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96)
콩가루집 막내왕자-96화(96/205)
96화. 차분한 고요
―중동 어딘가―
기욤 1세의 죽음으로 여러 가지로 어수선해진 중동의 분위기.
아무리 ‘정치’적인 이유로 국왕에 오른 상황이더라도, 기욤 1세의 죽음은 엄청난 파장을 주었기에 중동의 정치판은 난리가 났다.
물론 교황청과 동로마 제국 그리고 서방의 대귀족들이 수습한다고는 하지만, 그런데도 잡음이 클 수밖에 없는 건, 이 문제가 앙주 가문과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무거운 분위기에도 비싼 레바논산 포도주를 마시고 고기를 뜯는 남자들이 있었다.
―쨍그랑.
한 남자가 돈을 흔들었다.
그들에게 의뢰금으로 받은 두캇이었다. 물론 ‘베네치아’에서 나온 금화라 신용 가치가 있는 편이다.
“크크크크. 두캇이 좋구나!”
“이렇게 의뢰금이 많은 줄 알았겠냐고! 너무 달달해서 싸구려 포도주가 잘도 넘어가는군.”
거대한 사업이 성공한 것처럼 기분 좋게 술을 마시는 두 명의 남자. 그들은 예루살렘 왕국에서 무슨 소란이 일어나든 상관이 없었다.
다만 지금은 이렇게 진득하게 마시고 취했지만. 두 남자의 눈빛은 아직 차가웠다.
“의뢰주들이 보낸 작업이 무사히 끝났으니, 이제 실컷 마셔야지.”
“하하하, 그래 지금은 먹고 마시자고, 여자도 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가장 큰 고기를 뜯어 먹은 덩치 큰 남자는 웃었다. 다만, 이런 호쾌한 분위기는 계속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래도…….”
“둘이 나누는 건, 조금 그렇지?”
그리고 그들의 손에 단검을 들었다.
애초에 커다란 보상을 반으로 나눌 수는 없다. 둘 중 싸워서 살아남는 자만이 누릴 과실이다.
바로 그때. 이곳에 화살이 날아왔다.
―피웅, 피웅, 피웅.
너무나도 깔끔한 명중.
방금까지 온기를 가지고 있었던 두 남자는 식어가는 살덩어리가 되었다.
먼저 안으로 진입한 두건을 쓴 남자 하나가 시신을 확인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대장, 모두 확실하게 죽었습니다. 들어오셔도 됩니다.”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결국 이렇게 되는군.”
방 안에 있는 시신을 보며 ‘대장’이라 불린 사내는 헛웃음을 지었다.
세상은 요지경이었다. 그깟 돈 욕심에 눈이 멀어, 갈등하다니. 진작 깔끔하게 정산을 끝내고 피신했으면, 추적이 쉽지 않았을 테니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까?
어차피 저 시체가 된 사내들에게 정보 따위를 들을 필요가 없었다. 명령받은 거는 고문이 아니라 처리였으니까.
얼마 후.
그렇게 두 남자를 모두 처리한 ‘대장’은 시신들을 처리하고 얼마 떨어지지 않는 판잣집에 들어와.
가만히 맥주를 마시고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명령대로… 잔챙이들을 죽였습니다.”
“티는 나지 않고?”
“예, 흔적까지 모두 없앴습니다.”
보고를 들은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보고를 마친 ‘대장’에게 말했다.
“고생했네. 자네가 마지막이야.”
“영광이군요.”
마지막이라는 것에 자랑스러운지 싱긋 웃음을 보이는 남자.
“그래, 자네가 제일 중요한 꼬리를 제거했으니. 전공이 참으로 크군.”
“예, 그럼 보상은?”
“이젠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군, 갈릴리 호수에 가면 알아서 줄 것이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갈릴리 호수라는 은어가 무슨 뜻인지 깨달은 남자는 적절하게 예의를 표하고 갔다.
“아일랜드 공작부인 놀이나 하는 우리의 독한 주군께서 이런 명령을 시킬 줄 이야.”
중동이 가장 혼란한 시기. 중동 밑바닥의 ‘꼬리’들이 모두 죽었다. 물론 꼬리라 큰 걱정은 없다. 적어도 죽어 나간 자들은 기욤 1세처럼 유명하지 않으니.
아무튼 없는 판잣집에 홀로 남은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앙주 가문의 민속놀이가 이루어지겠군.”
휘이이이.
바람이 홀로 남은 남자의 귀밑에 불었다, 원래 남의 집 민속놀이가 재밌는 법이다.
* * *
―1190, 아일랜드―
다사다난했던 1189년이 끝났다. 하긴, 내가 중세에 환생한 이후. 정말 포근하고 고요했던 날들은 없던 것 같다.
