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youngest prince of the English Royalty house RAW novel - Chapter (98)
콩가루집 막내왕자-98화(98/205)
98화. 오프닝(2)
―신성로마제국, 아헨―
앙주 가문의 형제들이 훈훈하게 집안싸움을 하려는 ‘각’이 보이는 아주 민감한 시기.
신성로마제국 수도 아헨. 이곳에 있는 황궁에서는.
―쓱쓱.
누군가 글귀를 적고 있었다. 아주 불만에 찬 얼굴로 말이다.
깃펜을 들어 공문서의 집필을 끝낸 사람이, 아까부터 자신을 바라보던 한 남자를 향해 말했다.
“자… 이 정도까지 양보하지.”
붉은 수염 프리드리히.
이 늙은 황제는 세이프 존 덕분에 강물에 빠져 죽는 불행한 일이 없었지만. 자식 교육을 잘못해서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
그나마 영특한 건 ‘딸’들 쪽이지만, 어차피 결혼하면 제 가문보다 남편의 가문을 신경 쓸 황녀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아들들이다.
하지만 아들놈들이 (선제후들과 대놓고 척지는 바람에, 십자군 원정에서 대승을 한 자신의 입장이 참으로 난처하게 되었다. 자식들이 싸지른 똥을 늙은 아버지가 치워야 할 지경이다.
지금 앞에서 자신을 동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놈’이 슬쩍 웃는 것만으로도 이미 짜증 난다. 자식이란 것들이 하나도 도움이 안 되니. 참 걱정이다.
‘차라리 전쟁이 훨씬 편했거늘.’
이교도 놈들을 칼로 잘라대는 그 특유의 손맛을 잊지 못한 남자로서는 이렇게 복잡하고 짜증 나는 과정과 결과가 싫다.
전쟁과 다르게 ‘정쟁’은 단순하게 ‘힘’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니까.
그렇게 대놓고 짜증을 내는 늙은 황제가 작성한 서류를 꼼꼼하게 바라본 귀족은 흐뭇한 얼굴로 말했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의 의로운 행동은 저희 귀족들이 모두 알 것입니다.”
“하인리히, 자네와 나의 거래는 확실해야 하네.”
“폐하, 제가 언제 약속을 어긴 적이 있습니까?”
이 유럽 사회에서 약속이라는 것이 과연 믿을만한 단어일까? 하지만 적어도 사자공 하인리히는 약속을 어기지 않았다.
물론 늙은 황제가 죽으면 그 약속이라는 단어에 담긴 ‘뜻’이 달라질 수 있겠으나, 프리드리히는 그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정치판에서 패배하면 그놈들의 운명인 거지.’
무수한 게르만인 중에 하나로 태어나, 신성로마제국의 지배자로 오롯이 서기까지 무수한 피눈물을 흘리고 노력한 게 프리드리히 황제였다.
옛 샤를마뉴 제국을 떠올릴 만큼 왕권을 강화했지만, 그 왕권이 모래 위에 쌓은 황금탑이 되고 말았다.
“차라리 아일랜드의 영주 노릇을 하는 게 좋을 뻔했다. 세이프 존, 그 녀석이 무척 부럽군.”
“그러게, 말입니다. 아일랜드 참 좋은 곳이었는데.”
“그런데 왜 복귀했는가?”
“폐하, 꿀벌이 꿀통을 포기하겠습니까?”
우습게도 눈에 보이는 정적만큼 신용이 가는 상대는 없다.
프리드리히는 예전부터 감히 자기에게 날을 세웠던 애송이 하인리히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권력을 추구하기에 자기에게 굴욕을 맛보았음에도 아득바득 복귀하지 않았는가?
“신성로마제국, 가장 위대한 제국은 지금 이럴 때가 아닙니다. 옆 동네 앙주 가문에서 집안싸움을 하는데.”
“자네들 귀족파가 방해하고 있지 않은가?”
“권리를 요구할 뿐입니다.”
“망할 것들.”
작센 공작으로 복위된 사자공 하인리히. 황제의 정적이기도 한 야망에 찬 이 귀족이 복위한 건,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였고. 귀족파 놈들이 성가셔서였다. 그래도 귀족파와의 협약은 있어야 한다. 정치라는 게. 견제해주는 세력이 없다면 그것대로 문제거든.
바로 그때. 누군가 왔다.
“노르망디의 대영주 리처드가 폐하와 사자공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줄츠바흐 백작이 봉인된 서찰을 가져온 것이다.
며칠 동안 계속, 프리드리히 황제와 매형 하인리히가 이 아헨의 궁전에서 오랫동안 ‘일’을 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노르망디의 공작 리처드가.
편지를 이쪽 아헨으로 보낸 것이다.
“편지라…….”
받아 든 편지를 펼친 사자공이자 작센 공작인 하인리히는 천천히 그 글귀를 읽어 나갔고. 의문은 경악으로 변하고 경악은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리처드 처남이 이런 편지를 보낼 줄 몰랐습니다.”
