비처럼 놀고 있는 악불회를 불렀다.
서프랑스를 완전히 흡수하기 위해서는 문화의 힘이 필요하다. 문화의 힘에 기본이 되는 건 역시 언어다.
언어를 빨리 익히게 하려면 여러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에게 중국인도 필요한 거고.
‘지금 생각해봐도 악불회를 봉신으로 삼은 건 좋은 일이지.’
중국인은 전근대 시대 엄청나게 유능한 존재이고, 중세 시대인 지금은 나에게 그냥 아낌없이 주는 나무나 다름없다.
왜냐? 그들은 동로마 제국과 더불어 이 세상의 ‘문화’를 지배하는 나라의 족속들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 충성스러운 중국인 악불회를 제대로 이용하고자 했다.
내가 만든 ‘진보’는 모두 ‘중국’에서 왔다는 식의 명분을 악불회가 채워주면 되는 것이니 말이다.
누가 딴지 걸면, ‘악불회’가 선진 문물을 알려주었다고 말하면 된다. 어차피 이미 나는 존스 보우라는 공성 병기와 중국형 나침반을 통해, 유럽에서 가장 중국 문명을 잘 사용하는 영주가 세이프 존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오늘 ‘선진 문물 계획’을 바라본 피터의 얼굴이 경악에 휩싸였다.
“전하, 정말 이게 정말 가능합니까?”
“가능해.”
나의 번개처럼 빠른 확답에 피터는 시선을 악불회에게 돌려 물었다.
“악 경, 이게 정말 가능한 겁니까?”
“….”
악불회의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피터가 말했다.
“세상에… 동양은 정말 대단한 나라군요.”
나는 아까부터 불안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충직한 한족 출신 기사에게 말했다.
“그대들의 중국 문화가… 우리 아일랜드의 문화를 풍족하게 하는구려.”
그제야 침묵했던 악불회가 나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전하. 송구하오나, 이건… 중화가 아닙니다.”
문화나 정치 쪽에 새로운 무언가를 도입하려고 할 때. 가끔 중국 이름을 팔면 된다.
물론 악불회는 이건 중화가 아니라고 하지만, 내가 바로 잉글랜드의 중화 세이프 존이다.
전생에는 소중화(조선)의 왕가 전주 이씨의 피를 이은 혼혈인이었다고!
지금 내가 준비하고 있는 것은 거대한 제국의 초석이다.
로마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중화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야 완성되었다.
하물며 대영제국의 밑그림이다.
헨리 2세에 의해 우리 잉글랜드가 반쯤 올려치기 당해 그레이트 잉글랜드라고 불리긴 하지만, 대영제국급 위상을 갖추려면. 정말 할 게 많다.
“부왕을 뵈러 가야겠소.”
아버지한테 용돈이나 타러 가야지.
* * *
―잉글랜드령, 앙주―
‘내가 이렇게까지 몰락하다니, 아일랜드의 대영주가 아버지를 보러 또 배를 타고, 하….’
가슴이 미어지는 순간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출장은 영업맨의 비극. 중세 시대에도 셀러리맨 존은 자금이 필요했다.
나는 저 멀리 삼엄하게 근무를 서고 있는 기사들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부왕께 내가 왔음을 알려주시오.”
곧바로 기사가 돌아와 말했다.
“존 왕자님, 대왕께서 입실을 허락하셨습니다.”
역시 세이프 존은 헨리 2세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지 암!
우리 가문의 성지와 같은 앙주 영지에 왔다. 이곳에 온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로는 돈이다.
“부왕, 오랜만입니다.”
“고얀 것… 그동안 아비를 찾아오지도 않고.”
“그래서 오늘 험난한 바닷길을 해치며 이곳에 부왕을 뵈러 오지 않았습니까?”
심드렁한 표정의 아버지. 헨리 2세, 그는 조선의 임금 영조와 조금 다르지만 같다. 편애하는 자식을 제외하면 모두에게나 냉정한 아버지인 점은 똑같다.
아, 물론 나는 편애하는 자식이라 상관없달까?
“… 흠, 그래, 무슨 일로 이 아비를 찾아온 거냐.”
부모가 직접 자식을 찾는 것과 다르게, 자식이 부모를 찾는 것은 의미가 다르다. 지금 솔직히 우리 아버지 기분이 좋으면서. 체통 땜에 참는 거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향해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부왕, 이건 엄청난 위기입니다. 에스파냐는 프랑스와 친밀하게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운이 없다면 그들은 양쪽으로 잉글랜드를 압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온 건 아닐 거 같은데? 어차피 ‘펠리페 사위’는 그저 ‘존재감’을 원할 뿐, 그 이상의 선을 넘지 않아.”
“맞습니다. 매형은 그런 사람이지요.”
그런 뻔한 이야기를 듣기 싫다는 아버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에스파냐가 외교적인 변수라도 앙주 영지까지 귀한 갈음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대체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이 무엇이냐, 존.”
“용돈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그런 말을 뻔뻔하게도 하는구나.”
나는 질책하는 눈빛으로 변한 아버지에게 말했다.
“돌아가신 할머니께 영지를 요구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을 봐서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으십니까?”