중세 유럽은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마계 그 자체.
그나마 저 멀리 동방은 고요한 아침의 역사일 텐데. 참 유럽 친구들은 맨날 말썽이다. 진짜!
“전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성 패트릭 대성당의 연단에 오른 나는, 아일랜드를 대표하여 성호를 긋고 하느님께 말했다.
“주여, 새로운 한 해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나를 따라 성호를 그으며 나를 바라보는 아랫것들에게 말했다.
“1190년이 되었다. 예전보다 더 부유해질 1190년이 그대들을 풍요케 하리라!”
아무튼 새로운 한 해가 도래했고, 이제 세이프 존은 좀 더 늙어졌다.
물론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 말이다. 전생의 기억을 기억하고 있는 환생자인 탓에. 내 나이는 겉으로의 나이가 아니니까.
‘망할 우리 콩가루 집안이 최신 업데이트했네. 기욤의 죽음, 헨리 2세의 추함!’
물론 집안을 제외하더라도, 새해가 지난 지금, 여러 가지로 할 것이 많았다.
일단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여러 계층의 아이들을 앙주인으로 만드는 것에 투자했고.
세이프 기사단 친구들에게 부탁해 영지군을 좀 더 정예화하기 시작했고.
예전보다 더 많은 것을 인민에게 먹이기 위해, 내정 삼총사를 움직여 농사와 목축 산업 생산 계획에 집중했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덧 봄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날이 온 것이다.
그리고 세상이 기다리던 소식이 전해졌다. 예루살렘 왕국 지부의 성전 기사단과 동로마 제국의 신료들이 현장 조사를 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결론적으로 앙심을 품은 이슬람 놈들이 ‘독살’했다는 결론이었다.
물론 기욤 1세의 유가족이라고 할 서리 백작은 21세기 국방부나 할법한 이 개소리를 믿지 않았다.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할 때입니다.”
서리 백작은 일종의 자문 위원으로 나에게 협조했다. 그냥 아일랜드에서 쭉 있을 생각이다.
그럼, 영지는 누가 운영하냐고?
그는 자신의 기반이 되는 영지를 돈으로 바꾸고 중세의 연금술사가 되었다. 어차피 아들이 죽은 이후 영지는 상관없단다.
곧이어 서리 백작이 아일랜드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여러 상인과 용병들 또는 전직 행정관을 데려오면서 말이다.
그것은 우리 영지에 좋은 소식이지만, 생각 있는 자들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니란 걸 알았다. 서리 백작이 이렇게까지 우리 영지에 집중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간단했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설계한 사람이 제프리 형 혹은 헨리 형. 아니면 나 세이프 존과 반대 지형에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백부님은, 나를 통해 군사 거점을 대륙보다 안전한 아일랜드에 만들 생각이겠지. 오로지 복수 하나를 위해.’
세이프 존인 나는, 이미 눈치챌 수 있었다. 이런 서리 백작은 모습은 ‘복수’의 과정이라는 걸.
하지만 그것 외에는 별 상관이 없었다. 나에게 도움만 된다면 그가 어떤 복수를 꿈꾸든 아무 상관 없었다.
아무튼 1190년, 나의 조력자가 되기로 한 서리 백작은 오늘도 나와 여러모로 중요한 이야기를 가졌다.
“일단 최악의 상황은 헨리 2세께서 임종하시는 겁니다.”
“흐음…….”
물론 그 ‘임종’은 노환으로 인한 자연사뿐 아니라, 여러 종류의 임종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헨리 2세께 해를 끼칠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백부님이 말씀이 옳습니다. 우리 형님들과 ‘대적’들이 미치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당연하지, 우리 아버지를 불법으로 요단강으로 효도 관광시키는 그 순간 명분을 잃고 시작하는 건데. 아무리 막 나가는 형들이라도 그럴까?
아마, 우리 형들이 칼을 들면 아버지를 유폐시켜버릴 게 분명하다. 가장 안정적이면서 좋은 수작이거든.
내가 그렇게 생각을 정리할 때. 서리 백작이 다시 말했다.
“그래서 소관이 아일랜드에 온 것입니다. 앞으로 더 준비할 것이 많으니 말입니다.”
“백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준비해야지요…….”
역시 사람이란 게. 오랜 경력이 있는 경험자는 무언가 다른 포스가 느껴진다.
지금 서리 백작이 그렇다.
그는 나의 유능한 지원자가 되어 주기로 했다.
SSS급 서포터가 다시 생긴 순간이다. 적의 적은 나의 편이라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그래서 나는 매번 사생아 출신 백부님께 예의를 갖추는 조카가 되었다.
* * *
“…이상입니다.”