효율만을 중시하는 리처드처럼 편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집안싸움 할 거니 건들지 말라는 것이고, 만약 아무리 신성로마제국이라도 끼어드는 순간. ‘각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마 자네 역시?”
“역시 폐하께서도 그런 내용의 편지를 받으셨군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1세, 작센의 사자공 하인리히.
야 너두, 야 나도! 같은 눈빛을 보이던 두 남자는 궁금해졌다. 앙주 가문의 집안싸움이 얼마나 치열할지.
어차피 남의 집, 집안싸움이었다.
* * *
―잉글랜드령 노르망디―
자칭 아키텐 공작 헨리가 이부 누나인 알릭스 공주와 만났고. 존 왕자가 보이기 위한 훈련을 하고 있다는 정보는 노르망디 영지에도 알려졌다.
안 그래도 신성로마제국에 편지도 보내는 등, 여러 가지로 ‘준비 작업’을 하던 리처드 왕자는 사람의 욕심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었다.
“헨리 형님. 그렇게도 왕좌가 탐이 나셨소. 평생 얼굴도 보지 않은 이부 누이를 찾아갈 만큼.”
이미 군대를 이끌고 리처드 왕자에게 합류한 샹파뉴 백작은. 오랜 시간 자기 손발을 맞췄던 주군이자 외숙부에게 물었다.
“전하, 이제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헨리 형님도 제프리 놈도…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어.”
루비콘강을 건너다.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자기 외숙부이자 주군인 리처드에게서 나온 말에. 샹파뉴 백작이 허탈하게 말했다.
“너무 슬픈 현실이군요.”
왕세자에 가까운 남자 헨리가. 헨리 2세의 병환 중에 이부 누이를 찾아갔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복잡한 의미기 있기 때문이다.
‘큰 외숙부 헨리가, 알릭스 이모를 만난 건 지극히 정치적인 이유였지.’
아키텐 공작 헨리가 고작 이부 누이에게 찾아가는 것이 무슨 대수냐 하겠지만, 알릭스는 일개 여인이 아니다.
그 필리프 2세를 따르는 측근 중에서도, 권력과 자금력을 쥐고 있는 귀족들을 주름잡는 마담 알릭스는 여인의 몸으로 한 파벌의 수장인 ‘정치인’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이다니.
아무리 리처드가 사람이 좋아도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무튼 생각을 마친 리처드가 말했다.
“우리 파벌을 움직이게. 밑에서부터 시작이니까.”
이미 싸움은 시작되었다.
* * *
―잉글랜드령 아키텐―
이제 온 유럽 사람들이 1190년에 익숙해져 있었다.
매번 심상치 않은 ‘년도’는 계속되었지만, 올해는 무언가 일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얼마 전까지 이산가족 상봉을 격하게 하고 온 아키텐 공작 헨리도 그런 중세 유럽 사람이었다.
물론 대영제국의 먼 조상같이 세상 흉악한 일을 꾸미는 사람은 아키텐 공작 헨리였다.
그는 오늘도, 구국의 결단을 계획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하는 유럽의 실력자로. 그렇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민감했다.
“…그렇다고 합니다.”
존 왕자의 소식이 들렸다. 대대적으로 아일랜드군을 이끌고 훈련을 한판 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 막내, 칼을 빼 들었네?”
아키텐 공작 헨리는 기쁜 듯 웃었다.
군대를 훈련하는 것, 그것도 비싼 돈을 들여 정예병들을 움직이는 것에 담긴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건 바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일랜드는 가만히 있을 것만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언제라도 무력을 투사할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걸.
이제 아키텐의 모든 귀족이 알았다. 아일랜드에 있는 존 왕자는 언제든 상륙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아키텐 공작은 차라리 이런 모습이 좋았다.
‘그래, 어차피 싸움이겠지.’
고작 프랑스 왕국의 일개 영주이던 오래전부터 앙주 가문은 오로지 탐욕만 준비했다. 괜히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제프리에게 전하게. 성벽을 높이 쌓고, 무기를 준비하며, 군량(軍糧)을 준비하라고.”
“예, 전하.”
“그리고 함대를 준비하게. 우리 잉글랜드인들의 자랑은 해군 아닌가!”
“전하. 걱정하지 마소서.”
그렇게 봉신이 떠나자, 아키텐 공작 헨리는 창밖을 보았다. 잉글랜드 본토보다 훨씬 좋은 날씨였다.
“아버지는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군.”
아키텐 공작 헨리는 이미 아버지의 계획을 알았다. 대반란의 실패 이후, 그는 아버지 헨리 2세를 절대 얕보지 않았고.
‘이 세계에서 가장 영악한 건 부왕이었어. 하지만 여자에 미쳐 너무 무리했지.’
3차 십자군 원정 당시, 헨리 2세가 수많은 함정을 자기 앞에서 내걸었다. 탐욕이 날 정도로 틈을 보였다. 하지만 당장이라도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욕구를 참은 게 아키텐 공작 헨리였고.
이제 성욕을 주체 못 한 부왕은 쓰러지고 말았으니, 그 가증스러운 부왕의 시대는… 얼마 남지 않을 것이다.
그때 보고가 왔다.