“….”
나의 말에 아버지는 찔리는 게 많은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 적어도 나는 용돈만 몇 번 요구하지. 아버지가 마틸다 할머니께 요구한 것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영지를 생전에 상속하라는 ‘애교’를 부리지 않았잖아.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던 아버지가 따지듯 말했다.
“그래, 자금이라… 하지만 아일랜드에 네 어미가 있지 않으냐. 게다가 베네치아의 늙은이도 있고.”
하지만 담담한 나는 맑은 눈으로 아버지를 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서유럽 최고의 부자시지 않습니까?”
“….”
절대 변하지 않을 진실을 말하자, 아버지가 멈칫했다.
“폐하, 젊은 왕 헨리께서 마상시합을 개최했습니다.”
마침 급박하게 들어온 기사의 말에 눈을 찡그리며, 내 눈치를 보던 아버지가 말했다.
“헨리 이놈! 또 마상시합으로 나의 눈을 가리고 음모를 꾸미는 게 분명해!”
용돈 주기 싫어서 저러는 거 같은데?
* * *
―잉글랜드령, 아키텐 영지―
“…이상입니다.”
그렇게 기사는 보고를 끝마쳤다. 존 왕자의 삼부회부터 작은 엘레오노르의 에스파냐까지 이어진 대서사시를 말이다.
젊은 왕 헨리는 최신 업데이트된 유럽 소식을 파악한 후, 자신의 충실한 기사에게 말했다.
“잘 알았소. 일단 혼자 있고 싶으니 가보시오.”
“예, 폐하.”
지금 유럽에 벌어지는 일을 보고들은 젊은 왕 헨리는. 홀로 포도주를 마셨다.
풍족의 땅, 아키텐에서 자라는 포도로 만들어서 그런지, 기품이 느껴지는 훌륭한 포도주였다.
마치 젊은 왕 헨리, 본인처럼 말이다.
“귀여운 동생들이군.”
에스파냐라는 재밌는 나라의 왕비가 된 작은 엘레오노르라. 삼부회라는 기괴한 의회를 개최해서 한몫 당긴 존.
헨리는 그런 동생들이 정말 귀여웠다.
물론 지금은 반쯤 흑화해. 헨리 2세 전용 죽창으로 변한 뜨거운 효자가 젊은 왕 헨리지만.
젊은 왕 헨리는 아직도 적장자라는 위대한 정체성을 가졌고. 동생들보다 더 위대했다.
“하하, 아무리 발악해도 너희는 나에게 안 돼. 나는 대귀족의 지지를 받을 정통성을 갖춘 적장자니까.”
젊은 왕 헨리는 웃었다.
제프리 녀석은 ‘상황’이 자기를 대변한다 그랬지만, 젊은 왕 헨리는 잘 알고 있었다.
겉으로 친한척 하는 제프리가 자신을 믿지 않듯, 자신 역시 제프리를 믿지 않는다.
어차피 젊은 왕 헨리와 브르타뉴 공작 제프리가 힘을 합친 이유는 괴물 같은 경쟁자 리처드를 견제하기 위한 세태와의 야합이 아니던가.
애초에 왕좌는 한 개뿐이고, 왕좌의 주인도 단 한 명이 끝이다.
물론 지금 공동 국왕이라는 같잖은 작위가 있지만, 헨리 2세가 앉아 있는 진짜 옥좌의 주인이 될 자는 젊은 왕 헨리.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미 젊은 왕 헨리는. 커다란 대계를 만들었다.
그의 영악한 동생이자 ‘임시’ 동맹이 된 제프리조차 알 수 없는 크고 많은 수를 모두 쳐낼 대전략을 말이다.
아버지가 노환에 걸려 제대로 ‘병’에 걸리는 순간. 그때가 바로 그 계획을 시작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지금 아내 마르그리트 왕비가 임신했다. 여기서 아들을 낳는다면, 유일한 약점이 완전히 해결된다.
그래서 젊은 왕 헨리는 자신의 권위를 완성할 아들의 탄생을 기원하며.
온갖 제물을 풀어 엄청난 마상시합을 개최하기로 했다.
이 악마의 가문 앙주 왕가의 적장자로서, 아키텐의 주인으로서 말이다.
“폐하, 모두 준비되었습니다.”
“그래, 기사들에게 알려줘야지. 어차피 승리할 것은 나라는 사실을.”
“역사에 남을 마상시합을 시작한다. 유럽 제일의 기사인 나를 넘어설 자가 있는가?”
커다란 목소리로 자신만을 드러내는 젊은 왕 헨리의 목소리가 대지에 울렸다.
당당한 목소리를 본 헨리의 영지민들은, 이 사람이야말로 헨리 2세를 뛰어넘을 ‘헨리 3세’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하지만 젊은 왕 헨리의 진정한 약점은, 헨리 2세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한 ‘교만’이었다.
‘당신은 너무 교만해.’
‘벌써 왕좌에 있다고 착각하는군.’
‘당신이 진짜 위대했으면 대반란으로 끝나지는 않았겠지.’
그는 시대의 ‘악의’를 과소평가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