“잘했어, 피터. 나머지는 나중에 말하지.”
“예, 왕자님.”
피터가 퇴장하고, 웅장해진 아일랜드의 중세식 요새를 본 나는. 1190년인 지금 아일랜드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인간이 만든 화학 물질에 오염되지 않았지만, 인간이 만든 탐욕에는 똑같이 오염된 시대기도 했다.
아일랜드.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섬이지만 부담감이 앞섰다.
이제는 모두가 인정하는 세이프 존으로 살아가는 순간마저도, 나는 두려운 것이 있었다.
결과가 중요하지, 과정이 중요한 게 아닌 치열한 역사 말이다.
내가 실패하는 순간, 내 가족, 내 봉신, 내가 지키는 농노의 아이들까지…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내 책임감이 무겁다.
“하.”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들리지 않을 거다. 저 멀리서 나를 호위하려는 기사들을 제외하고 내 곁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로 중얼거렸다.
“존 왕, 당신이 왜 실패했는지 알 거 같아.”
이곳에는 내가 아는 오리지널 존 왕이 없다. 예전에 읽었던 대체 역사소설처럼 암군이 유령이 되어 주인공 옆을 맴도는 그런 전개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유럽 왕가의 매운맛 버전의 앙주 가문을 체험하고. 알게 모르게 펼쳐지는 일들을 보니 알 수 있었다.
이 집안 꼬라지를 살아가는 건 고되다. 어쩌면 존 왕이 필리프 6세나 헨리 6세처럼 ‘미쳐’버리지 않은 것만 해도 재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셈법, 앙주어를 가르치기 위한 주일학교라는 체계를 만들어 ‘앙주 문화’ 운동을 시작한 이후. 이제는 위험한 미래에 대처하기 위해 군사력도 증강해야 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업무가 많은 탓에 간신히 잠이 들었고. 지독한 꿈을 꾸었다.
프랑스인도 한국인도 아닌 혼혈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25%가 한국인인 쿼터 혼혈로 살아가는 것도 말이다.
21세기 전생 시절, 내 친할머니는 영국인이었거든.
차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백인의 피가 섞인 혼혈인은 그래도 다른 인종의 혼혈인보다 멸시를 덜 당했다. 때에 따라는 우대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문화생활이 가능한 현대 생활만 가능한 일이다.
세계 3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바퀴벌레처럼 끈질긴 사람들만이 겨우 살 수 있는. 그야말로 ‘세기말’ 그 자체인 시절.
목숨을 건지는 것도 힘든 아포칼립스.
혼혈인 가정이라는 이유로 내 가족은 내가 보는 앞에서 살해당하고. 나조차 살해당할 뻔했다.
다행히 그 당시 나의 처형은 흰둥이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공개처형’으로 될 것이라. 그 틈을 이용해 겨우 도망갈 수 있었지.
그리고 나는 처절하게 보복하고. 나는 고작 흰둥이 따위가 아니라는 걸 한국에 알려주었다. 문제는 나는 예수님처럼 원수를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복수를 할 겸 지독하게도 많은 ‘희생’을 원했다.
변명하자면 그 시대는 난세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는 중세 시대나 있을 법한 별칭인 [독재자, 샤를 리.]라는 악명을 들을 정도로 삐뚤어졌다.
결국, 그 대가로 나는 수하들에게 버려지게 되었다.
뭐 이미 가족이 죽는 순간, 내 모든 것을 잃었으니 그 당시 죽을 때 미련은 크게 없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로 아쉬웠다. 왜 인망을 얻지 못했을까 하는 인간적인 고민이었다.
―데구루루.
전생의 끝, 악인으로서 처형 당하는 그 순간.
나는 악몽인지 그리운 전생에 대한 회상인지 모를 꿈에서 깨어났다.
다행히도 꿈은 21세기고, 현실은 12세기였다.
내 옆에는 아내 메리가 있었고. 바깥을 보니 12세기 말의 담백한 아일랜드의 풍경이 보였다.
어쩌면 세이프 존이라는 이름 아래 살았던 안전한 시대가. 안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영지로 찾아온 백부님이 나에게 건네준 여러 가지 말이 나에게 여러 영향을 주었다.
하여간 콩가루 집 막내 왕자라. 여러 가지로 고민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쩌면 나는 농담이 아니라 진짜 데인저러스 존이 되어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는 압박감이 들었다.
“그러면… 정말 안 되는데.”
며칠 후.
급하게 달려온 기사에게.
“전하, 앙주에서 온 급보입니다.”
나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같은 두 형들이, 아버지가 다른 이부 누나 알릭스와 접촉한다는 최신 뉴스를 들었다.
빌어먹을 이산가족 상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