“전하, 리처드 왕자 파벌의 영주들이 영지전을 시작했습니다.”
“맞서 싸워!”
영지전 그것이 첫수였다.
* * *
―1190년 아일랜드―
파란 하늘이다. 파란 하늘 꿈이 피어난다.
물론 내 아이들이라면 이 하늘을 그대로 즐기겠지만, 어른인 세이프 존은 하늘이 마냥 맑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중세.
이 시기는 기사의 시대라고 하지만, 잔혹한 음모가들의 시대기도 했다. 당장 내 형들도 여러 외교 공작을 하는 중이고. 당장 나와 같은 편인 리처드 형도 앙주 가문의 왕자인 만큼. 보이지 않는 수 싸움을 하는 중이고, 프랑스 권역 내부에서는 소리 없는 ‘줄타기’가 한창이다.
아마 지금 귀족들은 여러 가지로 머리가 아플 것이다. 저스티스 존과 어벤져스 제프리 중에 하나를) 골라야 하니까.
물론 나 세이프 존은, 다른 형들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아일랜드의 내정을 하면서 한가롭게 놀고 있지 않았다. 보이지 않은 손으로 안보를 지키기 위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일했다.
이미 리처드 형한테 내가 어떻게 움직일지, 우리가. 편지를 보냈다. 같은 저스티스 일동인 만큼, 서로의 상호 작용이 필요하거든.
어벤져스 팀에서는 제프리 형이 참모라면, 저스티스 팀에서는 내가 바로 잉글랜드의 참모라는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협조도 필요하지.’
전쟁은 결국, 세력 싸움이다. 앞으로 큰 판을 벌일 우리 우당탕 앙주 배틀에서 유리하게 이기고 정적인 헨리 형과 악의 축 제프리 형을 몰아내려면.
여러 사람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비록 무수한 삽질로 잉글랜드 귀족들에게 무시당하고 개같이 ‘대헌장’ 해버린 비참한 말년을 가지고 있지만, 오리지널 존이 리처드 국왕이 죽은 뒤 잠시나마 잉글랜드의 국왕 노릇을 할 수 있는 이유도. 이해관계가 맞는 귀족들의 협조를 구했기 때문이다.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
저스티스 존 파벌의 핵심은 막내와 사생아들의 지지였지만, 중립에 속한 귀족들을 이제 슬슬 리처드파로 만들 작업을 해야 한다.
중세 시대라고 무조건 투쟁을 좋아하는 세기말 귀족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영지보다 기존 영지의 보전과 안전을 원하는 귀족들이 분명 존재했고.
우리 저스티스 존 세력은 그들을 열렬하게 포섭 중이다.
“이 정도면 브리튼의 양반들이 잘 알아들었겠지?”
“예, 왕자님.”
“그 귀족들이 처신을 잘해야 할 텐데.”
아일랜드 옆에 있는 외로운 섬 하나 아서왕의 고향 브리튼(잉글랜드가 포함된 커다란 섬)에 있는 귀족들은. 이미 스코틀랜드 반란을 진압하러 갈 때, 브리튼 쪽 귀족들이랑 친분을 만들었다.
물론 나는 그때 브티튼의 귀족들에게 말했었다. 잉글랜드의 미래는 영웅인 리처드 형밖에 없다는 사실을 전했다.
사람은 영악한 존재다. 이해득실을 누구보다 잘 따지는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래서 한순간의 망설임이 모든 것을 망쳐 버릴 가능성이 높은 걸 잘 알고 있다.
며칠 후.
[존 왕자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다행히 상황 파악하는 영악한 귀족들이 저스티스 존에 모여들고 있을 뿐 아니다. 그동안 들인 돈과 시간이 보답받는 순간이다.
이들 뿐 아니다. 서프랑스 권역에 있는 귀족들이 ‘정의’를 확신했다.
[우리들은 리처드 왕자님을 차기 국왕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세이프 존과 위대한 리처드 왕자님을 믿겠습니다.] [명령만 내려주시면, 기사들을 움직이겠습니다.]리처드 형과 나의 파벌, 그리고 헨리 형과 제프리 형의 깃발 아래에서 귀족들이 서로 칼을 겨눴다.
소규모 영지에서 영지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럴 때, 교황청에 계신 스승님은 침묵했다. 당연한 일이다. 교황의 힘이 그리스도의 대리인으로서 세속적인 사건에 대한 중재에서 나오는 거긴 해도. ‘제자’와 연관된 앙주 집안싸움은 중재가 필요한 선을 훨씬 넘어섰다.
그래… 이런 싸움이다.
나는 귀족들의 포섭 작업에 큰 도움을 준 서리 백작을 향해 말했다.
“백부님.”
“예, 전하.”
“저는 리처드 형을 사자왕으로 만들 겁니다.”
“사자왕… 좋은 별호군요.”
나는 파르르 수염을 떨고 있는 숙부를 보며 다시 말했다.
“백부께 아주 좋은 복수가 될 겁니다.”
“복수라… 아주 듣기 좋은 말이군요… 존.”
처음으로 백부님이 내 이름을 불러주셨다.